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기독교의 현주소
대만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1627년 네덜란드 조지 캔디듀스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그 뒤 1664년까지 37명의 선교사들이 대만 고산족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하지만 명나라의 패망과 함께 푸젠성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된 이후 182년간 복음의 문이 닫혔다. 본격적인 개신교 선교는 1865년 영국 맥스웰 선교사가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남부지역에는 영국 선교사, 북부에는 조지 매케이 선교사를 필두로 한 캐나다 선교사들의 분할사역이 이뤄졌다.
오늘날의 대만기독교회 교세 중 30%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의 초석이 이들에 의해 조성됐다.하지만 대만교회는 목회자 등 전임 사역자의 부족, 성도들의 전도열 결핍, 신학교의 학교법인 무인가에 따른 무특혜 무보조, 독립교회의 확산, 보혁 갈등 등으로 인해 매우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불교, 도교 뿐 아니라 조상의 위패, 재물신 등의 사당을 차려놓고 복을 희구하는 대만인들의 사고도 기독신앙의 확산을 막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산족 대부분은 기독인이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기독인은 23%에 불과하다. 대만교계가 초교파적으로 2000년까지 200명의 타문화권 선교사 파송, 1만 교회 개척, 200만 명의 새 성도 확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달성하지 못했다.장로나 집사의 영향력이 목회자보다 강하다. 장로교의 경우 3년마다 목사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 목회자는 사역지를 떠나야 한다. 대만신학원, 중화복음신학원, 옥산신학원 등 30여개의 신학교와 기타 군소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 중 3분의 2가 여성이다. 대부분의 농촌교회는 목회자가 없다. 하지만 링량탕 등 독립교회들이 대만 복음화와 함께 중국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대만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는 26개국 146개 단체, 963명에 달한다. 미국(463명)에 이어 한인선교사 120명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독일 및 캐나다(33명)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한인선교사들은 교회개척, 신학교 사역, 고산족, 학가족 사역, 제자훈련 캠퍼스 사역 등에 힘쓰고 있다. - 국민일보
WBTC, 이슬람권에 신약성경 2만 부 배포 계획
세계성서변역센터(WBTC; The World Bible Translation Center)는 앞으로 3년 동안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슬람권에 아랍어 신약성경 25만권을 배포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WBTC는 이를 위한 번역 준비가 이미 완료되었으며 인쇄비 마련을 위한 재원조달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WBTC는 성경 한 권 인쇄하는데 1달러 50센트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이 작업에 열의를 보이고 있어 번역 작업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WBTC는 이 작업을 통해서 정확하게 번역되었으면서도 쉬운 성경이 제작되어 중동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에 호기심이 많은 이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케냐, AIDS 참상
아프리카가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13일 소개한 카스트롤 오몬데이(13, 남)와 몰리(11) 남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아프리카 '에이즈 고아'들의 비극이 너무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냐 빈민촌인 이스트 캉간에 사는 오몬데이 남매는 작년 10월 한 달 간격으로 부모를 여의었다. 둘 다 에이즈 때문이다. 남매가 어머니 시신을 땅에 묻기도 전에 친척과 마을 사람, 걸인들까지 몰려들어 부모의 유산으로 성대한 장례 축제를 치렀다. 케냐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려해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굶주린 조문객들은 다 먹어 치우고 어린 남매에게 땅콩 한 자루만 남겨 놓았다.큰아버지는 침대 매트리스까지 챙겨 갔다. 망자의 형제가 재산을 물려받는 관습 때문이었다. 하루 평균 생활비가 20센트(260원)도 안되는 이 마을에서 1981년부터 재산 상속은 형제가 아닌 자식이 한다는 법이 생긴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이즈 고아 조카만 5명을 떠맡고 있던 이모는 일을 가장 잘 하게 생긴 몰리의 작은 오빠 마크(12)만 데리고 간 뒤 연락을 끊었다. 이후 남매는 뼈만 남은 앙상한 두 팔로 잡초를 뜯어 먹으며 살아 왔다. 열 달 동안 목욕도 한 번 하지 못했다. 맨발로 45분을 걸어서 학교에 가 봐야 옥수수 한 톨 얻어 먹기 힘들다. 전교생 400명 중 100여 명이 에이즈 고아인데 학교 재정은 수년 전에 바닥 났다.몰리는 최근 자폐증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 오몬데이는 얼마 전 먼지만 가득한 집 천장에 손톱으로 "신은 어디 계신가요, 천국은 어디인가요?"라는 낙서를 했다. 유엔에 따르면 케냐, 앙골라 등 사하라 이남 지역에는 오몬데이 같은 에이즈 고아가 1,600만 명이 넘는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캐롤 벨라미씨는 "두 남매는 아직 어린이 매춘이나 조직 범죄에 빠져 부모처럼 에이즈로 죽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인도,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확산세
