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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겨자씨를 통해서 본 현세 천국의 원리/ 마태복음 13:31,32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4o_d0QcYTIs
오늘 설교는 조상호목사님께서 같은 본문으로 “겨자씨 같이 연약해도”라는 제목으로 하신 설교를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은 ‘천국은 마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려면 천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내세천국이 있고 이 세상에서 누리는 현세천국이 있습니다. 현세천국은 유한하고 내세천국은 무한합니다. 현세천국에서는 천국의 맛을 보고, 내세천국에서는 천국을 완전하게 누립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안에 있지만 대한민국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법이 미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외국대사관입니다. 광화문 앞에 가면 미국대사관이 있습니다. 그곳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지만 미국정부의 통치를 받습니다. 범죄자가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대한민국 경찰은 그를 잡으려면 미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가 허락한다면 그 안에 들어가서 그 범죄자를 잡을 수 있지만 허락하지 않는다면 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대사관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미국의 통치를 받습니다. 다른 대사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세천국이 그런 곳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천국을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서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완전한 행복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립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겨자씨를 가지고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내세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리는 현세천국 즉 하나님 왕국의 현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 즉 현세천국의 원리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생명의 원리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생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벌입니다. 영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천국이고 영벌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지옥입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에는 ‘지옥문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얘기를 조각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옥 문 앞에서는 무엇을 생각해도 쓸데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야지 지옥을 면하지 지옥 문 앞에서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지옥을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깃들일 수 있는 이유는 겨자씨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다는 이유 때문에 겨자씨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래알도 작고 먼지도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들과 겨자씨가 다른 것이 있다면 생명력입니다. 모래나 먼지는 정성을 다해 땅 속에 심고, 최선을 다해 물을 주고 가꾸어도 생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다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싹이 나고 자라납니다. 겨자씨라도 죽어 있다면 그 씨는 자랄 수 없고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에 자라고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요일 5:12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 3:16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영원히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하므로 사망의 종이 되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가 시카고 대학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한 평생 연구하고, 책을 쓰고, 가르쳤는데, 교수님이 그 동안 연구한 심오한 진리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학생의 질문에 칼 바르트는 대답 대신에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찬송가 563장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해 주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받으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구원받는 그 사랑, 그 사랑이 바로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의 중심일세.”라는 뜻이었습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그 사랑 때문에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두 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하여 조물주가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어느 농장에 병아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병아리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수의사가 진단을 하더니 암탉을 한 마리 잘 고아서 먹이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수의사를 향해 “정신 나갔냐?”며 화를 냈습니다. “병아리를 살리려고 암탉을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만약 수의사가 송아지를 잡아 먹여야 한다고 하면 그 말을 따를 농장주가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병아리를 살리려면 농장 주인의 아들을 잡아 먹여야 한다면 그 말대로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며 죄인인 우리를 살리려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계산이 안 나옵니다. 크게 손해 보는 일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은 논리를 뛰어넘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보라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눈멀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보라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성육신 하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영생을 얻은 우리는 비록 자기가 겨자씨 한 알처럼 지극히 작고 연약하더라도 자기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잘나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어도 하나님은 나를 존귀하게 보십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세 번째 조건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어도 우리가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믿지 않으면 사망입니다.
한 사람이 군 생활 중에 거듭났고 자신의 사명도 발견했습니다. 그가 크리스마스 즈음에 위문품을 받았습니다. 그 속에는 작은 거울이 들어 있었습니다. 거울 뒷면을 보니 거기에는 요 3:16 말씀이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런 짧은 글이 덧붙여 있었는데, “하나님이 누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알고 싶으면 뒷면을 보세요.” 궁금하여 얼른 뒤를 돌려보았더니 거기에는 자기의 얼굴이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누가 자기를 진정 사랑한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이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사실에 큰 감동을 받고 믿음이 생겨서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되어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리라.’ 그는 그의 소원대로 독실한 기독의사가 되어 몸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영혼까지 치료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피터 윌슨입니다. 그는 복음을 믿고 복음 안에서 자기가 얼마나 존귀한 사랑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고 우리가 받은 영생입니다.
