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5월 14일.
성욱 씨가 어머니와
함께 다녀갔습니다.
양 선생님은 성욱 씨가
오겠다는 전화를 한 후로
수시로 벽시계에
눈을 주셨습니다.
전화를 한 지 사십분쯤 만에
성욱 씨가 도착했습니다.
근사한 양복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멋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멋진 젊은이가
몇 달 전만 해도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던
사람이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성욱 씨가 어머니와
양 선생님을 찾은 것은
올해 이월 경이었습니다.
성욱 씨의 외삼촌은
일개 지역권에서 유명한
사찰의 큰 스님입니다.
기백만 원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영가 천도와 구병시식
(병마를 떼내는 의식)으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한 분입니다.
큰스님의 동생인
성욱 씨의 어머니도
신실한 불자로
양 선생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어느 날 성욱 씨의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보살님! 아들이 많이
아파서 다 죽게 생겼습니다.
좀 도와주 십시오"
''아니, 오빠가 큰스님이고
구병시식으로 유명하신 분인테
그리로 먼저 가보셔야지요. ''
''안 가본 게 아님니다.
우리 아이 마음을 돌리려고
구병시식을 했는데
끝나고서는 오히려 자기가
살아서 무엇하겠느냐고,
죽어 버리겠다고 더 난리를
부리는 통에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친부모라도 자식을 낫게
하는 재주는
없는 법 아닙니까.
보살님의 이적을
많이 들었습니다.
인연따라 가는 법이니
부디 도외주십시오"
성욱 씨가 어머니를 따라
거창에 왔을 때는 완전히
삶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초점을 잃은 눈, 부시시한 머리칼,
절망과 자포자기가
덕지덕지 엉겨붙은 몸놀림.
맥이 탁 풀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행색이었습니다.
아들이라고는 이 놈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양이에
스물 일곱이나 된 놈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저렇게
죽는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제가 오죽하면 같이 물에
빠져 죽자고 했겠습니까.
애가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잘 못 시켜요.
머리도 아프다고 야단이고,
어떻게 잘못된 건지
성기도 굉장히 아프고
자꾸 고름이 쏟아진답니다." .
''그래요. 저,
어머니는 잠깐만
나가 계시겠어요?"
그 때까지도 성욱 씨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름이 뭐니?"
"성욱이요''
''성욱이가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어디가 아픈 거야?"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전 죽고만 싶어요."
''그럼 성한 데가 어디니?"
"아무 데도 성한 데가 없어요."
"너는 머리에서 발 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는데,
보살님이 보기에 성욱이는
아픈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주 건강한 청년이야.
네가 밥 먹기가 싫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은
너한테 뭔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짐이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의욕이 없기 때 문이야.
성욱아! 이건 너하고
나만 아는 이야기다.
어머니한테도 애기를 안 할 거야.
내가 피부과 의사도,
비뇨기과 의사도 아니지만
한 번 솔직히 애기해 보자.
얼마 전에 여자와
관계를 갖지 않았니?"
성욱 씨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습니다.
''예"
"어디에 있는 아이냐?"
''...술집에 나가는.. 아가씨요."
"그 관계 이후에 병이 생긴 거니?"
''예''
''어머니는 그걸 뭔가 크게
잘못된 병으로 알고 계시는데,
그건 네가 성병이 옮은 거다.
그건 보살님이 고쳐주지
못하니까 약을 먹도록 해리."
''....약. 먹고 있는데요,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성욱이 너,
예전에 좋아하던 아가씨가 있었지?""
순간, 성욱 씨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성욱 씨에게는 삼년 전에
헤어진 연인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취직 시험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보는 족족 떨어지자
그녀는 성욱 씨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결별을
선언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성욱 씨에게는
이중의 고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위도식
하다시피 하는 탓에
자신이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부담은 크고,
사귀는 여자를 생각해서라도
취직은 해야 하는데
시험은 자꾸 떨어지기만 하고,
그러다가 드디어는
실연까지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살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어져버렸습니다.
