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그해 여름은 늘 기억에 남아. 이미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새집으로의 이사를 한 달여 남겨두고 우리 식구들은 마냥 행복했지.
새 가구를 보러 가고, 새 가전제품을 주말마다 사러 나갔지.
아내는 그 새 가구들을, 가전제품들을 어디에다 놓으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잠도 깊이 못 잤어.
행복한 고민 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어. 당연히 나는 가장으로서 그런 모습들이 뿌듯했고...
그리고 지리산으로 휴가를 떠났지.
첫날 여장을 풀고 우리는 콘도 주변 뱀사골 아랫마을을 둘러보았지. 옛날로 돌아온 느낌이었어.
시골 골목과 개울과 나무 냄새, 매미 소리, 그늘에 누워 편한 낮잠 즐기는 시골 개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
둘러보는 중에 소낙비가 내렸지.
시골가게 처마 밑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였어. 금세 그칠 것 같던 소박비가 제법 기운을 오래 쓰는 거야. 어쩌겠어. 내가 힘을 써야지...
아이 여름 점퍼를 덮어쓰고 비를 맞으며 콘도로 달려갔어. 차를 가지러...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달려가는 내 모습을 보며 아들이 그랬다더군. 아빠는 참 용감하다고.
차를 몰고 오는데, 빗줄기가 그새 가늘어져 있더군. 그때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을 보았지.
그래... 가끔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내 그늘 밑에도 생명이 사는구나...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신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끼곤 하지.
그날 저녁에 석현이 엄마가 열이 많이 났어. 그전 해 가을에 폐렴으로 오래 고생을 했으니 열이라면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지.
웃으며 말했어. 석현이 엄마가...
불안을 그 웃음으로 감추면서.
"발목이 부었는가 봐요. 눌러도 안 올라오네..."
나도 짐짓 태연한 척 여유를 부리며 집사람 발목을 꾹 눌러봤지.
아내의 발목 살은 내가 누른 그 모양 그대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어. 석현이 낳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 그땐 병명이 임신 중독이었어. 발이 붓고... 발목이 더 붓고... 급기야 장딴지까지 퉁퉁 부어오르던...
그때 아내가 신을 수 있는 신발은 여름 슬리퍼 밖에 없었지.
석현이를 가졌던 94년 그해 여름은 참으로 더웠던 것 같아. 그 여름에 ‘라이온킹’이 상영되었지.
그때 다섯 살이었던 딸과 함께 그 영화를 보러 갔었어. 물론 영화는 내가 보기에도 재미있었어. 근데 애경백화점 내에 있는 그 영화관에서 아들을 임신한 아내는 너무 시원해서 행복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아내의 행복해하는 그 모습이 영화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더군.
그 여름 내내 아내는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에 의지해서 포도만 먹고살았었지.
지켜만 봐야 했던 나에겐 오랜 아픔 하나가 가슴에 남겨져 있더군. 그때 부운 아내의 발목을 눌러보면 눌린 채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나.
해열제로 열을 식혀가며 그래도 휴가는 즐겁게 보냈었어.
돌아와서 바로 동네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얼른 대학병원에 가보라더군. 긴장한 채 가까운 대학병원을 갔어. 정밀 검사를 해야 하니 입원준비를 하라더군. 아들을 낳고 나서 원인 모르는 병들로 일이 년에 한 번씩은 꼭 병원 신세를 진 아내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는데, 나는 그 처진 어깨를 감싸 안는 것 외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지.
그 와중에 이사를 했어. 이사한 그날. 가장 즐거워야 할 그날, 나는 아내에게 버럭 화를 냈었어.
새 가구가 들어오고 새 가전들이 들어오고...
아내는 부은 발목으로 허둥대며 몸을 아끼지 않더군. 바쁘게 허둥대며 서성이는 아내가 왜 그리 측은하고 미련하게 보이던지.
그렇게라도 두려움을 달래 보려는 아내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지만, 이게 다 무슨 짓인가?
부질없다는 생각만 들더군. 새 집도 새 가구도...
일주일 입원하는 동안 여러 검사를 했지. 조직검사를 하느라 이틀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던 아내는 몸 움직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더군. 신장조직을 조금 떼어냈나 봐.
혈관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조직을 떼어내고 몸을 움직이면 큰일 난다고 했으니 그 부위가 아물 때까지 꼼짝 할 수가 있어야지.
검사 결과가 나온 날, 주치의는 아내 보고 큰 병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더니 보호자인 나를 좀 보자고 하데. 연속극이나 영화를 너무 봤는지, 주치의 뒤를 휘청거리며 따라가던 나는 말라버린 침을 자꾸 삼켰지. 두려웠었어. 정말...
"루프스를 아세요?"
의사의 질문에 모른다고 했지. 듣느니 처음이니...
"전신성 홍반성 낭창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고개를 저었어.