2. 성장의 원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입니다. 나이는 1,018살이고, 키는 38.8m이고, 둘레 11m입니다. 무게는 97.9ton으로 중형승용차 약 69대 정도의 무게입니다. 그런데 용문사 은행나무가 엄청나게 거대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제너럴 셔먼’입니다. 이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한 국립공원에 있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종으로 나이가 2,200살 이상이고 키는 약 85m입니다. 금년 5월에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진에는 전문 등반가들까지 참가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은 이유는 나무껍질딱정벌레가 급속히 번지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이 나무는 딱정벌레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답니다. 이 두 나무는 다 엄청나게 거대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나무는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지극히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거대한 것도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지금의 약하고 작은 모습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겨자씨가 자라나듯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우리의 인격과 믿음은 성장하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기독신문에 인상적인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 헤드라인에 ‘한국 제일 큰 교회가 문을 닫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라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자세하게 살펴보니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 제일 큰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아니라, 어떤 동네의 개척교회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허름한 상가 건물의 지하실에 10평정도 되는 공간에 교회를 개척한 후, 교회 이름을 ‘한국 제일 큰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그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교인이 별로 모이지 않자 결국은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가 작아서 그런지 유별나게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부터 큰 대(大)자를 앞에다 붙여 대한민국이라고 부릅니다. 왕도 그냥 왕이 아니라 세종대왕이라고 대자를 넣어 불렀습니다. 요즈음에도 정부최고수반을 큰 대자를 앞에다 집어넣어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최고 학부도 큰 대자가 앞에 붙어 대학교, 대학원이라고 부르고, 길 이름도 강남대로, 양재대로, 다리 이름도 한강대교, 성수대교, 잠실대교, 다 큰 대자를 붙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하는 반면, 작은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형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소형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우습게 봅니다. 아파트 평수도 그렇고 교회 교인들 숫자도 따집니다. 세속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세상에서는 작은 것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원리입니다. 낮아지면 높여줍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약할 때 강하게 됩니다.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결국은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 60:22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려면 성장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크고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둘 사이에 아기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목자로 시작했지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대상 11:9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점점 성장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비록 겨자씨처럼 연약할지라도 우리의 믿음, 우리의 생활 그리고 우리의 사역은 점점 자랄 것입니다. 성장의 원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조그마한 씨앗에서 창대케 될 것을 꿈꾸어야 합니다. 욥 8:7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누구든지 시작은 미약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심히 창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겨자씨는 대단히 작습니다. 볼펜으로 점 하나 찍어놓은 것 정도로 작습니다. 그런데 작은 씨 한 알을 심었을 때, 나물보다 자라서 나무로 성장합니다. 보통 1.5미터까지 자라고, 어떤 종자는 높이가 3~4미터에 이를 만큼 자라납니다. 그리고 새들이 날아와서 그곳을 안식처로 삼을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자라서 나무가 되듯이 우리도 지금은 미약하더라도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마르타 베리 여사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처럼 가난하여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세워서 진정한 교육을 해보겠다는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도 응답의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감동을 받아서 당시에 미국에서 제일 부자인 헨리 포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 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세울 돈을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포드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원 정도를 주었습니다. 베리 여사의 요구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여사는 자기가 기도하고 한 행동인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베리 여사는 100원으로 씨앗 한 봉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공터에 뿌리고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추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것을 다시 심었습니다. 이렇게 몇 해를 반복했더니 씨앗의 양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마침내 베리 여사는 건물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베리 여사는 헨리 포드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포드씨, 당신이 몇 해 전에 주었던 동전 하나로 이룬 성과를 봐 주세요." 헨리 포드는 100원으로 건물을 지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세워진 건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학교를 위해서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결국 베리 여사는 그 돈으로 건물들을 세워서, 지금도 LA 근교에 가면 ‘베리 스쿨’을 볼 수 있습니다.
