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은 일본에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오사카에 있는 고미술상에서 구입하여 새로 표구하였는데, 이때 오세창이 표제와 발문을 썼다고 한다. 1970년 12월 30일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화첩에는 단오풍정 등 30점이 실려 있다.
조선후기의 풍속화는 주로 화원들이 중심으로 활발하게 그려졌다. 특히 인간이 그림의 주체가 되어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진 인물중심 풍속화는 사대부인 조영석을 중심으로 화원인 단원 김홍도 (1745-1806), 혜원 신윤복(1758-1814?), 긍재 김득신(1754-1822)이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김홍도는 조선의 서민층의 소탈한 생활모습을 아주 다양하게 많이 그렸다. 서민층의 풍속을 해학과 풍자를 곁들여 그려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소질이 있다. 그의 필법은 주제로 등장하는 모습에 집중할수 있도록 최소화된 색채 이용과 주재을 앞세우고 배경을 삭제하는 여백의 미를 이용했다.
반면에 혜원의 경우는 남녀간의 정취와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사용하여 그의 풍속화들은 매우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인물들의 몸 동작과 표정을 비롯하여 각종 배경을 뛰어난 소묘력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그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몸짓과 표정은 그 속내를 훤히 드려다 볼 수 있도록 섬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했다.
단오풍정(端午風情: 단오날의 운치 있는 정경)

신윤복의 그림 중 가장 빼어난 수작 중 하나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림
위 그림에는 목욕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네 타는 여자, 타래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질하는 여자, 그리고 여러 자세로 몸을 씻는 여자 등 8명의 여인네가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며 관음의 황홀경에 빠져있는 사미승도 재미있지만 관심을 갖고 봐야 할 장면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여인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아낙네이다.
치마를 걷어올리고 목욕을 시작하려는 여인이야 젖가슴이 드러나겠지만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걸어오는 여인네도 젖가슴이 드러나 있다.
이 아낙네의 신분이 목욕하며 호사를 부리는 주인 마나님의 시중을 드는 비녀(婢女)인지, 장사꾼인지 알 수 없지만 먹을 음식과 호리병까지 챙긴 이 아낙네가 목욕하는 젊은 여인 못지않게 풍만한 젖가슴이 드러나 있다.
한국 회화사에 드물게 여인의 속살이 등장하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그림을 보더라도 18세기 말, 이 무렵까지 여자의 젖은 2세를 양육하기 위한 신체의 일부 기관일 뿐 성애의 상징 유방으로 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청금상련(廳琴賞蓮) 또는 연당야유(蓮塘野遊)

후원에 연당이 있고 고목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며 잔디가 가득 깔린 큰 저택을 가진 주인이, 연꽃이 필 무렵에 맘에 맞는 친구들을 청하여 연꽃 감상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모양이다. 연당을 거치는 선들바람이 청향(淸香)을 실어오고,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이 이 위에 어리는데, 의관을 파탈할 정도로 자유롭게 연꽃과 여인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격의 없이 놀 수 있는 사이라면 어지간히 무던한 관계일 것이고, 의복 차림으로 보면 벌써
당상(堂上)의 품계를 넘어 있어서 나이도 그리 젊지는 않을 듯하니 정말 허물없는 오랜 친구들인 모양이다.
모두들 준수하게 빼어났지만 차림새가 빈틈없이 세련되어 귀족의 몸에 밴 기품을 대하는 듯하다.
이는 화원이던 혜원이 궁정 주변에서 이들 귀족 생활을 남김없이 눈에 익히고 살아 온 때문에, 그 진면목을 이와 같이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리마를 쓴 기생의 모습에서나 갓끈을 귀밑에 잡아 맨 귀인의 관(冠)차림에서 당시의 관식(冠飾)을 알 수 있으며, 운치있게 둘러진 석축과 고목의 표현에서는 왕조시대의 격조 높은 조원(造園) 환경을 실감할 수 있다.
정변야화(井邊夜話)

밤에 아낙네 둘이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여자는 두레박으로 물을 푸고 있고, 한 여자는
머리 위에 똬리를 올려 놓은 것을 봐서는 이제 물동이를 이고 떠날 참인 것 같다. 일각문 위로 달이 뜬 것을 보면 밤중이다. 밤에 물을 길고 나른 것을 봐선 두 여자는 양반집 부녀자가 아니다.
그런데 왠 양반 한분이 담너머에서 뒷짐을 지고는 이 여인네들을 음침하게 흠쳐보고 있다. 붉은 봄꽃이 가지마다 잔득 피어있고 만월이 떠 있어 춘정이 가득 넘치는 봄밤이다. 그런데 서있는 여인을 자세히 보면 앉아 있는 여인에게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선듯 자리를 못 뜨고 물동이는 멀리 둔채 손에 턱을 얹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민하는 모양인 것 같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봐서는 이 흰 민짜저고리 복색의 여인은 이집 양반네 여종인 듯 하다. 혹시 이 젊은 여인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숨어서 기다리는 상황이 아닌지.
소년전홍(少年剪紅)

화제를 보면 密葉濃堆綠 / 繁枝碎剪紅 이라 적혀 있다. '만춘이 되어 녹음이 짙어 지니 번성한 가지에서 붉은 꽃이 떨어지네' 전면을 장식한 꽃 나무는 배롱나무로 흔히 나무백일홍이라는 불리우는 꽃나무다. 그런데
붉은 꽃들이 부셔지고 잘리운다니 무슨 말일까.
화제로 '소년이 붉은 꽃을 자른다'로 이때 꽃은 당연히 젊은 여자다. 그림을 보면 상투를 틀고 사방관을 쓴 젊은 남자가 완력으로 여자의 손목을 쥐고는 당기고 있고, 짚신을 신고 있으며 고름만 자주색인 저고리를 입고 있는 여인은 뿌리치지 못하고 엉덩이를 잔뜩 뒤로 빼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괴석이 있고 꽃나무가 있으며 흙담이 둘러져있는 것을 보면 어느 양반집 후원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 속의 괴석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크다. 더해서 괴석은 땅에 뿌리를 박고 위로 치솟아 있다. 최대로 발기한 거시기를 닮았다. 거기다 괴석의 윗부분 몸체에 무언가 흰 액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나게 그려져 있다.
이 젊은 여인의 행색을 보면 분명히 이 양반댁의 계집종이 분명하다. 정리해 보면, 봄날 행세깨나 하는 양반가의 젊은 서방님이 후원을 거닐다 춘의에 만취한 상태에서 저고리로 가슴을 다 가리지 못한 채 맨살이 드러나 있는 여종을 보자 부기를 못 이겨 범하려고 하는 장면인 것 같다.
그래도 정변야화는 채면치례를 하건만 여기 갓 장가든 젊은 양반은 젊은 종년의 의사에 반하며 반상을 이용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