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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
교도관이 된 천사
엄상익 ・ 2022. 8. 31. 11:12
오래 전 한 죄수에게서 들었던 말이 기억의 우물 바닥에서 물방울이 되어 떠오른다. 그는 철저하게 고독한 사람이었다. 비유하면 그는 넓은 초원 가운데 있는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울고 절규를 해도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세상이 그를 버리고 가족도 그를 버렸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자기를 버린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철창 안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옥 안도 역시 짐승이 아닌 인간이 사는 세상이었다. 필요한 물품들이 있었다. 책도 필요하고 필기도구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도움을 받을 사람이 세상에 없었다.
어느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기가 절실히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얼마 후에 먼 곳의 우체국에서 어떤 소녀가 그 물건들을 소포로 보내주는 것이다. 도대체 그 소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보내는지도 납득 할 수 없었다. 보내는 물건들을 보면 자기의 마음속을 환하게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소녀가 누군지 궁금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죄수는 물건을 보낸 소녀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 교도소 내에는 말이 없는 조용한 성격의 교도관이 있었다. 이웃 읍의 우체국에서 그 교도관이 소포로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보내는 걸 우연히 본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조금씩 전해졌다. 하급 교도관인 그가 박봉을 쪼개어 그가 보았던 죄수들의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남모르게 보내 왔던 것이다.
내가 직접 들은 얘기였다. 나는 그 교도관이 천사라고 생각했다. 교도관은 인생의 바닥까지 간 악만 남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직업이다. 악에 대항하다 보면 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이에 천사가 숨어 들어와 있던 것이다.
천사는 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머리 위에 둥근 고리가 둥둥 떠 있지도 않았다. 그냥 초라 해 보이는 여러 모습의 보통사람인 것 같았다. 또 다른 장기수로부터 들었던 이런 얘기가 있다.
“칼날 같은 찬 바람이 불던 설날이었어요. 얼음짱 같은 감옥의 바닥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데 신문지에 싼 뭔가가 툭 떨어지는 거예요. 교도관 한 사람이 주위 눈치를 보면서 쟘바 품에서 꺼내 철창 안으로 슬쩍 던져놓 가는 거예요. 저는 그 신문지에 싼 걸 열어봤어요. 삶은 돼지고기더라구요. 설날 차례를 지내고 식구들과 먹던 고기를 감옥에 있는 저를 생각하고 가져다 준 거죠.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지 눈물이 나고 마음이 촛농같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교도소 규정을 보면 교도관은 개인적으로 먹을 걸 죄수에게 주지 못 하도록 되어있어요. 그래서 몰래 주는 거였죠. 면회오는 사람 한 명 없는 제 처지였어요. 어려서부터 거지로 살아왔으니까요.”
고기 한 덩어리를 가져다 준 그 교도관은 천사였을까? 아니면 예수였을까. 또 다른 죄수의 이런 얘기가 오늘 아침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죄수는 뼛속까지 범죄에 물든 사람 같았다. 아니 반복되는 범죄 가운데 죄의식조차 증발한 것 같아 보였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느 날 밤중이었어요. 나 혼자 있는 감방 철문 아래에 붙은 밥이 들어오는 ‘식구통’이 철컹하고 열렸는데 그 구멍으로 어깨에 무궁화가 세 개 붙은 계급장을 단 사람이 보였어요. 교도소 내에서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령관같은 사람이었죠. 그 사람이 감방 앞 복도에 무릎을 꿇고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그 사람이 식구통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 넣더니 내 손을 꽉 잡더라구요.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데 나는 이게 도대체 뭔가 했죠. 평생 교도관들에게 두둘겨 맞기만 했는데 그런 사람도 있나 하고 신기했죠.”
지난 밤 유튜브를 이리저리 검색하면서 보다가 우연히 낯이 익은 이름을 보았다. 예전에 구치소에서 보았던 교도관이었다. 그가 화면 뒤에서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저는 학력도 경력도 없습니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교도관을 평생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요 그 교도소의 높고 을씨년스런 회색담을 예수가 넘어오는 걸 느꼈어요. 그 예수가 깊은 감옥 안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보살피더라구요. 정년퇴직을 한 저는 나이가 칠십이 훌쩍 넘은 지금은 유튜브를 하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그런 것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활짝 미소 짓는 그 영감이 누군지 나는 안다. 감옥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죄수와 손잡고 몰래 기도해 주었던 무궁화 세 개의 감옥 사령관이었다. 각 사람이 처한 위치가 다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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