“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인간은 새롭게 변하면 살 수 있다.
06/01토(土)롬 12:1-2 /고후 5:16-17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우리의 삶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하면 삽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새롭게 변해야 하는데 예전과 똑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세상 사람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면 반드시 내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절대 변할 수 없습니다.
교도소, 군대, 삼청 교육대에 다녀와도 변하지 않습니다. 습관이나 형태만 달라질 뿐 타락한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빠지면 나빠지지,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인간이 변하는 길을 알게 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자기의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있느냐? 표범이 자기의 반점들을 다르게 바꿀 수 있느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죄악에 익숙해진 너희도 선을 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렘 13:23). 이 일이 가능하다면 악에 익숙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될 수 없기에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 다녀도(구원 받았어도) 스스로는 못 변합니다.
교회에 다니니까 습관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예수 믿어도 스스로는 변할 수 없습니다. 영적 원리를 깨달아 터득하면 변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롬 7:18-19).
육신(나)은 구원받았지만 변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선한 일을 하고 싶지만,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내 육신 속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안에서’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롭게 창조됩니다. 지난 삶은 다 패스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게 됩니다. 바울 신학은 ‘그리스도 안(in christ)’이 기독교의 해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착하다. 오래 믿었다.’ 그러니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은 것입니다. 변한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
And...
야곱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니 야곱이 이깁니다. 이때 야곱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 뼈를 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없게 하니 야곱은 주님을 의지합니다. 천사를 이길 수 없을 때 야곱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내 자아가 강하면 절대 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것, 그것이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주님만 옳다고 인정할 때 변하게 됩니다. 내가 먼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기도하는 삶은 주님을 의존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의존하니 자연스럽게 내 안에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나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버려지고 주님 생각으로 채워질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 변했다고 합니다. 한 번 변했다고 계속 변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죽을 때만 변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내가 변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노력하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참으면 언젠가 폭발합니다. 참지 말고 죽어야 합니다. 죽으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모두가 변할 때 가정이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죽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은 나와 관계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문제이니 그 상황에 내가 반응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이 상황은 하나님의 테스트라고 믿는 것입니다. 상황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 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것만 내가 할 일입니다. 내가 죽으면 단순합니다. 하나님 생각과 하나님 뜻만 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론으로는 알지만,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를 변하지 못하게 하는 괴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께 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볼 수 있어야 변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내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상대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왜 원수와 같은 관계가 되었을까? 그것은 그 사람의 조건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상대 안에 주님이 계실 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상대 안에 주님이 사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내가 죽을 때 상대방에게 들어가십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아픔을 느낀다면 아직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아프지 않습니다.
얄미운 그 사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섬기는 나를 봅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미운 짓을 하는 그 사람을 주님께 맡기고, 고스란히 내게 오는 감정에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미움 대신 긍휼함이 생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화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팀 얀센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는 참 율법적인 신자입니다. 그의 믿음은 온도계와 같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보니 많이 변한 것입니다.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이 로마서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100년을 믿어도 죄인일 수밖에 없다. 언제든 주님을 떠나면 죄인 수밖에 없다. 내 속에 가끔 선을 행할 때가 있는데 예전에는 내가 변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 속에서 주님이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님을 떠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놀라운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의 나는 나쁜 사람이고, 주님이 내 속에 역사할 때는 좋은 사람이고, 이것을 구별할 줄 알면 놀라운 사람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놀라운 사람이 되고 남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반드시 변화를 받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되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죄 위해 죽으신 주
https://youtu.be/Sen8t8Wf-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