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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색(秋月色)
최 찬 식
시름없이 오던 가을비가 그치고 슬슬 부는 서풍이 쌓인 구름을 쓸어 보내더니, 오리알 빛 같은 하늘에 티끌 한 점 없어지고 교교한 추월색이 천지에 가득하니, 이때는 사람 사람마다 공기 신선한 곳에 한번 산보할 생각이 도저히 나겠더라.
밝고 밝은 그 달빛에 동경 상야공원이 일폭 월세계(月世界)를 이루었으니, 높고 낮은 누대는 금벽이 찬란하며, 꽃 그림자 대 그늘은 서로 얽혀 바다 같고, 풀끝에 찬 이슬은 낱낱이 반짝거려 아름다운 야경이 그림같이 영롱한데, 쾌락하게 노래 부르고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은 모두 달구경 하는 사람이더니,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다 헤져 가고 적적한 공원에 월색만 교결한데, 그 월색 안고 불인지 관월교 석난간에 의지하여 오뚝 섰는 사람은 일개 청년 여학생이더라.
그 여학생은 나이 십팔구 세쯤 된 듯하며, 신선한 조화로 머리를 장식하고, 자줏빛 하카마를 단정하게 입었는데, 그 온아한 태도가 어느 모로 뜯어보든지 천생 귀인의 집 규중에서 고이 기른 작은아씨더라.
그 여학생의 심중에는 무슨 생각이 그리 첩첩한지 힘없이 서서 달빛만 바라보는데, 그 달 정신을 뽑아다가 그 여학생의 자색을 자랑시키려고 한 듯이 희고 흰 얼굴에 밝고 밝은 광선이 비취어 그 어여쁜 용모를 이루 형용해 말하기 어려우니 누구든지 한 번 보고 또 한 번 다시 보지 아니치 못하겠더라.
그 공원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 여학생 한 사람뿐인 듯하더니, 어떤 하이칼라적 소년이 술이 반쯤 취하여 노래를 부르고 불인지 옆으로 내려오는데, 파나마모자를 푹 숙여 쓰고, 금테 안경은 코허리에 걸고, 양복 앞섶 떡 갈라 붙인 속으로 축 늘어진 시곗줄은 월광에 태워 반짝반짝하며, 바른손에는 반쯤 탄 여송연을 손가락에 감아쥐고, 읜손으로 단장을 들어 향하는 길을 지점하고
회똑회똑 내려오는 모양이, 애먼 부형의 쟤산도 꽤 없애보고, 남의 집 새악시도 무던히 버려주었겠더라.
그 소년이 이 모양으로 내려오다가 관월교 가에 홀로 섰는 여학생을 보더니 모자를 벗어 들고 반갑게 인사한다.
(소년) “아,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그사이 귀체 건강하시오니까?”
(여학생) “예, 기운 어떱시오?”
(소년) “요사이는 어찌 그리 한 번도 만나 뵐 수 없습니까?”
(여학생) “근일에 몸이 좀 불편해서 아무 데도 못 갔습니다.”
(소년) “……아, 어쩐지 일요 강습회에도 한번 아니 오시기에 무슨 사고가 계신가 하고 매우 궁금히 여기던 차이올시다. 그래, 지금은 쾌차하시오니까?”
(여학생) “조금 낫습니다.”
(소년) “나도 근일에 몸이 대단히 곤하여 오늘도 종일 누웠다가 하도 울적하기에 신선한 공기나 좀 쐬어볼까 하고 나왔더니, 비 끝에 달빛이야 참 좋습니다. 그러나 추월색은 영인초창이라더니,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정히 상합니다그려…… 허…… 허…… 허.”
(여학생) “…….”
(소년) “그러나 산본 노파 언제 만나 보셨습니까?”
(여학생) “산본 노파가 누구오니까?”
(소년) “아따, 우리 주인 노파 말씀이오.'’
(여학생) “글쎄요, 언제 만나 보았던지요?”
여학생의 대답이 그치자, 소년이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아니 하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벙긋하다가 못 하더니 여학생의 얼굴을 다시 한 번 건너다보면서,
(소년) “그 노파에게 무슨 말씀 들어 계시지요?”
여학생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말 없이 불쑥 돌아서며 이슬에 젖은 국화 가지를 잡고 맑은 향기를 두어 번 맡을 뿐인데, 구름 같은 살쩍과 옥 같은 반뺨이 모두 소년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소년은 그렇게 하기 어려운 말을 한마디 간신히 하였건마는 여학생의 대답은 없으매 물끄러미 한참 보다가 말 한마디를 또 꺼내더라.
(소년) “그 노파에게도 응당 자세히 들어 계시겠지마는, 한번 조용히 만나면 할 말씀이 무한히 많던 차올시다.”
그 소년은 여학생을 만나 인사하고 수작 붙이는 모양이 매우 숙친도 한 듯이 무슨 긴절한 의논도 있는 듯이 노파를 얹어가며 말하는데, 그 말 속에 무슨 은근한 말이 또 들었는지 여학생은 그 말대답 또 아니 하고 먼 산을 한 번 바라보더니,
“아마 야심한 듯하니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그 소년의 마음에는 어떠한 욕망이 있는지 여학생의 대답하는 양을 들어보려고 그 말끝을 꺼낸 듯한데, 여학생은 냉연히 사절하는 모양이니, 소년도 그 눈치를 알았을 듯하건마는 무슨 생각으로 내려가는 여학생을 굳이 따라가며 이 말 저 말 또다시 한다.
(소년) “괴로운 비가 개이더니 달빛이야 참 좋습니다. 공원이란 곳은 원래 풍경이 좋은 곳이지마는, 저 달빛이 몇 배이나 공원의 생색을 더 냅니다그려. 인간의 이별하고 만나는 인연은 실로 부평 같은 일이지마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좋은 때와 이렇게 좋은 곳에서 기약 없이 만나기는 참 뜻밖에 기회요그려……. 여보시오, 조금도 부끄러우실 것 없소. 서양 사람들은 신랑 신부가 직접으로 결혼한답디다. 우리도 소개니 중매니 할 것 없이 직접으로 의논함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학생) “다따가 그게 무슨 말씀이오?”
(소년) “이렇게 생시치미 뗄 것 있소? 아까도 말씀하였거니와 왜, 노파를 소개하여 의논하던 터가 아니오니까?”
(여학생) “기다랗게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노파든지 누구든지 나는 이왕이 결심한 바 있다고 말한 이상에 당신은 번거히 다시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일로나 교제하실 것이요, 그 말씀은 영구히 단념하시오.”
그 여학생과 소년의 수작이 이왕도 많이 언론 되던 일인 듯한데, 여학생은 이처럼 거절하니 소년이 사람스러운 터 같으면 이렇게 거절당할 듯한 말을 당초에 내지 아니하였을 터이요, 또 거절을 당하였으면 무안하여도 저는 저대로 가서 달리나 운동하여 볼 것이언마는, 또 무슨 생각이 그렇게 민첩하게 새로 생겼던지, 가장 정다운 체하고 여학생의 옆으로 바싹바싹 다가서더니,
(소년) “당신의 결심한 바는 내가 알려고 할 것 없거니와 저기 저것 좀 보시오. 어제같이 작작하던 도화가 어느 겨를에 다 날아가고, 벌써 가을바람에 단풍이 들었소그려. 여보, 우리 인생도 저와 같이 오늘 청춘이 내일 백발을 정한 일이 아니오? 이처럼 무정한 세월이 살같이 빠른 가운데 손같이 잠깐 다녀가는 우리는 이 한세상을 이렇게도 지내고 저렇게도 지내봅시다그려, 허…… 허…… 허…… 허…….”
소년이 그렇게 공경하던 예모가 다 어디로 가고 말 그치자 선웃음 치며 여학생의 옥 같은 손목을 턱 잡으니, 여학생은 기가 막혀서,
(여학생) “이것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점잖은 이가 남녀의 예우를 생각지 아니하고 이런 야만의 행위를 누구에게 하시오?”
하고 손목을 뿌리치는데,
(소년) “이렇게 큰 변 될 것 무엇 있소? 야만이 커진 문명국 사람은 악수례만 잘들 하데……. 이렇게 접문례도 잘들 하고…… 하…… 하…….”
하면서 한층 더해서 접문례를 하려고 달려드니, 여학생은 호젓한 곳에서 불의의 변괴를 당하매 분한 마음이 탱중하나 소년의 패행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방비할 계책과 능력은 하나도 없고 다만 준절한 말로 달랜다.
(여학생) “여보시오, 해외에 유학도 하고 신사상도 있다는 이가 이런 금수의 행실을 행코자 하면 어찌하자는 말씀이오? 당신은 섬부짝한 학문과 우월한 재화가 국가도 빛내고 천하도 경영하실 터이거늘, 지금 일개 여자에게 악행위를 더하고자 하심은 실로 비소망어평 일이로구려. 어서 빨리 돌아가 회개하시고, 다시 법률에 저촉지 않기를 부디 주의하시오.”
(소년) “법률이니 도덕이니 그까짓 말은 다 해 쓸 데 있나? 꽃 같은 남녀가 이런 좋은 곳에서 만났다가 어찌 무료히 그저 헤어져 갈 수 있나…… 하…… 하…… 하·…¨ 하…….”
소년은 삼천 장 무명업화가 남아미리가 주 딘보라소 활화산 화염 치밀듯 하여, 예절이니 염치니 다 불고하고 음흉 난잡한 말을 함부로 내던지며 여학생의 가늘고 약한 허리를 덥석 안고 나무 수풀 깊고 깊은 곳, 육모정 속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들어가니, 이때 형세가 솔개가 병아리를 찬 모양이라. 여학생은 호소할 곳도 없이 기가 막히는 경우를 만나매 악이 바짝 나서 모만사하고 젖 먹던 힘을 다 써서 항거하노라니, 두 몸이 한데 뒤틀어져서 이리로 몰리고 저리로 몰리며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서로 상지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제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화증이 나는 법이라 소년은 불같은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중, 여학생이 죽기를 한하고 방색하는 양에 화증이 왈칵 나며 화증 끝에 악심이 생겨서 왼손으로는 여학생의 젖가슴을 잔뜩 움켜잡고, 오른손으로는 양복 허리에서 단도를 빼어 들더니,
(소년) “요년아, 너 요렇게 악지 부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소위 너의 결심하였다는 것이 무슨 그리 장한 결심이냐? 너 이년, 너의 꽃다운 혼이 당장 이 칼끝에 날아갈지라도 너는 네 고집대로 부리고 장부의 가슴에 무한한 한을 맺을 터이냐?”
(여학생) “오냐, 죽고 죽고 또 죽고 만 번 죽을지라도 너같이 개 같은 놈에 게 설절은 아니하겠다!”
그 말에 소년의 악심이 더욱 심하여 말이 막 그치자 번쩍 들었던 칼을 그대로 폭 찌르는데, 별안간 한 모퉁이에서 어떤 사람이, “이놈아, 이놈아!” 소리를 지르며 급히 쫓아오는 바람에 소년은 깜짝 놀라 여학생 찌르던 칼도 미처 뽑을 새 없이 삼십육계의 줄행랑을 하고 여학생은, “에그머니!” 한마디 소리에 기절하고 땅에 넘어지니 소슬한 한풍은 나무 사이에 움직이고 참담한 월색은 서천에 기울어졌더라.
소리 지르고 오는 사람은 중산모자 쓰고 후록고투 입은 청년 신사인데, 마침 예비해두었던 것같이 달려들며 여학생의 몸에 박힌 칼을 빼어 들더니, 가만히 무슨 생각을 한참 하는 판에 행순하던 순사가 두어 마디 이상한 소리를 듣고 차츰차츰 오다가 이곳에 다다르매 꽃봉오리 같은 여학생은 몸에 피를 흘리고 땅에 누웠고, 그 옆에는 어떤 청년이 손에 단도를 들고 섰으니 그 청년은 갈데없는 살인범이라. 순사가 그 청년을 잡고 박승을 꺼내더니 다짜고짜로 청년의 손목을 척척 얽어놓고 호각을 ‘호루록 호루록’ 부니, 군도 소리가 여기서도 제걱제걱 하고 저기서도 제걱제걱 하며 경관이 네다섯 모여들어 여학생은 급히 병원으로 호송하고 그 청년은 즉시 경찰서로 압거하니, 이때 적요꾸한 빈 공원에 달 흔적만 남았더라.
그 여학생은 조선 사람이요, 이름은 이정임 (李貞姙)인데, 이시종 ○○의 딸이라.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누가 없으리오마는, 이정임의 부모 이시종 내외는 늦게 정임을 낳으매 슬하 혈육이 다만 일개 여자뿐인 고로 그 애지중지함이 남에서 특별히 귀하게 여기는 터인데, 그 이시종의 옆집에 사는 김승지 ○○는 이시종의 죽마고우일 뿐 아니라 서로 지기” 하는 친구인데, 그 김승지도 역시 늙도록 아들이 없어 슬퍼하다가 정임이 낳던 해에 관옥 같은 남자를 낳으니, 우없이 기뻐하여 이름을 영창(永昌)이라 하고, 더할 것 없이 귀하게 기르는 터이라. 이시종은 김승지를 만나면,
“자네는 저러한 아들을 두었으니 마음에 오죽 좋겠나. 나는 일개 여아나마 남달리 사랑하네.”
하며 이야기하고 서로 친자식같이 귀애하니, 그 두 집 가정에서 일지라도 서로 사랑하기를 남의 자손같이 여기지 아니하더라.
그 두 아이가 두 살 되고 세 살 되어 걸음도 배우고 말도 옮기매, 놀기도 함께 놀고 장난도 서로 하여 친형제도 같이 정다우며 쌍둥이도 같이 자라는데, 자라갈수록 더욱 심지υ가 상합하여 글도 같이 읽고, 좋은 음식을 보아도 나눠 먹으며, 영창이가 아니 가면 정임이가 가고, 정임이가 아니 가면 영창이가 와서 잠시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여 그 정분이 점점 깊어가더라.
그 두 아이가 나도 동갑이요, 얼굴도 비슷하고 정의도 한뜻 같으나, 다만 같지 아니한 것은 계집아이와 사내아이인 고로 정임의 부모는 영창이를 보면 대단히 부러워하고, 영창의 부모는 정임이를 보면 매우 탐을 내는 터인데, 정임이 일곱 살 먹던 해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이시종이 술이 얼근히 취하여 마누라를 부르고 좋은 낯으로 들어오는지라, 부인은 마루로 마주 나가며,
(부인) “어디서 저렇게 약주가 취하셨소?”
(이시종) “오늘이 명일”이 아니오? 김승지하고 술을 잔뜩 먹었소. 노래에 정붙일 것은 술밖에 없소그려……허…… 허…….”
하면서 앞서거니 뛰서거니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
(이) “마누라, 오늘 정임이 혼사를 확정하였소……. 저희끼리 정답게 노는 영창이하고…….”
(부) “그까짓 바지 안에 똥 묻은 것들을 정혼이 다 무엇이오니까, 하…… 하…….”
(이) “누가 오늘 신방을 차려주나……. 그래 두었다가 아무 때나 저희들 나 차거든 초례시키지……·. 마누라는 일상 영창이 같은 아들 하나 두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지 아니했소? 사위는 왜 아들만 못한가요……. 이애 정임아, 오늘은 영창이가 어째 아니 왔느냐?”
하는 말끝이 떨어지기 전에 영창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영창) “정임아 정임아. 우리 아버지는 부럼 많이 사 오셨단다. 부럼 깨 먹으러 우리 집으로 가자…… 어서…… 어서…….”
(이) “허…… 허…… 허, 우리 사위 오시나, 어서 들어오게. 자네 집만 부럼 사 왔다던가? 우리 집에도 이렇게 많이 사 왔다네.”
하고 벽장문을 열고 호두, 잣을 내어주며 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농지거리를 붙이며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사랑으로 나가고, 정임이와 영창이는 부럼을 까먹으며 속살거리고 이야기 하는데,
(영창) “이애 정임아, 나는 너한테로 장가가고, 너는 나한테로 시집 온다더라.”
(정임) “장가는 무엇 하는 것이요, 시집은 무엇 하는 것이냐?”
(영) “장가는 내가 너하고 절하는 것이요, 시집은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이라더라.”
(정) “이 애, 누가 그러더냐?”
(영)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너의 아버지하고 우리 아버지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셨다더라.”
(정) “이애, 나는 너의 집에 가서 살기 싫다. 네가 우리 집으로 시집오너라.”
