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아이거 북벽'은 '마테호른', '그랑드조르도'와 함께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하나로 '죽음의 빙벽'이라고 불린다. 하루종일 햇볕이 들지 않고 돌풍과 눈사태가 잦은 수직 높이 1,800m의 아이거 북벽은 지금까지도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곳으로 6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한국 등반가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다. 등반 역사상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아이거 북벽'이다.
다큐멘터리처럼 강건하고 묵직해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인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에서 첫 소개된 이후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소문으로 주목을 받다가 드디어 이번 주 개봉했다. ‘노스페이스’는 북쪽 벽을 뜻하는 '노르트반트'(Nordwand)의 영어식 표현이다. 1936년 아이거 북벽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실화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클리프 행어', '하이레인', '터칭 더 보이드'나 '버티컬 리미트' 같은 유명 산악영화가 인기를 끌었고, 이 가운데 영국산 '터칭 더 보이드(2003)'는 산악 다큐멘터리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노스페이스'는 '터칭 더 보이드'를 연상시킨다. ‘노스페이스’는 아이거 북벽과 산악인들의 등반 과정 자체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등반가들의 내면까지 포착하고 있다. 죽음의 절박함 속에서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희생과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루이즈의 절규 등이 실화라는 힘에 의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짧은 거리임에도 구조를 허용하지 않고 막아서는 거대한 자연의 혹독함, 절박함, 안타까움 등이 가슴을 때린다. 거기에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이어지는 화면은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넘친다.
1936년 독일 나치정권은 올림픽 개회를 앞두고 국위 선양을 위한 죽음의 아이거 북벽 초등을 위해 전세계 등반가들을 부추긴다. 세계 대전을 준비하는 독일이 아리아 민족의 우수성을 스포츠를 통해 입증해 보이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워낙 위험한 일이라 선뜻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군에서 산악병으로 복무 중이던 토니(벤노 퓨어만)와 앤디(플로리안 루카스)도 처음엔 너무 위험한 일이라 망설이지만, 아이거 북벽 초등에 성공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등반을 결심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과 관람객들은 아이거 북벽 아래 호텔로 모여들고, 토니와 앤디의 고향친구이자 토니의 옛 연인인 루이즈(요한나 보칼렉)도 취재차 아이거 북벽을 방문하고 이들과 조우한다. 그러나 그녀 곁에 새로운 연인이 있음을 알고 그녀에게 실망한 토니는 출발을 서두르고 그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 산악인 윌리(시몬 슈바르츠)와 에디(게오르그 프리드리히)가 뒤따르자 호텔에 묵고 있던 수많은 취재진들은 쌍안경으로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누가 정상에 먼저 도착할 것인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 틈에 섞여 있던 루이즈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돌아보고, 그녀 역시 아직도 토니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편, 토니와 앤디가 악천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 뒤를 따르던 윌리가 부상을 당하고 그의 고집으로 말미암아 네 사람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 과연 아이거에 오른 독일인 두 명과 오스트리아인 두 명은 어찌 되었을까?
북벽에 오른 네 사람 중 단 한사람도 살아서 내려오지 못한다.
앤디는 눈사태로 인하여 토니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자일을 끊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혼자 남은 토니는 구조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의 추위와 눈보라에 기력을 잃고 공중에 매달린 채 사랑하는 옛 연인 루이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한 산사람으로 남는다.
극한의 환경에서 어쩌면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산에 오른다는 것!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도전할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마 이런 이유들이 절벽이던지 암벽이던지 빙벽이던지 개의치 않고 홀연히 정상을 향해 떠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택한 선택을 아무런 후회없이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 결과가 행여 이 세상 끝자락일지라도 또는 새롭게 태어나는 삶일지라도......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계속 살아간다. 이 사실을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살아가는 이유다."
루이즈의 마지막 독백이다. 이 장면은 아이거 북벽은 토니를 데리고 갔지만, 자신과 토니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며 살아가고픈 루이즈의 마지막 표정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설수 없게 만든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38년 아이거는 처음으로 사람에게 정상을 허락했다."
이 말로써 영화는 126분의 처절한 사투를 끝내고 그 마지막 자막을 완성한다.
영화 중에서 빙벽을 오르는 이들을 두고 마치 검투사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하던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이제는 빙벽을 오르기로 선택한 이들을 존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절벽 아래 바닥에서 토니가 이런말을 했어요.
절벽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고
내게 자문해보곤 해
어떻게 저길 오를 수 있을까?
"왜 오르려는거지?"
하지만, 몇 시간후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걸 잊게돼.
등반은 이런것이다.
~ 6월 5일 청주 CGV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묵혀둔 2008년 영화를 14좌에 오른 산악인 오은선이라는 '여자 히말라야의 왕'의 탄생과 함께 개봉한 것으로 추축하지만..
이런 영화는 사실에 근거한 시나리오이기에 영화 환경이 척박한 청주에서는 정말로 볼만한 수작이다.
하지만 200명이 넘게 입장하는 넓은 상영관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채운 관객은 고작 10 여명..
토요일 심야상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청주 시민들은 진짜 좋은 영화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