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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렌즈에 잡힌 시조②> 세상을 걱정하고 시대를 아파하다
임 채 성(시조시인)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널리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1,153편 2,500수가 넘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다산의 명편으로 꼽히는 시들은 조선의 현실에 밀착한 애민(愛民) 계열의 사실주의 작품들이다. 다산은 아들 학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내용을 주제로 한 시여야 참다운 시라는 시론을 펴기도 했다. 한가하게 자연을 읊거나 바둑 두고 술 마시는 내용의 시보다는 시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생각한 시인의 본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루고,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아파하는 데 있었다.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는 봉건과 근대가 싸우는 들불지대였다. 그 세상에는 봉건질서 속에 깃들어있던 지배이데올로기와 근대를 지향하는 저항이데올로기가 맞부딪치며 일으키는 연기가 자욱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다산의 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유교적 전통가치관은 자본주의의 냉엄한 논리에 의해 쓸모없어졌다. 자본과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속물들이 황금만능의 이권쟁탈전을 벌이는 동안, 주변부로 내몰린 타자(他者)들은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다산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시의 본질은 사실의 세계를 언어로 조탁해 새로운 이미지로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은 시적 사유의 공간에서 현실적 공간으로 이동하여 시를 쓴다. 이러한 문학의 아토포스(atopos)는 시조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시절가조(時節歌調)’로서 기능해온 오늘의 시조도 ‘지금-여기’의 문제에 치열하게 천착하며 현대사회의 우울과 삶의 그늘을 조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은 성장 속도에 비례하여 소외계층을 양산한다. 상위 1%가 하위 90%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대한민국에 와서는 부동산으로 표출된다. 우리나라는 상위 1%가 전체 사유지의 약 52%, 상위 5%가 83%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 불평등은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주의의 특성 위에 ‘일해서 버는 돈’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의 주거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택 재고는 턱 없이 부족하다. 한쪽에서는 토지나 주택 투기를 통해 보통사람들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단번에 챙기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몸 하나 누울 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떠도는 극심한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인천 동구청은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괭이부리마을’에 생활체험관 시설을 만들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지자체가 제출한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에 따르면 쪽방촌에서 숙박할 기회를 줘 쪽방생활을 체험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난까지 관광 상품화하려한다는 주민들과 여론의 거센 역풍에 휘말리게 되자 결국 쪽방촌 체험 계획은 무산되었다. 정용국 시인과 조성문 시인은 현대사회의 그늘로 인식되는 이러한 쪽방촌에 시선을 맞춘다. 무주택서민들과 저소득층 사람들의 설움과 눈물, 허망함과 박탈감의 현실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처럼, 서울에도 몇 곳의 대표적인 쪽방촌이 있는데 그곳이 가리봉동과 동자동이다.
짓무른 시간들이 멋대로 지분대는 번잡한 골목에도 꾸려야 할 삶은 있다 계면조(界面調) 속살이 우는 가리봉동 쪽방촌
낮술로 달래놓은 어깃장 시름 한 놈 어물전 뒷골목을 서성이는 초저녁 중국어 전화방 간판이 싸락눈을 이고 있다
- 정용국, 「삶은 늘 저쪽에 있다」 전문, 『난 네가 참 좋다』(실천문학사, 2015)
다 바닥난 쌀알이지, 날리는 저 싸라기눈 언덕길 얼기설기 눌어붙은 동자동 9-20 배 주린 어스름 골목 큰 집채 다가선다
부르튼 입술 깨물다 무일푼 모로 눕는 감춰도 감출 수 없이 웅크린 썰렁한 방 귓가에 채찍 휘두른 칼바람이 버겁다
예서 나가라고? 흥, 쪽방 빠끔 열려 있다 날벼락 같은 전갈 담장까지 딱지 붙고 싸라락 흰말채나무 붉은 줄기 더 붉힌다
- 조성문 「흰말채나무 딱지 붙다」 전문, 『정형시학』(2015년 여름호)