두 아이는 밤이 ˙깊도록 이렇게 놀다가 헤져 갔는데, 그 후부터는 정임의 집에서도 영창이를 자기 사위로 알고 영창의 집에서도 정임이를 자기 며느리로 인정하여 두 집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고, 그 두 아이들도 혼인이 무엇인지 부부가 무엇인지 의미는 알지 못하나 영창은 정임에게로 장가갈 줄로 생각하고, 정임은 영창에게로 시집갈 줄 알더라.
정임과 영창이가 이처럼 정답게 지내더니, 영창이 열 살 되던 해 삼월에 김승지가 초산 군수로 서임되니 가족을 데리고 즉시 군아에 부임할 터인데, 정 임과 영창이가 서로 떠나기를 애석히 여기는 고로 이시종 집에서는 가권을 솔거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권고하나, 김승지는 가계가 원래 유족지 못한 터이라, 군수와 박봉을 가지고 식비와 교제비를 제하면 본가에 보낼 것이 남지 아니하겠으니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이 필요가 될 뿐 아니라, 설령 가사는 이시종에게 전혀 부탁하여도 무방하겠지마는, 김승지는 자기 아들 영창을 잠시라도 보지 못하면 애정을 이기지 못하여 침식이 달지 아니한 터인 고로, 부득이하여 부인과 영창을 데리고 초산으로 떠나가는데, 가는 노정은 인천으로 가서 기선을 타고 수로로 갈 작정으로 상오 구 시 남대문발 인천행 열차로 밤정할새 정임이는 남문역에 나아가서 방금 떠나는 영창의 손을 잡고 서로 친절히 전별한다.
(정) “영창아, 너하고 나하고 잠시를 떠나지 못하다가 네가 저렇게 멀리 가면 나는 놀기는 누구하고 같이 놀고 글은 누구하고 같이 읽으며, 너를 보고 싶은 생각을 어떻게 참는단 말이냐?”
(영) “나도 너를 두고 멀리 가기는 대단히 섭섭하다마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보고 싶어 하실 생각을 하면 떨어져 있을 수 없구나. 오냐, 잘 있거라. 내 쉽사리 올라오마.”
정임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그 뒷등에 ‘경성 중부 교동 339’ 라고 써서 영창이를 주며,
(정) “이것 보아라. 이것은 내 사진이요, 이 뒷등에 쓴 것은 우리 집 통호수다. 만일 이 사진을 잃든지 통호수를 잊어버리거든 삼삼구만 생각하여라.”
영창이는 사진을 받아 들고 그 말대답도 미처 못 해서 기적 소리가 ‘뿡뿡’ 나며 차가 떠나고자 하니, 정임은 급히 차에 내려서 스르르 나가는 유리창을 향하여, “부디…… 잘 가거라” 하며 옷깃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씻는데, 기관차 연통에서 검은 연기가 물큰물큰 올라가며 차는 살 닫듯 하여 어느 겨를에 간 곳도 없고, 다만 용산강 언덕 위에 멀리 의의한 버들 빛만 머물렀더라.
정임이는 영창이를 전송하고 초창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집까지 울고 들어오니 이시종의 부인도 섭섭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던 차에 자기 귀한 딸이 울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좋은 말로 영창이는 속히 다녀온다고 그 딸을 위로하고 달래었는데, 정 임 이는 어린아이라 어찌 부처 될 사람의 인정을 알아 그러하리오마는, 같이 자라던 정리로 영창의 생각을 한시도 잊지 못하여 제 눈에 좋은 것만 보면 영창이에게 보내준다고 꼭꼭 싸두었다가 인편 있을 적마다 보내기도 하고, 영창의 편지를 어제 보았어도 오늘 또 오기를 기다리며, 꽃 피고 새 울 때와 달 밝고 눈 흴 적마다 시름없이 서천을 바라고 눈썹을 찡그리더라.
정임이가 영창이 생각하기를 이렇듯 괴롭게 그해 일 년을 십 년 같이 다 지내고, 그 이듬해 봄이 차차 되어오매 영창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자연 생겨서,
‘떠날 때에 쉽사리 온다더니 일 년이 지내도록 어찌 아니 오노?'
하고 문밖에서 자취 소리만 나도 아마 영창이가 오나 보다, 아침에 까치만 짖어도 아마 영창이가 오나 보다 하여 하루도 몇 번씩 문밖을 내다보더니, 하루는 안마당에서 바삭바삭하는 소리에 창문을 열고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회리바람이 뺑뺑 돌다가 그치는데 일기가 어찌 화창한지 희고 흰 면회 담에 아지랑이가 아물아물하며 멀리 들리는 버들피리 소리가 사람의 회포를 은근히 돋우는지라, 어린 마음에도 별안간 울적한 생각이 나서 후정을 돌아가 거닐다가 보니 도화가 웃는 듯이 피었거늘, 가늘고 가는 손으로 한 가지를 똑 꺾어 가지고 들어오며,
(정) “어머니 어머니, 도화가 이렇게 피었으니 작년에 영창이 떠나던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그려.”
(부인) “참 세월이 쉽기도 하다. 어제 같던 일이 벌써 돌이로구나.”
(정) “영창이는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아니 옵니까? 요사이는 편지도 보름이 지내도록 아니 오니 웬일 인지 궁금합니다.”
(부인) “아마 쉬 올 때가 되니까 편지도 아니 오나 보다.”
(정임) “아니, 그러면 올라올 때에 입고 오게 겹옷이나 보내줍시다. 아버지가 들어오시거든 소포 부칠 돈을 달래야지요.”
하며 장문을 열고 새로 지어 차곡차곡 넣어두었던 명주 겹바지저고리와 분홍 삼팔 두루마기를 내어 백지로 두어 번 싸고, 그 거죽에 유지로 또 한 번 싸서 노끈으로 열 십 자 우물 정 자로 이리 저리 얽을 즈음에, 이시종이 이마에 내 천 자를 쓰고 얼굴에 외꽃이 피어서 들어오더니,
(이) “원…… 이런 변괴가 있나……. 응…… 응…….”
(부) “변괴가 무슨 변괴오니까?”
(이) “응응……, 응응…….”
(부) “갑갑하니 어서 말씀 좀 하시오.”
(이) “초산서 민요꾸가 났대야.”
(부) “민요가 났으면 어떻게 되었단 말씀이오?”
(이) “어떻게 되고 말고, 기가 막혀 말할 수 없어. 이 내부에 온 보고 좀 보아.”
하고 평북 관찰사의 보고 베낀 초를 내어 부인의 앞으로 던지는데, 그 집은 원래 문한인 고로 그 부인의 학문도 신문 한 장은 무난히 보는 터이라. 부인이 그 보고초를 집어 들고 보니,
(보고서) ‘관하 초산군에서 거 이월 이십팔일 하오 삼 시경에 난민 천여 명 이 불의에 취집하여 관아에 충화하고 작석을 난투하여 관사와 민가 수백 호가 연소하옵고, 이민 간 사상 이십 여인에 달하여 야료 난폭하므로 강계 진위대6에서 병졸 일 소대를 급파하여 익일 상오 십 시에 초히 진압되었사온데, 해 군수와 급기 가족은 행위 불명하옵기 방금 조사 중이오나 종내 종적을 부지하겠사오며, 민요 주창자는 엄밀히 수색한 결과로 장투 오 인을 포박하여 본부에 엄수하옵고 자에 보고함.’
부인이 보고초를 보다가 깜짝 놀라며,
(부인) “이게 웬일이오! 세 식구가 다 죽었나 보구려.”
하는 말에 정임이는 정신이 아득하여 얼굴빛이 하얘지며 아무 말 못 하고 그 모친을 한참 보다가, 싸던 옷보를 스르르 놓더니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쑥쑥 쏟아지며 목을 놓고 우니 부인도 여린 마음에 정임이 우는 것을 보고 따라 우는데, 이시종은 영창이 생각도 둘째가 되고, 평생에 지기 하던 친구 김승지를 생각하고 비참한 마음을 억제치 못하여 정신없이 앉았다가, 다시 마음을 정
돈하고 우는 정임이를 위로한다.
(이) “어찌 된 사기를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울기는 왜들 울어? 정임아, 어서 그쳐라. 내일은 내가 초산을 내려가서 자세히 알아보겠다. 설마 죽기야 하였겠느냐. 참 이상도 하다. 김승지는 민요 만날 사람이 아닌데 그게 웬일이란 말이냐? 그러나 인자는 무적이라는데. 김승지같이 어진 사람이 죽을 리는 없으리라……. 김승지가 마음은 군자요 글은 문장이로되, 일에 당하여서는 짝 없이 흐리것다…….”
이런 말로 정임의 울음을 만류하고 가방과 양탄자를 내어 내일 초산 떠날 행장을 차려놓고 세 사람이 수색이 만면하여 묵묵히 앉았더니, 하인이 저녁상을 들여다 놓고 부인을 대하여 위로하는 말이 ,
“놀라운 말씀이야 어찌 다 하오리까마는 설마 어떠하오리까? 너무 걱정 마시고 진지 어서 잡수십시오.”
하고 나가는데, 정임이는 밥 먹을 생각도 아니 하고 치마끈만 비비틀며 쪼그리고 앉았고, 이시종과 부인은 상을 다가놓고 막 두어 술쯤 뜨는 때에 어디서, “불이야!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며 안방 서창에 연기 그림자가 뭉글뭉글 비치고, 마루 뒷문 밖에는 화광이 충천하니, 밥 먹던 이시종은 수저를 손에 든 채로 급히 나가보니, 자기 집 굴뚝에서 불이 일어나서 한끝은 서로 돌아 부엌 뒤까지 돌고, 한끝은 동으로 뻗쳐 건넌방 머리까지 나갔는데, 솔솔 부는 서북풍에 비비 틀려 돌아가는 불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온 집안에 핑 도니 이시종 집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나 어찌할 수 없으며 여간 순검, 힌병깨나 와서 우뚝우뚝 섰으나 다 쓸데없고, 변변치 못하나마 소방대도 미처 오기 전에 봄볕에 바싹 마른 집이 전체가 다 타버리고, 그뿐 아니라 화불단행이라고 그 옆으로 한데 붙은 김승지 집까지 일시에 소존성 이 되었더라.
행장을 싸놓고 내일 아침 일찍이 초산 떠나려고 하던 이시종은 뜻밖에 낙미지액을 당하여 가족이 모두 노숙하게 된 경위에 있으니 어찌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오. 민망한 마음을 억지로 참고 급히 빈집을 구하여 북부 자하동 일백팔 통 십 호 삼십 구간 와가짝를 사서 겨우 안돈ε1하고 나매 벌써 일주일이 지났으나, 초산 소식은 종시 묘묘하니 자기와 김승지의 관계가 정리로 하든지 의리로 하든지 생사 간에 한번 아니 가보지 못할 터이라, 삼 주일 수유를 얻어가지고 즉시 떠나 초산을 내려가 보니 읍내는 자기 집 모양으로 빈 터에 찬 재뿐이요, 촌가는 강계대 병정이 와서 폭민 수색하는 통에 다 달아나고 개미 새끼 하나 볼 수 없으니 군수의 거취를 물어볼 곳도 없는지라, 그 인근 읍으로 다니며 아무리 탐지하여도 종내 김승지의 소식은 알 수 없고, 단지 들리는 말은 초산 군수가 글만 좋아하고 술만 먹는 고로 정사는 모두 간활한 아전의 소매 속에서 놀다가 마침내 민요를 만났다는 말뿐이라. 하릴없이 근 이십 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그 부친이 다녀오면 영창의 소식을 알까 하고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정임이는 낙심천만하여 한없이 비창히 여기는 모양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더라.
이시종이 초산서 집에 돌아온 지 제삼 일 되던 날 관보에 ‘시종원 시종 이○○ 의원 면 본관’이라 게재되었으니, 이때는 갑오개혁 정책이 실패된 이후로 점점 간영이 금달에 출입하여 뜻있는 사람은 일병 배척하는 시대인 고로, 어떤 혐의자가 이시종 초산 간 사이를 엇보고 성총에 모함한 바이라. 이시종은 시종 체임된 후로 다시 세상에 나번득일 생각이 없어 손을 사절하고 문을 닫으니 꽃다운 풀은 뜰에 가득하고, 문전에 거마가 두물어 동네 사람이라도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알지 못할 만치 되었더라.
이시종은 이로부터 티끌 인연을 끊어버리고 꽃과 새로 벗을 삼아 만년을 한가히 보내고, 정임이는 그 부친에게 소학을 배워 공부하며 깊고 깊은 규중에서 적적히 지내는데, 영창이 생각은 때때로 암암하여 영창이와 같이 가지고 놀던 유희 제구만 눈에 띄어도 초창한 빛이 눈씹 사이에 가득하며, 혹 꿈에 영창이를 만나 재미있게 놀다가 섭섭히 깨어볼 때도 있을 뿐 아니라, 한 해 두 해 지나 철이 차차 나 갈수록 비감한 마음이 더욱 결연하여 여편을 읽을 적마다 소리 없는 눈물도 많이 흘리는 터이건마는 이시종 내외는 정임의 나이 먹는 것을 민망히 여겨 마주 앉기만 하면 항상 아름다운 새 사위 구하기를 근심하고 김승지 집이야 기는 입 밖에 내지도 아니하더라.
임염한 세월이 흐르는 듯하여 정 임의 나이 어언간 십오 세가 되니, 그해 칠월 열이렛날은 이시종의 회갑이라. 그날 수연 잔치 끝에 손은 다 헤어져 가고 넘어가는 해가 서산에 걸렸는데, 이시종 내외는 저녁 하늘 저문 놀빛과 푸른 나무 늦은 매미 소리 손마루 북창 앞에 나란히 앉아서 늙은 회포를 서로 이야기 한다.
(이) “포말풍등이 감가련이라더니 사람의 일생이야 참 가련한 것이야. 어제 같던 우리 청춘이 어느 겨를에 벌써 회갑일세. 지나간 날이 이렇듯 쉬 갔으니 죽을 날도 이렇게 쉬 오겠지. 평생에 사업 하나 못 하고 죽을 날이 가까우니 한심한 일이오그려.”
(부) “그렇기에 말씀이오. 죽을 날은 가까우나 쓸 만한 자식도 하나 못 두었으니 우리는 세상에 난 본의가 없소그려. 정임이 하나 시집가고 보면 이 만년 신세를 누구에게 의탁한단 말씀이오?”
(이) “그렇지마는 나는 양자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얌전한 사위나 얻어서 아들같이 데리고 있지.”
(부) “그러한들 사위가 자식 만 하겠습니까마는, 하기는 우리 죽기 전에 사위 나마 얻어야 하겠습니다……. 사위 고르기는 며느리 얻기보다 어렵 다는데 요새 세상 청년들 눈여겨보면 그 경박한 모양이 모두 제 집 결딴내고 나라 망할 자식들 같습디다. 사위 재목도 조심해 구할 것이어요.”
(이) “그야 무슨 다 그럴라구. 그런 집 자식이 그렇지.”
이렇게 수작하는 때에 어떤 사람이 사랑 중문간에서, “정임아, 정임아” 부르며, “안손님 아니 계시냐?” 하고 묻더니 큰기침 두어 번 하고 들어오면서,
(어떤 사람) “누님, 저는 가겠습니다.”
(부인) “그렇게 속히 가면 무엇 하나? 저녁이나 먹고 이야기나 하다가 달 프드거든 천천히 가게그려. 어서 올라와…….”
부인은 그 사람을 이처럼 만류하며 하인을 불러서,
“술상을 차려 오너라, 진지를 지어서 가져오너라.”
하는데 그 사람은 정임이 외삼촌이라. 수연 치하하고 집으로 돌아갈 터인데, 그 누님의 만류하는 정의를 떼치지 못하여 마루로 올라와 앉더니, 건넌방 문 앞에 섰는 정임이를 한참 보다가,
(외삼촌) “정임이는 금년으로 몰라보게 자랐습니다그려. 오래지 아니하여 서랑을 보시게 되었는데요.”
(이) “그까짓 년 키만 엄부렁하면 무엇하나? 배운 것이 있어야 시집을 가지.”
(부) “그러지 아니하여도 우리가 지금 그 걱정일세, 혼처나 좋은 데 한 곳 중매하게그려…….”
(외삼촌) “중매 잘못하면 뺨이 세 번이라는데 잘못하다가 뺨이나 얻어맞게요……. 하…… 하…….”
(부) “생질 사위 잘못 얻는 것은 걱정 없고 뺨 맞는 것만 염려되나? 하…… 하…….”
(이) “허…… 허……허…… 허…….”