그런 복잡한 병명은 나고 처음 들어봤거든.
다음에 들려올 말이 무서워 내가 먼저 물었지.
"불치병인가요?"
내 말이 떨리고 있음을 내가 느낄 수 있었어.
"불치병은 아니고 난치병입니다."
난치병이란 말이 그렇게 반가운 말인 줄 예전엔 몰랐지.
"그럼 손 쓸 사이 없이 금세 사망하는 병은 아니군요?"
"네. 치료만 잘하면 보통 사람처럼 살 수도 있어요."'
그제야 가슴에 모여있던 큰 숨들이 휴~~ 빠져나오더라.
주치의 방에서 두 시간 넘게 설명 듣고 질문하고...
자가 면역 질환, 루프스. 남자보다 여자가 열 배 더 잘 걸리고, 아시아 여자들이 많이 걸리고, 예전에 아이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사망하던 여자들 대부분이 이 병 때문이었을 거라고...
호르몬 변화가 극심한 임신기에 영양섭취나 건강을 소홀히 하면 쉽게 걸릴 수 있는 병.
면역계에 이상이 생겨 몸에서 생성된 항체가 자기 몸을 병원체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병.
심한 스트레스나 피로가 겹치면 잠잠하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재발하는 병.
그동안 지리하게 계속되던 아내 병치레의 원인이 드디어 밝혀졌지. 임신중독에 이어진 결핵균도 못 찾았던 의사결핵성복막염. 치료 속도가 원인 모르게 느려 담당 의사를 초조하게 만들었던 폐렴. 그리고 이번에 공격당한 신장까지...
면담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니, 태연을 가장한 얼굴 사이 두려움에 가득 사로잡힌 아내의 눈이 초점을 잃고 허둥대고 있었어.
하나도 숨기지 않고 의사에게 들은 대로 그대로 말해줬지.
그 밤. 아내는 잠 못 들이고 울고 있었어. 물론 나도 편히 잠들 수는 없었지.
근데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나니, 이상하게 나는 두렵지가 않았어. 마치 새로운 할 일이 생긴 마냥 마음이 들뜨더군. 참 이상도 하지?
그 모습이 아내에게 어쩌면 든든한 믿음 같은 걸로 비쳐졌는지도 몰라. 새 집으로 퇴원해서 돌아오는 길에...
"걱정 마. 지금까지는 모르고 싸우는 병이라 솔직히 두려웠었어.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니야. 이제부터는 병을 알고 싸우는 거야. 상대를 알고 싸우는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거든. 이젠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 선 거지. 걱정 마~ 날 믿어. 우린 이길 수 있어."
내 말에 아내가 빙긋이 웃어주었거든.
아내에게 받은 것을 되갚아줄 기회가 생긴 거지. 누군가에게 아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식구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큰 기쁨이야.
94년, 그해 여름은 늘 기억에 남아. 지금 돌아봐도...
아내가 큰 병이 있음을 알긴 했지만, 우리 가족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첫여름이었던 거야. 그 해 여름은...
그때 하루 열 알씩 먹던 스테로이드 알약을 석현이 엄마는 이제 이틀에 두 알씩만 먹어. 달라스의 맑은 공기와 건조한 기후도 석현이 엄마에게 잘 맞나 봐. 물론 운 좋게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기도 했고.
육 개월에 한 번씩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그 의사를 찾아가는 길은 우리들의 데이트 드리이브가 되었어.
다행히 해피엔딩이야. ㅎ
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친구.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서...
* 8년 전 삶의 이야기방에 올렸던 글인데, 제 글을 수필방에 모아두고 싶은 마음에 조금 수정해서 수필방에 올려놓습니다.
옛글은 지웁니다.
그때 댓글 주신 님들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첫댓글 지금부터 31년전 그해 여름의 사연을 잘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잘지키고 있던 마음님의 심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때 무얼 했을까?
길동21평서 우리네식구와 장인,장모,처남까지 복잡다난하게 살다가 분당아파트에 당첨되어 훈련원같이 넓은 46명에서 네식구가 살던때 였습니다.
90년에 시작하여 98년까지 계속된 가족신문을 매달 만들어 주변에 돌리던 나름 즐거운 시절이였습니다.
훈련원 같이 넓은 46평.
실감 나는 표현입니다.
전 45평 큰형집에 처음 가보고
길 잃을까봐 조마조마 했습니다. ㅎ
이젠 원룸을 선호하는 세상이라니
우리 세대는 참 많은 변화를 보며 삽니다.
호사다마라고 해야 하나요.
이사 준비하며 떠난 즐거운 가족여행에서
사모님이 아프시고.
루프스란 병명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사모님 건강이 많이 좋아지셔서
참 다행이에요.
우리가 사는 동안 문제는 늘 따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싶습니다
저도 늘 약을 달고 삽니다.
