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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26절 없음)(마가복음11:20-25)
20. Early next morning, as they walked along the road, they saw the fig tree. It was dead all the way down to its roots. 21. Peter remembered what had happened and said to Jesus, “Look, Teacher, the fig tree you cursed has died!”
22. Jesus answered them, “Have faith in God. 23. I assure you that whoever tells this hill to get up and throw itself in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24. For this reason I tell you: When you pray and ask for something,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you will be given whatever you ask for. 25. And when you stand and pray, forgive anything you may have against anyone,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will forgive the wrongs you have done.” 26[b]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 들으러 가자고 집을 나서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자고 주일날 교회에 모인 것입니다.
성경은 펴자마자 이렇게 시작됩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창1:1-3)
처음에는 혼돈과 공허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곧 빛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세상 첫 날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소 양 말 꽃들도 세상에 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조된 소 양 말 돼지....... 이것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도 창 열면 가을의 논과 밭이 보입니다.
지금 누렇게 익은 벼들이 수확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봄에 뿌려진 씨앗들이 옥토에 제대로 떨어지는 경우 백 배로 결실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롬1:19,20)
우리는 이를 두고 일반 계시라고 부릅니다.
그런 세상으로 2,000년 전 말씀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방식으로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메시지였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셨습니다.
죄로 죽은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그 때 마침 주님은 배가 고프셨습니다.
그 나무에서 혹시 열매가 있는지 찾으러 가신 주님이 그 나무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시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난 일이 오늘 본문입니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0. Early next morning, as they walked along the road, they saw the fig tree. It was dead all the way down to its roots.
죽음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주님은 뿌리째 죽은 죽음을 통해 말씀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늘의 복음을 전하실 때 죽음을 언어처럼 사용하시는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다이아몬드뿐입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내용을 세상에 있는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무엇으로도 그 나라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의 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표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장 귀한 이 땅의 생명을 부인하는 죽음으로 그 나라는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 앞의 나무도 죽음을 통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 성전입니다.
이 무화과나무의 죽음은 성전의 죽음을 설명합니다.
성전이 이렇게 무너져서 부인되므로 진정한 성전이신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실 것입니다.
그 성전의 종말을 성전 앞의 그 나무가 알려준 것입니다.
또 그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주후 70년 하나님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돌 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1. Peter remembered what had happened and said to Jesus, “Look, Teacher, the fig tree you cursed has died!”
성전을 찾은 다음 날 보니 나무가 뿌리째 말라비틀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가 한 백 년 그 수명을 다한 후에 죽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아니면 처음에는 잎이 마르더니 두세 달 후에는 줄기가 마르고 한 해를 버티더니 다음 해에는 병으로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제까지 푸르던 것입니다.
다음 아침 뿌리째 죽어버린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충격적인 그 원인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막11:14)
14 Jesus said to the fig tree, “No one shall ever eat figs from you again!”
그들은 그 충격적인 말씀의 현장에서는 막상 그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현실이 되어서 그들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주님의 조용하신 말씀 한마디와 뿌리째 죽어있는 무화과나무.!
물론 제자들이 그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면 주님의 결정적인 말씀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막11:14)
14 Jesus said to the fig tree, “No one shall ever eat figs from you again!”
하지만 2,000년 전 베드로에게만 그런 놀랄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당장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현장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실은 그보다 더 한 일이 우리 주변에 수두룩합니다.
우리 경험하는 일상이 모조리 태초에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우리는 이 태양계 안에서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이 태양계에는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해 이것들이 곡예를 하는 중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이 일곱 개가 더 넘는 별들이 자전하지 또 공전도 하지 하늘에서 수억 년 내내 돌며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서로 부딪히는 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놀라운 일은 태양과 지구의 교묘한 교차로 인해서 거창에 지금은 가을이 온 것입니다.
의동으로 올라가는 그 길을 은행잎이 뒤덮은 것입니다.
이것은 의동 올라가는 은행나무 비탈길에 해가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이렇게 태초의 하나님 말씀 한마디에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신체도 바로 그 사건입니다.
신체만큼 정밀하며 복잡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뿌리째 죽은 나무를 보면서 어제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던 베드로처럼 우리는 이 우주를 보면서 내 몸을 보면서 태초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 주께서 나무에게 소리 질러대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나 간신히 알아들은 소리로 그 나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그 나무의 죽음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무화과나무를 향해 죽으라고 말을 해보세요.
그 일이 현실로 드러납니까?
눈감은 자를 향해 눈 뜨라고 해보세요.
아니면 주님처럼 나병환자를 앞에 두고.......
도대체 주님의 말씀과 내 말의 차이가 무엇인가?