(외삼촌) “혼처는 저기 좋은 곳 있습디다. 옥동 박과장의 셋째 아들인데, 나이는 열일곱 살이요, 공부는 재작년에 사범속소학교에서 졸업하고 즉시 관립중학교에 입학하여 올해 삼 학년이 되었답디다. 그 아이는 저의 팔촌 처남의 아들인데 그 집 문벌도 홀륭하고 가세도 불빈¨할 뿐 아니라 제일 낭자의 얼굴도 결곡하고 재주도 초월하여 내 마음에는 매우 합당합디다마는 매부 의향에 어떠하신지요?”
이시종의 귀에 그 말이 번쩍 띄어,
“응, 그리해? 합당하면 하다마다. 자네 마음에 합당하면 내 의향에도 좋지 별수 있나? 나는 양반도 취치 않고, 부자도 취치 않고, 다만 낭자 하나만 고르네.”
하면서 매우 기뻐하고, 정임이 외삼촌은 이런 이야기를 밤이 되도록 하다가 갔는데, 그 후로는 신랑의 선을 본다는 둥 사주를 받는다는 둥 하더니, 하루는 이시종이 붉은 간지 내어 ‘팔월 십사 일 전안 납채 동일선행’ 이라 써서 다홍실로 허리를 매어놓고 부인과 의논해가며 신랑의 의양단를 적는다. 정임이는 영창이 생각을 잊을 만하다가도 시집이니 장가니 혼인이니 사위니 하는 말을 들으면 새로이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 터이라. 외삼촌이 혼처 의논할 때에도 영 창이 생각이 뼈에 사무쳐서 건넌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몰래 씻으며 속마음으로, ‘부모가 나를 이왕 영창에게 허락하셨으니, 나는 죽어 백골이 되어도 영창의 아내이라. 비록 영창이는 불행하였을지라도 나는 결코 두 사람의 처는 되지 아니할 터이요, 저 아저씨는 아무리 중매한다 하여도 입에선 바람만 들일걸.’
하는 생각이 뇌수에 맺혔으니 여자의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 부모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내던 터이더니, 택일단자 보내는 것을 보매 가슴이 선뜩하고 심기가 좋지 못하여 몸을 비비 틀며 참다가 못하여 그 모친의 귀에 대고 응석처럼 가만히 하는 말이라.
(정임) “나는 시집가기 싫어.”
(부인) “이년, 계집아이년이 시집가기 싫은 것은 무엇이고, 좋은 것은 무엇 이냐?”
(이시종) “그년이 무엇이래, 나중에는 별 망측한 말을 다 듣겠네.”
(정)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어 시집가기 싫어요.”
(부) “아비 어미 보고 싶다고 평생 시집 아니 갈까, 이 못생긴 년아.”
부인의 말은 철모르는 말로 돌리는 말이라. 정임이는 정색하고 꿇어 앉으며,
(정)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아버지께서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글 가르쳐주셨지요. 나를 이왕 영창이와 결혼하시고, 지금 또 시집보낸다 하시니, 부모가 한 자식을 두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법이 있습니까? 아무리 영창이 종적은 알지 못하나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는 죽어도 아니 하겠습니다.”
이시종이 그 말을 듣더니 별떡 일어서며 정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평생에 손찌검 한번 아니 하던 그 딸을 여기저기 함부로 쥐어박으며,
(이) “요년, 요 못된 년, 그게 무슨 방정맞은 말이냐! 요년, 혓줄기를 끊어놓을라. 네가 영창이 예단을 받았단 말이냐, 네가 영창이와 초례를 지냈단 말이냐? 네가 간데없는 영창이 생각하고 시집 못 갈 의리가 무엇이란 말이냐, 아무리 어린년인들.”
하며 죽일 년 잡쥐듯 하니, 부인은 겁이 나서,
(부) “고만두시오. 그년이 어린 마음에 부모를 떨어지기 싫어서 철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어서 고만 참으시오.”
(이) “요년이 어디 철몰라서 하는 말이오? 제 일생을 큰일 내고 부모의 가슴에 못 박을 년이지……. 우리가 저 하나를 길러서 죽기 전에 서방이나 얻어 맡겨 극심을 잊을까 하는 터에……, 요년이…….”
하며 또 한참 때려주니, 부인은 놀랍고 가엾은 마음에 살이 떨리고 가슴이 저려서 달려들며 이시종의 손목을 잡고 정임이 머리를 뜯어놓아 간신히 말렸더라.
이시종은 원래 구습을 개혁할 사상이 있는 터인 고로, 설령 그딸이 과부가 되었을지라도 개가라도 시킬 것이요, 정혼하였던 것을 거리껴서 딸의 일평생을 그릇하지 아니할 사람이라. 정임의 가슴 속에 철석같이 굳은 마음은 알지 못하고 다만 자기 속마음으로
‘정임이 말도 옳지 아니한 바는 아니로되, 내 생각을 하든지 정임이 생각을 하든지 소소한 일로 전정에 대불행을 취함이 불가하다.’
생각하여, 정임이를 압제 수단으로 그런 말은 다시 못 하게 하여놓고, 그날부터 침모를 부른다, 숙수를 앉힌다 하여 바삐바삐 혼례를 준비하는데, 받아놓은 날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열사흘 날 저녁이 되었으니, 그 이튿날은 백마 탄 새 신랑이 올 날이라. 정절이 옥 같은 정임의 마음이야 과연 어떠하다 하리오. 건넌방에 혼자 누웠으니, 이 생각 저 생각 별생각이 다 난다. 부모의 뜻을 순종하자 하니 인륜의 죄인이 되어 지하에 가서 영창을 볼 낯이 없을 뿐 아니라 이는 부모의 뜻을 순종함이 아니요, 곧 부모를 옳지 못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요, 부모의 뜻을 좇지 아니하자 하니 그 계책은 죽는 수밖에 없는데, 늙은 부모를 두고 참혹히 죽으면 그 죄는 차라리 시집가는 것이 오히려 경할지라. 아무리 생각하여도 어찌할 줄 모르다가 한 생각이 문득 나며 혼잣말로.
‘시집이란 것이 다 무엇 말라죽은 것이야! 서양 사람은 색시 부인도 많다더라.’
하고 벌떡 일어서서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 부모는 잔치 분별하기에 종일 근로하다가 막 첫잠이 곤히 든 모양이라. 문갑 서랍에 열쇠 패흘 꺼내 가지고 골방으로 들어가 금고를 열고 십 원권, 오 원권을 있는 대로 집어내어 손가방에 넣어서 들고 나오니, 시계는 아흡 점을 댕댕 치는데,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며 와글와글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이 괴괴하고, 오동나무 그림자는 뜰에 가득하며 벽 틈에 여치 소리가 짤깍짤깍할 뿐이라.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가 종이를 내어 편지 써서 자리 위에 펴놓고 나와서, 그길로 대문을 나서며 한 번 돌아보니, 부모의 생각이 마음을 찌르나, 억지로 참고 두어 결음에 한 번씩 돌아보며 효자문 네거리 와서 인력거를 불러 타고 남대문 밖을 나서니, 이때 가을 하늘에 얇은 구름은 고기비늘같이 조각조각 연하고, 그 사이로 한 바퀴 둥근달이 밝은 광채를 잠깐 자랑하고 잠깐 숨기는데, 연약한 마음이 자연 상하여 흐르는 눈물을 씻고 또 씻는 사이에 벌써 인력거 채를 덜컥 놓는데 남대문 정거장에석 요령 소리가 덜렁덜렁 나며 붉은 모자 쓴 사람이,
“후상, 후상, 후상 오이데마셍까? 하고 외는 소리가 장마 속 논 가에 맹꽁이 끓듯 하니, 이때는 하오 십 시 십오 분 부산 급행차 떠나는 때라. 인력거에서 급히 내려 동경까지 가는 연락차표를 사 가지고 이등 열차로 오르니 호각 소리가 ‘호르륵’ 나며 기관차에서 ‘파 푸 파 푸’ 하고 남대문이 점점 멀어지니, 앞길에 운산은 창창하고 차 뒤에 연하는 막막하더라.
그 빠른 차가 밤새도록 가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부산에 도착하니, 안방에서 대문 밖도 자세히 모르고 지내던 정임이는 처음 이렇게 멀리 온 터이라. 집에 있을 때에 동경을 가자면 남문역에서 연락차표를 사 가지고 부산 가서 연락선 타고 하관까지 가고, 하관서 동경 가는 차를 다시 타고 신교역에서 내린다는 말을 듣기는 들었지마는, 남문역에서 부산까지는 왔으나 연락선 정박한 부두 가는 길을 알지 못하여 정 거장 머리에서 주저주저하다가,
“화륜선 타는 선창을 어디로 가오?”
하고 물으매 이 사람도 물끄러미 보고, 저 사람도 물끄러미 보니 정임이가 집 떠날 때에 머리는 전반같이 땋은 채로 옷은 분홍 춘사 적삼, 옥색 모시 다린 치마 입었던 채로 그대로 쑥 나온 그 모양이라. 누가 이상히 보지 아니하리오. 그 많은 내외국 사람이 모두 여겨보더니, 그중에 어떤 사람이 아래위를 한참 훑어보다가,
“여보 작은아씨, 이리 와. 내가 부두까지 가는 길을 가르쳐줄 터이니.”
하고 앞서서 가는데, 말쑥이 비치는 통량 갓 속으로 반드르르한 상투는 외로 똑 떨어지고 후줄근한 왜사 두루마기는 기름때가 조르르 흘렀더라.
정임이가 약기는 참새 굴레 쌀 만하지마는 세상 구경은 처음 같은 터이라. 다른 염려 없이 그 사람을 따라 부두로 나가는데, 부두로 갈 것 같으면 사람 많이 다니는 탄탄대로로 갈 것이언마는 이 사람은 정임이를 끌고 꼬불꼬불하고 좁디좁은 골목으로 이리 삥삥 돌고 저리 삥삥 돌아가다가, 어떤 오막살이 높은 등 달린 집으로 들어가며,
(그 사람) “나는 이 집에서 볼일 좀 보고 곧 가르쳐줄 것이니 이리 잠깐 들어와.”
정임이는 배 탈 시간이 늦어가는가 하고 근심될 뿐 아니라 여자의 몸이 낯선 곳에 혼자 와서 사나이 놈 따라 남의 집에 들어갈 까닭이 없는 터이라.
(정임) “길 모.르는 사람을 이처럼 가르쳐주고자 하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나는 여기서 잠깐 기다릴 터이니 어서 볼일 보십시오.”
하고 섰더니,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간 지 한참 만에 어떤 계집 두 년이 머리에는 왜밀 뒤범벅을 해 붙이고 중문간에서 기웃기웃 내다보며,
“아이그, 그 처녀 얌전도 하다. 아마 서울 사람이지” 하고 나오더니,
“여보, 잠깐 들어오구려. 같이 오신 손님은 지금 담배 한 대 잡숫는데요.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소. 여편네가 여편네들만 있는 집에 들어오는 것이 무슨 관계 있소? 어서 잠깐 들어왔다 가시오” 하며 한 년은 손목을 잡아당기고 한 년은 등을 미는데, 어찌 할 수 없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길 가르쳐주마던 사람은 마루 끝에 결터앉아 담배를 먹다가 정임이를 보더니,
(그 사람) “선창을 물으면 배 타고 어디를 가는 길이야?”
(정임) “동경까지 갑니다.”
(그 사람) “집은 어디 인고?”
(정임) “서울이야요.”
(그 사람) “동경은 무엇 하러 가?”
(정임) “유학하러요.”
(그 사람) “유학이고 무엇이고 저렇게 큰 처녀가 길도 모르고 어찌 혼자 나섰어?”
(정임) “지금같이 밝은 세상에 처녀 말고 아무라도 혼자 나온들 무슨 관계 있습니까?”
(그 사람)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야?”
이렇게 자세히 묻는 바람에 정임이는 의심이 나며, 서울 뉘 집 아들도 일본으로 도망해 가다가 그 집에서 부산 경찰서로 전보하여 붙잡아 갔다더니, 아마 우리 아버지께서 전보한 까닭으로 경찰서에서 별순검을 보내 조사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나서.
(정임) “배 탈 시간이 늦어가는데 길도 아니 가르쳐주고 남의 이름과 나이는 알아 무엇 하려오?”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그 사람이 달려들며 잡담 제하고 끌어다가 뒷방에 넣고 방문을 밖으로 걸더라.
그 사람은 색주가 서방인데, 서울 사람과 상약하고 어떤 집 계집아이를 색주가 감으로 꾀어내는 판이라. 서울 사람은 그 계집아이를 유인하여 어느 날 몇 시 차로 보낼 것이니 아무쪼록 놓치지 말고 잘 단속하라는 약조가 있는 터에, 그 계집아이는 아니오고 애매한 정임이가 걸렸으니 아무리 소리를 지른들 무엇하며, 야단을 친들 무슨 수가 있으리오마는, 하도 무리한 경우를 당하여 기가 막히는 중에,
‘이렇게 법률을 무시하는 놈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면 도리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한 번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놈이 감언이설로 달래다 못하여 회초리 찜질을 대는 판에 전신이 피뭉치가 되고 과연 견딜 수 없을 뿐 아니라, 죽고자 하여도 죽을 수도 없으니 이런 일은 평생에 듣지도 보지도 못하다가 꿈결같이 이 지경을 당하매 분한 마음이 이를 것 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갇혀 있더니, 사흘 되던 날 밤에 문틈으로 풍뎅이 한 마리가 들어와서 쇠잔한 등불을 쳐서 끄는데 갑갑하고 무서운 생각이 나서 불이나 켜놓고 밤을 새우리라 하고, 들창 문지방을 더듬더듬하며 성냥을 찾으니, 성냥은 없고 다 부러진 대까칼이 틈에 끼여 있는지라, 그 칼을 집어 들고 이리 할까 저리 할까 한참 생각하다가 마침내 문창살을 오린다. 칼도 어찌 잘 들고 힘도 어찌 세던지 밤새도록 겨우 창살 한 개를 오리고 나니, 닭은 세 홰를 울고 먼촌에 개 짖는 소리가 나는데 그 창살 오려낸 틈으로 밖에 걸린 고리를 벗기고 가만히 나오니 죽었다가 살아난 듯이 상쾌한지라 차차 큰길을 찾아가며 생각하니,
‘이번에 이 고생한 것도 도시 의복을 잘못 차린 까닭이요, 또 동경을 가더라도 조선 의복 입은 사람은 하등 대우를 한다는데, 이 모양으로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겠다’ 하고 어느 모퉁이에 서서 날 밝기를 기다려가지고 곧 오복점을 찾아가서 일본 옷 한 벌을 사서 입고, 그 오복점 주인 여편네에게 간청하여 머리를 끌어올려 일본 쪽을 찌고, 또 그 여편네에게 선창 가는 길을 물어서 찾아가니, 이때 마침 연락선 일기환이 떠나는지라, 즉시 그 배를 타고 망망한 바다 빛이 하늘에 닿은 곳으로 가더라.
이 같은 곤란을 지내고 동경을 향하여 가는 정임이가 삼 일 만에 목적지 신교역에 내리니, 그 시가의 화려하고 번창함이 참 처음 보는 구경이나, 여관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한참 방황하다가 덮어놓고 인력거에 올라앉으니, 별안간 말하는 벙어리, 소리 듣는 귀머거리가 되어 인력거꾼의 묻는 말을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손을 들어 되는대로 가리키니 인력거는 가리키는 대로 가고, 정임이는 묻는 대로 가리켜서 이리저리 한없이 가다가 어느 곳에 다다르니, ‘상야관’이라 현판 붙인 집 앞에서 오고 가는 사람에게 광고를 돌리는데, 그 광고 한 장을 받아 보니 무슨 말인지 의미는 알 수 없으나, 단지 숙박료 일등에 얼마, 이등에 얼마라고 늘어 쓴 것을 보매 그 집이 여관인 줄 알고 인력거를 내려 들어가니, 벌써 여종과 반또 들이 나와 맞으며 들어가는 길을 인도하는지라. 인하여 그 집에 여관을 정하고 우선 여관 주인에게 일본말을 배우니, 원래 총명이 과인하고 학문도 중학교 졸업은 되는 터이라, 일곱 달 만에 못 할 말 없이 능통할 뿐 아니요, 문법도 막힐 곳 없이 무슨 서적이든지 능히 보게 되매, 그해 봄에 ‘소석천구’ 일본 여자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 심중에는 항상 부모의 생각, 영창이 생각, 자기 신세 생각이 한데 뒤뭉쳐석 주야로 간절한 터이라. 그러한 뇌심 중에 공부도 잘되지 아니하련마는 시험 볼 적마다 그 성적이 평균점 일공공(100)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해마다 최우등으로 진급되니, 동경 여학생계에 이정임의 이름을 모를 사람이 없이 명예가 굉장하더라.
