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있는곳(숨어우는 바람소리) 3
우리는 금새 십년지기 친구가되여
이야기를 나누던중 그는 안으로 뛰여들어가더니 몇권의 책을 가지고나왔다
월간 영문잡지인데 거기에 소개된 자기의 작품을 해설해주는 것이였다
한국화나 풍경화가아니라 나에게는 알 수 없는 페인팅 추상화이다
이여자는 상당한 지적인 인격과 교양을 지닌 여자라생각이들었다
그는 여기서 번돈으로 연말에는 유럽을 여행하는데
그곳에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당당히 활동하면서 생활에는 지장없고
자긍심도 대단히 여기며 산단다
자기도 연필로 인물화를 즉석에서 그려주면서 알바를 하여 용돈을 벌고
먹거리는 집집마다 따뜻하고 신선한 음식을 대문밖에 내어놓으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은 유스호텔이나 동양사람이라고 초청해주는 집도있어서 아무런 불편이없다 다만 언어의 벽이 심하다
두어달 여행으로 보내고는 다시 간병일은 꼭 이병원에서만한다
선생님 저 옥상에있습니다
예 천천히 옥상으로 가겠습니다
병원 옥상에는 노원의 번화가와 중랑천과 당현천이 비온끝이라 수량이 많고
옥상 바닥은 뜨겁지만 수세미 넝클 아취에 들어서면 좀은 시원하다
탁자에서 캔 콜라를 들고는 수다를 떤다
환자분은 어떻게 했어요
방금 샤워시키고 잠이들었어요 짬시간을 낼수있어요
인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이룬 사람은 누구라 생각이들어요
그네는 눈망울을 살짝들어 높은 하늘의 흰구름을 보더니
인류의 역사는 귀한사랑, 짝사랑,아주 무서운 질투의 사랑등 역사는
사랑으로 이어져왔지요
나는 조선시대의 선조때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을 동서양의 사랑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영감을 가장 사랑했는데요
그것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많은 하객앞에서 주례선생님앞에서 사랑하겠노라 약속을 했잖아요
영감님은 20여년전에 船主로서 큰 사고를 당해서 번민하다 병을 얻어서
돌아가시어 아이들 교육문제로 서울 도봉구에서 정착하였는데
지금은 집값이 6억정도 가는데 아들 둘이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가정을 꾸리지않아서 두 아들과 함께 사는데 이제는 서로가 불편합니다
해서 집을 팔아서 셋이서 똑같이 나누어서 각자 살자고 말하였습니다
어느새 가정문제 까지 속내를 말해주어서 고맙기만하였다
철딱서니없는 아이들이 갑자기 돈이 생기면 헛되이 낭비할수도있으니
절대로 그리하지말고 녀석들보고 독립하라고 내 쫓아내세요
내가 퇴원하던 날 그네는 고운 한복에 화장까지하고서 엘리베이터 앞까지와서는 안녕히 가십시요하고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지금은 병원에서 있었던 한삭의 만남은 한여름밤 꿈인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