힘들어도 놓치지 않고 싶은 건
EBS영어라서 지금도 선생님은
열심히 강의 중인데 저는 이렇게
딴짓하고 있어요ㅎㅎ
마음자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향이 이웃 동네에 젊은 시절을
같은 도시에서 보낸 인연으로
늘 친숙함이 느껴지는 이베리아님,
댓글로 알게되는 이베리아님 또한
몸이 약하시고 지병도 있는 듯 보여
제 마음 한켠에 밝고 건강하시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자리하십니다. ㅎ
기운내세요.
EBS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시구요. ㅎㅎ
사모님의 건강에 대해서 마음고생 많이 했겠습니다
나도 내 아내가 매년 병원에 입원하고
몇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거를 보니 안타깝습디다
그래도 아직은 잘살고 있으니 대견합니다
각자 건강 신경쓰며 힘을 냅시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처음엔 놀랐지만 인정하고 이해하고
가족 모두 그 병까지 껴안고 살다보니
그 아들이 서른이 되도록 잘 살고
있습니다. ㅎ
그해 여름은 30 여 년이 지났네요.
독백 하듯이 써 내린 글 속에는,
마음자리님의 아내 사랑과 함께
자신의 굳셈을 다짐하는 의지가 엿보이네요.
한 남자의 일생이
가정을 건사하고 가족 사랑하는 그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살아내는
건실한 한국 남성의 표상입니다.
그래서, 먼 이국의 광활한 땅에서도
길 위의 삶을 참으로 잘 살아가십니다.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자리님,
꿋꿋한 삶에 응원을 합니다.
수필방 사랑에도요.^^
네. ㅎ
큰 욕심 없이 가족 건사하는 일로
제 나름 열심히 살았네요.
이젠 아내 잘 지내고 있고
딸 아들 다 제몫을 하게 되었으니
저 또한 길 다니며 제 즐거운 삶을
살고있는 지금이 딱 좋습니다.
쉬운 삶이 없군요. 가장의 무한한 책임이 느껴집니다.
미국으로 옮긴 것도 좋은 선택으로 생각됩니다.
3년전 국민학교 동창 6명이 만났는데 절반이 암 수술 경험이 있고, 두세시간의 대화가 거의 건강이야기였습니다...
미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에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식구 각자의 성격과 특성에
잘 맞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야 삶 전체에 걸쳐 소홀히
다를 수 없는 중요한 일이지요.
참 든든하고 믿음직한 남편이요. 아버지셔요.
뜨거운 가족애에 감동 하면서 두번 읽었어요.
수필방에 글을 모아놓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
알것도 같습니다.
8년전 글이니 지금은 사모님이 완치 되셨는지요..
난치병이라 여전히 지병으로 껴안고
살고 있지만, 잘 관리하면 괜찮고,
식구 모두 그 병을 잘 이해하고 있어 병 관리하기가 어렵진 않습니다. ㅎ
1970년대의 우리고향 충남공주의 산골이 떠오릅니다.
스피커라는 유선방송이 덜렁한개씩 달아주고 쌀댓말
보리댓말씩 걷워가던 새마을운동초기.
그 옛날의 우리마을에 한동안 추억에 잠깁니다
황토 흙냄새 물씬 나던 그때가
자주 그립습니다.
책임감 있으시고, 긍정적인 성격이 엿 보입니다.
막내 아니신듯..
잠시 친구들과 점심.커피. 여유를 가져봅니다.
94년 여름은 잊을 수가 없지요.
저도 아들을 그해 낳았습니다.
에어컨을 미쳐 장만하지도 못 한 상태에서 나중엔 불러오는 배를 안고 울어 버렸지요.ㅎ
카페 올라온 글 모두 좋은 글 들인데.
..
나중을 기약하며.
병도 가족인냥 안고 살아가시는 넓은 마음으로.
늘 행복하시길 멀리서 기원 드려요.
중요한 2차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급해지고 몸이 바쁘겠지만
그럴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친구들과 잠시의 여유로움을 가졌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94년 그해 여름은 정말 너무 더웠어요. ㅎ
그해 여름은 잊고
잘살아야겠어요.
지난 일들이니 때 되면 잊혀지겠지요.
매이지 않고 담담히 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도 있지만 배우자가
아픈것만큼 중대사가 있을까싶어요.
스테로이드 약을 줄일만큼 회복되고 있으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싶어요.
저도 글은 20년 넘게 카페에 글을 올렸었는데
카페 차원에서 관리가 안 돼다보니 그 많던 글들이 다 날라가고 티스토리에 겨우 살아있어요.
하지만 예전 블로그하고 다르게 티스토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불안한데요.
5060카페는 글 관리가 잘 돼서 한군데 몰아 놓으면 나중에 기록이 될 것같아서요.
넘나 좋은 생각이예요^^
그래서 저도 한자리에 모아두고 싶어서요.
나무랑님의 예전 글도 만나고 싶어요.
모으실 때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