하루는 학교에서 하학하고 여관으로 돌아오니, 어떤 여학도가 무슨 청첩을 가지고 와서 아무쪼록 오시기를 바란다고 간곡히 말하고 가는데, 그 청첩은 ‘여학생 일요강습회 창립총회’ 청첩이요, 그 취지는 여학생이 일요일마다 모여서 학문을 강습하자는 뜻이라. 정임이는 근심이 첩첩하여 만사가 무심한 터이지마는, 그 취지서를 본즉 매우 아름다운 일인 고로 그날 모인다는 곳으로 갔더니, 여학생 수십 명이 와서 개회하고 임원을 선정하는데 회장은 이정임이요, 서기는 산본영자라. 정임이는 억지로 사양치 못하고 회장석에 출석하여 문제를 내어 걸고 차례로 강연한 후에 장차 폐회할 터인데, 이때에 어떤 소년이 서기 산본영자의 소개를 얻어 회석에 들어오더니, 자기는 조선 유학생 강한영이라 하며, 강습회 조직하는 것을 무한히 칭찬하고, 이 회에 쓰는 재정은 자기가 찬성적으로 어디까지 든지 전담하겠노라 하고 설명하며, 우선 금화 백 원을 기부하는 서슬에 서기의 특청으로 강소년이 그 회의 재무 촉탁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강소년은 일요일마다 정임을 만나면 지극히 반가워하고 대단히 정답게 굴어서 아무쪼록 친근히 사귀려고 하며, 혹 어떤 때는 공원으로 놀러 가자기도 하고, 야시 구경도 같이 가자기도 하나, 정임의 정중한 태도는 비록 여자끼리라도 특별히 친압하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남자와 한가지 구경 다닐 리가 있으리오. 그런 말 들을 적마다 정숙한 말로 대답하매 다시는 그런 말을 못 하는 터이요, 산본영자도 종종 여관으로 찾아오는데, 하루는 어떤 노파가 와서 자기는 산본영자의 모친이라 하며 자기 딸과 친절히 지내니 감사하다고 치하하고 가더니, 그 후로는 자주자주 다니며 혹 과자도 갖다 주며, 혹 화장품도 사다 주어 없던 정분을 갑자기 사고자 하며, 가끔가다가 던지는 말로 여자의 평생 신세는 남편을 잘 만나고 못 만나기에 있다고 이야기하더라.
정임이 동경 온 지가 어언간 다섯 해가 되어 그해 하기 시험에 졸업하고, 증서 수여식 날 졸업장과 다수한 상품을 타매, 그 마당에 모인 고등 관인과 내외국 신사들의 칭송이 빗발치듯 하니 그런 영광을 비할 곳이 없을 뿐 아니요, 그 졸업장 한 장이 금 주고 바꾸지 아니할 만치 귀한 것이라 그 마음에 오죽 기쁘리오마는, 정임이는 찬양도 귀에 심상히 들리고 좋은 마음도 별로 없어 즉
시 여관으로 돌아와 삼층 장자를 열고 난간에 의지하여 먼 하늘에 기이한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내두의 거취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앉았는데 산본 노파가 오더니 졸업한 것을 치하한다.
(노파) “이번에 우등으로 졸업하였다니 대단히 감축한 일이으그려. 듣기에 어찌 반가운지 내가 치하하러 왔지요.”:
(정임) “감축이랄 것 무엇 있습니까?”
(노파) “저렇게 연소한 터에 벌써 대학교 졸업을 하였으니 참 고마운 일이야. 내 마음에 이처럼 반가울 적에 당신이야 오죽 기쁘며, 부모가 들으시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소.”
(정임) “나는 좋을 것도 없습니다. 학교 교사 여러 분의 덕택으로 졸업은 하였으나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으니 무엇이 좋습니까?”
(노파) “그런 겸사는 다 고만두시오. 내가 모른다구요?…… 그러나 우리 딸 영자야말로 인제 겨우 고등과 이년 급이니 언제나 대학교 졸업을 할는지요? 당신을 쳐다보자면 고소대 꼭대기 같지.”
(정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영자의 재조로 잠깐이지요. 근심하실 것 무엇 있습니까.”
(노파) “당신은 얼굴도 어여쁘고 마음도 얌전하거니와 재조는 어찌 저렇게 비상하며, 학문은 어찌 저렇게 좋소? 나는 볼 적마다 부러워.”
(정임) “천만의 말씀이오.”
(노파) “당신은 시집을 가더라도 얼굴이 저와 같이 곱고 학문도 대학교 졸업 한 신랑을 얻어야 하겠소.”
(정임) “…….”
(노파) “이 세상에는 저와 같은 짝이 없을걸.”
(정 임) “…….”
(노파) “남녀 물론하고 혼인은 부모가 정하는 것이지마는, 이 이십 세기 시대에야 부모가 혼인 정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누가 있나? 혼인이란 것은 제 눈에 들고 제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할 것인걸.”
(정임) “…….”
(노파) “왜 아무 이야기도 아니 하고 얼굴에 근심하는 빛이 있으니 웬일이오? 내가 혼인 이야기를 하니까 아마 시집갈 일이 근심되나 보구려. 혼인은 일평생에 큰 관계가 달린 일인데, 어찌 근심이 되지 아니하리까? 그렇지마는 근심할 것 없소. 내가 좋은 혼처 천거하리다. 이 말이 실없는 말 아니오. 자세히 들어보시오. 내가 남의 중대한 일에 잘못 소개할 리도 없고, 또 서양 사람이나 아미리가 사람에게 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라 사람이자 또 자격이 당신과 똑같은 터이니, 두고두고 평생을 구한들 어찌 그런 합당한 곳을 고를 수 있으리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일요강습회에 다니는 강한영씨 말씀이오. 당신도 많이 만나 보셨겠지마는 얼굴인들 좀 얌전하며, 재조인들 여간 좋습더니까. 그 양반이 내 집에 주인을 정하고 삼 년을 나와 같이 지내는데, 그 옥 같은 마음은 오던 날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요, 학문으로 말하더라도 이번에 대학교 법률과 졸업을 하였으니 당신만 못하지 아니하고, 재산으로 말하더라도 조선에 몇째 아니 가는 부자랍디다. 내가 조선 사람의 부자이고 아닌 것을 어찌 알겠소마는, 이곳에 와서 돈 쓰는 것만 보면 알겠습디다. 그 양반이 돈을 써도 공익적으로나 쓰지, 외입 한번 하는 것도 못 보았어요. 만일 내 말이 못 믿거든 본가로 편지라도 해서 알아보고, 망설이지 말고 혼인 정하시오. 그 집은 대구인데 이번에 나가면 서울로 이사한답디다. 암만 골라도 이러한 곳은 다시 구경도 못 할 터이니 놓쳐버리고 후회할 것 없이 두말 말고 정하시오. 당신도 그 양반을 모르는 터이아니거니와 이 늙은 사람이 설마 남 못 할 노릇 시키려고 거짓말할 리 있소? 다시 생각할 것 없이 내 말대로 하시오.”
그 노파는 졸업 치하가 변하여 혼인 소개가 되더니 잔말을 기다랗게 늘어놓는데 정임이는 조금도 듣기가 귀찮은 터이라,
(정임) “그러하겠습니다. 여자가 되어 시집가는 것도 변 될 일이 아니요, 당신이 혼인 중매하시는 것도 괴이치 아니한 터이나, 그러나 나는 집 떠날 때로부터 마음에 정한 바이 있어 다시는 변통 못 할 사정이올시다. 그 사정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만일 내가 시집을 갈 것 같으면 그런 좋은 곳을 버리고 어떤 곳을 다시 구하리까마는, 내가 시집 아니 가기로 결심한 이상에야 다시 할 말 있습니까? ‘혼인’ 이자에 대하여서는 두 말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싹도 없이 끊어 말하매 노파는 다시 말 못 하고 무연히 돌아갔는데, 그 후로부터 일요강습회에도 다시 가지 아니하고 있더니, 집 생각이 간절하여 집에 돌아가 늙은 부모나 봉양하고 여학교나 설립하여 청년 여자들이나 가르치며 오는 세월을 보내리라 하고 귀국할 행장을 차리는 중인데, 하루는 궂은비가 종일 와서 심기가 대단히 울적하던 차에, 비 개고 달 돋아오는 경이 하도 좋기에 옷을 갈아입고 상야공원에 가서 달구경 하고 오다가 불인지 가를 지나며 보니, 패한 연엽에는 비 흔적을 머무르고, 맑고 맑은 물결에는 위에도 관월교요, 밑에도 관월교라. 그 운치를 사랑하여 돌아갈 줄을 잊어버리고 섰더니, 그 악소년을 만나 칼침을 맞고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에서 의사가 상처를 진찰하니 창흔은 후문을 비키고 빗나갔고, 창구는 이분이며 심은 일 촌에 지나지 못하여 생명은 아무 관계 없고 놀라서 잠시 기색한 모양이라. 의사는 응급 수술로 민속히 치료하였으나 정임이는 그러한 광경을 생후에 처음 당하여 어찌 혹독히 놀랐던지 종시 혼도하였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눈을 떠 보니, 동편 유리창에 볕이 쩡쩡히 비치고, 자기는 높은 와상에 흰 홑이불을 덮고 누웠는지라 어찌 된 곡절을 몰라 속생각으로,
‘여기가 어디인가? 우리 여관에는 저렇게 볕들어본 적도 없고 이러한 와상도 없는데, 내가 뉘 집에 와서 이렇게 누웠나? 애고, 이상도 하다. 내가 아마 꿈을 이렇게 꾸나 보다’ 하고 정신을 수습하는 때에, 의사가 간호부를 데리고 들어오는 뒤에 순사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치며, 어젯밤 공원 생각이 나는데 의사가 창구를 씻고 약을 갈아 붙이더니, 순사가 앞으로 다가서며 자세자세 묻는다.
(순사) “당신의 성명은 누구라 하오?'’
(정임) “이정임이올시다.”
(순) “연령은 얼마요?”
(정) “십구 세올시다.”
(순) “당신의 집은 어디요?”
(정) “조선 경성 북부 자하동 일백팔 통 십 호올시다.”
(순) “당신의 부친은 누구요?”
(정) “이○○ 올시다.”
(순) “부친의 직업은 무엇이오?”
(정) “우리 부친은 관인이더니 지금은 벼슬 없고, 전직은 시종원 시종이올시 다.”
(순) “형제는 몇 분이오?”˛
(정) “이 사람 하나뿐이올시다.”
(순) “당신이 무슨 일로 동경에 왔소?”
(정) “유학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순) “그러시오? 그러면 여관은 어디며, 어느 학교 몇 연급에 다니오?”
(정) “여관은 하곡구 거판정 십일 번지 상야관이요, 학교는 일본 여자대학에 다니더니 거 칠월 십 일에 졸업하였습니다.”
(순) “매우 고마운 일이오마는……. 어젯밤에 행흉하던 놈은 아는 놈이오, 모르는 놈이오?”
(정) “안면은 두어 번 있었지요.”
(순) “안면이 있으면 그놈의 성명을 알며, 어디서 보았소?¨
(정) “성명은 강한영이요, 만나 보기는 여학생 일요강습회에서 만나 보았습니다.”
(순) “성명을 들으니 그놈도 조선 사람이오그려……. 그놈의 원적지와 유숙하는 여관은 어디인지 아시오?”
(정) “본국 사람이로되 거주도 모르고, 여관도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주인은 산본이랍디다.”
(순) “그러면 무슨 이유로 저 일을 당하였소?”
(정) “이유는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여자가 되어 세상에 난 죄악이지요.”
정임이는 그 말 그치며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데, 순사가 낱낱이 조사하여 수첩에 기록해 가지고 매우 가엾다고 위로하며 의사를 향하여 아무쪼록 잘 보호하고 속히 치료해주라고 부탁하고 나가더라.
정임이가 이러한 죽을 욕을 보고 병원에 누웠으매 처량하기도 이를 것이 없고 별생각이 다 나는데,
‘내가 집을 버리고 멀리 떠나서 늙은 부모의 걱정을 시키니, 이런 죄악을 왜 아니 당할 리 있나. 그렇지마는 내가 부모를 저버린 것이 아니요, 중대한 의리를 지킨 일이니, 아무리 어떠한 죄를 당할지라도 조금도 신명에 부끄러울 것은 없어. 내가 어려서 부모에게 귀함 받고 영창이와 같이 자랄 때에 신세가 이 지경 될 줄 누가 알았던가? 그러나 나는 무슨 고생을 하든지 이 세상에 살아있거니와, 백골이 어느 곳에 헤어진지 알지 못하는 영창의 외로운 혼이 불쌍치 아니한가! 내가 바삐 지하에 돌아가 영창이를 만나서 어서 이런 말을 좀 하였으면 좋겠구만, 부모 생각에 할 수 없지……, 허……. 나의 한 몸이 천지의 이기를 타고 부모의 혈육을 받아 이 세상에 한 번 나온 것이 전만고후만고에 다시 얻기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아까운 일생을 낙을 모르고 지내다가 죽는단 말인가. 참 팔자도 기박도 하다. 생각을 하면 간이 녹아 신문이나 보고 잊어버리겠다’ 하고 간호부를 불러 신문 한 장을 가져오래서 잠심하여 보는데 제삼면 잡보란에,
‘김영창(연 십구)이라 하는 사람이 어떤 여학생과 무슨 감정이있던지 재작일 하오 십일 시경에 상야공원 불인지 가에서 칼로 찌르다가 하곡구 경찰서로 잡혀갔는데, 그 사람은 본디 조선 사람으로 영국 문과대학에서 졸업한 자이라더 라’ 게재하였는지라. 이 잡보를 보다가 하도 이상하여 한 번 다시 보고 또 한 번 더 훑어보아도 갈데없이 자기의 사실인데, 행패하던 놈의 성명이 다르매 더욱 이상하여 혼잣말로,
‘아이고, 이상도 하다. 이 말이 정녕 내 말인데, 그놈이 강가 아니요, 김영창이란 말은 웬 말이며, 영국 문과대학 졸업이란 말은 웬 말인고? 아마 신문에 잘못 게재하였나 보다. 내가 영창이 생각을 잊어버리자고 신문을 보더니…….’ 하고 신문을 땅에 던지다가 다시 집어 들고,
“김영창……, 김영창……, 문과대학 졸업?”
하며 무슨 생각을 새로 하는 때에 누가 어떤 엽서 한 장을 주고 나가는데 그 엽서는 재판소 호출장이라. 그 엽서를 받아두고 병 낫기를 기다리더니, 병원에 온 지 일주일이 되매 상처도 완전히 치료되고 재판소에서 부르는 일자가 되었는지라, 병원에서 퇴원하여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곧 재판소로 가더라.
정임의 마음에 이렇듯이 새기고 새겨둔 영창이는 정임을 이별하고 부모를 따라 초산으로 온 후에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역시 정임이가 영창이 생각함이나 진배없이 정임을 생각하며 가고 또 오는 날을 괴로이 지내더니, 하루는 정임에게서 편지가 와서 반갑게 떼어 본다.
(편지) 이별할 때에 푸르던 버들이 다시 푸르르니 하늘가를 바라보매 눈이 뚫어지고자 하나 바다는 막막하고 소식은 없으니, 난간에 의지하여 공연히 창자가 끊어질 뿐이요, 해는 가까우나 초산은 멀며, 바람은 가벼우나 이 몸은 무거워서 날아다니는 술업은 얻지 못하고 다만 봄꿈으로 하여금 괴롭게 하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상하고 말을 하자니 이가 시구나.
이러한 만지장서를 채 다 보지 못하고 막 시작하여 여기까지 보는데 삼문 밖에서 별안간 우지끈뚝딱하며,
“아 우!” 하는 소리가 나더니 봉두난발도 한 놈, 수건도 쓴 놈들이 혹 몽둥이도 들고, 혹 돌도 들고 우 몰려 들어오면서 우선 이방, 형방, 순로, 사령을 미친 개 때리듯 하며, 한 떼는 대청으로 올라와서 군수를 잡아 내리고, 한 떼는 내아에 들어가서 부인을 끌어내어 한 끈에다가 비웃 두름 엮듯이 동여 앉히고 여러 놈이 둘러서서 한 놈은,
“물을 끓여라!”
한 놈은,
“장작더미에 올려 앉혀라!”
한 놈은,
“석유를 끼얹어라!”
한 놈은,
“구덩이를 파라!”
또 한 놈은,
“이 애들, 아서라. 학정은 모두 아전 놈의 짓이지 그 못생긴 원놈이야 술이나 좋아하고 글이나 잘 짓지 무엇을 안다더냐? 그럴 것 없이 짚둥우리나 태서지경이나 넘겨라.”
