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티아고라!
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의 이름을 딴 것 같다.
섬티아고라 부르는 신안군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을 다녀왔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을 딴 작고 앙증맞은 교회 12개가 네 섬에 작품으로 나뉘어 있어
그곳을 한 곳 한 곳 돌아보고 순례하는 섬티아고.
우리는 아침에 아주 작은 섬인 줄 알고 걸을 계획이었는데
세 곳도 걷기 힘들다고 알려준 퍼플섬 안내원의 말에 따라
되는대로 가자고 마음을 내려놓고 송도항에 차를 가지고 가서 주차하고
배를 타려고 했더니
안내원이 차를 가지고 이배를 타면 아마 다 돌아볼 수 있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뛰어가서 다시 차를 타고 40분 가량을 갔더니 병풍도 선착장이었다.
9시 배를 타고 병풍도로 향했는데
서해안의 탁한 바닷물을 가르고 차까지 실은 배가 빠르게 도착했다.
병풍도 섬 여기저기엔 맨드라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집에도 담벼락에도 ......
병풍도 바닷길을 건너니 바로 대기점도 입구의 안드레아의 집이 보였다.
함께 배를 탄 수녀님과 신자 일행과 순례의 동선이 겹쳤다.
그분들은 내가 배표를 끊을 때 물때를 알아보며
신분증을 바로 제시하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신분증 먼저 내욧!"
"아 죄송합니다. "
뱃시간과 코스를 섬청년에게 묻느라 지체했다하여 저리 못되게 굴다니!
그러나 여행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진심어린 사과를 했는데
순례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틱틱거렸다.
중간에
"우리 순례길 망치지 말자."
하고 인사를 하며 말을 걸자 다른 분이 대답을 했다.
그러자
"무슨 대답을 해?"
하고 또 쏴 붙인다.
'마음 착한 내가 참는다. 끙~'
"저런 마음보로 수녀님까지 모시고 이길을 오다니!'
동반하신 수녀님마저 한심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그들을 피해 순례길을 거꾸로 돌았다.
예수님 열두 제자의 이름으로 지어진 작은 예배당.
갈 때는 가는 곳마다 주모송을 바치리라 작정했었는데
섬은 언제나 물이 들어와 고립감에 대한 공포를 동반하는 관계로
서둘러 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그 낭만적인 섬순례를 마쳤다.
나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기록을 남겼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바르톨로메오, 타태오, 토마스,
마태오, 필립보, 유다 이스가리옷,시몬, 요한의 집들이
섬 네 개에 나뉘어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 사랑의 집이라는 시몬을 상징한 예배당 건너에 딴섬이라는 섬 안에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 먹은 가롯 유다의 집이 있었다.
당시에도 죄책감과 절망감에 목을 메고 죽었는데.....
뭔가 짠한 느낌이 든다.
살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할 때마다
유다처럼 어리석은 일이 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주시길 성령께 기도해 본다.
집마다 작은 작품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집들은 각기 우리가 묵상할 주제를 하나씩 딴 다른 이름이 있었다.
건강, 생각하는 집, 생명평화, 감사, 행복, 그리움,인연, 기쁨, 칭찬, 소원, 사랑, 지혜라고.
지도 송도항에서 9시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열두 곳의 예배당을 돌아보고나니
오후 2시 25분에 소악도선착장에서 목포 송공항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했다.
지친 우리는 차나 한잔 할까하고 머물 곳을 찾는데
소악도 선착장 입구에 "쉬랑께"라는 식당이 있었다.
잘 가꾼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무료로 밥을 제공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기부를 하라는 곳이었다.
젊은 청년이 주인인 듯 커피도 맛있게 곁들여 주는 그야말로 전라도 말인
"순례 다 마쳤다면 쉬랑께!"
라고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인심이었다.
맛있는 마들렌을 곁들여 아메리카노까지 곁들여 먹고 목포로 나왔다.
이제 세 시.
서둘러 목포 산정동성당 성지에 갔다.
우리나라에 레지오가 처음 들어온 곳이고
기적의 패라는 성모님이 계시는 그곳.
성체조배를 하기로 하고 성당에 들어가며
"고해성사를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혼잣말을 하는 순간
오후 2~4시까지 상설고해소가 있다고 일행이 손짓을 했다.
서둘러 고해소에 들어가 성사를 보니
고해신부님께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러니 됐습니다. "
하고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주님과 신부님의 위로를 받고 우리는 행복한 마음으로
두 번째 밤을 위해 예약해 둔 변산으로 출발했다.
변산에 해질 녘에 도착한 우리는
백합탕을 시켜 놓고 마주앉아 성사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이번 여행의 충만함을 이구동성으로 공감했다.
콘도에 들어가 씻고 나니
영육간의 깨끗함을 선물하고
오늘 하루의 여행을 주관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깊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