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6. 큐티
사도행전 16:6 ~ 15
빌립보 교회의 시작
관찰 :
1) 성령이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시다
-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목표로 아시아의 선교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바울 일행의 아시아 사역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어떤 방식으로 바울에게 성령의 뜻이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성령 충만한 바울이 성령의 의도를 깨닫고 원래 계획했던 길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는 것이다.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다는 이 기록만으로는 사도 바울 일행의 행적에 대한 분명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다만 바울 일행이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소아시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시아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길을 바꾸어 무시아에 와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예수의 영, 곧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령께서는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주시지는 않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금식기도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순종할 뿐이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 8절.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 사도 바울 일행은 무시아에 들어는 갔지만, 그곳에서 머물거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과정이었다. “드로아”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조그만 항구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2) 마게도냐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
-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성령께서는 드로아에서 구체적으로 가야 할 곳을 보여주시고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시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순종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분명하고 선명해지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막히는 것에 대해서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는 과정에서 선명하게 인도하시는 뜻을 환상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이 복음을 전해 줄 것을 간구하는 환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 10절.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사도 바울은 성령이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로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이 복음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은 사도 바울 일행 중에 누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3) 마게도냐에서의 인도하심
- 11절.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와 빌립보 사이에 있는, 에게해 북동쪽에 있는 섬이다. 포세이돈의 이름을 따 포세이돈 섬으로도 불렸다. 에게해를 지나는 선박들의 기항지이기도 했다. “네압볼리”는 사모드라게로부터 16km 내륙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 빌립보의 외항이었다. 네압볼리까지 약 250km의 거리를 이틀만에 가게 된 것은 순풍의 영향으로 본다.
- 12절.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 드디어 사도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하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끌려온 곳이기에 이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서 원래 ‘크레니데스’라는 이름에서 “빌립보”로 바뀌게 되었다. 빌립보는 B.C. 42년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부루투스와 캐시우스 연합군을 패퇴한 곳이었다. 이 때의 승리를 기념하여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었다. 즉, 황제에게 직접 배속된 도시가 되어서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도시가 되어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았다. 또한 로마의 도시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이곳 빌립보의 시민들도 누렸다. 빌립보는 바다와 육지 양쪽 모두 열린 곳에 있었기에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심지어 주변에 금광도 있었고, 비옥한 평야도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었으며, 의학을 가르치는 유명한 학교도 세워져 있었다. 빌립보는 누가가 언급하듯이 마게도냐 지역의 첫째가는 도시였다.
3) 빌립보 교회의 시작을 위한 루디아와의 만남
- 13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 새로운 도시를 방문한 경우 사도 바울은 첫 안식일에 가능한 한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회당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취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빌립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바울은 회당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강가에 나가 그곳에서 모여 기도하던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결 의식과 관련하여 기도처가 종종 강가에 위치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모인 적은 무리로 모인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 14절.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적은 무리의 여인들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그 여인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그 중에 루디아 라는 여인은 이미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로 작정하게 되는 역사가 그곳 강가의 기도처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루디아”는 본명이기 보다는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는 별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사도 바울에 의해서 루디아의 마음이 열린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언제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 ~ 7),
- 15절.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 루디아는 자신의 집으로 바울 일행을 초청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 그 집에 속한 아이와 종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바울 일행이 유할 것을 강권하여 머물게 했다. 이로 인해서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일어난 역사였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아시아의 에베소를 선교의 중심 도시로 여겼고, 그곳을 전도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아시아의 최대 도시인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와 같이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생각한 전략을 하나님께 고집하지 않는다. 성령께 순종해서 지역을 옮기게 되었다. 아직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여주신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은 부담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곧바로 순종한다. 그곳을 향하는 것은 “직행”이었다. 도중에 다른 곳에서 전도하지도 않고, 곧바로 마게도냐의 제일 큰 도시 빌립보를 향했다. 빌립보에 대한 정보를 모을 틈도 없이 빌립보로 직행해서 도착하게 되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바울은 첫 안식일에 회당을 가고자 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숫자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회당을 찾지 못한 바울은 강가로 갔다. 당시에 정결의식을 위해서 강가에서 기도모임이 행해지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소수의 여인들의 무리를 발견한 사도 바울은 실망하지 않았다. 비록 적은 수 였지만, 게다가 여인들만 있는 모임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최선을 다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증거했다. 성령께서는 그 중에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으셨다. 루디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집에 바울 일행을 초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말씀이 증거되고, 그 집의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세례를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3) 마게도냐 제1 도시 빌립보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루디아의 집은 사도 바울 일행이 머물게 된 숙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집을 거점으로 복음을 증거되고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가운데 일어난 놀라운 교회 개척의 역사였다. 마게도냐 교회 개척의 시작점이었다.
적용 :
1) 사도 바울은 자신 준비한 선교 전략이 의미있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보다 우선하여 놓지 않았다.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누가 등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에 함께 한 팀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우와 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바울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를 따르는 일행들도 미덥게 여기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서두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 그것이 사역자의 자세여야 한다. 내가 따라야 할 순종의 모범이다.
2)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빌립보에 온 바울은 강가에서 적은 무리의 여인들을 만났다. 적은 무리로 인해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의지했다. 그로 인해서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그 여인을 통해서 마게도냐 지방의 첫 교회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게 된다. 루디아의 집은 모든 이들이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된다. 사역을 할 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현상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시는 성령님의 존재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이것이 쉽지 않고, 현상에 마음과 생각이 빼앗기기 쉽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언제나 인도하고 계시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함께 하신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미얀마의 코로나 상황이 매우 매우 심각하다. 주님의 긍휼을 간절함으로 간구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