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츨연자
|
영화제작에 얽힌 배경
소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정치적인 압력으로 거부해야만 했던, 1958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추억의 명작. 러시아 수정 자본주의 혁명이라는 대로망이 전개되는 이 작품은 이태리의
국제적인 프로듀서 카를로 폰티(소피아 로렌의 남편)가 제작해 스페인의 마드리드 근교의 과다하라 평원에서
올로케이션하였다. 아카데미 각본-촬영-미술-의상-음악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린 감독이 이 영화 전에 만든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를 미워하다,
나중에 동지가 되는 알리역을 맡았던 이집트계 오마 샤리프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는 의사이자
시인으로 등장하여 시인의 상처받기 쉬운 감성과 순결한 지성,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하는 복잡한 심정을 훌륭하게
표현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는 문학 내외적 인생이 집약되어 있는,
"소련 반세기만에 처음 나온 문학 작품"으로 불리는 소설로, 공산당 집권하의 소련에서는 출간이 금지되었으나
그 원고가 서방세계로 반출되어 출간, 1956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명된다. 그러나 소련 정부의 저지로
수상은 거부되었고, 그의 사후에 만들어진 영화 <닥터 지바고> 역시 1994년에 이르러서야 러시아에서 첫 상영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지당하다시피 했던 그는 생애 마지막
창작열(1945-1955)과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소설에 쏟아부었다. 여기에는 그가 직접 겪었던 혁명과 내전 전후
20여 년의 역사와 시대 상황, 역사와 개인의 운명적 갈등, 남의 여자를 사랑했던 경험, 우랄 지방에 채류했던 경험,
인물들의 세계관으로 표현되는 깊이 있는 철학이 담겼다.
시놉시스
러시아 혁명기를 살다간 자유주의자 휴머니스트 의사-시인 닥터 지바고의 사랑과 인생!
러시아 혁명으로 한바탕의 역사적 지각변동이 일어난 후의 러시아. 유리 지바고의 형 예브그라프는 유리와 그의 연인
라라사이에 태어난 딸을 찾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공장 노동자이자 유리 지바고의 친딸로 추측되는 젊은 소녀에게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지바고의 이복형 예브그라프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거의 시간에는 감수성 예민한 시인이며 의사인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 분)의 사랑과 러시아의 혁명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유리는 의사이자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천재적인 만돌린 연주자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지인의 손에 맞기원 진다.
그를 맡아 키운 양부모는 지바고의 섬세한 감수성과 소질을 살리어 그에게 의사 공부를 시키고 시인으로 키웠으며 딸
토오냐의 사위로 삼았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참전, 간호사 라라와 만나 같이 일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유리와 라라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연회장에서 정계의 유력인사인 코마로프스키에게 방아쇠를 당겼던 바로 그 소녀(라라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코마로프스키는
아직 10대인 소녀 라라를 농락했었다).
놀라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녀를 데리고 나갔던 남자 파샤의 모습과 함께 그녀는 유리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후 라라는 파샤와 결혼하였고 남편을 찾아 전장으로 나왔다. 그러나, 라라는 남편의 사망 소식만을 접할 수 있었다.
한동안 같이 일하던 유리와 라라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각자의 가족품으로 돌아간다.
혁명군이 점령한 모스크바는 모든것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자유롭고 감상적인 유리의 시가 혁명이후의
세상에서는 비판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 유리는 비밀경찰이 되어 나타난 이복형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숙청대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유리의 가족은 이복형의 도움을 받아 우랄 산맥 근처로 이주한다.
※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로 눈싸인 대평원과 우랄산맥을 넘어가는 긴긴 터널...
이 영화의 장면중에 잊을 수 없는 인상깊은 장면이다.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며 안정을 찾게 된 유리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날로 깊어진다. 아내와 라라사이에서 갈등하던 유리는 마침내 라라에게 작별을 고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끌려다니며 그들의 군의관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몇 년 뒤 그들로부터 탈출한 유리는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하지만 이미 가족은 프랑스의 지인의 도움으로
국외로 떠난 후이고 라라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내 가슴에 남는 장면하나 아내 토오냐가 라라에게 남기고간 어머니의 유산인 삼각의 빨간 만도린 .....
유리와 라라는 토오냐의 친정의 오랜 별장이던 우리들이 표현하기로는 '얼음궁전'에서 짧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 시절에 지바고는 많은 시를 남긴다.