주님은 제자들의 그 의문에 대해서 한 마디로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2. Jesus answered them, “Have faith in God.”
예수님은 나무가 그대로 죽은 그 사건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그 제자들도 실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어떻게 말씀 한마디에 그런 일이 일어나나 주님께 특별한 비결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최소한 열려라 참깨!
참깨라는 암호를 잊어버리고 제자들이 고추장 된장 하다가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주님만이 알고 계시는 어떤 주문이라도 없을까?
그것이 제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자식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으라고 교육 시키소 있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고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엘리야 때에 갈멜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26. 그들은 가져 온 소 한 마리를 골라서 준비하여 놓은 뒤에,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은 응답해 주십시오" 하면서 부르짖었다. 그러나 응답은 커녕,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바알의 예언자들은 제단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었다.
27. 한낮이 되니,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더 큰소리로 불러라. 바알은 신이니까, 다른 볼일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용변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멀리 여행을 떠났을지, 그것도 아니면 자고 있으므로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느냐!"
28. 그들은 더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그들의 예배 관습에 따라,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기 몸을 찔렀다.
29. 한낮이 지나서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될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없고, 아무런 대답도 없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왕상18:26-29)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응답을 받아내기 위해 별짓을 다 했습니다.
제 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드럼치고 소리 지르고
칼과 창을 가지고 자신들의 몸을 찔러 피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깜깜무소식이었습니다.
거기에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32. 이 돌을 가지고 엘리야는, 주의 이름을 따라서 제단을 쌓고, 제단 둘레에는 두 세아 정도의 곡식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도랑을 팠다.
33. 그 다음에, 나뭇단을 쌓아 놓고, 소를 각을 떠서, 그 나뭇단 위에 올려 놓고, 물통 네 개에 물을 가득 채워다가, 제물과 나뭇단 위에 쏟으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그대로 하니,
34. 엘리야가 한 번 더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하니, 그는 또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세 번을 그렇게 하니,
35. 물이 제단 주위로 넘쳐 흘러서, 그 옆 도랑에 가득 찼다.
36. 제사를 드릴 때가 되니,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보신 주 하나님, 주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주의 종이며, 내가 오직 주의 말씀대로만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하여 주십시오.
37. 주님, 응답하여 주십시오. 응답하여 주십시오.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이 주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웠고, 도랑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말려 버렸다.(왕상18:32-38)
엘리야는 물로 불을 끄고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말씀 한마디를 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학교에 낼 납부금 주시라고 율동하고 드럼치면 소리지르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버지 납부금 영수증 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여기 있다. 가져가라.” 하십니다.
하나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십니다.
관계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과 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성부 하나님께서 정말 아버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다음 날 나무는 죽어있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응답을 통해서 성부와의 관계를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빛이 생겼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창1:3)
그런데 이 태초의 말씀은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누구를 신앙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의 첫 날에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빛이 생긴 역사를 들려주셨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 이어지면서 소 돼지 양 꽃 바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는 창조자에 의해 피조된 것들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세상에는 모조리 피조물뿐입니다.
그렇게 세상에는 그것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많고 아무리 아름다워도 모조리 피조된 것입니다.
온 세상에는 우리가 신앙의 대상을 삼을 수 없는 피조물뿐입니다.
창조자만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십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외에 신앙의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한 분 하나님 외에 그것이 아무리 위대해도 신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에 우리의 머리를 조아린다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21. 그러자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왕상18:21)
하나님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 신앙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대상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말씀은 신앙의 대상으로 피조물에 양다리 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에 한 다리를 걸치든지
세상의 지위에 한 다리를 걸치든지
제 똑똑한 것에 한 다리를 걸치든지 하나님 외의 것에 양다리 걸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은 아브라함이 한다리 걸치고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1.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12:1)
한다리를 걸친 것에서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대상입니다.
특별히 그 믿음의 대상을 두고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지적하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을 앓고 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걸을 수 없었으니 네 사람이 들것에 친구를 실었습니다.
주님을 향해 가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네 명의 행진을 위해 길을 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에 막히다 보니 들것을 들고 담장을 넘었습니다.
담장을 넘다가 지붕 위로 올라서게 된 것입니다.
지붕에 막혀서 예수님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지붕을 뚫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였지만 주님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찢어서 끈을 만들고 그 끈을 연결해서 들것을 달아 내린 것입니다.
