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2:7-308 자림 가사단상] - 2.작은 법문의 품
7.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
308.[석가 세존]
그리하여 수레위의 정복자인 감로왕은
바라문들 권유대로 수백수천 마리소를
제물로서 받치려고 잡아죽여 제지냈네
----2568.3.14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2:7-308 자림 시조단상]
그래서 수레 위 정복자 왕은
바라문들 권유로 수백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아서 제물로 제사지냈네
●●●더하는 말○○○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정복군주는 곧 전쟁을 많이한 군주로
많은 나라를 정복하면서 엄청난 전리품을 획득하고 축척하며
특히 전쟁 포로의 경우 그 나라의 왕자나 공주를 볼모로 잡기도 하도
미인이나 특산물 특히 금이나 은 혹은 옥 같은 귀중한 광산물을
모두 거둬들여 다른 나라를 또 정복하기 위해서 군비로 쓰거나
왕궁을 세로 짓거나 그리고 남은 재화는 비축을 해두는데
바라문들은 그 틈새를 어떻게 보면 잘알아서 여러가지 명목을
붙이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며 수백,수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준비시켜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집전하는 것이니
이러한 제사는 감로왕의 다스리던 영역이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유목과 쌀 농사를 겸하는 것으로 보이니 활을 잘 다루는 부분은
사냥과 함께하는 필수적인 전쟁 도구이면서 사냥도구이고
말은 기동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재의 기마부대로 필수이며
주식으로는 쌀을 생산하였는대 이것은 그 후대의 일이고
감로왕 시절은 쌀 농사의 정착 형태가 아닌 유목적 형태의 삶이
지배적 이었으므로 소를 제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사유를 해보았다.
그러나 말을 제물로 사용했다는 내용은 여기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경전을 보면 말,소,양,돼지등의 수 많은 동물이 등장하는데
여기 에서는 유독 소가 대표적으로 제물로 나타나는 것은 농업위주가
아닌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약 많이 사용라는 소를 죽인다면 백성들의 생활이 문제가 되며
농업의 생산이 줄어드니 당연히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지고
세금을 거두는것도 문제가 되기에 폭군이나 무도한 독재를 하는 왕이
아닌이상 무리한 행위를 해서 제사를 지내지 않을듯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제사의 희생의 제물로 소가 나오는 것은
이러한 농경위주의 형태가 아닌 상업이나 다른 특산물이 주류가 된
나라나 사회였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되며
옥까라라는 왕의 이름이 감자인대 감자는 사탕수수이니
아마도 사탕수수를 많이 재배하여 가공을 거쳐파는 상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보통 사탕수수와 사탕무우가
있으니 모두 천연설탕의 재료로 소금과 함께 생활속의 필수품이니
왕의 이름에서 추측을 해보아 사유를 해본것이다.
후대의 그의 후손은 농업을 위주로 하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정착 생활을 하지만 감자왕은 유목적인 형태의 삶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