그들을 찾아온 코마로프스키는 죽었다고 알려진 라라의 남편 파샤가 적군의 지도자로 살아있었으나,
라라를 찾아오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유리는 라라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떠나보낸다.
시간이 흐른 뒤, 전차에서 우연히 라라를 보게 된 유리는 서둘러 전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쳐 그여를 부르다가
심장마비로 길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소녀는 유리와 라라가 자신의 부모임을 확인하고 눈물짓는다.
연인과 함께 떠나는 소녀의 등에는 만돌린.... 예브그라프는 묻는다.
만돌린을 연주 할수 있는거냐?
그의 연인은 인런 답을 하며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연주 할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녀는 만돌린의 천재예요."
예브그라프의 최후의 셀리프로 이영화는 끝난다.
"유전 이로군"
파스테르나크 Boris (Leonidovich) Pasternak 1890. 2. 10(구력 1. 29) 모스크바~1960. 5. 30 모스크바 근처 페레델키노. 러시아의 시인. 장편소설 〈의사 지바고 Doctor Zhivago〉로 195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소련 내에서 커다란 반대가 야기되어 수상을 거부했다. 러시아 혁명의 잔혹함과 그 여파 속에서 펼쳐지는 방황, 정신적 고독, 사랑을 서사적으로 기술한 이 소설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소련에서는 비밀리에 번역본으로만 유포되었다. 그는 교양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레오니드는 미술교수였으며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이들은 모두 이 집안을 자주 찾은 손님이었음), 그리고 레닌의 초상화를 그렸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로자 카우프만이었다. 어린시절 파스테르나크는 조숙한 시인이었으나 음악가가 될 작정이었다. 6년간 음악이론과 작곡을 공부했으나 갑자기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어 모스크바대학교와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강좌를 수강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신체상의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는 대신 우랄 지방의 화학공장에서 근무했고 혁명 후에는 소비에트 교육부 도서관에서 일했다. 첫번째 시집은 1913년에 출간되었다. 1917년에는 놀랄 만한 2번째 시집인 〈장벽을 넘어서 Poverkh baryerov〉를 펴냈으며, 〈누이, 나의 삶 Sestra moya zhizn〉(1922)을 출간하면서 역량 있는 신인 서정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시는 상징주의의 영향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기준으로 볼 때는 비록 전위적이고 비교적(秘敎的)이었으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33~43년의 작품은 공식적인 작품양식(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너무 동떨어져 출판이 불가능했으며 1930년대말의 대숙청 기간에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가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야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했기 때문에 숙청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셰익스피어, 괴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 베를렌, 릴케 등을 번역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1956년 파스테르나크는 큰 기대에 부풀어 모스크바의 유력한 월간지에 소설 〈의사 지바고〉를 기고했으나 "10월혁명과 혁명의 주역인 인민, 소련의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비방과 함께 거부당했다. 1957년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출판사를 통해 서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인 그 출판사는 '수정을 위해' 원고를 되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영역본이 출간된 1958년에는 이미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소련에서는 파스테르나크 탄핵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으며 생계유지의 수단마저 빼앗겼다. 공공 모임에서는 그를 국외로 추방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제1서기장 흐루시초프에게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써보냈다. 그는 페레델키노의 집에서 암과 심장병에 시달리며 여생을 보냈다. 영어로 번역된 작품으로는 단편소설과 자전적 작품 〈안전 통행권 Okhrannaya gramota〉(1931), 그리고 엄숙함과 고요한 내적 관조로 끝나는 그의 시작품 전체가 있다. 1987년에야 소비에트 작가동맹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사후 복권을 허락함으로써, 1958년 작가동맹에서 추방된 이후 불법으로 되어 있던 작품들의 적법성이 인정되었고, 드디어 〈의사 지바고〉가 소련 내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주도한 평가위원회는 복권에 덧붙여 페레델키노에 있는 그의 집에 기념관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
|
첫댓글 감사...^^...너무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다림질하는 라라가 기억나고,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장면,코마로프스키에게 당하는 장면만 기억이 나는군요...^^
저도 오래전에 본영화라.. 기억나는건 영화내내 눈덮힌풍경이고 기차에서 라라를 보고 내려 부르다가 쓰러지는장면. 오마샤리프의 구렛나루가 기억이 납니다.. 다시 떠올리며 스토리를 보니 새롭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닥터 지바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난 노스텔지어에 빠졋노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