하는데, 그중 한 놈이 쑥 나서며,
“그럴 것 없이 좋은 수 있다. 두 연놈을 큰 뒤주 속에 한데 넣어서 강물에 띄워버리자.”
하더니 그 여러 놈들이,
“이애, 그 말 좋다……, 자…….”
하며 뒤주를 갖다가 군수 내외를 집어넣고 자물쇠를 채우고 진상가는 꿀 병 동이듯 이리 층층 얽고 저리 층층 얽어서 여러 놈이 떠메고 압록강으로 나가는데, 정임이 편지 보던 영창이는 창졸간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난리를 만나매 어찌할 줄 모르고 몸부림을 하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고 울다가, 메고 나가는 뒤주를 쫓아가니 어떤 놈은 귀퉁이도 쥐어박고, 어떤 놈은 발길로 차기도 하며, 어떤 놈은,
“이애, 요놈은 작은 도적놈이다. 요런 놈 씨 받아서는 못쓰겠다. 요놈도 마저 뒤주 속에 넣어라.”
하더니, 또 어떤 놈이 와서,
“아서라, 그까짓 어린 자식 놈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 그렇지마는 요놈이 이렇게 잘 입은 비단옷도 모두 초산 백성의 피 긁은 것이니 이것이나마 입혀 보낼 것 없다.”
하고 달려들며 입은 옷을 다 벗기고, 지나가는 거지 아이의 옷 해진 틈틈이 서캐, 이가 터진 방앗공이에 보리알 끼듯 한 것을 바꿔 입혀서 땅에 발이 붙지 않도록 들어 내쫓는다. 그 지경 당하는 영창의 마음에는, 자기는 죽인대도 겁날 것 없으되, 무죄한 부모가 참혹히 죽는 것이 비할 데 없이 통애한 생각에,
‘나도 압록강에나 가서 기어코 우리 부모 들어앉아 계신 뒤주라도 붙들고 죽으리라.’
하고 굴청·언덕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엎드러지며 자빠지며 압록강을 향하고 가는데, 읍내서 압록강이 몇 리나 되던지 밤새도록 가다가 어느 곳에 다다르니 위도 하늘 같고 아래도 하늘 같은 물빛이 보이는데, 사면은 적적하고 넓고 넓은 만경창파에 총총한 별빛만 반짝반짝하며 오열한 여울 소리가 슬피 조상하는 듯 할 뿐이요, 자기 부모는 어디로 떠나갔는지 알 수 없는지라, 하릴 없이 언덕 위에 서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울며 몇 번이나 강물로 떨어지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하고,
‘죽더라도 떠나가는 뒤주라도 보고 죽으리라’ 하여 물결을 따라 한없이 내려간다. 며칠이나 가고 어디까지나 왔던지 한 곳에 이르러서는 발도 붓고 다리도 아플 뿐 아니라, 여러 날 굶어서 기운이 시진하여 정신 잃고 사장에 넘어졌으니 그 동탕한 얼굴이야 어디 갈 것 아니지마는, 그 넘어진 모양이 하릴없는 쭉정이 송장이라. 강변 까마귀는 이리로 날며 ‘깍깍’ 저리로 날며 ‘깍깍’하고, 개떼는 와서 여기도 ‘꿋꿋’ 맡아보고 저기도 ‘꿋꿋’ 맡아보나 이것저것 다 모르고 누웠더니, 누가 허리를 꾹꾹 찌르고 또 꾹꾹 찌르는 섬에 간신히 눈을 들어 보니 어리어리하게 보이는 중에 키는 장승같고 옷은 시커멓고 코는 주먹덩이만 하고 눈은 여산 칠십 리는 들어간 듯하여 도깨비 중에도 상도깨비 같은 사람이 옆에 서서 무슨 말을 하는데, 귀도 먹먹하지마는 무슨 말인지 어훈도 알 수 없고 말할 기운도 없거니와 대답할 줄도 모르고 눈이 멀거니 쳐다볼 뿐이라. 그 사람이 달려들어 일으켜 앉혀놓고 빨병을 내어 물을 먹이더니, 손목을 끌고 인가를 찾아가니 그곳은 신의주 나루터이요, 그 사람은 영국 문학박사 스미트라 하는 사람인데 자선가로 영국서 유명한 사람이라. 그 사람이 동양을 유람코자 하여 일본 다녀 조선으로 와서 부산, 대구, 경성, 개성, 평양, 의주를 다 구경하고 장차 청국 북경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영창이 넘어진 것을 보고, 얼굴이 비범한 아이가 그 모양으로 누웠는 것을 매우 측은히 여겨, 즉시 끌고 신의주 개시장 일본 사람의 여관으로 들어가서 급히 약을 먹인다, 우유를 먹인다 하여 정신을 차린 후에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사서 입히니, 그 준수한 용모가 관옥 같은 호남자이라. 곧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가니 다 죽었던 영창이는 은인을 만나 목숨이 살아나매 그때는 아무 생각 없고 다만,
‘아무쪼록 생명을 보존하여 기회를 얻어 원수를 갚고 우리 부모의 사속을 전하리라’ 하는 마음뿐이라. 그 사람과 말이나 통할 것 같으면 사실 이야기나 자세히 하고 서울 이시종 집으로나 보내달라고 간청해볼 터이언마는 말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고, 하릴없이 그 사람 끌고 가는 대로 따라가는데,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먹을 때 되면 먹고, 잘 때 되면 자고, 마차를 타고 막막한 광야로도 가고, 기차를 타고 화려 장대한 시가도 지나가고, 화륜선을 타고 망망한 바다로도 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다가, 어느 곳에서 기차를 내리매 땅에는 철로가 빈틈없이 놓이고, 하늘에는 전선이 거미줄같이 얽혔으며, 넓고 넓은 길에 마차, 자동차, 자전거는 여기서도 쓰르르 저기서도 뜰뜰하고, 십 여 층 벽돌집은 좌우에 쟁영하며 각색 공장의 연기 굴뚝은 밀짚 들어서듯 총총하여 그 굉장한 풍물이 영창의 눈을 놀래니 그곳은 영국 서울 런던이요, 스미트의 집이 곧 그곳이라. 스미트는 영창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세계에 없는 보화를 얻어 온 듯이 귀히 여기니, 그 부인도 역시 자기 자식같이 사랑하며 날마다 말 가르치기로 일삼는데, 영창의 재조에 한 번 들은 말과 한 번 본 글자를 다시 잊지 아니하고 몇 날 못 되어 가정에서 날마다 쓰는 말은 능히 옮기매 부인의 마음에 신통히 여기고 차차 지지, 산술, 이과 등의 소학교과정을 가르치기에 재미를 붙이고, 영창이도 스미트 내외에게 친부모같이 정답게 굴며 근심 빛을 외면에 드러내지 아니하더라.
정임이는 영창이 종적을 모르고 근심이 가슴에 맺혀서 옷끈이 자연 늦어지는 터이언마는 영창이는 부모가 그 지경 된 것이 지극히 불쌍하여 백해가 녹는 듯이 슬픈 마음에 정임이 생각은 도시 잊었더니, 하루는 산술을 공부하는데 삼삼을 자승(33 ×33)하는 문제를 놓으며,
‘삼삼구…… 삼삼구……, 또 삼삼구…… 삼삼구’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나며,
‘옳지! 정임이가 남문역에서 작별할 때에 편지나 자주 하라고 부탁하며 통호수를 잊거든 삼삼구를 생각하라더라. 편지나 부쳐서 소식이나 서로 알고 있으리라.’
하고 초산서 봉변하던 말과 스미트를 따라 런던 와서 공부하고 있는 말로 즉시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고, 다시 생각하고 편지 또 한 장을 써서 시종원으로 부쳤더니, 사오 개월이 지난 후에 그 편지 두 장이 한꺼번에 도로 왔는데, 쪽지가 너덧 장 붙고 ‘영수인이 무하여 반환함’ 이라 썼으니 우편이 발달된 지금 같으면 성 안에 있는 이시종 집을 어떻게 못 찾아 전하리오마는, 그때는 우체 배달이 유치한 전 한국통신원 시대라, 체전부가 그 편지를 가지고 교동 사십삼 통 구 호를 찾아가매 불이 타서 빈터뿐이요, 시종원으로 찾아가매 이시종이 갈려버린 고로 전하지 못하고 도로 보낸 것이라. 편지를 두 곳으로 부치고 답장 오기를 고대하던 영창이는 어찌 된 사실을 몰라 마음에 더욱 불평히 지내는데, 차차 지각이 날수록 남의 나라의 문명 부강한 경황을 보고 내 나라의 야매, 조잔한 이유를 생각하매 다른 근심은 다 어디로 가고 다만 학업에 힘쓸 생각뿐이라. 즉시 학교에 입학하여 열심으로 공부하니 그 과공이 일취월장하여 열여섯 살에 중학교 졸업하고, 열아홉 살에 문과대학 졸업하니 그 학문이 훌륭한 청년 문학가가 되었는지라, 스미트 내외도 지극히 기뻐할 뿐 아니라 영국 문부성 관리들이 극구 찬송 아니 하는 자가 없더니, 문부성 학무국장이 스미트를 방문하고 자기 딸을 영창에게 통혼하는지라. 영창이 생각에,
‘아무리 정임이와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하나 내가 정임이 거취를 자세히 알기 전에는 다른 배필을 구하지 않으리라.’
하고 그제야 자기 사실과 정임의 관계를 낱낱이 스미트에게 이야기하고 학무국장의 의혼을 거절하였는데, 그해 유월에 스미트가 대일본 횡빈 주차 영사가 되어 일본으로 나오매 영창이도 스미트를 따라 횡빈 와서 있더니, 어느 때는 동경으로 구경 갔다가 지루한 가을장마에 구경도 못 하고 적적한 여관에서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설을 저술하는데, 고국 생각이 새로 간절한 중 정임의 소식을 하루바삐 알고자 하는 회포가 마음을 흔들어서,
‘아마 정임이는 그사이 시집을 갔을걸.’
하고 생각하며 하늘가에 돌아가는 구름을 유연히 바라보더니 헤어져 가는 구름 너머로 쑥 솟아오르는 한 조각 달이 수정 같은 광휘를 두루 날리는지라. 곧 상야공원에 가서 산보하다가, 불인지 연못가에서 마침 어떤 사람이 칼로 여학생 찌루는 것을 보고 자닝한 생각이 왈칵 나서 소리를 지르고 급히 쫓아가니 여학생의 목에 칼이 박혔는지라 그 칼을 얼른 빼어 들고 생각하매,
‘그놈은 벌써 달아났으니 경찰서에 고발하기도 혐의쩍고, 그대로 가자 하니 이것이 사나이 일이 아니라.' :
사기가 대단히 망단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한창 생각할 때에 행순하던 순사에게 잡혀가니, 신문하는 마당에 무엇이라고 발명할 증거는 없으나 사실대로 말하니, 그 말은 아무 효력 없고 애매한 살인 미수범이 되어 즉시 재판소로 넘어가서 감옥소에 갇혀 있더라.
이때 정임이가 호출장을 가지고 재판소로 들어가니, 검사가 그날 저녁에 당하던 사실을 자세히 조사하더니 어떤 죄인을 대면시키고,
(검사) “저 사람이 공원에서 칼로 찌르던 사람 아니냐?”
하고 묻는데 정임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병원에서 신문 보던 일을 생각하니 얼굴 전형도 흡사한 영창이 어렸을 때 모습이요 눈, 귀, 콧부리도 모두 영창이라, 은근히 반가운 마음이 염통 밑을 쑤시나, 한편으로 그 사람이 정녕 영창인지 아닌지 의심도 없지 아니할 뿐 아니라 경솔히 반색할 일도 못 되고 또 관정에서 사삿말도 할 수 없는 터이라, 검사의 말 대답할 겨를도 없이 그 죄인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참 만에 대답을 한다.
(정임) “저이는 그 사람이 아니올시다. 그러나 저 사람에게 한 마디 물어볼 말씀이 있사오니 잠깐 허가하심을 바랍니다.”
(검사) “무슨 말을?”
(정임) “이 사건에 대한 일은 아니오나 사사로이 물어볼 만한 일이 있습니다.”
(검사) “무슨 말인지 잠깐 물어보아.”
정임이는 검사의 허락을 얻어가지고 그 죄인을 대하여 조선말로 묻는다.
(정인) “당신은 어찌 된 사기로 이곳에 오셨소?”
(죄인) “다른 까닭 아니라 공원 구경 갔다가 어떤 놈이 젊은 부인을 모해코자 함을 보고 마음에 대단히 송연하여 급히 쫓아 갔더니 그놈은 달아나고 내가 발명할 수 없이 잡혀 왔습니다. 그 부인이 아마 당신이신 게요그려. 그때는 매우 위험하더니 천만에 저 만하신 것이 대단히 감축합니다.”
(정임) “그러하시오니까. 나는 그때 정신 잃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그려. 위태함을 무릅쓰고 이만 사람을 구하여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마는, 애매히 여러 날 고생을 하여 계시니 가엾은 말씀을 어찌 다 하오리까. 그러나 존함은 누구신지요?”
(죄인) “이 사람은 김영창이올시다.”
(정임) “여러 번 묻기는 너무 불안합니다마는, 내게 은인이 되시는 터에 자세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황송한 말씀으로 춘부장은 누구시오니까?”
(죄인) “은인이라 하심은 천만에 말씀이올시다. 우리 선친은 ○○ 올시다.”
(정임) “그러면 관직은 무슨 벼슬을 지내셨습니까?”
(죄인) “비서승 지내시고 초산 군수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면서 눈살을 찡그리는데 정임이는 그 말 들으매 다시 물을 것 없이 뇌수에 맺혀 있는 그 영창이라. 죽은 줄 알던 영창이를 뜻밖에 만나니 정신이 아득아득하며 기쁜 마음이 진하여 슬픈 생각이 생겨서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이 비 오듯 하는데, 영창이는 감옥서에 갇혀서 발명하기를 근심하다가 여학생 대면시키는 것이 대단히 상쾌하여 이제는 발명되겠다고 생각하더니, 그 여학생은 일본말로 검사와 수작하매 무슨 말인지 몰라 궁금하던 차에, 여학생이 조선말로 자세히 묻는 것이 하도 이상하여 그 얼굴을 살펴보니, 남문역에서 한 번 이별한 후로 십 년을 못 보던 정임의 용모가 여전하나 역시 의아하여 다른 말은 할 수 없고 다만 묻는 말만 대답하더니, 마침내 낙루하는 것을 보매 의심이 더욱 나서 한번 물어본다.
(영창) “여보시오, 자세히 물으시기는 웬일이며, 또 낙루하시기는 어찌 한 곡절이오니까?”
(정임) “나를 생각지 못하시오? 나는 이시종의 딸 정임이오.”
하며 흑흑 느끼니 철석같은 장부의 창자도 이 경우를 당하여서는 어찌할 수 없이 눈물을 보내 수건을 적시더라. 신문하던 검사는 어찌 된 까닭을 모르고 정임을 불러 묻는지라, 정임이가 영창이와 같이 자라던 일로부터 부모가 혼인 정하던 말과, 초산 민요 후에 서로 생사를 모르던 말과, 동경 와서 유학하는 원인과, 오늘 의외로 만난 말을 낱낱이 이야기하니 검사가 그 말을 들으매, 김
영창은 백백 애매할 뿐 아니라 그 사실이 매우 신기한지라, 검사도 정임의 절개를 무한히 칭찬하며 한가지 내보내고, 강소년을 잡으려고 각 경찰서로 전화도 하고 조선 유학생도 일변 조사하니 각 신문에 ‘불행위행’이라 제목 하고 정임의 사실의 수미를 게재하여 극히 찬양하였으매 동경 있는 조선 유학생이 그 사실을 모를 사람이 없더라.
정임이와 영창이가 재판소에서 나와서 같이 여관으로 돌아와 마주 앉으니 몽몽한 꿈속에 보는 것도 같고, 죽어 혼백이 만난 듯도 하여 그 마음을 이루 측량할 수 없는지라, 서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그사이 풍파 겪고 고생하던 이야기를 작약히 하다가, 횡빈 영국 영사관으로 내려가서 정임이는 스미트를 보고 영창이 구제함을 감사히 치하하고, 영창이는 공교히 정임이 만난 말을 하며 본국으로 나가서 혼례 지낼 이야기를 하니, 스미트도 대단히 신기히 여기고 혼례 준비금 삼천 원을 주는지라, 정임이는 곧 장문전보를 본가로 보내고 영창이와 한가지 발정하여 서울 남문 정거장을 가까이 오니, 한강은 용용하고 남산은 의의하여 의구한 고국산천이 환영 하는 뜻을 머금었더라.