개발시대 구로공단이 있었던 가리봉동은 쪽방촌이라는 이름보다 ‘벌집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1970~80년대 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가리봉동 벌집촌은 2007년 '방문 취업제' 도입과 함께 급격히 늘어난 재중동포(또는 조선족)의 대표적인 정착지가 되었다. 조선족은 주로 서울 구로와 금천, 영등포 등지에 집중적으로 몰려 살고 있다. 특히 가리봉동은 갓 한국에 온 동포들이 선호하는 첫 정착지다. 초기 정착에 필요한 인력 시장이 형성돼 있고, 교통 접근성이 좋으며, 상대적으로 물가와 주거비 등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은 대부분 중국에 가족을 두고 가사 도우미, 식당 종업원, 건설 노동자와 같이 저임금 단순 노무직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다. 단기간에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갈 목적으로 가급적 싼 지역을 찾게 되어, 가리봉동 거주 조선족의 약 90%가 쪽방으로 개조된 단독‧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다. 정용국 시인은 우리 사회에서 타자(他者)이자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조선족들이 거주하는 ‘가리봉동 쪽방촌’에 주목한다. 그곳은 “짓무른 시간들이 멋대로 지분대는 번잡한 골목”이며 애절하고도 슬픈 “계면조(界面調) 속살이 우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꾸려가야 할 삶”은 “낮술로 달래”기도 버거워 초저녁까지 “어물전 뒷골목을 서성”이기 일쑤다. “중국어 전화방 간판이 싸락눈을 이고 있”는 현실은 춥고 고달픈 외곽의 삶을 증거 하는 표식이자 결국 ‘이쪽’이 아닌 ‘저쪽’이라는 시적 공간을 완성하는 도구가 된다. 이처럼 정용국 시인은 생의 변두리를 추상이 아닌 구체로 환기함으로써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현실 탐색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와 함께 조성문 시인의 눈은 고층빌딩과 서울역의 휘황한 불빛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동자동을 향한다. 시인이 주목한 동자동 9-20번지는 1968년 8월에 사용승인을 받은 지하1층, 지상 4층의 낡은 건물로, 최근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위해 강제철거를 결정하며 세입자들과 갈등을 빚은 곳이다. 건물주는 지난 2월 건물 안전진단 결과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한다며 3월15일까지 쪽방 세입자 42가구에 모두 퇴거하라고 공고했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로 달리 갈 곳이 없던 세입자들은 계속 살게 해달라며 협상을 벌였지만, 건물주는 전기와 수도를 끊고 철거반원들을 투입해 강제철거를 진행했던 것이다.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 속에 박혀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뿌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가 된다. 5∼6월에 노란빛을 띤 흰색 꽃을 피우는 ‘흰말채나무’는 꽃도 피우기 전에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신세다. ‘다 바닥난 쌀알’은 ‘배 주린 어스름 골목’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날벼락 같은 전갈/ 담장까지 딱지 붙”은 ‘흰말채나무’의 ‘붉은 줄기’는 그래서 더 붉어진다. 봄이 와도 ‘싸라기눈’이 날리는 ‘동자동 9-20’의 ‘칼바람’은 우리시대 ‘개발의 환부(患部)’를 아프게 드러낸다.
그에게 전화가 온 건 땅을 파던 중이었다 너 언제 꽃 필거냐 안부 묻는 그 사람
그날은 하루 왼종일 등허리가 욱신거렸다
조경 잡부 일상이란 땅을 파고 허무는 것 일력 한 장 찢어들고 허문 땅을 또 파는 것
삽자루 죽어라 쥐고 하루해를 엿보는 것
바람이 스치고 간 추모공원 무덤가 봄은 벌써 봄을 옮겨 꽃들은 피었는데
꽃나무 파낸 구덕에 묘목인 양 눕고 싶었다
- 서정택, 「어느 나무의 왕년」 전문, 『시조시학』(2015년 여름호)
앞의 두 시인이 사회적 우울에 천착했다면, 서정택 시인은 개인적인 감성에 치중한다. 소외된 존재에 대한 응시와 관찰은 시적 화자의 자기진술일 때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남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만큼의 리얼리티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서정택 시인은 스스로 ‘한물 간’ 나무가 되어 담담한 어조로 꽃의 시기가 지나버린 비껴간 현실을 진술한다. 땅을 파고 허물고, 허문 땅을 또 파며 “삽자루 죽어라 쥐고/ 하루해를 엿보는” ‘조경 잡부’의 일상은 우울하다. ‘왕년’엔 돈 잘 벌고 번듯한 명함까지 돌리던, 사회의 갑(甲)이었을 그도 “너 언제 꽃 필거냐 안부 묻는” 전화라도 오는 날이면 “하루 왼종일/ 등허리가 욱신”거린다. “봄은 벌써 봄을 옮겨 꽃들은 피었는데” 혼자만 꽃을 피우지 못한 현실의 삶은 이미 ‘무덤가’에 닿아 있다. 그래서 화자는 “꽃나무/ 파낸 구덕에/ 묘목인 양 눕고 싶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꽃을 피운 누군가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서 다시 ‘묘목’이 되고 싶다는 진술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생을 리셋 또는 재부팅하고 싶은 간절한 반전의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가능에 대한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서정택 시인은 합리적 이성에 의해 순탄하게 진행되는 중심의 삶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해 부러지고 생채기 난 소외된 개인을 감싸 안으며 새로운 상상적 질서를 재구축하는 알레고리의 시학을 추구한다.
