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길 질러 철뚝을 건너가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온 깡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
마지막은 기어코 싸움이 되었다. 억수같이 취해서
나는 상업과 현선생의 멱살을 잡았고
길길이 날뛰는 그의 맹꽁이 배를 걷어차면서
언제나 그보다 먼저 울었다
정말 사소함이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만그만했던 젊은 선생들과 함께 어울려
어깨를 걸치고 나무다리를 건너 오면서
바보같이 막막해서 그도
돌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보산리
그 너머 질편히 깔려 있던 캄캄한 어둠들은
떠돌아와서 먼저 자리 잡아도
뿌리 없긴 마찬가지인 사람들처럼 그곳에서도 우리들은
어차피 뜨내기였다. 우리가 가르쳤던 고아들과 끝까지
미운 오리새끼처럼 띄약볕에 엎드려 있더니
왜 이선생은 약을 먹었는지
새벽마다 그만큼씩만 아직도 우리에게 그녀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것도 모른다
우리들이 가르치던 여학생들은 더러
몸을 버려 학교를 그만 두었고
소문이 나자 남학생들도 퇴학을 맞아
지원병이 되어 군대에 갔지만
우리들은 첩첩 안개 속으로 다시 부딪혀 떠나면서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이 세상 것은
알려고 해선 안된다고 믿었다
아직 우리들을 굳게 만드는 이 막막한 어둠 말고 무엇을
우리들이 욕할 수 있을까
어둠조차 우리들이 벌 줄 수 있었던가
눈물일까 눈물일까 정이월 찬비 속으로
쓰러지지 못해 또 다시 떠나는 우리들의 비겁함 외에는
무엇이 더 오래 남아 젖는지 정작 또 모르면서
*김명인 시인과 소주잔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에, 밤이 취하도록 술을 부어대는 지난 해 4월의 밤이었다.
솔직하시고 좋은 인상을 지니신 분이었고 훌륭한 학자의 면모도 보여주셨다.
기억에 특히 남아 있는 것으로 시인께서는 '강 건너 등불'을 애창곡으로 부르곤 하신다. 그러나 그 노래가 옛 애인의 향기가 묻어 있다는 것을 아신 사모님께서 노래 중에 2절 만큼은 금지곡(?)으로 엄명을 내리셨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