정임이 동경으로 가던 그 이튿날 아침에 이시종 집에서는 혼인잔치 차리느라고 온 집안이 물 끓듯 하며 봉채 시루를 찐다, 신랑 마중을 보낸다 법석을 하는데, 신부는 방문을 척척 닫고 일고 삼장하도록 일어나지 아니하매 이시종 부인이 심히 이상히 여기고,
“이애 정임아, 오늘 같은 날 무슨 잠을 이리 늦게 자느냐? 어서 일어나서 머리도 빗고 세수도 하여라. 벌써 수모가 왔다.”
하며 방문을 열어보니, 정임이는 간곳없고 웬 편지 한 장이 자리 위에 펴 있는데,
(편지) ‘불효의 딸 정임은 부모를 떠나 멀리 가는 길을 임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두어 마디 황송한 말씀을 아버님,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처하여 윤강을 지키지 못하면 가히 사람이랄 것 없이 금수와 다르지 아니함은 정한 일이 아니오니까? 그러하온데 부모께옵서 기왕 이 몸을 영창이에게 허혼하였사오니 비록 성례는 아니 하였을지라도 영창의 집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터이라 어찌 영창이 있고 없는 것을 헤아리오리까. 지금 사세로 말씀하오면 위에 늙은 부모가 계시고 아래에 사내 동생이 없으매 그 정형이 대단히 절박하오나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오라. 지금 만일 부모의 두 번 명령하심을 복종하와 다른 곳으로 또 시집가오면 이는 부모로 하여금 그른 곳에 빠지게 하여 오륜의 첫째를 위반함이요, 이 몸으로써 절개를 잃어 삼강의 으뜸을 문란케 함이오니, 정임이가 비록 같지 못한 계집아이오나 어찌 조그마한 사정을 의지하여 윤강을 어기고 금수에 가까운 일을 차마 행하오리까. 그러하므로 죽사와도 내일 일은 감히 이행치 못하옵고 곧 만리붕정의 먼 길을 향하오니, 부모의 슬하를 떠나 걱정을 시키는 일은 실로 불효막심하오나 백번 생각하고 마지못하여 행하옵나이다. 그러하오나 멸학매식한 천질로 해외에 놀아 문명 공기를 마시고 좋은 학문을 배워 돌아오면 이 어찌 영화가 되지 아니하오리까. 머지 아니하여 돌아오겠사오니 과도히 근심 마옵시기를 천만 바라오며, 급히 두어 자로 갖추지 못하오니 아버님, 어머님은 만수무강하옵소서.’
부인이 이 편지를 집어 들고 깜짝 놀라며 자세히 보지도 않고 사랑에 있는 이시종을 청하여 그 편지를 주며 덜덜 떠는 말로,
(부인) “이거 변괴요그려. 요런 방정맞은 년 보아.”
(이) “왜 그리야, 이게 무엇이야……, 응?”
하고 그 편지를 받아보는데 부인의 마음에는 그 딸이 죽어서 나간 듯이 서운 섭섭하여 비죽비죽 울며 목멘 소리로,
(부인) “고년이 평일에 동경 유학을 원하더니 아마 일본을 갔나보오. 고년이 자식이 아니라 애물이야. 고 어린년 어디 가서 고생인들 오죽할라구. 고년이 요런 생각을 둔 줄 알았더면 아이년으로 늙어 죽더라도 고만두었지. 그러나저러나 아무 데를 가더라도 죽지 나 말았으면.”
하며 무당 넋두리하듯 하는데 이시종이 그 편지를 다 보더니,
(이) “여보, 요란스럽소. 떠들지나 마오.”
하고 전보지를 내어 정임이 압류하여달라고 부산 경찰서로 보내는 전보를 써 가지고 전보 부칠 돈을 꺼내려고 철궤를 열어보니, 귀 떨어진 엽전 한 푼 아니 남기고 죄다 닥닥 긁어내었는지라, 하릴없어 제 은행 소절수에 도장을 찍어 지갑에 넣더니,
(이) “여보 마누라, 나는 전보 부치고 바로 부산까지 다녀올 터이니 집 안일은 마누라가 휘갑을 잘하오.”
하고 나갔는데, 부인은 정신없이 허등지둥할 사이에 잔치 손님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마침 중매 아비 정임의 외삼촌이 오는지라, 부인이 그 동생을 붙들고 정임이 이야기를 한창 하는 판에 새 신랑이 사모관대 하고 안부를 말머리에 앞세우고 우적우적 달려드니, 부인 남매는 신부가 밤사이에 도망하였다는 말을 어찌 하며, 또 갑자기 죽었다고 핑계도 할 수 없는 터이라 어찌할 줄 모르고 창황망조하다가, 동에 닿지도 않는 말로 신부가 지나간 밤에 급히 병이 나서 병원에 가 있다고 우선 말하니 그 눈치야 누가 모르리오. 안손, 바깥손, 내 하인, 남의 하인 할 것 없이 모두 이 구석에도 몰려서서 수군수군, 저 구석에도 몰려서서 수군수군 하는데, 신부 없는 혼인을 어찌 지낼 수 있으리오. 닭 쫓던 개는 지붕이나 쳐다보지마는 장가들러 왔던 신랑은 신부를 잃고 뒤통수치고 돌아서고, 정임의 외삼촌은 즉시 신랑의 부친 박과장을 가서 보고 정임의 써놓고 간 편지를 내보이며, 사실의 수미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무수히 사과하였으나, 그 창피한 모양은 이루말할 수 없으며, 이시종은 그길로 즉시 부산을 내려가서 연락선 타는 선창 목을 지키나, 그때 색주가 서방에게 잡혀가 갇혀 있는 정임이를 어찌 그림자나 구경할 수 있으리오. 하릴없이 그 이튿날 도로 올라오는 길에 경찰서에 가서 간권히 다시 부탁하고 왔으나 정임이는 일본 옷 입고 일본 사람 틈에 끼여 갔으매 경찰서에서도 알지 못하고 놓쳐 보낸 것이더라.
이시종 내외는 생세지락을 그 외딸 정임에게만 붙이고 늙어가는 터이라, 응석도 재미로 받고, 독살도 귀엽게 보며, 근심이 있다가도 정임이 얼굴만 보면 없어지고, 화증이 나다가도 정임이 말만 들으면 풀어지며, 어디를 갔다 오다가도 대문간에서 정임이부터 찾으며 들어오는 터이더니, 정임이가 흔적 없이 한번 간 후로 정임의 거동은 눈에 암암하고, 정임이 목소리는 귀에 쟁쟁하여 정임이 생각에 곤한 잠이 번쩍번쩍 깨여 미칠 것같이 지내는데, 어느 날 아침에는 하인이 어떤 편지 한 장을 가지고 들어오며,
“이 편지가 댁에 오는 편지오니까? 우체사령이 두고 갔습니다.”
하는데 피봉 전면에는 ‘경성북부 자하동 108, 10 이시종○○ 각하’라 쓰고, 후면에는 ‘동경시 하곡구 거판정 십일 번지 상야관 이정임’이라 하였는지라, 이시종이 받아 보매 눈이 번쩍 띄어,
(이) “마누라, 마누라! 정임이 편지가 왔소그려.”
(부) “아에그! 고년이 어디 가서 있단 말씀이오?”
하며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비죽비죽 우는데 이시종이 그 편지를 떼어 보니,
(편지) ‘미거한 여식이 오괴한 마음으로 불효됨을 생각지 못하옵고, 홀연히 한번 집 떠난 후에 성사를 오래 궐하오니 지극히 황송하옵고 또한 문후할 길이 없사와 민울한 마음이 측량할 길 없사오며 그사이 추풍은 불어 다하고 쌓인 눈이 심히 춥사온데 기체후 일향 만안하옵시고, 어머님께옵서도 안녕하시 오니까? 복모구구 불리옵지 못하오며, 여식은 그때 곧 동경으로 와서 공부하고 잘 있사오나, 아버님·어머님 뵈옵고 싶은 마음과, 부모께옵서 이 불효의 자식을 과히 근심하실 생각에 잠이 달지 아니하며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하고 항상 민망히 지내옵나이다. 그러하오나 집에 있을 때에 지어주는 옷이나 입고 다 해놓은 밥이나 먹으며 사나이가 눈에 띄면 큰 변으로 알아 대문 밖을 구경치 못하옴다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문명국의 성황을 관찰하오매 시가의 화려함은 좁은 안목에 모두 장관이옵고, 풍속의 우미함은 어둔 지식에 배울 것이 많사와 날마다 퐁속 시찰하기에 착심하고 있사오니, 본국 여자는 모두 집안에 칩복하여 능히 사람 된 직책을 이행치 못하고 그 영향이 국가에까지 미치게 함이 마음에 극히 한심하옵기, 속히 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많이 공부하여가지고 귀국하와 일반 여자계를 개량코자 하옵나이다. 이 자식은 자식으로 생각지 마옵시고 너무 걱정 마시기를 천만 바라오며 내내 기운 안녕하옵시기 엎디어 비옵고 더할 말씀없사와 이만 아뢰옵나이다!
년 월 일 여식 정임 상서’
그 편지를 내외분이 돌려가며 보다가,
(부인) “아이그 고년이야, 어린년이 동경을 어찌 갔나! 고년, 조꼬만 년이 맹랑도 하지. 영감은 그때 부산서 무엇을 보고 오셨소? 경관도 변변치 못하지……. 그러고저러고 아무 데든지 잘 가 있다는 소식을 알았으니 시원하오마는, 우리가 늙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그 딸자식 하나를 오래 그리고는 못 살겠소. 기다랗게 할 것 없이 영감이 가서 데리고 오시오. 시집만 보내지 아니하면 고만이지요. 제가 마다하고 아니 가는 시집을 부모인들 어찌 하겠소.”
(이) “그렇지마는 사기가 이렇게 된 이상에 그것을 데려오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점점 모양만 더 창피하니 나중에 어찌하든지 아직 저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왁자히 소문 내지 마시오.”
부인은 단지 그 딸을 간 곳도 모르고 그리던 끝에 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바빠서 한 말인데, 그 남편의 대답이 이렇게 나가매 조초한 마음을 참고 있으나, 원래 부인의 성정이라 딸 보고 싶은 생각만 나면 그만 데려오라고 은근히 그 남편을 조르는 터이지마는 이시종은 그렇지 아니한 이유를 그 부인에게 간곡히 설명하고, 다달이 학자금 오십 원씩 보내주며, 언제든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두 내외가 비둘기같이 의지하여 한 해 두 해 지내는데, 늙어갈수록 정임의 생각이 간절하여 몸이 좀 아프기만 하면 마음이 더욱 처연한 터이라. 하루는 부인이 몸이 곤하여 안석 에 의지하였는데 홀연히 마음이 좋지 못하여,
‘몸이 이렇게 은근히 아프니 아마 정임이를 다시 못 보고 황천에 가려나 보다.’
하며 생각하고 누웠더니 서창으로 솔솔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낮잠이 혼곤히 오는데, 전에 살던 교동 집에서 옥동 박신랑과 정임이 혼인을 지낸다고 수선하는 중에 난데없는 영창이가 칼을 들고 별안간 달려들며 내 계집을 또 시집보내는 놈이 누구냐고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 이시종을 칼로 찍으니 이시종이 마루에 넘어져서 발을 버둥버둥하며,
“어…… 어!” 하는 소리에 잠을 번쩍 깨니 대문간에서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전보 들여가오, 전보 들여가오.”
하는 소리가 귀에 그렇게 들리는지라, 그때 하인은 다 어디로 갔던지 부인이 급히 나가 전보를 받아 보니 정임에게서 온 전보이라. 꿈 생각하고 정임이 전보를 받으매 가슴이 선뜩하여 급히 떼어 보니 전보지는 대여섯 장 겹치고 전문은 모두 꾸불꾸불한 일본 국문이라, 볼 줄은 알지 못하고 갑갑하고 궁금하여,
“이게 무슨 말인고? 이사이 꿈자리가 어지럽더니 근심스러운 일이 또 생겼나 보다. 제가 나올 때도 되었지마는 나온다는 말 같으면 이렇게 길지 아니할 터인데, 아마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는 말인 게지.”
하며 중얼중얼하는 때에 이시종이 들어오는지라. 부인이 전보를 내놓으며 꿈 이야기를 하는데 이시종도 역시 소경단청이라. 서로 답답한 말만 하다가 일본어학 하는 사람에게 번역해다가 보니 다른 말 아니요, 상야공원에서 봉변하던 말과 의외에 영창이 만난 말과 영창이와 방금 발정하여 어느 날 몇 시에 서울 도착한다는 말이라. 일변 놀랍기도 하고 일변 반갑기도 하여, 이시종은 감투를 둘러쓰고 돌아다니며 작은사랑을 수리해라, 건넌방에 도배를 해라 분주히 날치고, 부인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루로 나섰다 정신없이 수선하며 내외가 밥 먹을 줄도 모르고 잠잘 줄도 모르고 칙사나 오는 듯이 야단을 치더니, 정임이 입성한다는 날이 되매 남대문역으로 정임이 마중을 나가는데 정임이 타고 오는 기차가 도착하니, 그때 정거장 한 모퉁이에는 서로 붙들고 눈물 흘리는 빛이더라.
정임이는 좋은 학문도 많이 배우고 가슴에 못이 되던 영창이를 만나서 다섯 해 만에 집에 돌아와 그 부모를 뵈니 이같이 기쁜 일은 다시 없이 여기고 왕사는 다 잊어버린 터이지마는, 이시종은 좋은 마음이야 오죽할 것이나 정임이를 박과장 집으로 시집보내려고 하던 생각을 하매 정임이 볼 낯도 없을뿐더러, 더구나 영창이 보기가 면난하여 좋은 마음은 속에 품어두고 정임이나 영창이를 대할 적마다 부끄러운 기색이 표면에 나타내더니, 그 일은 이왕 지나간 일이라 그런 생각은 다 접어놓고, 일변 택일을 하고 일변 잔치를 챠리며 일변은 친척, 고우에게 청첩을 보내서 신혼 예식을 거행하는데, 예식을 습관으로 할 것 같으면 전안드 하고 초례도 하겠지마는 이시종도 신식을 좋아하거니와 신랑 신부가 모두 신 공기를 쏘인 사람이라 구습은 일변 폐지하고 신식을 모방하여 신혼식을 거행한다. 신랑은 문관 대례복에 신부는 부인 예복을 입고 청결한 예식장에 단정히 마주 선 후에 신부의 부친 이시종 매개로 악수례를 행하니, 그 많이 모인 잔치 손님들은 그런 혼인을 처음 보는 터이라, 혹 입을 막고 웃는 사람도 있고, 혹 돌아서서 흉보는 사람도 있으며, 그중에도 습관을 개혁코자 하는 사람은 무수히 찬성하는데, 한편 부인석에서 나이 한 사십 된 부인이 나서더니,
“이 사람이 아무 지식은 없사오나 오늘 혼례에 대하여 할 줄 모르는 말 서너 마디 할 터이오니, 여러분은 용서하십시오” 하고 연설을 시작한다.
