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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보는 것이 믿는 것인가?">
알칸사 폿 스미스(Fort Smith)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경찰이 구멍가게를 턴 강도 한 사람을 추적하다가 잡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뉴썸(James Newsome)으로서 37살 먹은 남자였습니다. 경찰이 이 사람이 강도라고 확신한 이유는 여러 가지 증거들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얼굴이 구멍가게의 감시 화면에 잡혔습니다. 거기에다가 강도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코트가 이 남자의 차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뉴썸의 부인이 자기 집의 자동차의 레디에이터가 샌다고 증언했는데 강도가 차를 파킹한 장소에서 부동액이 떨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더 확실한 것은 강도가 구멍가게를 털 때 안전 헬멧을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헬멧 정면에 'James Newsome'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서양 사람들은 'Seeing is Believing,' 즉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속담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도마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일일이 다 확인해보고 믿는 것은 복된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자연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현대인들은 직접 자기 눈으로 확증하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언제나 "증거를 대라," "직접 보여 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고, 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못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보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증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서 우리는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도마의 모습이 무엇이든지 증거가 없으면 잘 믿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의 부활 체험기>
① 도마는 반드시 있어야만 할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도마는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으며(마 10: 3 참조), '디두모'(Didymu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두모'라는 헬라어 이름의 뜻은 '쌍둥이'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도마가 쌍둥이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런데 요 11: 6에 보면 도마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도마는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비관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드려야 할 시간에 딴 곳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은혜 받아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성도가 은혜 없는 곳에서 방황하면 안 됩니다. 성도는 모든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어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처럼 창립 25주년을 맞아 전 교인들이 한데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한다고 몇 번씩이나 광고를 했지만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부활에 대해서 기대를 하지 않고 슬픔과 절망 속에 빠져서 다른 제자들과 헤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함께 어울리고 교제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일들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는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② 도마는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본문 25절을 보세요.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우리는 도마와 같은 사람을 실증주의자(positivist)라고 말합니다. 결코 얼렁뚱땅 어설프게 넘어가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의심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도마야말로 매우 정직한 사람입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손으로 직접 만져서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믿을 수 없어!" 이런 도마의 태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설프게 "무조건 믿습니다!" 하는 신자보다 정직한 의심을 거쳐서 확신에 이르는 신자가 훨씬 더 훌륭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직한 회의, 양심적인 의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faith seeking understanding,' 즉 '이해를 구하는 신앙'이 되어야지 맹목적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믿음도 세상 사람들이 "왜 믿느냐?"하고 물을 때,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③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본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면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들은 도마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8일이 지나서 도마가 제자들과 다 함께 집안에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정중앙에 서셔서 의심하는 도마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27절을 보세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집에 문이 잠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들어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고서도 저절로 통과해서 제자들에게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은 문의 빗장만 통과해서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의심으로 마음의 빗장을 굳게 잠근 도마의 마음의 문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박힌 못자국과 옆구리에 깊게 패인 창자국을 직접 자기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의 처절한 상처를 확인하자 도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이니다!"--"My Lord and My God!"--라는 신앙 고백이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일찍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인칭 단수의 소유격, MY다"--"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possessive pronoun, first person singular, MY"--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옳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주님이요, 인류의 구주로 말하는 것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구주'로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우리 자신이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체험해서 바로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 남군의 장군 중 한 사람이었던 잔 고든(John B. Gordon)이 상원 의원직에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상원의원직을 위한 지명 투표가 있는 날, 한 때 고든 장군 밑에서 일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고든 장군의 정치적 입장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고든 장군이 상원 의원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지명 투표가 시작되었을 때 이 남자는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 가운데 고든 장군의 지명을 반대하는 표를 가지고 단상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단상 정면에 앉아 있는 고든 장군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그 얼굴은 그 옛날 잘생긴 고든 장군의 얼굴이 아니라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흉측해진 얼굴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남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고든 장군을 반대하려던 생각을 즉시 바꾸고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고든 장군을 반대해서 결코 안 돼! 나는 고든 장군을 지명하는 투표를 던져야만 해!" 그런 뒤 이 사람은 고든 장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장군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장군님 얼굴에 깊이 패인 상처를 잠시 잊었습니다!"--"General, forgive me! I forgot about the scar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마가 예수님의 손바닥에 깊이 패인 못자국을 만져 보고, 예수님의 옆구리에 참혹하게 일그러진 창자국을 만졌을 때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 아침에 여러분들 모두도 십자가 위에 달리신 주님의 상처를 기억하며 그 주님을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④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됩니다. 예수님의 손에 박힌 못자국과 옆구리에 찍힌 창자국을 직접 만져 본 다음에서야 예수님을 알아 본 도마에게 예수님은 따끔한 충고를 한 마디 던지십니다. 29절을 보세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진정으로 축복 받은 사람들은 보지 않고서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지식의 세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세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만져 보지 않아도 천국이 있고 부활이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원주민 부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던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표현을 그 부족의 언어로 번역하려고 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선교사님이 요 3: 16을 번역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동네 사람 하나가 자기가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 갖게 된 신앙에 대해서 말하려고 찾아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선교사님이 '믿는다'는 말을 부족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좋은 표현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잠시 동안 생각하던 원주민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믿는다'는 말을 묘사하기 위하여 우리말로 제일 좋은 방법은 '앉으라'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I think the best way to describe the word 'believe' would be to say, 'to sit down.'" 깜짝 놀란 선교사님은 왜 이 말을 떠올리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대뜸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지금 의자 위에 앉아 계시지요. 이것은 이 의자가 선교사님을 지탱해준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You are sitting on a chair. Therefore, you must believe the chair will hold you." 선교사님은 이 남자의 대답에 은혜를 받고 요 3: 16을 즉시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위에 앉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sits down on (believes o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시퍼런 면도날을 든 이발사에게 우리의 얼굴을 맡깁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돌아다닙니다. 이 세상에 되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믿음 없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고 손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제자들이 변화되고 초대교회가 생겨나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믿을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오는 말: 믿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자!>
도마에 관해서 많은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나중에 도마는 특히「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과 「도마 행전」(Acts of Thomas)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한 가지 믿을만한 전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은 어느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비를 뽑게 되었습니다. 이 때 도마에게 떨어진 선교지는 인도였습니다. 도마는 처음에 자기는 몸이 약하기 때문에 인도까지 멀리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결국 꿈에 나타난 예수님의 설득으로 도마는 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오늘날 남인도 교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도마는 쉽게 확신이 서고, 쉽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확실하게 해내는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어떤 일을 너무 쉽게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보다 분명 도마가 더 낫습니다!
오늘 이 좋은 부활절 아침에 의심 많은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종류의 불신앙과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찬송가 340장의 후렴 가사처럼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진실로 원하시는 것은 증거 없이도, 보지 않고서도, 만지지 않고서도 주님의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훨씬 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활을 마음 깊은 곳에서 믿을 수 있는, 축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 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내 맘 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 갈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축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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