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주왕산周王山 (722.1m) 】 "당나라 주왕(周王)이 은거했던 산''」
경상북도 청송군, 영덕군에 있는 100대 명산. 높이는 해발 721m.1976년 3월 30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태백산맥에 속해 있으며 산경표 상으로 낙동정맥에 위치한 산이다. 태백산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정맥의 맥이 통고산, 울련산을 거쳐 주왕산에서 거대한 암벽의 정점을 찍은 후, 맥은 주산재를 거쳐 무학산으로 이어진다. 경북 내륙의 청송과 동해안의 영덕을 가르는 험준한 장벽 역할을 하며, 주변에 이렇다 할 높은 산이 없어 산세가 더욱 돋보인다. 또한 주왕산 일대는 현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17년, 청송 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며 청송군 및 주왕산 전역이 지질공원이 되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국립공원 100경에 기암, 주산지, 주방계곡, 용추폭포(제1폭포) 기암길 등 4곳의 경치가 선정되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으나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 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사람을 주왕(周王)이라고 한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으로 피신하여 산 입구가 되는 주방천 협곡에 산성(자하성)을 쌓고 재기를 노렸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갔음을 알고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 벌인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는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그만 마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전한다. 주왕이 신라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흘린 피가 주방천을 물들인 뒤 붉은 꽃망울을 피웠다는 꽃이 주왕산 수달래이다. 그래서 수달래는 주왕의 넋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장굴은 주왕이 갑옷과 무기를 숨긴 곳으로 전해진다. 기봉은 주왕이 적과 대치할 때 대장기를 세웠다고도 전해지고, 군량미처럼 보이기 위해 낱가리를 돌렸다고도 전해진다.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고려 태조 2년(919)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암자라고 한다. 연화굴은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이라고도 하고 주왕이 군사를 훈련시킨 곳이라고도 한다. 주왕굴 앞의 주왕암은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 이렇듯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지만 어째선지 가보면 은의 주왕과 관련된 명칭도 있다. '달기'라는 이름은 아마도 후대에 은의 주왕을 연상하여 붙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