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현수교를 건너는 신뢰(Ⅳ) - 달라진 중국 / 정희연
중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4남매 부부가 함께 베이징을 찾았다. 몇 년 전에는 아내와 상하이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앞선 두 번의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케이블밴드 제작 현황과 반입 일정을 확인한 뒤, 청두 더양에서 충칭으로 가려고 더양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중국의 철도망은 세계 최대 규모다. 고속 철도 길이만 약 6만 km에 이르고, 전체 철도망은 18만 km에 달한다. 3분의 1가량이 고속 철도인 셈이다.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을 넘어, 전국의 주요 도시를 촘촘하게 잇는 국가적인 교통망으로 자리 잡았다. 열차는 귀빈석, 1등석, 일반석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1등석에 앉았다. 좌석은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2열씩 배치되어 있었다. 앞뒤 간격 때문인지 우리나라 일반석보다 조금 넓어 보였고 플랫폼의 높이는 열차 바닥과 같아 짐을 싣고 내리기 편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귀빈석과 1등석은 거의 비고, 일반석은 한산했다.
시속 300~350km의 속도로 달리던 열차가 도심을 빠져나가자 차창 밖으로 한적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들녘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작은 능선을 따라 펼쳐진 옥수수밭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넓은 마당과 낮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농가와 달리, 이곳에서는 대부분 하늘을 향해 한두 층씩 더 올라가 있다. 부모와 자녀, 손자 등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고, 앞으로 가족이 늘어나거나 자녀가 돌아와 머물 공간까지 염두에 두고 집을 짓기 때문이다. 한 가구당 하나의 택지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 제한된 땅에서 생활 공간을 넓히려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세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충칭이다. 중국 서남부 양쯔강 상류에 자리한 대도시다. 면적만 8만 2,400㎢에 이르고, 인구가 3,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도시 하나의 규모가 웬만한 나라에 견줄 만큼 크다. 이곳은 산과 강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양쯔강과 자링강이 도심에서 만나고, 산과 계곡이 곳곳에 이어져 있어 평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와는 달랐다. 두 강이 만나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는 산자락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물길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간단히 점심을 마친 우리는 교량 연구소로 향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케이블을 전문적으로 시험·연구하고 생산하는 ‘초상만교(招商万桥)’가 운영하는 연구 시설이다. 이름만 들으면 수많은 교량 건설 회사 가운데 하나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초상만교는 교량의 핵심 구조물인 케이블을 연구·시험하고 제작하는 전문 기업이다. 케이블이 얼마만큼의 힘을 견디고, 오랜 시간 사용한 뒤에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피고 검증한다. 이번 방문에서는 여러 가닥의 강선으로 구성된 스트랜드의 인장력과, 스트랜드를 정착하는 소켓의 밀림 정도를 확인했다.
초상만교는 중국의 대표적인 중앙 국유기업 그룹인 초상국 그룹(招商局集团)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으며, 그 산하에서 교통 분야의 연구와 기술 개발, 제품 제작과 시공 등을 담당한다. 초상국 그룹은 항만과 물류를 기반으로 금융과 부동산, 도시 개발 및 관련 사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왔다.
중국의 아침은 활기차다. 태극권을 하고, 광장무를 추고, 삼삼오오 모여 에어로빅을 즐기고, 강변을 걷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침을 연다. 넓은 공원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줄지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장무다. 음악에 맞춰 팔을 올리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고, 가볍게 발을 옮긴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앞줄은 엄두가 나지 않아 뒷줄에 선다. 몇 걸음 따라 해 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내 동작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설령 조금 틀려도 눈에 띄지는 않는다. 숙소를 나설 때만 해도 시계는 새벽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일곱시를 향해 가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더해지고, 조용하던 강변에도 어느새 도시의 숨결이 살아난다.
공장에 들어서자 우리를 기다는 것은 회사의 홍보영상이다. 낯선 곳에서 만난 영상은 우리말과 한글 자막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탁자 앞에는 따뜻한 차와 시원한 차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잔을 비우면 어느새 새 차가 놓였다. 말보다 먼저 건넨 배려가 보인다. 영상 속 교량은 규모부터 남달랐다. 하천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고, 깊은 협곡을 잇는 구조물 가운데는 주경간장이 1 km를 훌쩍 넘는 것들이 수십 개에 이른다. 이제는 2 km가 넘는 교량을 설계하고 건설 중이다.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들에게 산과 강은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기보다, 건너야 할 곳이면 길을 내고 이어야 할 곳이면 다리를 놓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자연이 가로막고 있는 곳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다리의 역할처럼 보였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업에 기업의 역량과 기술을 한데 모아 참여한다는 점이다. 사업이 시작되면 함께 연구하고 설계하며, 시험을 거쳐 현장에서 완공될 때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교량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성과는 다시 다음 사업의 밑거름이 된다.
충칭만교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장해 왔다. 더 높고 더 긴 다리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거대한 교량을 떠받치는 케이블처럼 묵직했고, 세계 최고를 향한 열정 또한 그 규모만큼이나 컸다. 한계를 조금씩 넓혀 가며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기술은 거대한 교량 위에 케이블처럼 하나씩 엮여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