힌두교 극렬분자들의 반기독교 테러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는 결신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도에서 활동 중인 익명의 선교기관이 Christian Aid에 전한 바에 따르면, 이 선교기관에 의해서 매시간 두 명의 꼴로 세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교기관은 작년의 경우 매시간 2명의 새신자에게 세례를 베풀었음 올해의 경우는 자금의 문제로 인도의 각지에서 운영하고 있던 성경학교 가운데 21곳이 문을 닫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자의 숫자는 작년과 비슷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선교기관은 또 매일 1개소 정도의 교회를 새로 개척하고 있어 현재까지 3700 곳의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또한 펀잡 지역에 운영하고 있는 성서대학의 경우 지원자가 많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 선교기관의 지도자들은 금년에 자금 문제로 폐쇄된 성경학교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을 재개교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이 선교기관의 사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인도의 교회는 최근 전례 없는 핍박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의 철옹성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라이베리아 내전은 진정세, 그러나 긴급 구호 필요
2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라이베리아 내전이 서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구성된 다국적 평화유지군과 미국 해병이 들어오면서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계통의 구호기관들은 내전은 끝나간다 하더라도 기근과 질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Church World Service의 사무총장인 죤 맥쿨로우씨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진주를 환영하며 이들의 활동을 통해 내전이 끝나고 구호기관들이 안전하게 활동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현재 라이베리아에는 성공회, 개신교, 정교회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약 36개의 기독교계통 구호기관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구호기관들은 라이베리아 전체 인구 300 만 명 가운데 거의 전부가 긴급한 구호활동 없이는 한 달 이상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다고 한다.
내전의 여파로 수도 먼로비아의 분위기도 흉흉하다. 시민들이 반군 지지자들과 정부 지지자들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다. 루터교세계연합 소속으로 먼로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찰스 피치폴드씨는 "지금 수도는 완전히 분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반군지지자들이든, 정부군 지지자들이든, 고위층이든 하류층이든 구분 없이 모든 라이베리아 사람들이 구호활동을 갈망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라이베리아의 상황은 악화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찰스 테일러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하야를 약속했으나 아직도 약속을 실천할 기미 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반군과 정부군 간의 내전은 2개월을 넘어서면서 약 1천 명의 사망자와 함께 130만 명이 절대 기근과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다.
Global Prayer Digest 종족파일 Soninke people 소닌케족 1999.10.9
매일선교소식과 Global Prayer Digest를 통해 전해지는 종족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우리의 기도의 결과가 어떤지 제대로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무언가 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 매일선교소식이 창간되기 훨씬 전인 1990년 10월 24일, Global Payer Digest는 소닌케족 사회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해 줄 것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부탁한 적이 이다. 이후 두 선교사 가정이 남미에서 정령숭배자들과 이슬람 신자들인 이들 소닌케족을 위해 파송되었다.
소닌케족들은 호의적인 태도로 이들을 환영했고 이들이 그들 사회에 머무르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이들은 소닌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많은 소닌케족 청년들이 신자가 되었고 이들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았다. 또 3명은 정식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드디어 이슬람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소닌케족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를 통해서 예배와 함께 차세대 소닌케족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일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교회는 약 100 만 명 가량의 이슬람 신자인 소닌케족들 사이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 공식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