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골 마을을 가다
전호준
본격적인 한여름이 시작되는 양력 칠월의 초하룻날이다.
지난주 시작한 장마가 먼 남해바다로 내려가 소강상태라는 기상정보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상록자원봉사단 수필창작 반 문우들이 방학 짬에 대구시 둔산동에 있는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인 경주 최씨 광정공파 후손들의 집성촌이었던 옻골 마을을 탐방키로 약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모처럼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위치한 마천산 산행계획이 비 때문에 갑자기 취소된 미련 때문일까? 오늘도 하늘은 금시 비를 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다. 어쩜 모임 때마다 궂은 날이 잦아 수필隨筆을 수필水必로 착각한 하늘의 배려란 어쭙잖은 생각을 하며 우산을 챙겼다.
가뭄에 시달리는 초목과 농작물은 나 몰라라, 애타는 농심은 강 건너 불 보듯 무더위에 지쳐 시원한 비를 기다리다 사흘이 멀다 하고 ‘또! 비가 오네! ‚ 하늘을 쳐다보는 가벼움이 나만의 마음일까?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지난 며칠 내린 비로 상큼하게 단장한 초록의 나무숲이 신선한 영기를 발산하는 듯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날씨도 날씨인 만큼 마을 탐방은 내려올 때 하기로 하고 우선 산행을 먼저 하기로 했다.
여느 명문 세가들의 집성촌같이 우뚝우뚝 솟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한 마을을 지나 살아있는 거북바위라 칭하는 생구암生龜巖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글자 그대로 갈지之 자의 제법 가파른 산길이다
가쁜 숨을 추스르며 쉬엄쉬엄 30여 분을 오르니 생구암 정상이다. 생구암의 유래가 적힌 팻말을 읽어보고 거북을 닮은 바위 위에 앉았다. 기대보다는 실망이다. 이름 그대로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을 생구암이 아니다. 그래도 예부터 옻골 마을의 수호신으로 일컬어진 바위라니, 마음이 경건해진다. 인증 샷 한 컷으로 거북바위에 작별을 고하고 올라왔던 가파른 길을 피해 대암산 능선을 따라 내려왔다.
옻골 마을, 옻나무가 많아 옻골인 줄 알았는데 옻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항아리 모양 오목하다 하여 옥 골이라 한 것이 옻골이 되었다는 설과 계곡 주변에 옻나무가 많아 칠계漆溪 즉 옻나무 계곡 옻골이 되었다는 설이다. 옛날에는 계곡 주위에 옻나무가 제법 많았다는 원로 문우의 귀띔에도 의아하기만 하다.
옻나무가 몸에 좋다는 말에 남벌된 것일까? 관광객을 배려해 피부병을 유발하는 옻나무를 혹여 고의로 제거한 것은 아닌지? 옻나무가 없는 옻 골이 무언가 허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을 입구를 막아선 아름드리나무숲이 비보裨補 숲이라 한다. 항아리를 눕혀 놓은 듯한 지형에 지대가 높아 멀리 금호강이 보여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배산임수란 산을 등지고 앞이 탁 트여 강물이 흘려드는 듯한 지형이 명당인 줄 알았는데 인공 숲으로 앞을 가린 이유를 무지한 나로선 아리송하기만 하다.
혹여 마을 수호신 생구가 바깥세상에 현혹될까? 우려한 궁여지책은 아니었나 하는 나만의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숲에 연못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수호신 거북이 내려와 노닐며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예부터 인공 지당池塘이 있던 곳을 다시 보수공사 중이란다. 직사각형 모양에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방으로 네모진 가운데 사람을 더한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형상화한 모양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연못은 어떤 형태였는지 처음 와본 나로선 알 수는 없으나. 사괴석四塊石을 벽돌담을 쌓은 것 같은 호안의 모양새가 나의 무딘 눈엔 어색하다. 아직은 공사 중이라 알 수는 없지만, 집 근처 수성못이 떠오른다. 당초 깬 돌로 조성된 호안을 걷어내고 대신 각종 수생식물을 심어 자연 생태복원은 물론 호수 기본 멋을 살린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며 혹여 생구生龜가 나들이를 왔다가 낯선 환경에 놀라 줄행랑치지 않을까? 엉뚱한 걱정을 해본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며 그 옛날 이런 두메산골에 어떤 연유로 들어와 정착했을까? 우리네 선조들이 삶의 터를 정할 때 반드시 살펴보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배산임수의 양택陽宅으로 동계東溪 서계西溪 합수 지점의 명당이란 설명에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마을은 조선 인조 때 문신 대암臺巖 최동집이 1616년 (광해 8년) 이곳에 정착하였다 한다. 손자 최경함이 지은 백불고택 종가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라 했다. 많은 집들이 현대식으로 개보수 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 보본 당, 대묘. 별묘 행랑채 등이 조화를 이루어 생활 편의와 삶의 질서를 배려해 지어진 집으로 여느 한옥에서 느낄 수 없는 고색창연한 기풍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보본당은 반계 류형원 선생의 수록을 영조의 명으로 백불암 최흥원 선생께서 초본을 교정하신 장소로 알려져 그 의미가 크다.
