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방문
가인 이은미
맑은 아침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넓은 거실에 햇살이 활짝 퍼져 들어온다. 삼삼오오 놓여 있는 화분의 식물들이 화들짝 몸을 곧추 세우며 햇살을 반겨 생기 있는 연초록빛을 발한다.
“라라랄라 랄라 ~” 핸드폰의 멜로디 벨이 울렸다. ○○오빠라고 번호가 뜬다.
“응 오빠, 그 동안 별일 없이 잘 지냈어?”
“그래, 너도 잘 지냈냐? 오늘 와서 김장 좀 담아 놓은 것 가지고 가라고.”
“알았어 오빠, 또 올해도 고맙게 마음 써 주시네. 바로 출발해서 갈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읍내의 군청을 출퇴근 하면서도 그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오빠는 해마다 어김없이 김장철이 되면 내게 김장을 가지고 가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사실 김장은 보건진료소를 다니는 우리 올케 언니가 바쁜 시간을 내어 실제 담그는 것이었다. 오빠는 그 올케 옆에서 올해도 변함없이 내 또래보다 일찍 친정 엄마를 여윈 늦둥이 여동생을 생각하여 올케가 김장을 대신 해주길 바라며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보조역할만 충실히 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 올케 언니도 대단히 고맙다. 직장 생활하며 우리 김장 장만 일이 부담도 되고 싫증도 나 부아가 날만도 한데 몇 해째 변함없이 정갈하고 개운한 김장 김치를 담아 준다.
남편과 나는 백화점과 물류센터를 오가며 부랴부랴 오빠와 올케 언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였다. 바쁜 직장생활로 개미처럼 살아가는 맞벌이 우리들을 생각해 주는 처남댁의 그 마음들을 헤아리며 마음이 넓은 남편은 아낌없이 카드결재기에 서명을 하였다. 바리바리 선물 꾸러미를 차 트렁크에 싣고 고향을 향해 질주하였다. 문의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를 달려 30여 분 왔을까? 국도로 이어지는 시골 마을을 지나 고향으로 접어들었다. 물장구 치고 얼음 배를 띄우며 놀던 긴 냇가의 뚝과 수확을 끝내 볏짚을 여기 저기 말아 둔 커다란 흰 개미 알들의 드넓은 논이 펼쳐졌다. 그리고 우뚝 솟은 하얀 교회 종탑과 냇가 건너편 마을을 연결하는 긴 교량의 ‘한다리’도 눈에 들어왔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시간을 보니 점심때였다. 순간 고향의 별미인 생선 국수가 먹고 싶었다. 생선 국수가 원조인 식당은 언제나 고향 방문객과 각지에서 몰려드는 외지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붕은 나즈막하고 살던 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운영하는 그 집은 고향 가옥의 푸근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여 국수집에 들어섰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고 후배가 “응 언니네!”하며 반갑게 눈웃음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손님이 많아 대기해야 한다며 전화를 줄 테니 잠깐 밖에 나가 있다 오라 한다.
남편과 나는 생선국수 집 바로 뒤편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1970년대에 내가 다닌 초등학교다. 내가 다닐 때 보다는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되었고 조경도 제법 멋지게 잘 가꾸어져 있다. 뒤편으로는 수사들이 머물렀을 법한 성당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떠들썩한 아이들이 없는 휴일의 학교는 황량한 기운이 감돈다. 그나마 몇몇 아이들이라도 운동장에서 축구라도 하고 있으면 덜 쓸쓸하련만 그런 아이들도 없다. 축구 골대 주변에 공 하나가 뒹굴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은 잽싸게 뛰어가 유년시절을 떠올리듯 푸른 창공을 향해 힘껏 공을 차 날렸다. 공이 떠 오른 하늘은 찬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더 없이 맑고 푸르렀다.
운동장 한켠으로 작은 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지금은 ‘향토사료관’이라고 자그마한 목조 간판이 붙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고향 출신 미국의 한 실업가가 기증한 도서관이라며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책을 많이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훈화하셨던 교장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예쁜 사서선생님을 도우며 그 당시 그렇게 크게 보였던 도서관의 도서 부원이 되어 열심히 그야말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 책장마다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온갖 종류의 새 책들을 섭렵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꿈을 키워 갔던 소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되어 멋진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소공녀’와 ‘빨강 머리 앤’이 되어서는 인생의 고난도 꿋꿋하게 헤쳐 나갔다.