아직도 못다 거둔 잔설을 비집으며
온 몸으로 맨바닥 길 당겨가는 저 사내
땡그랑, 동전 한 닢이 환청 속에 떨고 있다
바람도 이쯤에선 보폭을 줄이는데
더 높이 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지상엔 청맹과니뿐 눈총만 비켜갈 뿐
낮추어 여며오던 휘우듬한 더듬이로
허공을 더듬느라 주춤대는 입춘 무렵
눈발도 발을 헛디뎌 허방 길에 빠진다
- 이남순, 「애벌레 납시다」 전문, 『문학청춘』(2015년 여름호)
부러지고 생채기 난 소외된 개인의 삶은 또 다른 양태로 표현된다. 이남순 시인은 절박한 오체투지의 몸짓으로 “땡그랑, 동전 한 닢”을 구걸하는 길거리 인생을 ‘애벌레’로 극화한다. 그 애벌레는 “온 몸으로 맨바닥 길 당겨가는” 사내이다. 애벌레가 몸을 웅크렸다 폈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직립보행의 꿈을 접은 그 사내가 시인에게는 애벌레처럼 애잔하게 보인다. 그러나 “더 높이 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출세지향의 직립인간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청맹과니’이며 자선의 동전 대신 ‘눈총’만 날릴 뿐이다. 높이 올리지 못하고 “낮추어 여며오던 휘우듬한 더듬이”로 ‘허공’을 더듬어 보지만, 허공은 허공일 뿐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어 허우적대고 있는 신세다. “눈발도 발을 헛디뎌 허방 길에 빠지”는 현실은 헤어날 길 없는 심연의 나락을 의미한다. 속도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민달팽이들의 도시는 그래서 ‘허방’일 수밖에 없다. “더 높이 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어느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애벌레’ 같은 존재를 더듬는 시인의 눈길은 쓸쓸하기만 하다. 정치인들의 표심 얻기 전략으로 전락한 ‘보편적 복지’보다 절실한 밑바닥의 삶부터 챙기고 보듬으려는 ‘선별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을 이 시조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애벌레 납시다」라는 희화화된 제목은 밑바닥 삶에 대한 비하와 왜곡된 시선을 전달할 우려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조간(朝刊)이 습관처럼 현관 앞에 던져진다 가지런한 기사 틈에 삐죽 나온 고지서 한 장 한 달 치 활자들의 몸값 잉크냄새 물고 있다
벚꽃의 구호들이 분분히 휘날리다 숨겨진 이야기들 새잎으로 돋아날까 활자들 부푸는 4월 그 몸값이 무겁다
- 정희경 「보궐선거」 전문, 『한국동서문학』(2015년 여름호)
정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는 결코 올바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공자는 “정치의 으뜸가는 요체는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과 기대가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그러한 추측은 수차례씩 치르는 ‘보궐선거’만 보더라도 명확한 것 같다. 정기적인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까지 합하면 국민들의 선거 피로도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예기치 않은 보궐선거까지 치러야 하다니. 잦은 선거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아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여와 야로 갈라져 민심분열을 조장하며 선거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보궐선거 원인자도 선거비용을 반환하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희경 시인은 이러한 ‘보궐선거’의 사회적 비용 문제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조간신문 틈에 끼어있는 ‘한 달 치’ 구독료 고지서에서 착안한 시인의 상상력은 “벚꽃의 구호들이 분분히 휘날리”는 “활자들 부푸는 4월”의 선거로 의식의 영역이 확장된다.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는 번지르르한 공약들이 “새잎”을 피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화려하게 피어났다 한순간에 지고 마는 벚꽃 같은 운명을 시인은 이미 예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온갖 사탕발림으로 치장된 선거공보의 활자들만 “몸값이 무거”워지는 현실은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하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어선 몇 척 태흥 포구 경매도 다 끝나고 세멘바닥 윷판이라도 벌일 것 같은 오후 가끔씩 도둑고양이 순찰하듯 다녀간다
이곳에선 ‘게죽’이나 ‘깅이죽’이라 하지 말라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 없는 파도처럼 “뭐 마씸?” 되묻기 전에 말하시라 겡이죽!
