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개떡
고정순
눈부신 4월이다. 입춘을 맞이한 순간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운해 간간이 시샘하며 오기를 부리던 찬기운도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봄바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4월.. 초록이 가장 예쁘다는 4월을 품기위한 사람들의 나들이로 달력은 분주해지는 것이리라. 일년중 제일 뽐내고 싶은 초록으로 갈아입기 위해 겨울부터 바빴을 나무와 여린 꽃, 그리고 풀한포기까지.. 미리 준비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설레고 만다.
그래서 4월이 오면 어지간히 추위를 타는 나도 가벼운 차림으로 비닐봉지와 칼하나를 챙기고선 혼자만의 봄나들이를 해왔다. 쑥뜯기..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 어린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쑥을 뜯노라면 한시간만 지나도 어서오라는 남편의 눈치가 보여 조급증이 일고, 허허벌판에 덩그마니 놓인 기분에 무섬증도 일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서툰 낫질로 쑥을 베내었다.
그렇게 베어낸 쑥들을 비닐에서 꺼내놓으면 덤불에, 흙투성이에, 이른봄 농부들의 쥐불놀이흔적인 재까지 뒤집어쓴 채 실망하고 원망하는 표정이 그득하니 미안한 마음에 정성들여 손질을 한다.
고른 쑥을 깨끗해질때까지 씻어내고 끓는 물에 데쳐내어 냉동실로 들여보내야 하는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 어마어마한 양에 늘 봄밤은 깊어만 갔다.
나의 작업이 한달을 채울 즈음 남편은 차라리 쑥을 사던지 쑥개떡을 사먹던지 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욕심을 버리라 했는데.. 욕심이라..
가족들 먹일 생각에 졸린 눈 비벼대며 했던 것이 욕심이라하니 서운함에 더 이상 할 의욕이 없어져선 쑥뜯기는 고만두기로 했다. 그대신 불린쌀과 어우러져 새롭게 탄생한 쑥색가루로 만든 곱디고운 쑥개떡을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쑥에게 엄마를 뺏기고 아내를 뺏겨서인지 그 쑥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남편과 아이들은 향과 맛에 감탄을 하며 엄마의 봄선물을 고마워했고 그 맛난 표정을 보니 서운하던 마음은 흩어지고 어찌 그리 흐뭇하기만 한지.
내 어머니도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식구들에게 쑥버무리를 해주셨을 거다.
어린 기억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을 거닐며 진한 향기를 머금은 쑥을 뜯어 쌀가루와 버무려 쪄내면
쌉싸레한 맛과 코를 자극하는 향과 설탕의 단맛까지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은 봄바람에 실려 어머니의 쑥버무리를 그립게 한다. 내가 그랬던것처럼 내 아이들에게도 봄을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닌지..그것이 쑥개떡은 아닐까.
쌀에는 밀과 같은 글루텐 단백질이 없어 끓는 물을 넣어 전분의 일부를 호화시켜 점성을 가해 찰진 맛을 내려고 익반죽을 한다는 사실과 설탕물로 익반죽을 하면 단맛은 덤이라는 것도 배우고, 뜨거울때보다 한김식혀 먹으면 더 쫄깃거린다는 것과 쪄낸 떡위에 소금간을 한 기름장을 발라주면 쉬이 굳지않는다는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나의 쑥개떡은 내 소중한 가족, 이웃, 지기들의 입을 잠시나마 즐겁게 해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나를 찾아왔고 고뿔이 걸려 같이 갈 수 없음을 안 아이들의 아쉬운 배웅을 받으며 쉬엄쉬엄 나들이를 간다. 서울서 이사온지 3년이건만 처음 걸어보는 그 길에서 팬지와 눈인사를 하며 복숭아나무의 새순에게 악수도 청해보고 봄이 왔음을 눈으로 마음으로 깨닫는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니 남편의 재촉도 없을것이고 이것저것 늘여놓은 일로 봄밤을 쓸 수 없음을 알기에 천천히 다듬으며 쑥을 뜯어본다. 이따금 벼농사 준비를 하는 농부가 점으로만 보이는 휑한 논두렁을 거닐다 장끼와 까투리의 다정함에 미소를 머금기도하고, 또 비탈진 둑길에서는 운좋게 달래 한움큼을 캐내는가 하면, 절근처에서는 머위 한바구니를 채우게 되니 절로 흥이 나지 뭔가.
그래서 일까?
나의 쑥뜯는 모습이 누군가의 메우지 못한 한줄의 시로 채워지고, 봄을 담아내는 누군가의 점하나로 화폭을 완성하는데 작은 도움도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조급증과 무섬증도 내려놓는 여유도 생긴다.
나쁜 기운을 다스리고 수십가지의 질병에 효험이 있다하여 예로부터 민간요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온 약초인 쑥과 식물성 식품중 가장 우수한 단백질을 가진 쌀의 훌륭한 궁합으로 탄생한 건강식. 쑥개떡..
요즘은 듣기가 거북하다는 이유로 쑥갠떡이라고도 하지만 쑥갠떡이면 어떻고 쑥개떡이면 어떠하랴.
봄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쑥을 뜯으며 행복해하는 내가 있고, 나의 찰진 쑥개떡을 기다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 봄도 나의 쑥뜯기는 계속되리라.
내 소중한 사람들.. 올해도 나의 찰진 쑥개떡을 기대하시길..
첫댓글 쌀의 훌륭한 궁합으로 탄생한 건강식. 쑥개떡,어머니의 손맛과 정성 / 오늘 쑥개떡이 먹고 싶네요. 오랜만에 듣는 쑥개떡 고향의 향수같은 정을 부르네요.감상 잘했습니다.
행복이 보여요. 맛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쑥캐러 저도 한번 가고 싶군요. 좋은글에 감사해요.
" 서울서 이사온지 3년이건만 처음 걸어보는 그 길에서 팬지와 눈인사를 하며 복숭아나무의 새순에게 악수도 청해보고 봄이 왔음을 눈으로 마음으로 깨닫는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니 남편의 재촉도 없을것이고 이것저것 늘여놓은 일로 봄밤을 쓸 수 없음을 알기에 천천히 다듬으며 쑥을 뜯어본다. 이따금 벼농사 준비를 하는 농부가 점으로만 보이는 휑한 논두렁을 거닐다 장끼와 까투리의 다정함에 미소를 머금기도하고, 또 비탈진 둑길에서는 운좋게 달래 한움큼을 캐내는가 하면, 절근처에서는 머위 한바구니를 채우게 되니 절로 흥이 나지 뭔가. "
입안으로 침이 하나가득입니다. 그렇다면 성공한거 맞지요. 부지런하고 알찬 선생님 모습을 글속에서 대하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맛있는 사월을 더 아름답게 내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쑥개떡이 더 맛나게 느껴집니다 입안에 군침이 돌고 지금의 그 어떤것보다도 맛나는것인걸 아는사람은 잘알겁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듯~~~~
쑥을 뜯어본지가 얼마 인지요... 무에그리 부산하게 사느라 ... 여유있는 봄을 즐기시는 선생님을 칭찬 합니다. 그리고 쑥향이 솔솔나는 맛깔스러운글 감사 합니다.
여기까지 쑥향이 전해오는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