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7일 화요일
한낮의 시선
김미순
"어떤 경우에도 부정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야말로 그런 존재지. 죽기 전에는 없어질 수 없다는 뜻이야. 어떤 경우에는 죽어서도 죽은 채로 있는 게 아버지지"
아버지는 왜 나를 사랑하느냐, 혹은 사랑받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다' 가 아들에게 속한 동시가 아님을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찾는 자. 갖도록 운명 지어진 자가 아들이다. 아들만이 바위산과 갈대숲과 선인장밭과 끓는 사막을 통과하며 찾는다. ㆍㆍㆍㆍㆍ.
이 책의 메지시를 이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승우 작가의 <한낮의 시선> 에 나온 대목이다. 어머니의 천부적인 노력으로 주인공 한명재가 아버지의 존재를 결핍으로 느끼지 않고 스물아홉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이름도 모르고 산다. 대학원생 주인공이 어느날 결핵에 걸린다. 어머니의 소유인 전원주택에 요양차 갔는데 그곳에서 다른 입주민 은퇴한 심리학교수를 만난다. 대화하는 중에 그동안 모르고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을까? 외삼촌의 도움으로 강원도 민통선 부근에 소도시에 가게 된다. 아버지를 찾아~ 그러나 아버지는 주인공을 반기지 않고 자신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주인공을 이용하려 든다. 거기에서 주인공은 충격을 받고 피를 쏟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이야기다. 딱 까놓고 줄거리만 훑으면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의 탁월함은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게 되기까지의 무의식이 자세하게 펼쳐져 자라나고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는 거다. 마치 어린이처럼 달려간다. 아버지를 찾아서~막상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가 띨 반응을 기대하고 어머니의 이름까지 들먹이는데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반응하고 은폐하기에 이른다. 끝에는 자신의 선거에 이용하고 감금하기에 이른다. 주인공을 죽이는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갈팡질팡 하면서도 정신차리자고 , 문학가들의 작품이나 인디안 부족들의 전승되는 이야기, 성경에서 나오는 방탕한 아들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주제를 드러낸다. 짧은 이야기를 밀도 있고 빠른 템포로 구성하는 작가의 비범한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 67 쪽ㅡ 그러나 이름은 단순한 음절의 모음이 아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혀와 바람의 단순한 작용일 수 없다. 이름은 존재의 영혼과 같은 것,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존재와 긍정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존재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영혼은 그 존재의 영혼과 맞닿는 경험을 한다. 어떤 이름은 입술에 올리는 것만으로 황홀하고 설렌다. 어떤 이름은 혀에 올라가기도 전에 거부감으로 미리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킨다. 어떤 이름은 흥분하게 하고 어떤 이름은 가라앉게 하기도 한다. 차마 부를 수 없는 이름도 있다. 영혼이 부딪치기 때문에 나타내는 현상들이다. 나는 외삼촌이 가르쳐준 아버지의 이름을 혀 위에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혀는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발음기관들이 그 이름을 발음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거북해하거나 불편해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이름이 불러일으킬, 불러일으킬 만한 이미지가 없는데도, 아니 실은 없기 때문에 내 영혼은 쭈뼜거렸다. 스물아홉 해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긍정하고 인정해야 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 84 쪽 ㅡ 그렇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에 잠겨 있는 섬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 굳이 바닷물을 다 퍼내거나 바닷물 속으로 몸을 집어넣거나 해야 하는 걸까? 섬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건 맞다. 그러나 부정하지 않기 위해 꼭 드러내야 만 하는 건 아니지. 드러내지 않은 채로 긍정히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게 어려운 일일까? 아니면 그게 옳지 않은 일일까?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옳지 않은 일은 아니라면 굳이 바닷물을 퍼내거나 바닷물 속으로 몸을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 190 쪽 ㅡ김중사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빨아들였다. 문제의 인물에게 감정이입까지 하며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폭군 - 보호자의 괴롭힘보다 그의 부재가 더견디기 힘들었을 정황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두렵고 불안한 '있음' 보다 두렵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일은 '없음' 이 더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 198 쪽 ㅡ그러나 문득 그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예 할 말이 아무것도 없는 거라는 깨달음이 왔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할 말이 많은 사람만이 말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단지 할 말이 없을 뿐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할 수는 없다. 어머니는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으로부터 달아난다. 앞을 향해 달려야 했으므로 뒤를 돌아보지 않있다.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은 실은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는 지나치게 잘 알았다. 어머니는 빠르게 시간을 관통했고, 그 결과 아버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어머니는 그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거라고 단정히기에 이르렀다.
* 나에게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이니다.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보고 읽었다. 한낮의 시선으로 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둠이 우리 삶에 많이 깊이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