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TV를 많이 보는 시간에 패륜(悖倫)적 내용이나 폭언 등이 등장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를 제재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차행전)는 MBC가 자사(自社)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린 제재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MBC에 패소 판결을 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압구정 백야'는 생명 윤리에 어긋날 소지가 있고, 상황 설정이 극단적이며 자극적이다"며 "공익(公益)을 감안할 때 방통위의 제재는 충분히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방송사가 방송통신위원회의 드라마 징계 조치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법원이 첫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정부 제재에도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달려 막장 드라마를 양산해온 공중파 방송사의 폐해가 근절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MBC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평일 오후 8시 55분~9시 30분에 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방송했다. 어린 자신을 버리고 부잣집에 시집간 친모(親母)에게 복수하려고 여주인공 '백야'가 엄마의 의붓아들을 홀려 그 집 며느리가 된다는 줄거리다. 많은 비판에도 최고 시청률이 19.1%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 대해 방통위가 작년 4월 "드라마 관계자를 징계하라"는 처분을 내리자 MBC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MBC는 "전체 맥락에서 보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드라마 내용이 사회적 윤리와 가족 가치를 저해·왜곡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친모와 며느리로 둔갑한 딸이 서로를 향해 '어디, 버러지 같은 게, 인간 같지도 않은 게 (내 아들을 넘봐)', '버러지가 버러지를 낳았겠지', '(친모에게) 당신은 유부남을 꼬신 것밖에 한 게 없다' 같은 막말을 내뱉으며 구타를 하는 장면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 드라마 핵심 인물인 의붓아들이 우연히 마주친 깡패와 시비가 붙어 사망한 내용을 거론하며 "지나치게 억지스럽다"고 했다.
MBC는 또 "요즘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시간제한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어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방송했더라도 (청소년 보호 의무) 규정 위반이 아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드라마를 집필한 임성한 작가가 쓴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대해 방통위가 제재 처분을 했을 때 방송사가 '임성한 작가와 계약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MBC가 문제가 될 소지를 충분히 알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