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35) 넘치는 혈기가 부른 손책의 최후 <상편>
한편, 원술(袁術)에게 군사 3천과 말 5백 필을 빌리고,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 손견(孫堅)의 수하 장수였던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조무(祖茂)등 네 명의 용장들을 거느리고 , 아버지의 옛 땅 강동 정벌에 나서, 유요와 엄백호를 제압하고 그곳을 평정한 뒤에 그대로 눌러앉은 강동의 소패왕 손책(小覇王 孫策)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자.
손책의 세력은 날로 강대해 갔다.
혜성처럼 나타난 이십육 세의 풍운아(豊雲兒) 손책은 절강(浙江) 일대의 비옥한 토지를 점유한 덕택에, 곡식과 나무등 천연 재물이 풍요하고 문화가 발달하여, 인심이 풍족하였다.
게다가 건안 사년(建安 四年)에는 유훈(劉勳)을 쳐서 여강(廬江)을 점령하고, 다시 우번을 시켜 예장 태수(豫章 太守) 화음에게 격문을 띄우니, 그는 제발로 찾아와 항복하였다.
이렇게 되자 손책은 심복 부하인 장굉(張紘)을 허도에 보내어, 조정에 많은 선물을 올리며, 자신에게 대사마(大司馬)의 벼슬을 내려주기를 청하였다.
이른바 강동지역의 패권자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젊은 사자새끼 같은 손책에게 달리는 말의 말고삐를 쥐어주긴 싫었다.
그리하여 천자 유협의 뒤에서 막강한 조정력을 발휘하여, 손책에게 대사마의 벼슬을 내려주지 못하게 하고 장굉을 붙잡아 두었다.
허도에서 돌아온 장굉의 수하가 이같은 사실을 알리자 손책이 크게 화를 낸다.
"한 황제께 나를 강동의 대사마에 봉해 달라고 고했더니, 중간에 조조가 농간을 놓아, 안된다고 했다네! 조조는 우리 강동이 강성해지니, 고의로 거절한 것이 틀림없어! 게다가 장굉까지 붙잡고 있으니, 이 원수를 어찌 갚을꼬!"
도열한 중신들은 젊은 혈기에 넘쳐 소리를 지르는 손책을 제지하지 아니하고 모두들 듣고만 있었다.
그러는 중에 한당(韓當)이 나서며 다른 건으로 아뢴다.
"주공! 오군 태수(吳郡 太守) 허공(許貢)이 조조에게 보내는 밀서(密書)를 도중에서 입수했는데,
그 내용이 이루 말 할 수없이 불순합니다!"
"읽으시오!"
한당이 밀서를 펼쳐들고 읽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 승상! 손책은 항우에 견줄만큼 용맹해, 장차 승상의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차제에 그를 허도로 불러 올려,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소서. >
"허공 이놈!"
손책은 탁자를 발로차며 일어났다.
"감히 조조와 결탁해 날 모해해?"
"고정하십시오!"
좌중의 문무대신 모두가 고하였다.
그러자 손책이 잠시 뜸을 들인후,
"허공을 살려뒀다간 큰 화가 될 거요. 한당! 선봉대로 출발하여 놈의 목을 가져오시오!"
하고,명하였다.
그러자 한당은 두 손을 올려 명을 접수하고,
"네, 주공!"
하고,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그 후로 손책은 한당의 뒤를 따라 주력군을 이끌고 오군으로 달려가, 한당이 붙잡아 놓은 허공을 즉석에서 죽였다.
그리고 그의 일가친척도 모두 죽이게 하였다.
이때 허공의 사랑방에는 식객(食客)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 허공에게 은혜를 많이 받아온 사람들이라, 허공이 손책에게 붙잡혀 죽게되자 산중으로 피신하며,
"우리는 어떡하든지 태수님의 원수를 갚아드려야 하오!"
하고, 손책에게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고, 은밀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얼마 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손책이 소수의 군사를 거느리고 단도(丹徒)에 나가 서산(西山)에서 사냥을 하는 기회를 틈타, 세 사람은 창과 활을 가지고 숲속에 숨어서 손책을 노리고 있었다.
마침 손책은 큰 사슴 한 마리를 쫓아 말을 휘몰아 숲속으로 달려들어왔다가 무기를 들고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하였다.
"너희들은 누구냐?"
손책이 말을 급히 멈추며 물었다.
"한당(韓當)의 수하로 사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손책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아니하고 다시 사슴을 쫓으려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창을 들고 있던 사내가 손책의 옆구리를 세차게 찔렀다.
"앗!"
