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8
역대기 상권 15장~16장
시편 75장
(1역대 15,2)
“레위인들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의 궤를 멜 수 없다.
(1역대 15,13)
지난번에는 그대들이
그 궤를 메지 않았기
때문에,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리치셨소. 우리가
그 궤를 법규대로
다루지 않은 탓이오.”
묵상-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어
당신 곁에 붙어살게 하시며 모든
제사와 제물의 관리를 맡기신
레위인의 역할이 돋보인다.
기물을 만지더라도 꼭 레위인의
손을 거치게 하셨다.
지금의 사제직과 수도자들의 역할이
연상된다.
레위인들 말고는 절대 하느님의 궤를
멜수도 없거니와 지난번에 법규대로
하지않아 주님이 내리치신 사건까지
들먹이며 단단히 점검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주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차고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었을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때는 17년전, 큰딸은 수험생이었다.
나 역시 치료가 쉽지 않은 질병으로
일을 다 놓고 동네 수도원 경당에서
기도생활만 하던 시기였다.
집안에 어려움이 많아 아이들도
힘들었던 때에, 나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영적인 생활에 집착했었다.
앞날이 두려워서였다.
그날도 경당에서 긴시간 머물면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는데 외국인
신부님께서 개인미사를 하시겠단다.
나는 새벽에 미사를 했던 터라
나가려하니 신부님께서 같이 미사해도
괜찮다고 하셔서 횡재 했다는 마음으로
눌러 앉았다. 그럼 나만 미사하면 되지,
큰딸에게 전화를 해서 얼른 미사하러
오라고 권유했다. (권유가 아닌 강요잖아)
툴툴대는 딸을 꼬셔서 신부님이랑
셋이 미사를 드렸다.
성체를 영하는 순간이 왔다. 신부님이
성합을 들고 우리앞으로 오셔서
성체를 주시고는 바로 성혈(포도주)이
담긴 잔을 마시라며 나에게 먼저 내미셨다.
그걸 마시고는 나는 그 잔을 자연스럽게
큰딸에게 건넸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말이다. 그런데 딸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미간을 찡그리는 게 아닌가. 신부님은
어깨를 들썩이시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러다 갑자기, 맙소사. 세상에나.
내가 신부님께 받아마신 성혈잔을
신부님께 드리지않고 딸에게 내민 것이다.
헐, 어떡하면 좋아.
놀란 표정을 하고 딸에게 내민 손을
신부님께로 뻗어서 성혈 잔을 내드렸다.
비로소 딸은 신부님이 주시는 성혈을
받아 마실수 있었다.
미사후 딸은 가버리고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괜찮다고 하시면서 나가셨다.
이미 두세시간 동안 조배를 한 후였지만
나는 멍해진 표정으로 묵상을 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내 살아온 인생이 빠르게 편집한 영화
예고편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어릴때부터 부모의 갈등관계안에서
중재자, 해결자, 보호자 역할에
길들여지면서 맏딸로서 내가 다
책임지고 약자인 엄마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신념들이 탄생되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해야할 일도 아닌데,
몸부터 나가서 개입하고 참견하고 돕고
해결하려는 역동이 생겨버린 거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뛰어들어가는
인사이드 인생을 살았던 거다.
만일 뒤로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관망하거나 기다려주는 아웃사이더
상태가 되면, 내가 마치 가치가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것 같고,
내가 할일을 미루고 회피하는 비겁한
사람인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신부님과 나와 딸, 이 세사람이 미사를
봉헌하는 관계적 상황에서도 나는,
나도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사주례자인
사제가 해야할 일을 아무 자격도 없는
내가 주제넘게 나서서 해버린 꼴이다.
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지만,
내가 해줄수 있는게 있고 하느님이
해주실수 있는 영역이 있는건데
나는 하느님의 역할까지 빼앗아서
내가 다 해주려 했던 거다.
그게 사랑이라고 잘못 믿었기 때문.
교만,
지독하고도 오래된 그 교만의 뿌리를
처음으로 직면했었다. 내가 살아온
과거의 일들이 모두 그랬다는
알아차림, 그것은 내게 부끄럽고
아프면서도 은총으로 다가온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레위인말고는 절대 하느님의 계약궤를
메지말라던 다윗의 경고가 다시금 내게
울림을 주었다.
사제를 통해 주님이 하셔야 할 일을
감히 내가 천연덕스럽고 뻔뻔하고
무지하게 저지른 거다.
나의 교만의 뿌리를 뼈저리게 성찰하고
기도하며 그 매듭을 지을 수밖에 없던
유년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들을 직면,
주님 은총안에서 치유해왔다.
이렇듯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의 교만과
그것을 일깨워주신 주님의 은총이,
역대기상권의 다윗이야기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아울러 계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다윗의 모습과 옆에서
비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아내 미칼의
모습에서도, 하느님께 선택된 사제나
수도자, 또는 예언자 등 그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묵상된다.
(1역대 15,29)
주님의 계약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껑충껑충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칼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우리 역시 미칼처럼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마음을 품거나
비웃거나 단죄하고 판단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본다.
구약시대의 레위인들을 선택하시어
특별히 존중해주시며 책임져 주신
하느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그런 마음을 닮아가고 물들어가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