반계수록은 조선 중기 학자 류형원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피폐한 나라를 바로잡고자 관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 우본동에 칩거 20여 년간 심혈을 기울어 쓴 실리적 국정개혁론이라니, 우둔한 나로선 그 내용은 알지 못하나 미루어 짐작 건데 감회가 새롭다.
또한 백불암百弗菴 최흥원 선생은 효심이 깊었다 한다. 효심을 기리는 정려각에는 정조가 하사하신 붉은 글씨의 홍패를 담 넘어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몇 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있는 산 역사의 유적들을 보며 역시 명문대가는 충효정신과 적선積善이 근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자본가 계급 타도로 무차별 파괴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평소 베푼 선행善行의 덕분이란 어느 문우의 이야기에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글귀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옻골 마을을 올려보았다.
(2019. 7.1 옻골 마을을 다녀와서)
첫댓글 힘께 다녀 오면서도 길잡이를 구실로 무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그 마을의 역사와 자연환경이 선생님의 사유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담담히 흐르는 물처럼 글속에 고여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비올 듯이 오지 않고, 습하고 더운 날씨 속에 갈짓자의 가파른 오름길로 생구암을 향해 힘겹게 올라가던 기억이 다시 새롭습니다. 문화해설사를 자처해주신 문선생님으로 부터 전해들은 옻골 마을의 자연과 인문의 여러 이야기들이 그새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아름디운 기록으로 남겨 주시니 옻골 마을을 다시 보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의 산행기억과 맛난 점심, 문우들과의 대화에 빠져 옻골마을에 대한 자세한 탐방을 제가 소홀히 한것 같았는데 좋은 내용 글로 남겨주셔서 덕분에 다시 정리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공무원 연금공단 수업을 수강한후 처음으로 참여하였던 뜻깊었던 등산이었습니다. 옻골 마을이라기에 옻이 오를까 겁이나 망설였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곧바로 알았지요. 마을의 역사와 환경을 알게 해주신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하지 못했는데 선생님께서 자세히 올려주신 글을 읽고 옻골 마을이 400 여년의 전통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곳에도 옻골댁 댁호를 가지신 할머니께서 세분이 계시고 시댁 종동서도 옻골댁이라 낯설지 않는 곳이라 더 관심이 가는 동네였습니다. 이렇게 더 상세한 글을 읽고 보니 역시 명문가에서 오신 분들의 고고하신 품위가 친정 동네를 더욱 살려주신 듯 합니다. 몰랐던 전통 동네에 대해서 잘 읽고 갑니다.
집사람에게 옻골 마을 다녀온 걸 자랑했더니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차를 몰고 다시 갔었습니다.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있었으나 여전히 한적한 분위기였답니다. 단체 산행 때 입구 주점을 그냥 지나친 게 못내 아쉬웠었는데 그날은 작심하고 들어갔었습니다. 주인장이 토담방으로 안내해 줘서 옛 시골집 분위기에 잠시나마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무게가 버거워 달려있는 복숭아도 한 봉다리 사서 집에 와서 먹었답니다. 당도며 식감에 최고점을 주고 싶네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옻골 마을의 풍경이 되살아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옻골은 우리 고향 동네 부인동과 깊은 관련이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동네입니다. 입향조 대암선생이 팔공산에 정착할 때 처음 우리 동네에 얼마간 머물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옻골의 역사와 풍경을 맛깔나게 잘 설명해 주셔서 다시 한번 옻골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옻골마을을 우리 앞에 다시 그림으로 그려주신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시선의 깊이에 따라 그 결과는 다양하고 모두 다른 것도 같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던 생구암 등반.. 능소화 곱게 피던 흙담과 아름다운 한옥이 기억 속에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년전에 옻골 마을을 다녀왔습니다만 눈요기만 했었는데 옻골마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읽고나니 옻골마을이 새로운 풍경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듯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