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제주도는 이번에는 녹지그룹(뤼디그룹) 영리병원을 들여오겠다고 중앙정부에 신청했다. 또 중국 자본의 영리병원이다. 사업계획서도 싼얼병원의 사업계획서와 판박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아니 중국 자본이 들어와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47병상짜리 호텔 병원을 세우겠다는데 한국이 뭐 이득 볼 게 있다고 이렇게 제주도와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난리법석일까?
의료 관광? 영리병원의 진짜 이유
그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영리병원을 만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에 정부가 발표한 ‘6차 서비스산업발전방안’에는 보건의료를 비즈니스화해 발전시켜야 할 첫 분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첫째가 영리 자회사였고 둘째가 영리병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지난해 추진한 것이 바로 비영리병원의 영리 자회사라는 황당한 시행령이다. 반대 서명 2백만 명,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이다. 또 이런 이유로 지난해 싼얼병원이 추진됐지만 싼얼그룹이 망하는 바람에 이 불통의 막무가내 정부도 더는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런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녹지병원을 추진한다? 도대체 왜 추진하는 걸까? 중국 의료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정말 그렇다면 현재 한국 성형외과 병원들에도 중국인 환자들은 많이 오는데 왜 중국 병원을 만들려는 걸까?
중국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하는 이유는 의료 관광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국내의 병원들과 그 영리병원 주식회사에 투자할 부자들이 영리병원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돈벌이를 엄청나게 하는 병원들은 주식회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이를 위해 추진한 의료 민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에 지금 내세운 것이 ‘의료 관광’일 뿐이다.
중국 녹지그룹이 애초 땅 투기 부동산 기업이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병원을 운영해 본 적이 없다고? 그게 무슨 상관. 애초에 외국인 영리병원은 미국의 하바드니 존스홉킨스니 하는 최고의 병원을 들여오겠다는 것이었고 국내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시설 아니었던가? 그게 무슨 상관.
뭐가 어떻든 ‘영리병원’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녹지 국제병원의 진짜 목적이다.
모든 도둑질은 흔적을 남긴다
뭐든 영리병원이면 다 된다는 식이다 보니 그 추진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중국 녹지그룹이 부동산 기업이라서 제주시에 랜드마크[지역 대표] 빌딩을 짓고, 카지노를 만들고, 제주 헬스케어타운을 매입해 엉뚱한 콘도미니엄을 지을 수는 있다. 이것만 해도 황당한 노릇인데 병원 운영은 못하지 않겠냐고 추궁했더니, 중국의 녹지그룹이 자본은 대고 그 병원 운영은 중국의 BCC(북경연합리거의료투자유한공사, 줄여서 연합리거)라는 기업에 맡기겠다 한다.
BCC는 중국에 있는 병원경영지원회사이다. 이 그룹을 찾다 보니 상하이 서울리거 병원(이하 서울리거)이 나온다. 서울 강남의 최대 성형외과 병원인 BK성형외과의 대표원장을 맡았던(올해 3월에 그만두었단다) 홍성범 씨가 서울리거 원장이다. 이 서울리거가 연합리거 중 단연 제일 큰 병원이다.
그런데 범죄 흔적이 너무 남았다. 정부 연구소인 산업진흥원의 출장 보고서이다. (아래 그림). 복지부 과장, 제주도청 관계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제주도 출신 국회의원, 녹지그룹 한국법인 사장 등이 녹지그룹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 내용에 “세인트 바움을 모델로 중국 하이난, 우한, 제주도 등에 세인트 바움 수출 계획”이라고 명시돼 있다.
세인트 바움은 또 뭘까? 바로 서울 BK성형외과 대표원장(이었던) 홍성범 원장이 개원한 상하이의 바로 그 서울리거 병원이다. 녹지그룹을 방문한 그 사람들이 전날 세인트 바움 병원을 방문해 테이프 커팅 식에 대거 참석한다.
잠깐 헷갈리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간단히 말하면 세인트 바움 병원은 국내 성형외과가 외국에 차린 한국 자본의 중국 성형외과 병원이다. 그리고 녹지그룹은 이 병원을 중국만이 아니라 제주도에 수출한다고 한다.
아니 제주도라니. 서울의 병원을 제주도에 수출? 이걸 수출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수입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리거(구 세인트바움)병원 개원식 보건복지부과장, 보건복지위원장, 녹지그룹사장, 서울리거원장, 제주도청 서울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영리병원을 막으려는 싸움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됐다. 한국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도된 영리병원이 아직도 들어서지 못했다. 규제가 대폭 완화된 제주도 조례에도 투쟁의 영향으로 ‘국내 법인이나 내국인이 우회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 조례를 피하려고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을 국내 자본과의 합작 병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범죄에는 흔적이 남는다.
또 생각해 보자. 제주도까지 와서 성형이나 피부 시술을 받는데 국내의 유명한 성형외과를 놓아 두고 왜 중국 병원에 오겠는가? 누군가 한국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이게 상식이다. 이 파트너가 국내 자본의 상하이 성형외과 병원인 서울리거(구 세인트 바움)라고 홍성범 원장이 직접 밝히기 까지 했다.
“뤼디(녹지그룹)는 제주도에 1조 5천억 원을 투자해 헬스케어타운을 개발 중이다. 여기에 ... 병원의 컨셉 설계에서 병원 운영까지를 세인트 바움이 전담하는 내용의 협상이 진행 중이다.”(<제주일보> 2014년 7월 21일) 한마디로 국내 병원들이 중국을 우회해 중국 자본을 끼고 제주도에 지부를 내려는 것이 제주도 영리병원이다.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용은 전국적 영리병원 허용
미국의 영리병원은 (공립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비영리병원보다 환자에게 받는 돈이 비싸고, 노동자는 적게 쓰며, 의료서비스 질도 낮아 사망률도 높다. 간단히 말해 영리병원 허용은 노동자와 국민에게는 재앙이지만 여기에 투자할 자본가들과 병원장들에게는 대박이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한국에서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하려는 이유다.
의료 관광을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물론 의료 관광이 잘 돼도 문제다. 태국은 의료 관광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의료 관광객이 1년에 2백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 때문에 외국인 병원으로 의사가 너무 몰려 농촌에서는 의사 보기가 어렵다. 관광 병원을 뒤따라 보통 병원까지 의료비가 덩달아 올라 맹장염 수술, 담낭 수술 등 기본적인 의료비까지 한 해에 몇십 퍼센트씩 오르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의료 관광을 빙자한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노동자 서민에게는 재앙이다. 제주도의 영리병원이 무늬만 외국 병원인 것처럼 제주도와 전국 경제자유구역 8곳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국내 자본 또는 국내외 합자자본의 국내 영리병원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 영리병원은 자기 맘대로 의료비를 정하고 건강보험증도 받아 주지 않는 병원이다. 벌써부터 외국 영리병원은 되고 한국 영리병원은 안 되냐고 병원협회가 항의중이다. 영리병원이 하나 들어서면 그 다음부터 전국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든 영리병원 하나를 세우려는 이유다.
매년 적자이던 건강보험이 4년째 흑자가 돼 흑자 재정만 13조 원이다. 서민과 노동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안 가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 정신인 정부라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의료비를 낮추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거꾸로 의료비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병원과 병원에 투자할 부자들이 돈을 더 버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바깥에 있는 병원들이 생기고 병원비가 비싸지면 서민들은 정말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 부자들과 자본가들만을 위하는 이 정신 나간 정부의 영리병원 추진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