손책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요도(腰刀: 허리에 차는 칼)를 뽑아, 그 사내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으로 이상하게도 손아귀에는 칼자루가 들려있지 않았다.
그때에 또 한 사람이 손책에게 활을 쏘았다.
그 화살은 손책의 뺨에 깊숙이 박혔다.
손책은 뺨에 꼿힌 화살을 뽑아 가지고 자기 활에 매겨 가지고 그 사내에게 쏘았다.
그러자 사내는 손책의 화살을 맞고 그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남은 두 사내는 좌우로 번개같이 달려들며 연방 창을 들어 손책을 사정없이 찌르며 소리친다.
"우리는 허 태수(許 太守)댁 문객들이다. 우리는 네게 주인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
손책은 피투성이가 되어 가며 그들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애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정보(程普)가 숲속으로 들어간 손책의 소식이 없자, 군사 오륙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손책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이놈들을 죽여라!"
정보가 급히 달려들어 두 사내를 죽이고 보니, 손책은 전신에 상처가 수없이 나 있었다.
급한대로 정보는 전포자락을 찢어 손책의 상처를 싸매고 급히 본성(本城)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명의 화타(名醫 華陀)를 급히 불렀다.
그러나 화타는 때마침 중원으로 떠나고, 그의 제자만 남아있었다.
화타의 제자는 진찰을 하고 근심스럽게 말했다.
"화살촉과 창끝에 독이 있어서, 그 독이 뼛속까지 스며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백일 동안은 치료를 받으셔야 하겠습니다. 그동안에는 절대 안정을 하셔야 합니다."
이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 손책의 상처는 아물어갔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날, 허도의 조조에게 붙잡혀 있는 장굉이 보내는 사람이 왔다.
그는 병석에 누워있는 손책에게 이렇게 아뢴다.
"조 승상은 주공을 몹시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참모 곽가(參謀 郭嘉) 한 사람만은 주공을 조금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곽가란 놈이 그래? ... 그놈이 내 애기를 뭐라고 하더냐 "
"주공은 위인이 경망하고 성질이 조급한 필부(匹夫)와 같아서 후일에 반드시 소인(小人)의 손에 죽게 되리라고 합니다."
손책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노했다.
"조조나 곽가란 놈이? 아니, 제깟 것들이 뭔데? 나를 그렇게나 깔 본단 말이냐! 내 기필코 지금 곧 허도를 쳐서 놈들의 죄를 물어야 하겠다!"
손책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전포와 갑옷을 당장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소(張昭)가 크게 놀라며 말린다.
"의원이 주공의 몸은 백일이 경과하여야 완치된다고 하였는데, 이제 한때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러시면 어떡하십니까? 부디 진정하소서."
마침 그때, 원소에게서 사자가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손책이 원소의 사자를 불러들이니, 그는 원소의 친서를 전하며 말한다.
"지금 역적 조조를 쳐부술 어른은 손 장군과 우리 주공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손책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원소와 힘을 합해 조조를 치기로 약조하고 사신을 융숭히 대접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 원소의 사자와 함께 연락을 크게 벌였는데,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무렵에 장수들이 무언가 수근거리더니 모두들 누대(樓臺)에서 내려가 버린다.
손책이 의아스럽게 여기며 측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것이냐?"
측근 한 사람이 손책에게 아뢴다.
"우길(于吉) 이라는 선인(仙人)이 누대 아래를 지나가시므로 모두들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러 내려간 것입니다."
손책이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누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백발이 성성한 도인(道人) 한 사람이 길 한가운데 서 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에는 조금전 누대에서 내려간 장수들도 섞여 있었다.
손책이 매우 못마땅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저게 왼 요망한 늙은이냐? 당장 내려가서 잡아오너라!"
그러자 좌우가 크게 놀라며 간한다.
"저 어른은 우길이라는 선인으로서 동방(東方)에 사시는 분인데, 때때로 이곳에 오셔서 백성들에게 부수(符水)를 나누어 주셔서 만병(萬病)을 고치게 하시는 어른이시옵니다. 백성들은 저분을 신선처럼 여기고 따르오니, 저분을 함부로 잡아왔다가는 백성들에게 무서운 원망을 듣게되시옵니다."
손책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노한다.
"어리석은 수작 그만 부려라! 이곳 백성들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이 누구한테 있관데,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당장 시행하지 않으면 너희놈들부터 잡아죽이겠다!"
손책이 이렇게 말하며 하늘이 얕다고 펄펄 뛰는 통에, 수하들은 마지못해 우길 노인을 누대로 잡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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