실은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예수께 가는 길을 막는 일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에게 주님께 가까이 가는 법을 따로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남이 생각도 하지 못했을 짓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두고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막2:5)
그러면 믿음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풍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알면서도 들것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 들것을 들고 가다가 담을 만나면 “아이고, 안 되겠다.” 하며 집으로 돌아와 버리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서 이제는 별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구멍은 뚫어는 놓았는데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옷을 벗더니 그 옷을 찢어서 끈을 만들어서 들것을 주님께 달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주께서 친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예로 드셨습니다.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3. I assure you that whoever tells this hill to get up and throw itself in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will happen, it will be done for him.
산을 두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전에 우리 제주에서 교회에 귀신 들린 교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벽을 보면서 한참을 말을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끊긴 전화기를 들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녀에게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실이 보였습니다.
산을 향해서 명령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For this reason I tell you: When you pray and ask for something,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you will be given whatever you ask for.
예수님께서 나무를 저주했을 때 비록 나무는 말짱했지만 이미 그 나무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의 내일의 현실을 이미 체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오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것은 푸른 나무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말라비틀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말짱하게 나무가 살아있는 오늘의 현실은 허상이었습니다.
주님의 믿음에 따라서 저주받은 나무가 이미 죽어버린 것이 실상이었습니다.
즉 믿음이 실상이었던 것입니다.
현실이 허상이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극복되어 버린 것입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개정개역)
뉴욕에서 아이 넷을 대학을 보냈을 때 저의 통장은 마이너스였습니다.
아이들 학비만 해도.......
그 때 롱아일랜드 우리 집 앞에 그 너른 운동장을 날마다 믿음 하나 둘 실상 셋 넷 하면서 한 열 바퀴씩 뛰었습니다.
저금통장이 실상이라고 주장해 대는 나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믿음 하나 둘 실상 셋 넷
믿음 하나 둘 실상 셋 넷
그래서 주님은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미 받은(have pp 완료된 사실) 것이라고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을 내일 쯤 받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은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빈손 안에 이미 구한 것이 채워져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24.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24. When you pray and ask for something,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 일은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보세요 손 안에 여러분이 구한 것이 쥐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뜻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일을 공생애의 초기에서부터 밝히셨습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요2:19)
주님이 참 성전으로 등장하시기 위한 것은 옛 성전의 파괴입니다.
성전은 돌 하나 위에 돌이 남지 않고 무화과나무와 같이 뿌리째 말라야 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라는 성전이 서실 것입니다.
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최악의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상관이 없이 그 사람이 요구한 것들이 현실이 되는 경우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1,2)
믿음으로 천사의 방언을 하고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사건이 그 사람에게 엄청난 혼란을 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랑이라는 내용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방언을 하며 산을 옮기는 믿음이 그만 교회의 꽹과리 소리 즉 엄청난 소음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나의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15:7)
그래서 성경은 기도의 응답을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또 그 말씀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었을 때에 그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 먼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한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지
그 말씀 안에 있는지
그래서 기도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구한 것은 이미 얻었다는 믿음과 둘째로 그 내용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갑자기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이르지만 25절은 앞 절과 연관성이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용서의 행위를 다루시는 것입니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25. And when you stand and pray, forgive anything you may have against anyone,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will forgive the wrongs you have done.” 26[b]
용서의 내용이 없은 기도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의 핵심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은 용서 행위입니다.
그래서 두 손을 들고 경배와 찬양을 하는 교회 안의 사건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두 손 들고 드럼에 맞추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에게 교회에서 나가서 저기 시장바닥으로 가서 원수진 사람을 용서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건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일어날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영적인 결정은 교회를 나와서 사람과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며 실천적입니다.
그 일을 근거로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잘못을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의 용서의 근거를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성전 안 제단에서가 아니라 골고다의 언덕길에서 죄인의 용서의 제의가 드려졌던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 그러므로 우리도 진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14. 실상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히13:12-14)
진정한 영적인 사건은 교회 안에서의 사건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서의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원한다면 성 밖에서 정치인들을 거짓말 그만합시다.
돈 생각만 하면서 방사능 오염수를 흘려버리지 맙시다.
경제인 역시 공생을 생각합시다.
성 밖에서의 사건으로 그 사람의 하나님의 나라 영생이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입신하는 일을 신령한 것으로 규정하며 구체적인 용서 행위의 회피 방식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못에 박히고 터무니없는 욕을 듣고 그렇게 죽으시기 위해 찾으신 곳이 겟세마네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한 기도의 기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종교 기술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산이 바다에 빠지는 기적을 과시하는 종교 기술을 부리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산이 거기 서 있는 그대로 있고 바다가 거기 그대로 있더라도 그런 변화가 아닙니다.
원수도 용서하다니 그런 일을 생각도 못했던 사람이 이제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적 과시를 추구하는 것은 망조가 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틀림없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은 나를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기도는 원수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