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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삼국유사’(새로읽는 고전:13)
◎설화속에 녹여낸 민족정신의 원형
살아가면서 가끔은 남과 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남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갖고 자랑하고 싶을 때도 있다.특히 그것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리’라는 집단에 관한 문제가 되면 더욱 그렇다.
일찍부터 자본주의 길을 걸어온 서구 사회의 상업주의 문화 앞에서 어쩐지 위축되어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우리도 장구한 역사와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마음만은 풍족하게 살아온 민족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그러나 막상 무엇이 우리 것인가라고 말할라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국가간의 교류가 활발한 시대에서는 문화의 고유성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양과도 확실히 다르고 중국과도 다른 우리의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역사의 어디까지 올라가야 순수한 우리만의 숨결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가는 길에서 처음 만나야 하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다.
○역사·문학·철학 집대성
삼국유사 속에는 우리 민족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책을 읽다보면 언젠가 할머니에게서 한번쯤 들었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들은 적은 없지만 구절구절이 낯설지가 않다.그래서 삼국유사는 겨울 삭풍이 문풍지를 세차게 울리는 한밤중에 읽는 것이 좋다.온돌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흙벽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삼국유사가 주는 신비감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우리 민족이 먼 옛날 도읍을 정하고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녀 왔던 심성과 습속(習俗)이 행간마다 배어 있다.그래서 나는 삼국유사를 삼국사기와 비교하여 야사(野史)쯤으로 취급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단순히 그 이전 시대를 기록한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1145년)가 편찬되고 난 1백40년 뒤에 또 다시 단지 삼국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30여년이나 넘게 집필에 몰두했을 리 만무하며,이 다섯 권의 책에서 인용한 고서들이 삼국사기 50권의 그것보다 더 많은 점,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고도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단순한 역사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다양한 측면의 접근이 가능한 복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책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신비주의적 상징을 고려한다면 서사 문학에 가깝고,문화와 사회질서가 한데 어우러져 있고 등장인물도 귀족으로부터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각 편의 주제도 국가의 탄생 신화로부터 개인의 효행에 이르기까지 두루 걸쳐 있는 것으로 보면 계몽서로서의 성격도 강하다.
○신비와 상징속의 메시지
이 책을 겉만 훑고 지나가면 허무맹랑하고 비과학적이며,비현실적인 옛날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기 쉬운데,당시 한 나라의 국사(國師)에 까지 오른 일연(一然)이 재미있는 이야기 책을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이에 몰두했을 성 싶지는 않다.사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신성하고 기이한 이야기들로 포장을 씌운 것은 치밀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고증이나 세상사의 숭고한 가치들을 흥미있는 이야기로 녹여내면서도 그 속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힘들고 괴로울 때 자연스럽게 초월적인 힘을 갈구하게 되는데,삼국유사가 전편에 걸쳐 이러한 신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암울한 사회 현실을 고려한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인간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은 동일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이나 토론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를 생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자발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강렬한 동기를 부여한다.종교가 믿음의 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요,관습이나 도덕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기원을 단군이라고 하는 신화적 존재로 묘사하여 중국의 시조인 요(堯)와 대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으며,이는 삼국의 건국 신화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역시 천우신조 때문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자연스러운 믿음의 체계로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신비적인 신념만으로 존재하도록 두지 않고,이를 자연스럽게 불교와 연결지었다.보다 체계화된 신념이라야 황폐화된 민중의 마음을 붙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고,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교적 신앙만이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 기술을 통해 얻은 신비적 자긍심을 자연스럽게 불교에 연결시키면 이를 종교로서가 아니고 생활로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리라.그래서 행하라고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초월적인 세계를 연결지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신비적인 믿음을 현실화하고자 한 것이다.
○배달민족 후예와의 만남
그래서 이 상징으로 가득찬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 곳에는 순박하고 지혜롭고 헌신적이면서도 불굴의 용기로 가득한 배달 민족의 후예들을 만날 수 있다.
웅녀는 우직함과 끈기로 국조 단군을 탄생시켰으며,주몽은 그 용맹으로 광대한 영토의 개척자로서 말을 타고 우리를 향해 달려 온다.볼모로 일본에 간 김제상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 죽어가고,그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날마다 치술령 고개에 올라가 통곡하다가 죽는 비장한 숭고함도 살아 있다.
사라진 해와 달도 사랑으로 다시 찾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며,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진 선덕여왕,아랫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인간애를 보여준 죽지랑의 이야기는 노래로 칭송되어 오늘까지 전해 온다.
경덕왕은 충담에게 백성을 위해 안민가를 지어 달라고 하여 경천애민이 중국으로 들어온 군주의 덕목이 아님을 보여주고,하얀 피를 뿌려가며 죽어간 이차돈의 순교는 고귀한 희생 정신의 원형을 재연해 주고 있다.처용의 달관적 자세는 훗날 도래할 유교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으며,구도자의 자세를 포기하면서까지 처녀를 도운 노힐부득의 이야기는 종교 이전에 휴머니즘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몽고군의 침략 앞에서 낙산사 보주(寶珠)를 지킨 절의 노비인 걸승의 이야기와 군중의 목소리로 수로부인을 구한 일화 등 많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평민들의 활약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민중에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호랑이를 감복시킨 김현의 보은 정신과 전생의 부모와 이승의 부모에게 효도한 대성의 이야기,부모를 위해 자식을 묻으려한 손순의 효성은 삶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 질서를 명시해 준다.
5권9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이 짧은 글 속에 어찌 다 옮길 수 있으랴마는 이 속에서 우리는 과거가 아닌 우리 미래의 희망을 읽어낼 수 있으며,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온 우리들 가슴 속 저 심연의 따뜻한 마음들을 불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로 나가는 후손위해
삼국유사는 몽고군의 침략이 한창이던 시절에 쓰였다.온 국토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구도승 일연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이 책을 써 나갔을 것이다.후손들을 향해 우리 민족은 고귀한 하늘의 후손이며,이처럼 순결하고 지혜로운 민족임을 잊지말라고 당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지 말며,먼 미래를 향해 전진하라고 어디선가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단 한번이라도 한민족의 후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