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 문단에서 ‘베트남’을 다룬 작품은 ‘베트남 참전중’에도 발표되었습니다.(황석영의 탑이 대표작 -_-;;) 정훈용 프로파간다성 글짓기뿐 아니라 전쟁 자체를 다룬 괜찮은 작품도 의외로 많았죠. 그러나 말 그대로 ‘참전을 결정한 정권’ 그것도 독재 성향이 짙었던 터라 좌파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다루려는 노력은 하기 힘들었습니다. ( 이런 성향을 약간이나마 보여주려했던게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1부입니다.)
황석영의 ‘탑’은 70년대 말기에 최초로 이런 금기를 깨려고 했던 작품입니다. 당연히 사상계 연재를 시작으로 신동아,월간 조선등등을 거치면서 여러번 연재 중단의 파란을 겪었고 결국 재대로 출판된 건 6월 항쟁 이후였습니다.
이 작품은 ‘청룡부대 사병’이었다가 ‘빽’으로 한-미 연합사 정보대 수사대원이 된 영규 ( 작가의 분신)와 ‘돈을 벌어서 월남을 탈출하는게 꿈인 전직 운동권’월남인 장교 팜꾸엔, 팜꾸엔의 동생이자 순수한 일념으로 해방전선에 가담하는 팜민을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의 행적을 통해서 베트남전의 ‘지극히 좌파적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권 자료와 서적, 제국주의의 실체를 보여주는 원조국의 회의 장면, 영규가 수사 기관에서 보는 미군의 양민학살 관련 ( 3개중 처음과 끝은 가상이고 두 번째는 너무나도 유명한 미라이 학살 사건입니다.) 이야기, 미군 탈영병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전쟁의 회의론등이 전편을 흐르고 너무 딱딱한 역사책적인 자료집을 넘어서서 의정부 기지촌 출신의 ( 그녀의 회상을 통해서 어쩌면 그녀 역시 혼혈이라는 걸 암시) 오혜정 (미미)와 팜 형제의 므흣한 관계, 영규와의 우정, 영규의 베트남인 수사 파트너 ‘토이’와의 모험, 월남과 대마도를 무대로 활동중인 퇴역 장교가 낀 한국인 암시장 일당 일망 타진 작전과 월남군의 소수민족 학살작전 ( 계피 작전 -_-;;) 그리고 마지막에 월맹군의 비행장 기습과 영규의 해방전선 무기창고 기습등의 다양한 사건등을 박진감있게 그립니다.
베트남 전에 대한 지극히 좌파적 해석을 보시려면 필히 권할 ( 반공주의자가 웬말 -_-;;)이고 황석영 초기의 사회의식과 박진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이죠... 한 가지 흠이라면 앞에서 너무 진을 뺀 나머지 뒷부분에 영규가 팜민 일당을 아작내는 장면이 너무 빨리 넘어가고 ‘토이의 죽음’에 그 원인을 두는게 인과 관계가 안 맞는다는 거죠 ( 영규 특유의 느글느글한 허무주의를 본다면)
개인적으로 명대사는 1) 영규는 이곳에서 만난 누구의 얼굴도 기억하기 싫었다 ( 귀국선을 타면서) 나 2) 영규는 훈련소를 나온후 신문에 있는 영화 광고를 보고 죽죽 울었다. ( 사회와의 괴리 때문에..) 특히 두 번째 부분은 100% 공감입니다.
PS: 개인적으로는 이념 과잉으로 흐른 태백산맥 보다는 이 작품이 좌파적 현대사 인식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황석영씨 작품은... 장편은 이 작품과 손님 정도만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객지’는 중편이니까 -_-;;; 오래 된 정원 이후는 별로입니다. ( 개인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