(연설) “대저 신혼 예식이라 하는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비로소 부부가 된다고 처음으로 맹약하는 예식 이 아니오니까? 그런 고로 그 예식이 대단히 소중한 예식이올시다. 어째 소중하냐 하면 한번 이 예식을 지낸 후에는 백 년의 고락을 같이하며 만대의 혈속을 전할 뿐 아니요, 남편 되는 사람은 또 장가들지 못하고 더군다나 아내 되는 사람은 다른 남자를 공경하는 일이 절대적 없는 법이니, 이렇게 소중한 예식이 어디 또 있습니까? 그러하나 그 내용상으로 말하면 이같이 중대하지마는 그 표면적으로 말하면 한 형식에 지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왜 그러하냐 하면, 이 예식을 지내고라도 남편이 아내를 버린다든지, 아내가 행실이 부정할 것 같으면 소위 예식이라 하는 것은 한 희릉 되고 말 것이오. 만일 예식은 아니 지내고라도 부부가 되어 혼례식 지낸 사람보다 의리를 잘 지키면 오히려 예식 지내고 시종이 여일치 못하니보다 낫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하니 그 의리라 하는 것은 이왕 말씀한 바와 같이 남편은 또 장가들지 못하고 아내는 다른 남자를 공경치 못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그중에 아내 되는 사람의 책임이 더욱 중하니 서양 풍속 같으면 남녀가 동등 권리를 보유하여 남편이나 아내이나 일반이지마는, 원래 동양 습관에는 남편은 어떠한 외입을 하든지 유처취처하여 몇 번 장가를 들든지 아무 관계 없으나 여자가 만일 한번 실절하면 세상에 다시 용납지 못할 사람이 되니, 남녀가 동등되지 못하고 남편의 자유를 묵허함은 실로 불미한 풍속이지마는, 그는 여자가 권리를 스스로 잃는 것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은 원리적으로 여자의 직분이 아니오니까? 그러하지 마는 음분난행은 많이 여자에게서 먼저 생기는 고로 옛적 성인도 ‘열녀는 불경이부’ 라 하여 여자를 더욱 경계하셨으니, 남의 아내 된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더 중합니까? 그러하나 그 의리와 직책을 잘 지키기 장히 어려운 고로 열녀가 나면 그 영명을 천고에 칭송하는 바가 아니오니까? 그러한데 오늘 신혼식 지낸 신부 이정임이는 가히 열녀의 반열에 참례하겠다 합니다. 그 이유를 말하고자 하면, 정임이 강보에 있을 때에 그 부모가 김영창씨와 혼인을 정하여 서로 내외 될 사람으로 인정하고 같이 자라났으니, 그 관계로 말하든지 그 정리로 말하든지 그 형식에 지나가지 못하는 혼례식 아니 지냈다고 어찌 부부의 의리가 없다 하리까. 그러나 중도에 영창씨의 종적을 알지 못하니 만일 열녀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시집갔으련마는 그 의리를 지키고 결코 김영창씨를 저버리지 아니하여 천곤백난을 지내고 기어코 김영창씨를 다시 만나 오늘 예식을 거행하니 그 숙덕이 가히 열녀가 되겠습니까, 못 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하여보시오. (내빈이 모두 박수한다) 또 신혼 예식 절차로 말씀하면 상고 시대에 나무 열매 먹고 풀로 옷 지어 입을 때에야 어찌 혼인이니 예식이니 하는 여부가 어디 있으리까. 생생지리는 자연한 이치인 고로 금수와 같이 남녀가 난잠히 상교하매 저간에 무한한 경쟁이 있더니, 사람의 지혜가 조금 발달되어 비로소 검은 말가죽으로 폐백하고 일부일부가 작배함으로부터 차차 혼례라 하는 것이 발명되었는데, 그 예식은 고금이 다르고 나라마다 다를 뿐 아니라, 아까 말씀한 것과 같이 한 형식에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올시다. 그러하니 그 형식에 지나가지 못하는 예식의 절차는 아무쪼록 간단하고 편리한 것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 한데 조선 풍속에는 혼인을 지내려면 그날 신랑은 호강하지마는, 신부는 큰 고생 하는 날이올시다. 얼굴에는 회박을 씌워서 연지곤지를 찍고, 눈은 왜밀로 철꺽 붙여 소경을 만들어 앉히고, 엉덩이가 저려도 종일 꼼짝 못하게 하니 혼인하는 날같이 좋은 날 그게 무슨 못 할 일이오니까? 여기 계신 여러 부인도 아마 그런 경우 한 번씩은 다 당해보셨겠습니다마는 그렇게 괴악한 습관이 어디 있습니까? 저 신부 좀 보시오. 좀 화려하며 좀 간편합니까? 이 중에 혹 ‘저것도 예식 이라고 하나?’ 하는 분도 계실 듯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지 못한 구습을 먼저 개혁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떠한 일이든지 도저히 개량하여볼 날이 없습니다. 오늘 지낸 예식이 가히 조선에 모범이 될 만하오니 여러분도 자녀 간 혼인을 지내시거든 오늘 예식을 모방하십시오. 나는 정임의 외삼촌 숙모가 되는 사람이나 조금도 사정 둔 말씀이 아니오니 여러분은 깊이 헤아리시기를 바라오며, 변변치 못한 말씀을 오래 하오면 들으시기에 너무 지리하고 괴로우실 듯하와 고만두겠습니다.”
연설을 마치매 남녀 간 손님이 모두 박수갈채하고 헤어져 갔는데, 그날 밤 동방화촉에 원앙금침을 정답게 펴놓으니 만실춘풍에 화기가 융융하고 이시종은 희색이 만면하여 사랑에서 친구와 술 먹으며 그 딸의 사실 일장을 이야기하더라.
상야공원에서 정임이를 칼로 찌르던 강소년은 대구 부자의 아들인데, 열네 살에 그 부친이 죽으매 열다섯 살부터 외입에 반하여 경향으로 다니며 양첩도 장가들고 기생도 떼어 팔선녀를 꾸며서 여기저기 큰 집을 다 각각 배지하고 화려한 문방구는 잡화상을 벌이며, 각종의 음악기는 연극장을 설립하여놓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무궁한 행락을 하다가 못하여 그것도 오히려 부족히 여기고, 주사청루는 거르는 날이 없으며 산사강정에 아니 노는 곳이 없이 그 방탕함이 끝이 없으매, 저에 잔 십여 만 원 재산이 몇 해 아니 가서 다 없어지고 종조리 판에는 토지 가옥까지 몰수이 강제 집행을 당하니, 그 많던 계집들도 물 흐르고 구름가듯 하나 둘씩 쁠쁠이 다 달아나고 제 몸 하나만 올연히 남았다. 대저 음탕 무도하던 놈이 이 지경이 되면 개과천선할 줄은 모르고 도적질할 생각이 생기는 것은 하등 인류의 자연한 이치라. 그 소년도 제 신세 결딴나고 제 집 망한 것은 조금도 후회 없고, 단지 흔히 쓰던 돈 못 쓰고 잘하던 외입 못 하는 것이 지극히 민망하여 곧 육촌의 전답 문권을 위조하여 만 원에 팔아가지고 또 한참 흥청거리다가, 그 일이 발각되어 육촌이 정장하였으므로 관가에서 잡으려고 하매 즉시 동경으로 달아나, 산본이라 하는 노파의 집에 주인을 잡고 있는데, 아무 소관사 없이 오래 두류하는 것을 모두 이상히 여길 뿐 아니요, 경찰서 조사에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유학생인 체하고 어느 학교에 입학하였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놈 같으면 별 풍상 다 겪고 내 재물 남의 재물 그만치 없앴으니 동경같이 좋은 곳에 와서 남의 경황을 구경하였으면 제 마음도 좀 회개할 듯하건마는, 개 꼬리를 땅에 삼 년 묻어 두어도 황모가 되지 아니한다고, 학교에 입학은 하였으나 공부에는 정신없고 길원 같은 화류장에나 종사하며 얼굴 반반한 여학생이나 쫓아다니는 터인데, 정임이 학교에 가는 길이 강소년 학교에 오는 길이라. 정임이는 몰랐으나 강소년은 정임이를 학교에
갈 적 만나고 올 적 만나매 음흉한 욕심이 가슴에 탱중하여, 정임이 다니는 학교에까지 따라가 보기도 하고 정임이 있는 여관 앞까지 쫓아와 보기도 하였으나, 정임이가 대문 안으로 쑥 들어가기만 하면 한 겹 대문 안이 태평양을 격한 것같이 적막하고 다시 소식 없어 마음에 점 점 감질만 나게 되매 항상,
‘그 여학생을 어찌하면 한번 만나 볼꼬?’
생각하더니 어떻게 알아보았던지 그 여학생이 조선 사람인 줄도 알고 이름이 이정임인 줄도 알았으나, 어떻게 놀려낼 수단이 없어 주인의 딸 산본영자를 시켜 여학생 일요강습회를 조직하고, 이정임을 유인하여 회장을 만들어놓고, 자기는 재무 촉탁이 되어 정임이와 관계나 가까이 되고 면분이나 두터워지거든 어떻게 꼬여볼까 한 일인데, 사맥은 여의히 되었으나 정임의 정숙한 태도에 압기가 되어 말도 못 붙여보고 또 산본 노파를 소개하여 정당히 통혼도 하여보다가 그 역시 실패하매 이를 것 없이 분히 여기던 차에, 공교히 호젓한 불인지 가에서 만나 달빛에 비취는 자색을 다시 보매 불같은 욕심이 바짝 나서 어찌 되었든지 한번 쏘아보리라 하다가 종내 그렇게 행패하고 그길로 도망하여 조선으로 ˙나왔으나 죄진 일이 한두 가지 아니매 집으로는 가지 못하고 바로 서울 와서 변성명하고 돌아다니더니, 하루는 북장동 네거리에서 동경 있을 때에 짝패가 되어 계집의 집에 같이 다니던 유학생 친구를 만나니, 그야말로 유유상종이라고 그 친구도 역시 강소년과 한 바리에 실을 사람이라. 장비는 만나면 싸움이라더니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나면 아무것도 할 일 없고, 요리가 아니면 계집의 집으로 가는 일밖에 없는 터이라. 이때에 또 만나서,
“이 애,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술이나 한 잔씩 먹자.”
“무슨 맛에 술만 먹는단 말이냐. 술을 먹으려거든 은군자 집으로 가자.”
하며 두서너 마디 수작이 되더니 으늑하고 조용한 곳으로 찾아가노라 가는 것이 잣골 이시종 집 옆에 있는 ‘진주집’이라 하는 밀매음녀 집에 가서 술을 먹는데, 그 친구는 동경서 ‘불행위행’ 이란 신문 잡보도 보고 경찰서에서 유학생 조사하는 통에 강소년이 그런 짓 하고 도망한 줄 알고 조선을 나왔으나, 강소년을 만나매 남의 단처를 아는 체할 필요가 없어 그 일 아는 사색도 아니 하고, 계집 데리고 술 먹으며 정답고 재미있게 밤이 깊도록 노는 터이더니, 원래 탕자 잠류의 경박한 행동은 정다운 친구 술 먹으러 가재 놓고도 수틀리면 때리고 욕하기는 항용 하는 일이라. 두 사람이 술이 잔뜩 취하여 횡설수설 주정을 하던 끝에 주인 계집 까닭으로 시비가 되어 옥신각신 다투다가, 술상도 치고 세간도 부수더니, 점점 쇠어 큰 싸움이 되며 뺨도 때리고 옷도 찢으며 일장풍파가 일어나서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재판을 가자 호소를 가자 하며 멱살을 서로 잡고 이시종 집 대문 앞에서 싸우는 소리가,
(친구) “이놈, 네가 명색이 무엇이냐? 네까짓 놈이 뉘 앞에서 요따위 버르장이를 하여! 네가 요놈, 동경서 여학생 이정임이를 죽이고 도망해 나온 강가 놈이지. 너 같은 놈은 내가 경무청에 고발만 하면 네 죄는 경하여야 종신 징역이다. 요놈, 죽일 놈 같으니!”
하며 닭 싸우듯 하는 소리가 벽력같이 이시종 집 사랑에까지 들리더라. 이때는 곧 정임이 신혼식 지내던 날 저녁이라. 이시종이 사랑에서 친구와 술 먹으며 정임 이 이야기를 하는데, 상야공원에서 강소년이 행패하던 말을 막 하는 판에 모든 사람이 매우 동분히 여기는 때에 별안간 문밖에서 왁자하는 소리가 나는지라, 여러 사람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듣더니, 그 좌석에 북부 경찰서 총순다니는 사람이 앉았다가 그 싸움 소리를 듣고 즉시 쫓아나가 그 소년을 잡으니 갈데없는 강소년이라. 온 집안이 들썩들썩하며,
“아이그, 고놈 용하게도 잡혔다.”
“고놈 상판대기가 어떻게 생겼나 좀 구경하자.”
“요놈이 살인 미수범이니까 몇 해 징역이나 될꼬?”
하며 어른 아이가 모두 재미있어하다가 그 소년은 곧 북부 경찰서로 잡아가니 온 집안이 고요하고 종려나무 그림자 밑에 학의 잠이 깊었는데, 정임이 신방에서 낭랑옥어가 재미있게 나더라.
조선 습관으로 말하면 혼인 갓 한 신랑 신부는 서로 말도 잘 아니 하고 마주 앉지도 못하여 가장 스스러운 체하는 법이요, 더구나 신부는 혼인한 지 삼 일만 되면 부엌에 내려가 밥이나 짓과 반찬이나 만들기를 시작하여 바깥은 구경도 못 하는 터이라 내외가 한가지 출입하는 일이 어디 있으리오마는, 영창이 내외는 혼인 지내던 제삼 일에 만주 봉천 (滿洲奉天)으로 신혼여행(新婚旅行)을 떠난다. 내외가 나란히 서서 정답게 이야기하며 정거장으로 나가는 모양이 영창이는 후록고투에 고모를 쓰고, 한 손으로 정임이 분홍 양복 땅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치켜들었으며, 정임이는 옥색 우산을 어깨 위에 높이 들어 영창이와 반씩 얼러 받았는데 그 요조한 태도는 가을 물결 맑은 호수에 원앙이 쌍으로 나는 것도 같으며, 아침볕 성긴 울에 조안화가 일시에 웃는 듯도 하더라. 신혼여행은 서양 풍속에 새로 혼인한 신랑 신부가 서로 심지도 흘려보고 학식도 시험하며 처음으로 정분도 들이고자 하여 외국이나 혹 명승지로 여행하는 것인데, 만일 서로 지기가 상합지 못하면 그길에 이혼도 하는 일이 있지마는, 영창이 내외야 무슨 심지를 더 흘려보고 어떤 정분을 또 들이며 어찌 이혼 여부가 있으리오마는, 유람도 할 겸 운동도 할 겸 서양 풍속을 모방하여 떠나는 여행이라, 남대문 정거장에서 의주 북행 차 타고 가며 곳곳이 구경 하는데, 개성에 내려 황량한 만월대와 처창한 선죽교의 고려 고적을 구경하고, 평양 가서 연광정에 오르니, 그 한유한 안계는 대동강 비단 같은 물결에 백구는 쌍으로 날고 한가한 돛대는 멀리 돌아가는 경개가 가히 시인소객이 술 한잔 먹을 만한 곳이라. 행장에 포도주를 내어 서로 권하여 전일 평양감사 시대에 백성의 피 빨아가지고 이곳에서 기생 데리고 풍류하며 극호강들 하던 것을 탄식하다가, 곧 부벽루, 모란봉, 영명사, 기린굴 등을 낱낱이 구경하고, 그길로 안주 백상루, 용천 청유당 다 지나서 의주 통군정――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압록강상에 풍범사도와 연운죽주를 바라보더니 영창이 얼굴에 초창한 빛을 띠고 손을 들어 사장을 가리키며,
(영창) “저곳이 내가 스미트 박사 만나던 곳이오. 저곳을 다시 보니 감구지회를 이기지 못하겠소. 이 완악한 목숨은 살아 이곳에 다시 왔으나, 우리 부모는 저 강물에 장사 지내고 다시 뵙지 못하겠으니 천추에 잊지 못할 한을 향하여 호소할 데가 없소그려.”
하고 바람을 임하여 한숨을 길게 쉬며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하니, 정임이도 그 말 듣고 그 모양 보매 자연 비감한 생각이 나서 역시 눈물을 씻으며,
(정임) “그 감창한 말씀이야 어찌 다 하오리까? 오늘날 부모가 살아 계시면 우리를 오죽 귀해하시겠소. 그 부모가 우리를 그렇게 귀히 길러 재미를 못 보시고 중도에 불행히 돌아가셨으니, 지하에 가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실 터이요, 우리도 그 부모를 봉양코자 하나 어찌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자욕효이친부재요그려. 그러나 과도히 슬퍼 마시고 아무쪼록 귀중한 몸을 보전하시오.”
이렇게 서로 탄식도 하며 위로도 하다가, 즉시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을 구경하고 계관역에 내려 멀리 계관산과 송수산을 지점하며,
(영창) “이곳은 일로 전역 당시에 일본군이 대승리하던 곳이오그려. 내가 이곳을 지나가본 지 몇 해가 못 되는데 벌써 황량한 고 전장이 되었네.”
(정임) “아…… 가련도 하지. 저 청산에 헤어진 용맹한 장사와 충성된 병사의 백골은 모두 도장 속 젊은 부녀의 꿈속 사람들이겠소그려.”
(영창) “응, 그렇지마는 동양 행복의 기초는 이곳 승첩에 완전히 굳고 저렇게 철도를 부설하며 시가를 개척하여 점점 번화지가 되어가니 이는 우리 황색 인종도 차차 진흥되는 조짐 이지요.”
이렇게 수작하며 가을빛을 따라 늦은 경을 사랑하며 천천히 행보하여 언덕도 넘고 다리도 건너며 단풍 가지를 꺾어 모자에 꽂기도 하고, 잔잔한 청계수를 움켜 손도 씻더니 어언간에 저문 해는 서산을 넘고 저녁 연기는 먼 수풀에 얽혔는지라,
(영창) “해가 저물었으니 고만 정거장 근처로 돌아갑시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일찍 이 떠나가며 또 구경하지.”