따져보면, 수평선은 넘겨야 할 낙선(落選)이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사람 팔자 윷가락 팔자 장마철 생비린내도 녹여낸 저 겡이죽
- 오승철, 「겡이죽」 전문, 『시조시학』(2015년 여름호)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지만, 생활인이 되어 보면 농사지을 너른 평야도 없고 사철 거친 바람과 파도와 싸워야 하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살며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시조로 형상화해온 오승철 시인은 제주도의 토속음식에 주목하였다. 제재가 된 ‘겡이죽’은 바닷가에서 나는 작은 게를 절구나 믹서에 통째로 찧거나 갈아 딱딱한 찌꺼기를 체로 쳐서 걸러낸 후 쌀을 넣고 쑨 ‘게죽’을 말한다. ‘게’의 제주도 말이 ‘겡이’다. 겡이죽은 게장보다 더 깊고 구수한 맛을 낸다고 해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별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게들까지 잡아먹어야 하는 마을이고 보면 ‘겡이죽’은 풍성한 식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태흥포구’는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작은 포구다. “경매도 다 끝”난 오후 어판장의 ‘시멘트바닥’은 남은 게 없이 깨끗해서 “윷판이라도 벌일 것” 같다. “가끔씩 도둑고양이 순찰하듯 다녀가”지만 그의 벌이도 시원찮을 터. 시인은 풍요롭고 시끌벅적한 어시장의 풍경이 아니라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모자란 듯한 분위기를 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자존까지 내려놓지는 않는다. “이곳에선 ‘게죽’이나 ‘깅이죽’이라 하지 말라”며 반드시 ‘겡이죽’을 말하시라 당부한다. 어설픈 표준말이나 타지의 사투리로 그들의 자존을 훼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수평선’은 ‘장마철 생비린내’처럼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사람 팔자 윷가락 팔자”에는 삶의 방식보다 삶의 목표를 중시하는 달관의 인생관이 투영되어 있다. 한 그릇의 ‘겡이죽’은 그 자체로 선택받은 사람들의 강한 자긍이자,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풍요를 갈구하는 제주인의 ‘맨도롱 또똣’한 감성이라 할 수 있다.
깊고 푸른 그 밤에
동백 지던 그 밤에
주먹밥 한 덩이가
이별이던 그 밤에
하얗게 부서져 내리네
눈물 같은 뼛가루
- 김영란, 「기다리며-정방폭포에서」 전문, 『시와문화』(2015년 여름호)
제주도에 관한 시편 하나만 더 살펴보자. ‘정방폭포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김영란 시인의 「기다리며」는 화가 이명복의 아크릴릭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명복의 ‘기다리며’는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여명의 새벽녘, 정방폭포 아래 소녀 하나가 바위 위에 서 있는 그림이다. 밤하늘과 폭포수와 보랏빛 풍경 등 화면의 모든 구조가 소녀에게로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소녀의 비원(悲願)을 상징하듯 붉은 동백 꽃잎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흩날리고 있다. 신묘한 풍경 속에 서 있는 소녀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치유되지 않은 현대사의 아픔에 대한 화해와 상생의 바람일 것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비경으로만 알려진 정방폭포가 현대사의 아픔을 품은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서복전시관이 들어서 있는 폭포의 위쪽 ‘소남머리’는 제주 4·3사건 당시 무수히 쌓인 시체와 핏물이 마르지 않았던 산남 최대의 학살 터였다. 4·3 당시 정방폭포를 중심으로 한 서귀리(현 송산동) 지역은 군부대가 주둔했던 토벌대의 거점지역이었는데 이곳에서 죽은 희생자 수는 알려진 것만 250여명이다. 밝혀지지 않은 실제 숫자는 더 많다는 것이 목격자와 유족들의 증언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군인들의 구타, 고문이 자행되면서 비명 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정방폭포는 아직도 누군가에겐 눈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김영란 시인의 눈에도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수 줄기가 생명의 추락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폭포수를 “눈물 같은 뼛가루”로 읽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만 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지만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덮을 수는 없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폭포수처럼 요동친다. 그러한 시인의 목소리는 이 땅의 외로운 곳에서 펼쳐지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어울림 굿판을 먼저 열어젖힘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아픔에 동행하려는 화해의 축도(縮圖)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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