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2023.12.31./ 성탄 후 제1주일, 송년주일)
하루와 평생, 은총으로
전도서 3:1-13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성탄 후 첫째 주일이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는 송년주일이다.
이제 12시간 반 후면 새해가 온다. 2023년을 보내는 지금 여러분의 심경은 어떠한가? 아마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일 것이다. 한 마디로 ‘시원섭섭’이 아닐까?
새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두 개의 시선은 과거에 대한 미련과 새해에 대한 기대이다. 그래서 1월의 이름은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는 뜻인 ‘야누스’에서 왔다.
야누스는 로마신화에서 문을 지키는 신의 이름이다. 야누스 신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문의 안과 밖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야누스라고 하면 두 얼굴의 사람을 의미한다. 야누스 신전의 문이 열려있을 때는 전쟁을, 닫혀 있을 때는 평화를 상징한다. 영어로 ‘재뉴어리’는 야누스에서 온 말이다.
누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시작하며 두 가지 마음이 들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시작해 보자는 ‘날개 같은’ 마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떻게 한 해를 살아야 하나 ‘멍에 같은’ 마음도 있다.
이 시간은 한 해를 결산하는 예배이다. 무엇으로 결산해야 할까?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알베르 까뮈).
1)
우리 그리스도인도 두 개의 눈을 지닌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으로, 또 하나는 세상과 마주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전도서는 두 가지 마음을 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혜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결론적으로 내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루와 평생, 은총으로’ 살라는 것이다. ‘은총의 힘’에 의지하면 인생은 즐겁게 살만하다.
전도서는 선언한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1)
전도서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두 28가지의 때를 강조하고 있다. 이 본문을 반복해 낭독해 보라. 처음에는 비감해진다. 몇 번 되풀이 읽으면 나중에는 현실을 인정한다.
출생과 죽음/ 파종과 수확/ 슬픔과 기쁨/ 획득과 상실/ 침묵과 외침/ 그리고 전쟁과 평화!
어쩌면 아름다운 조각보처럼 유기적인 조화마저 느끼게 한다. 이 모든 일에는 모두 다 그때가 있다. 이것은 만인의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그때 닥칠 때마다, 언제나 ‘코앞의 일’에 매몰되어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 채, 진통을 겪는다.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한 마디로 유한하다. 인생에 대해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의 예상은 항상 빗나간다. 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를 잘해, 적어도 백수(白壽)는 할 거라는 친구가 어제 죽었다는 부고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마 하나님은 인생에 대해 누구에게도 해답을 가르쳐 주시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만화경 같다고 표현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이것이다. 비록 매일매일 우리에게 닥치는 일상일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느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늘 겸허하게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나는 비록 세월은 쏜살같이 빨리 날아가도 그 방향과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님의 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전도서는 인생을 비관한 책이 아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4)다. 우리는 현실에 민감해야 하지만, 인생을 더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말한다. 그러기에 희망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라고 충고한다.
행여 내 인생이 겪는 고통이나, 우리 사회가 겪는 진통은 헐 때와 세울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데서 온 것이다.
전도서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라.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3),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6).
헐 것과 세울 것,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한 해 계획을 세울 때에 단절할 것과 계승할 것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습관은 자주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매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2)
사람은 자기 인생의 전체적인 상황을 볼 수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생을 계획성 있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책이 바로 전도서이다.
성경은 나에게 매일 다가오는 삶을 최선을 다하라고 일깨운다. 하나님이 배후에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인생은 고생스럽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진 결과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10).
자기가 하는 일이 늘 즐겁기만 한 그런 사람은 없다. 일상의 과제는 얼마나 고달픈가? 돈 버는 일이든, 식구에 관한 일이든, 집안일이든 끝이 없다. 충분한 보상도 없다.
사람들은 경쟁과 비교 의식 속에서 늘 주눅이 든다. 세상에 과연 누가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인가? 그나마 성공한 그 몇몇은 과연 행복한가?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가 너무 고달파서 산다는 것이 죽음과 다름없다는 사람도 있다.
마르셀 에메가 쓴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다. 날짜를 쿠폰으로 거래하는 나라가 있어, 남는 시간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가난한 사람들은 그 시간을 부자에게 팔아넘긴다. 날마다 겪는 고달픔도 덜고, 돈도 벌고 나쁘지 않다. 만약 오늘에 10일을 팔았다면 그는 오늘 잠들고 1월 10일에 깨어난다. 과연 일석이조인가?
혹여 시간은 남아도는데, 쓸 데가 마땅치 않은 사람이 있는가? 빈둥거리지 말고, 킬링타임을 찾지 말고, 시간의 장터에 내다 팔아라. 인터넷을 검색하면 아마 조만간 구글이나 테슬라, 혹은 쿠팡에서 그런 상품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송년은 참 의미있다. 내 시간을 깨소금처럼, 참기름처럼 아껴 쓴 사람은 누구나 송구영신의 주인공이다. 새해를 맞을 당당한 자격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11).
여기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은 너무 어려운 수학문제여서 결국 해답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혹은 인생은 수수께끼 같다는 의미도 있다.
전도서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고,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면 삶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하라.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라.
젊은 사람들과 나이든 사람들 중 누가 더 희망에 대해 자주 말할까?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표현한다고 보고하였다. 분노, 좌절, 슬픔과 같은 단어들은 젊은이들의 언어라는 것이다.
언어습관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나’ 중심의 단어는 줄어들고, ‘우리’와 같은 공동체 중심 단어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동사의 시제 사용도 비교된다고 한다. 동사의 과거형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중년은 현재형을, 노년으로 갈수록 미래형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노인들이 옛날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우리의 예상과 달리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한다.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페너베이커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지혜’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신앙적이 되는 것 같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다. 비록 우리에게 천기를 누설할만한 지혜와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맡겨주셨다.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하는 가운데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고통 중에도 기도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능력이다.
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학적 가치는 재미와 의미라고 한다.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면, 그는 인생을 당당하게 산다. 비록 그 삶의 모양은 사소할지라도 내가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존감과 자부심이 있다.
과연 나는 어떤가? 전도서는 그런 점에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지니라고 한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12-13).
감사하는 삶이 행복의 비결이다.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물의 의미이다. 유대교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올해도 1년이란 내 생애의 길을 걸었다. 0.1%의 사람에게나, 99.9%의 사람들에게나 누구에게나 그 시간은 평등하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이미 있는 것을 사랑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잠시 어려움이 있어도 힘을 내라.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드는 법이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이렇게 기도할 일이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스럽게 그 일을 마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하루가 저무는 때에 바라는 대가를 받게 해 주십시오”(살로모 리스코브).
송구영신의 시간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 오는 기회 덕분이다. 물론 ‘다시’는 무한히 반복되는 인생의 도돌이표가 아니다. 새해는 해마다 반복하지만, 내가 변하지 않으면 새로움은 없다.
시간의 경계선이 가까워진다. 이제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내일부터 우리는 한동안 ‘작심삼일’을 토로하며, 부지런히 시간을 탐색하며 지낼 것이다. 그 작심삼일 가운데 어떤 희망과 지혜를 담고 있는지, 오늘 부지런히 헤아리기 바란다.
그리하여 ‘하루와 평생, 은총으로’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올해, 참 수고가 많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사모하는 여러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