베리 여사는 작은 동전 속에서 큰 비전을 보았고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베리 여사처럼 작은 씨앗에서 큰 나무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지금은 작은 아이들이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저와 여러분보다 더 믿음이 좋은 훌륭한 일군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통해서 그들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갈릴리라는 조그마한 동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겨우 고기잡이 어부들이나 당시에 천대받던 세리와 창기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복음이 5대양 6대주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성장의 원리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를 이루고 숲을 이루듯이 우리는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의 원리를 따라서 영성도 자라고 생활도 자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의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믿음의 확신이 있을 때 믿음으로 살 수 있고,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믿음이 분명할 때 믿음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미선교회라고 기억하시지요?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자신들은 휴거 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이 땅에서는 7년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을 대표했던 인물은 이장림씨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휴거를 주장했지만 자기의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믿지 못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1993년 5월 22일에 만기 되는 환매채를 사들인 사실이 들통 났습니다. 그것은 이장림이 1992년 10월 28일 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동시에 사기죄가 성립되는 주요 요소였습니다. 그는 믿는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으면서 돈 벌이로 그 짓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가 외쳤던 믿음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그의 행위로 증명 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위로 증명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지키면 우리의 영성과 생활은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3. 섬김의 원리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새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겨자나무는 가지와 그늘로 새들을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섬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실 교회를 처음 나올 때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나옵니다. 신앙을 통해서 무엇인가 이익을 얻으려고 나오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옵니다. 신앙을 이용해서 자기 유익을 추구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생기면 주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게 되면 주님을 위하여 자기가 이용되고 싶어 합니다. 전에는 주님이 자기를 섬겨주시기를 소원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주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복이 됩니다.
한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나가지 않던 아이가 친구들 때문에 교회에 갔습니다. 그 아이가 교회 갔다 오더니 엄마에게 “엄마, 교회 갔더니 무지무지 재미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도 교회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아합니다. 엄마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교회 가니까 무엇이 제일 재미있든?”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찬송도, 하나님 말씀도 재미있고,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참 재미있어요. 그런데 엄마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참 예배를 드리면 돈주머니가 우리 앞을 지나가요. 그래서 내가 돈 주머니에서 돈을 몇 개 가져 왔어요. 다음 주일에는 좀 더 많이 가져올래요.” 이 아이는 헌금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 아이처럼 신앙을 축복의 수단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①예배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②사역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목사만 사역자가 아니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일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정이 타오릅니다. 어느 할아버지 3류 마술사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분이 교회의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사람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섬기고, 어떤 이는 밤새도록 기도로 헌신하고, 또 어떤 이는 땀 흘려 봉사로, 또 어떤 이는 헌금으로 또 어떤이는 전도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3류 마술사 할아버지는 남들만큼 건강하지도, 부하지도, 많이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그분이 어느 날 예배당 안에 혼자 들어갔는데,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않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서 문틈으로 예배당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망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줄과 꽃들이 흩어져 있고,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할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요란을 떤 후에 “하나님 재미있으셨습니까?”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예배당에서 끌어내려고 하는데, 강단의 십자가에서 천사가 내려와 수건으로 노인의 땀을 닦아주었더랍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은 그 노인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귀히 받으신 것입니다.
③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④교회를 돌아봄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고, 교회를 돌아보는 사람이 주님을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진짜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은 우선 교회를 자꾸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섬길 부분이 있으면 섬기는 것입니다.
⑤이웃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마 10:40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주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요일 4:20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그 사랑이 인정 되지만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그는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섬김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로 인류를 섬겨주신 것처럼 섬기는 삶을 삽니다. 다윗의 삶이 그랬습니다. 행 13:36에서는 다윗의 삶을 압축해서 섬기는 삶이엇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이 한 일들 가운데는 위대한 일들도 많은데 여기서는 다윗의 삶을 압축하면서 그는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강도만난 사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사람을 봤지만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또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시하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이 돈으로 이 사람을 돌보아주세요.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와서 갚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주님이 이 이야기를 하신 후에 율법사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강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사용하여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섬겨야 합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섬길 수 있습니다. 먼저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다양한 방법으로 섬겨도 그들이 지옥 간다면 우리의 섬김은 빛이 바래고 말 것입니다. 전도만큼 큰 사랑도 없습니다.
오늘 설교는 겨자씨를 통해서 보여주는 현세천국을 누리는 원리 세 가지를 나눴습니다. 1. 생명의 원리입니다. 2. 성장의 원리입니다. 3. 섬김의 원리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는 믿음도 자라고 삶의 모든 영역도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을 잘 섬김으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