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사 길 비봉산의 강이식 장군 (6)
수양제의 시기와 고구려 정벌 2
양광이 돌궐에 방문했을 때였다. 거기서 고구려 사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대놓고 그 사신에게 고구려 태왕의 입조와 조공을 요구하며 이를 어길 시 고구려를 정벌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사신에게 보고를 받은 고구려의 영양왕은 듣지 않았고 양제는 수차례 사신을 보내 조공과 입조를 행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그래도 응하지 않자 격분한 양제는 고구려를 침공하고자 했다.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한 598년 이후 14년 만인 612년 113만 대군을 동원하니 각종 물자를 나르는 짐꾼 등 보조 인력까지 합한다면 200만은 되었을 것이다.
대규모 원정을 위해 배를 건조할 때 기술자들은 밤낮없이 물속에서 일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서 목숨을 잃은 자가 전체 인원의 40%에 육박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식량을 운반하려는데 운반 기구가 모자라 작은 수레까지 총동원하였는데 식량을 많이 싣지 못하는 데다가 길이 너무 멀어 도중에 식량을 다 먹어버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건네줄 식량이 없으니 백성들은 도주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1,000리나 되는 수송로에서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밤낮으로 군수 물자를 운송하다 보니 병사하는 자, 피로에 지쳐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여 시체가 길을 덮을 정도였다.
마침내 612년 정월 113만 3,8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대대적인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선두 부대가 출발하고 나서 마지막 부대까지 출발하는 데만 40일이 소요되었으며 그 행렬이 자그마치 1,000여 리(400km)가 되었다.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향해 진격한 수나라군은 며칠에 걸쳐 그 성을 함락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해 3월 고구려 국경 지역인 요하에 도착하여 강을 건널 부교를 건설하려 했으나 제대로 건설되지 않아 군사들이 부교를 건네지 못하자, 고구려군은 이 틈을 이용해서 수나라군에 화살 세례를 퍼부어 강을 건너기에 앞서 많은 수나라 군사가 죽고 말았다.
하지만 수나라군은 도하에 성공하였고 고구려군은 응전했지만,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10,000명에 달하는 군사를 잃고 요동성으로 후퇴했다.
요동성은 방어력을 높이고자 성벽이 무척 높았는데, 높이는 30m인 데다가 주변의 산과 더불어 길이가 3.5km였다. 수나라군은 성벽을 올라가려 시도했지만 공성용 사다리가 요동 성벽보다 낮아 올라갈 수 없었고 후퇴한 뒤 다시 재정비하여 공격했으나 고구려군이 돌과 화살 세례를 퍼부으며 끈질기게 저항하여 올라가지도 못하고 다시 후퇴했다. 그러자, 성벽과 성문을 파괴하려 했지만, 내구도가 중국의 성과 달라서 안 부서졌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성은 중국의 벽돌성과는 전혀 다른, 돌로 만든 석성이었기 때문이다.
벽돌을 쌓으면 끝인 중국의 성과는 달리, 고구려의 석성은 쌓은 돌을 흙으로 에워 감싸서 더욱 단단했으니, 중국의 벽돌 성을 기준으로 만든 수나라의 무기로는 당연히 부술 수가 없었다. 특히 수나라 군대는 판축 토성과 벽돌 성에 익숙하고 청야전술을 겪어보지 못 했다보니 공성전에서 헤맸다. 그렇게 공격을 말아먹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설상가상으로 양제가 "자신의 명령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군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수나라 군대가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지친 고구려군을 공격할 기회를 노려도 양제에게 먼저 보고해야 했다. 따라서 수나라 군대는 군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공격을 해도 고구려군이 이 틈에 재정비하거나 수나라의 움직임을 먼저 눈치채 대응할 수 있었다.
한편 수나라 수군의 장수 내호아는 수군 100,000명을 평양성 인근에 상륙시키고 나서 평양성을 직접 공격하려고 시도했다. 양제는 출정 전에 각 장수에게 육군과 수군이 협공으로 평양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는데, 내호아는 전공에 집착한 나머지 단독으로 평양성을 공격하려고 들었으나 고구려의 고건무에게 당해 수군의 절반 이상이 궤멸당했고, 요하를 건너와서 요동성을 포위하였지만 6개월이나 지났어도 요동성 성벽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수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300,000명의 별동군을 편성해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군사들에게 100일치 식량을 한꺼번에 주어 직접 들고 가도록 한 것이다. 305,000명의 별동대는 수십 kg에 달하는 식량을 등에 업고 요동성에서 평양성까지 험난한 천산산맥을 하나하나 넘어가며 진격해야 했고, 무거운 군장 때문에 수나라 군사들은 갈 때마다 야음을 틈타 천막 속에서 몰래 식량을 땅에 파묻었다. 그로 인하여 수나라 군대는 식량이 떨어졌고 굶주려 싸울 힘이 없었다.
이를 눈치챈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수나라 진영에 가서 거짓 항복을 청하며 동시에 수나라 군사들의 동태를 살폈다. 살수(청천강)를 건넌 수나라 별동군이 평양성을 포위했지만, 보급로가 없고 가지고 왔던 식량은 다 떨어지니 싸울 힘이 없는 수나라 군사들은 퇴각을 결정했고, 고구려군의 기습 공격에 수나라 30만 별동군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때 수나라 305,000명 중 살아 돌아간 군사는 2,700명이었으며, 이것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 양제는 크게 분노하여 우중문과 우문술을 쇠사슬로 묶어 그해 10월 퇴각했다. 결과적으로 양제의 제1차 침공은 수나라의 처참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악의 결국은 자멸하게 되는 것이다. 숫자가 아무리 많고 능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다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고전 10: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신 3: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편에 선자를 하나님은 지켜 주신다.
미국의 남북 전쟁 때 에이브러햄 링컨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 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어느편에 섯는가? 인간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