돌이켜 보면 이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문학을 접하고 다양한 책을 읽은 덕분에 그 지리하고 어려웠던 박사학위도 끝내 취득할 수 있게 되고 글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바탕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음을 인지하고 나니 그 작고 다소 낡아진 도서관이, 그리고 그 도서관을 기증해주신 실업가 한 분이 한없이 고맙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자리가 났으니 어서 식당으로 오라 한다. 남편과 나는 방 한곳으로 안내되어 생선국수 두 그릇과 ‘도리뱅뱅’을 주문했다. 까맣고 작은 프라이팬에 ‘도리뱅뱅’이 먼저 나왔다. 빙어나 피래미의 작은 물고기들에 고추장이 발려지고 그 위에 채 썬 깻잎이 살짝 뿌려져 있다. 깻잎과 어우러져 뼈까지 곱게 씹히는 고소한 감칠맛이 제격이다. 이어 생선을 갈아 넣은 국물에 고추장을 풀어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소면을 끓여낸 생선국수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구수한 냄새와 함께 나왔다. 물고기들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정말 얼큰하고 구수하게 잘 먹었다.
오빠가 살고 있는 고향 집 진입로에 들어섰다. 우리들의 인기척을 느낀 서너 마리 개들이 여기저기서 짖고 난리가 났다. 이내 50대 후반에 접어든 오빠가 커다란 대문을 열고 나온다. 잔디가 깔려지고 검정회색 돌판이 놓여진 넓은 마당과 잇닿은 드넓은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 텃밭의 청보리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던 어린 송아지와 농사 망칠세라 작대기를 들고 그 송아지를 열심히 쫓아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오빠만이 우리들을 반긴다. 올케 언니는 인근 동네의 어느 잔치 집에 꼭 가봐야 해서 집에 없다 한다.
오빠는 차를 창고 가까이 대게하고는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손수 농사지었다는 쌀을 남편과 힘을 합쳐 실어준다. 그리고 통통하고 잘 익어 말간 주홍빛을 내는 홍시를 정성스럽게 손수 담은 상자도 건네준다. 또 김장은 여기 있다며 함께 싣고 올케가 담아 놓고 갔다는 대파, 무, 된장도 실어준다. 우리도 질세라 도시에서 사 갖고 온 선물꾸러미를 방안으로 주방으로 옮겨다 놓는다. 그리고 차와 과일을 먹으며 이런 저런 근황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을 보고 일어선다.
묵직해진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고향의 푸근함과 평화를 마음에 담고 돌아온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 대신 고향집을 지키며 동생들에 대한 사랑을 퍼 올리고 베푸는 초로의 오빠 내외를 고마움과 애잔함으로 가슴에 품는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첫댓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읍내의 군청을 출퇴근 하면서도 그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오빠는 해마다 어김없이 김장철이 되면 내게 김장을 가지고 가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사실 김장은 보건진료소를 다니는 우리 올케 언니가 바쁜 시간을 내어 실제 담그는 것이었다. 오빠는 그 올케 옆에서 올해도 변함없이 ..."
" 오빠가 살고 있는 고향 집 진입로에 들어섰다. 우리들의 인기척을 느낀 서너 마리 개들이 여기저기서 짖고 난리가 났다. 이내 50대 후반에 접어든 오빠가 커다란 대문을 열고 나온다. 잔디가 깔려지고 검정회색 돌판이 놓여진 넓은 마당과 잇닿은 드넓은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 텃밭의 청보리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던 어린 송아지와 농사 망칠세라 작대기를 들고 그 송아지를 열심히 쫓아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오빠만이 우리들을 반긴다. "
교수님의 지도 말씀 감사히 생각하며 더 좋은 글이 되도록 수정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 아주 어릴 때 고향을 떠나와서 고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 살짝 부럽기도 하네요.^^
따뜻한 관심으로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사신 곳을 고향삼아 많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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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오빠만이 우리들을 반긴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건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제 글은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텃밭의 청보리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던 어린 송아지와 농사 망칠세라 작대기를 들고
그 송아지를 열심히 쫓아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는 오빠만이 우리들을 반긴다...'
'고향에 다녀오셔서 쓰신 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선생님.
관심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업시간에 발표한 후, 합평을 받고 <평생공부방>에 다시 수정하여<고향집 오빠와 언니>라는 제목으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