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오늘은 진짜 겨울인지 날도 춥고 눈이 펑펑오네요. 어제도 아가가 아파서 내내 못잤더니 비몽사몽인데 오늘은 낮에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나왔습니다. 아가가 낮잠 자다 깨서 묵상이 중단될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계신 예수님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주님, 12월이 되니 괜히 바쁜 것 없이도 분주하고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지혜 되신 예수님을 붙듭니다.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셨지만 저는 해 아래에 살면서 한해를 마무리 하고 내년을 또 계획하는 이 시기에도 주님처럼 시공간을 초월하고 싶기도 합니다. 주님, 주님의 생명으로 오늘도 살아가길 기대합니다. 주님, 자아생명은 이미 죽었음을 선포하는 시간이길 기대합니다.
@말씀주해: 향수 안에 죽은 파리들이 들어가면 이미 향수는 향수가 아닌 악취가 나는 쓰레기와 같다. 작은 어리석음으로 지혜와 영예를 더럽히는 것이 이와 같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옳은 곳으로 향하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옳지 않은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는 길을 걸을 때도 지혜가 모자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두에게 드러낸다. - 작은 어리석음은 별 것 아닐 수 있으나 큰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대로 지혜로움으로 어리석음을 덮을 수도 있다. 그만큼 어리석음과 지혜는 빛과 어두움의 차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
통치자가 너에게 화를 낸다면 너는 자리를 떠나지 말라. 침착하기만 하면 큰 실수를 막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본 잘못된 일이 또 하나 있는데 이는 통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허물이다. 어리석은 자들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지혜로운 자들을 낮은 자리에 앉혔다. 노예들은 말을 타고, 귀족들은 노예처럼 걸어갔다. - 통치자, 리더일수록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한데, 높은 자리일수록 지혜롭기 보다는 탐심이 더 클 수 있다. 그러기에 통치자와 리더를 위해 중보해야 한다. 공의가 실현되기도 해야겠지만, 그들을 위한 긍휼이 필요하다.
함정을 파는 자는 자신이 그 곳에 빠질 수 있고, 벽을 허는 자는 독사에 물릴 수 있다. 돌을 떠내는 자는 돌 때문에 상할 수 있고, 장작을 패는 자는 장작 때문에 죽을 수 있다. 무딘 도끼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많이 들지만, 지혜를 쓰면 성공한다. 뱀에게 마술을 걸기 전에 물린다면 그의 마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게 되고, 우매하게 될 뿐이다. 지혜로움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하고 유용한지 모른다.
@나의 묵상
1. 비참함: 묵상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본다. 말씀 안에서 나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능적으로 되는 것은 내 주변의 어리석은 자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렇지.. 그래서 그 어리석음이 결국 주변을 망치고, 공동체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하는거지 하면서.. 그러면서 나는 지혜로운 양, 슬기로운 양 생각하는 내 속의 깊은 교만을 본다. 마치 나는 죽은 파리까지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주변을 속인다. 최근 유익한 강의들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이보다 어리석고 우매한 자가 있을까싶다.
2. 복음에서 생명으로: 뼛 속부터의 교만이 있는 사람에게는 답이 없다. 그러니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1개의 지혜도 없고 어리석음만 가득한데, 이는 지혜가 예수님 그 자체라, 나로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지혜의 근본되신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지혜롭고 싶은데 지혜자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다른 곳이 아닌 예수님에게 답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계획하셔서 어리석은 인간에게 해답처럼 제시해주셨다. 이를 믿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생명을 가질 때, 지혜로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묵상기도: 주님, 애기가 낮잠에서 깨서 부랴부랴 묵상을 마무리한 것도 같습니다만, 묵상을 통해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리고 교만한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매일 보는데도 매일 모르니 그러니 어리석인 자겠지요.. 그러니 매일 비춰주시는 말씀 안에서 다시금 주님을 만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알게 하십니다. 주님의 지혜가 이미 저에게 있음을 믿고, 주님의 마음을 오늘도 구합니다. 가족과 지체를 섬기는 일에, 주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에 주님의 생명으로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