성욱 씨의 손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부가 벗겨져 있었습니다.
''이 손은 왜 그랬니?"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어머니하고 싸웠어요.
벽을 한 대 쳤더니 그래요"
주위 사람들은 성욱 씨를
간질환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성욱 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종종 쓰러지곤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애매한 진단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욱 씨가 몸에
병이 있어서 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놀고
어머니가 힘들게 벌어서
식구들이 먹고 살았던 일,
외동 아들이기에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그 모든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발산하지 못하는 답답함.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쓰러진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다가,
설상가상으로
취직은 마음대로 안 되고
사귀던 여자와도 헤어지고
나니 더 심해져버렸습니다.
그 후로 성욱 씨는
무언가 충격을 받거나
심적 부담을 느끼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러져버렸습니다.
마음이 병들자 몸도 한 군데
두 군데 아프기 시작하더니
안 아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도 자기 몸은
성한 데가 없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쁜 손에 어쩌자고 ..
세상에 취직 시험이 전부가 아니야
성욱이는 너무나 건강해.
지금부터 이 건강한
육신과 정신으로 무엇이든지 해봐.
기회는 얼마든지 많다구.
그 아가씨가 다시
성욱이를 찾아올지도 몰라.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성욱이도 생각해봐.
그 아가씨는 성욱이가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몇 번 시험에 떨어졌다고
절망에 빠져 있는 성욱이가
더 못미더웠을 거야.
그런 남자를 믿고 평생을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을 왜 안하겠어.
한 가지 시련에도 쓰러지는데
기나긴 인생길을
헤쳐나갈 수 있겠다라는,
자기의 인생 을 맡겨도
되겠다라는 믿음이
어떻게 생기겠냐구.
그잣 시험에 몇 번 떨어져도
직장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어.
하다 못해
공장에 가서 일할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청소부
노릇도 할 수가 있지.
젊은 나이에 왜
죽겠다는 생각부터 하니?
사람은 언젠가는 다 죽어.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게 돼 있어.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가 중요하지,
죽는 것 그 자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하루를 살더라도 충실하게 살아야 해.
더더구나 성욱이는
불자니까 내세를 믿잖아.
다음 생을 생각해서라도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구.
사람이 오늘 하루만 편안하게,
적당히 살자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범죄도 저지를 수 있어.
나 편안한테 아무 짓거리나
하면 어때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 하나 편안하자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내세를 생각한다면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하루를 알차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런데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사람이 왜 죽는다 는 소리를 해.
살고 죽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서 날 때
어디 아픈 데 있었어?
세상을 살다 보니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의지는 자꾸 약해지고,
세상 사는 일이 귀찮아지고,
몸은 점점 아파지고..
그렇게 자기가
자기 최면을 걸어가는 거야.
성욱이는
육체도 정신도 너무 멀쩡해.
차분히 양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던 성욱 씨의 눈동자가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양 선생님은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성욱이는 아픈 데가 없습니다.
얘는 이제부터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겁니다."
그날 집에 도착하도록 성욱 씨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집에 도착해서
그동안은 먹으라고 사정을 해도
먹지 않던 밥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저, 살아야겠어요.
그까짓 취직 시험,
몇 번 떨어지면 어때요.
어디든지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겠어요.''
그 얼마 후에 성욱 씨는
농협에 취직을 했습니다.
성욱 씨가 왔다는 소
리가 들리자,
양 선생님은 방에서
급히 뛰어나오셨습니다.
성욱 씨는 처음 찾아왔던,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이
죽음의 그늘만 짙게 드리워져 있던
모습에 비하면
완전히 판 사람이었습니다.
성욱 씨의 양손을 꼭 잡은 채
'감사합니다' 를 되플이하는
양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조차도
저토록 애틋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코끝이 다 찡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