(정임) “내일은 어디 어디 구경할까요? 요양 백탑과 화표주는 어디쯤 있으며, 여기서 심양 봉천부는 몇 리나 남았소? 아마 봉황성은 가깝지? 그러나 계문연수가 구경할 만하다는데 그 구경도 할 겸 이 길에 북경까지 갈까?”
하며 막 돌아서서 정거장을 향하고 오는데, 한편 산모퉁이에서 난데없는 청인 한 떼가 혹 말도 타고, 혹 노새도 타고 우 달려들며 두말없이 영창이를 잔뜩 결박하여 나무 수풀에 제쳐 매어놓고 일변 수대도 빼앗고, 시계도 떼고, 안경도 벗겨 모두 주섬주섬 하여 가지고, 정임이를 번쩍 들어 말께 치켜 앉혀놓고 꼼짝도 못하게 층층 동여매더니 채찍을 쳐서 급히 몰아가는지라, 정임이는 여러 번 놀라본 터에 또 꿈결같이 이 변을 당하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간이 콩잎만 해지며 자기 잡혀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남편이 어찌 된지 몰라 눈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득아득하여 그 마음을 지향할 수 없으나 그 형세가 불가항력이라 속절없이 잡혀가는데, 어디로 가는지 한없이 가다가 한 곳에 다다라 궁궐같이 큰 집 속으로 들어가더니, 정임이를 대청에 올려 앉히고 그 여러 놈이 좌우로 늘어서서 똥 본 오리처럼 무엇이라고 지껄이매 그 상좌에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준수한 청인이 흰 수염을 쓰다듬고 앉아서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빙글빙글 웃으며 정임을 향하고 무슨 말을 묻는 것 같으나, 정임이는 말도 알아듣지 못할 뿐더러, 그때는 놀란 마음 무서운 생각 다 없어지고 단지 악만 바짝 나는 판이라,
(정임) “나 도무지 개 같은 오랑캐 소리 몰라.”
하고 쇠 끊는 소리를 지르니, 그 청인의 옆에 앉았던 한 노인이 반가운 안색으로,
(노인) “여보, 그대가 조선 사람이오그려. 조선말 소리를 들으니 반갑기는 하구먼……, 응…… 집이 어디인데 어찌 되어 저 지경을 당하였단 말이오?”
하는 말이 조선말을 듣고 대단히 반갑게 여기는 모양이니, 정임이도 역시 위험한 경우를 당한 중에 본국 사람을 만나니 마음에 적이 위로되어,
(정임) “집은 서울인데 만주로 구경 왔다가 불의에 이 변을 만났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의복은 청인의 복색을 입었으되 그 얼굴이든지 목소리가 일호도 틀리지 않고 흡사한 자기 시아버지 김승지 같으나, 김승지는 태평양으로 떠나갔는지 인도양으로 떠나갔는지 모르는 터에 이곳에 있을 리는 만무한데, 암만 다시 보아도 정녕한 김승지요, 어려서 볼 때와 조금 다른 것은 살찍이 허옇게 셀 뿐이라. 심히 의아한 중에 약은 생각이 나서, 내가 저 노인의 거동을 좀 보고 만일 우리 시아버지는 아닐지라도 보기에 그 노인이 아마 주인과 정다운 듯하니 이 곤란한 중에 언턱거리나 좀 하여보리라 하고 혼잣말로,
(정임) “아이그, 세상에 같은 얼굴도 있지! 그 노인이 영락없이 우리 시아버님 같애.”
하며 별안간 좍좍 우니, 그 노인이 정임이 우는 것을 한참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다가,
(노인) “여보, 그게 웬 말이오? 내가 누구와 같단 말이오? 그대는 누구의 따님이 되며, 그대의 시아버님은 누구신가요?”
(정임) “나는 이시종 ○○의 딸이요, 우리 시아버님은 김승지 ○○ 신데, 시아버님께서 십여 년 전에 초산 군수로 참혹히 돌아가신 후에 다시 뵙지 못하더니, 지금 노인의 용모를 뵈오니 이렇게 죽을 경우를 당한 중에도 감창한 생각이 나서 그리합니다.”
그 노인이 그 말 듣더니 깜짝 놀라며,
(노인) “응, 그리야? 그러면 네가 정임이지?”
하고 묻는데 정임이가 그 말 들으니 죽은 줄 알던 시아버지를 의외에 찾았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정신이 번쩍 나서,
(정임) “이게 웬일이오니까! 신명이 도와 아버님을 뜻밖에 만나 뵈오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일어나 절하며 생각하니, 그제야 정작 설움이 나서 느껴가며 우는데 김 승지는 눈물을 흘리며,
(김승지) “네가 이게 웬일이냐! 이게 웬일이냐! 네가 이곳을 오다니? 그러나 영창이 소식을 너는 알겠구나. 대관절 영창이가 초산 봉변할 때에 죽지나 아니하였더냐?”
(정임) “장황한 말씀은 미처 할 수 없삽고 영창이도 이 길에 같이 오다가 이 변을 당하여 그곳에 결박하여놓는 것을 보고 잡혀왔는데, 그간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기 이를 길 없습니다.”
김승지가 그 말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안을 향하고,
(김) “마누라, 마누라! 정임이가 왔소그려. 영창이도 같이 오다가 중로에서 봉변을 했다는걸.”
하는 말에 김승지 부인이 신을 거꾸로 끌고 허등지둥 나오며,
(부인) “그게 웬 말이오? 그게 웬 말이오, 정임이가 오다니! 영창이는 어떻 게 되었어?”
하고 달려들어 정임이 손목을 잡고 뼈가 녹는 듯이 울며 목멘 소리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부인) “너는 어찌 된 일로 이곳에 왔으며, 영창이는 어디쯤서 욕을 본단 말이냐?”
하고 느끼며 묻는 모양은 누가 보든지 눈물 아니 날 사람 없겠더라.
그 상좌에 앉았던 청인은 정임이 화용월태를 보고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더니, 김승지 내외가 서로 붙들고 울매 그 거동이 보기에 이상하고 궁금하던지 김승지를 청하여 무슨 말을 묻는데, 김승지는 그 말 대답은 아니 하고 정임이를 불러 하는 말이,
(김) “저 주공에게 인사하여라. 내가 저 주공의 구원으로 살아나서 저간에 은혜를 많이 받은 터이다.”
하며 인사를 시키는지라, 정임이는 일어나서 머리를 굽혀 인사하고, 김승지는 그제야 말대답을 하더니 그 대답이 그치매 청인은 무릎을 치며 정임을 향하여 무슨 말을 하는데 그 통변은 김승지가 한다.
(청인) “당신이 저 김공의 며느님이 되신다지요? 나는 왕자인 (王 自仁)이라 하는 사람인데, 당신의 시아버님과는 형제같이 지내는 터이오. 그러나 아마 대단히 놀랐지요? 아무 염려 말고 부디 안심하시오. 잠시 놀란 것이야 어떠하리까? 오래 그리던 부모를 만나 뵈니 좀 다행한 일이 되었소?”
(정임) “각하께오서 돌아가실 부모를 구호하시와 그처럼 친절히 지내신다 하오니 각하의 은혜는 실로 백골난망이오며 이 사람은 부모를 오래 그릴 뿐 아니라 부모가 각하의 덕택으로 생존해 계신 줄은 모르고 망극한 마음을 죽어 잊지 못하겠삽더니, 오늘 의외에 만나 뵈오매 이제는 아무 한이 없사오니 어찌 잠깐 놀란 것을 교계하오리까?”
정임이는 그 왕씨를 대하여 백배사례하는데 왕씨는 일변 정임이 잡아 오던 도당을 불러 그때 정형을 자세히 조사하더니 곧 영창이를 급히 데려오라 하는지라. 그때 정임이 마음에는,
‘우리 내외가 두수 없이 죽은 판에 천우신조하여 부모를 만나고 화색을 모면하니 이같이 신기할 데는 없으나 영창이는 그간 오죽 애를 쓰리!’ 하는 생각이 나서,
‘잠시라도 마음 놓게 하리라’ 하고 명함 한 장을 내어 김승지를 주며,
(정) “아버님, 영창이를 데리러 여러 사람이 몰려가면 필경 또 놀랄 듯하오니 이 명함을 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
김승지가 그 말 들으매 그럴듯하여 왕씨와 의논하고 곧 그 명함을 주어 보내고, 정임이는 자기 내외의 소경사를 대강 이야기하니, 김승지 내외는 눈물 씻기를 마지아니하고, 왕씨도 역시 무한히 칭탄하더라.
영창이는 삽시간에 혹화를 당하여 정임이를 잃고 나무에 동여맨 채로 꼼짝 못하고 앉았으매 이 산에서는 여우도 짖고, 저 산에서는 올빼미도 울며 번쩍 번쩍하는 인광(燐光, 도깨비불)은 여기서도 일어나고 저기서도 일어나서, 남한산성 줄불 놓듯 발부리로 식식 지나가니 평시 같으면 무서운 생각도 있으련마는 그것저것 조금도 두렵지 않고, 단지 바작바작 타는 속이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게 그 밤을 지내더니, 하룻밤이 삼추같이 지나가고 동방에 새벽빛이 나며 먼 수풀에 새소리가 지껄이는데, 언덕 밑으로 어떤 청인 농부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웅얼웅얼 탄식하며 동여맨 것을 끌러주고 가는지라. 그 농부를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다시 앉아 생각하니, 정임이는 결코 욕보고 살지 아니할 터이요, 두말없이 죽은 사람이라. 그 연유를 관원에게 호소하자 하니, 그 호소가 대단히 묽은 호소가 될 터이요, 그대로 돌아가자 하니 정임이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의리가 아닐 뿐 아니요, 설령 혼자 돌아간다 한들 정임이 부모 볼 낯도 없고 장래 신세도 다시 희망할 바가 없는지라 혼잣말로,
“허……, 저간에 우리 두 사람이 그러한 천신만고를 지내고 간신히 다시 만난 것이 모두 허사가 되었구나!”
하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 양복 질빵을 끌러 막 나뭇가지 가에 치켜 거는 판에 별안간 어떤 청인 십여 명이 어젯밤 모양으로 또 달려들어 죽 돌라서는지라. 속마음으로,
‘저놈들이 또 왔구나. 오냐, 암만 또 와도 이제는 기탄없다. 어젯밤에 재물 빼앗기고 계집까지 잃었으니, 지금에는 죽이기밖에 더 하겠느냐. 이왕 죽을 사람이 죽인대도 두려울 것은 없다마는 너의 손에 우리 내외가 죽는 것이 지극히 통한하다.’
하고 생각할 즈음에, 그중 한 사람이 고두 경례하고 명함 한 장을 내어주며 금안 준마를 앞에 세우고 말에 오르기를 재촉하는데, 그 명함은 정임이 명함이요, 명함 뒤에 연필로 두어 자 기록한 말은,
“천만의외에 부모가 이곳에 계시니 기쁜 마음은 꿈인지 생시인지 깨닫지 못하겠사오며, 나도 역시 무사하오니 아무 염려 말고 급히 오시오.”
하였는지라. 그 명함을 받아 보매 반가운 마음에 기가 막혀서,
“응…… 부모가 계셔?”
하는 소리가 하는 줄 모르게 절로 나가나 마음을 진정하여 그 사리를 다시 생각하니 한편으로 의심이 나서,
‘그러할 이치가 만무한 일인데 이게 웬 말인고? 만일 이 말이 사실 같으면 희한한 별일이다.’
하고 이리저리 연구하여보니 다른 염려는 별로 없고, 그 글씨가 정임이 필적이라. 반가운 마음이 다시 나서 곧 그 말 타고 귀에 바람이 나도록 달려가더라.
김승지 내외와 정임이는 영창이를 데리러 보내고 오기를 고대하더니 문밖에서 말굽 소리가 나고 영창이가 지도자를 따라 들어오는지라. 김승지 내외는 정신없이 내려가서 영창이 목을 안고 얼굴을 한데 대며,
“네가 영창이로구나!” 하고 대성통곡하는데, 영창이는 명함을 보고 오면서도 반신반의하다가 참 부모가 그곳에 있는지라, 평생에 철천지원이 되던 부모를 만나니 비감한 마음이 자연 나서 역시 부모를 붙들고 우니, 정임이도 따라 울어 울음 한판이 또 벌어졌더라.
이때 주인 왕씨는 즉시 크게 연회를 배설하고 김승지의 가족 일동을 위로하는데, 왕씨가 영창이 손을 잡고 술을 들어 김승지를 권하며,
(왕) “김공은 이러한 아들과 저러한 며느리를 두었으니 장래에 무궁한 청복을 받으시겠소.”
하는지라, 김승지는 그 말 교대에 대답하는 말이,
(김) “여년이 몇 해 아니 남은 터에 복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습니까마는, 내가 주공의 덕택으로 살아나서 천행으로 저것들을 다시 보니 그것이 신기한 일이지요. 그러나 주공께 잠깐 여쭐 말씀은 내가 주공을 모시고 있은 지 십 년에 이 은혜는 태산이 오히려 가버우니 능히 갚을 길이 없사오며, 그간 깊이 든 정분은 차마 주공을 이별할 수 없습니다마는. 서로 죽은 줄 알던 저것들을 만나니 다시 헤어질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늙어 죽을 날을 알지 못하는 터이오니 이번에 저것들과 한가지 돌아가서 몇 날이 되든지 부자가 서로 의지하고 살다가 백골을 고국 청산에 묻고자 하오니 , 존의에 어떠하시오니까?”
하며 눈물을 흘리매 왕씨가 그 말 듣고 한참 침음하더니,
(왕) “사정이 그러하시겠소.”
하고 곧 행장을 차려 김승지와 그 가족을 전송하는데 친히 십 리 장정에 나와 김승지 손을 잡고,
(왕) “김공은 다행히 자제를 만나서 오래간만에 고국을 돌아가시니 실로 감축한 일이올시다마는, 나는 십 년 친구를 일조에 이별하니 이같이 감창한 일은 다시 없소그려.”
하며 수대를 열고 금화 일만 원을 내어주며,
(왕) “이것이 비록 약소하나 내가 정의를 표하고자 하여 드리는 것이올시다. ‘행자는 필유신’이라니 가지고 가다가 노자나 하시오.”
(김) “공은 정의로 주신다니 나도 정의로 받아 가지고 가서 노래에 쇠한 몸을 잘 자얍하겠습니다마는, 우리가 모두 늙은 터에 한번 이별하면 다시 만나기를 기약할 수 없으니 그것이 지극히 비창한 일이올시 다그려 .”
하며 서로 붙들고 울어 차마 놓지 못하다가 김승지 가족 일동은 모두 왕씨를 향하여 백배사례하고 떠나니, 왕씨는 섭섭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며 보호자를 보내 정거장까지 호송하더라.
영창이 내외는 천만의외에 그 부모를 찾으매 구경도 더 할 생각 없고, 여행도 다시 할 필요가 없어, 즉시 부모 모시고 만주 남행차 타고 서울로 돌아오며, 차 속에서 영창이는 영창이 소경력을 이야기하고, 정임이는 정임이 지내던 일을 자세히 말하니, 김승지는 자기 역사를 이야기한다.
(김) “내가 초산서 그 봉변을 당하고, 뒤주 속에 들어앉았으니 늙은이들이 그 지경을 당하여 무슨 정신이 있겠느냐? 그놈들이 떠메고 나가는지, 강물로 떠나가는지, 누가 건져 가는지 도무지 몰랐더니, 아마 그 뒤주가 강물로 떠내려가는데, 그때 마침 상마적이 물 건너와서 노략질해 가지고 가다가 그 뒤주를 만나매 그 사람들 눈에는 무엇이든지 모두 재물로 보이는 터이라 뒤주 속에 무슨 큰 재물이나 있는 줄 알았던지 죽을힘을 써서 건져 메고 갔나 보더라. 어느 때나 되었던지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니 평생에 보지 못하던 큰 집 대청에 우리 내외가 같이 누웠고, 낯모르는 청인들이 좍 둘러섰는데 어리어리하는 생각에 ‘우리가 죽어서. 벌써 염라부에 들어왔나 보다’ 하였더니, 그중 어떤 사람이 지필을 가지고 와서 필담을 하자고 하니, 눈은 침침하여 잘 보이지는 아니하고 손은 떨려 글씨도 쓸 수 없으나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야 통정을 하는데, 그 사람이 곧 주인 왕씨더라. 그 왕씨는 상마적 괴수인데 비록 도적질은 하나 사람인즉 글이 문장이요 뜻이 호화하여 훌륭한 풍류남자요, 또 천성이 지극히 인자한 사람이더라.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았던지 그때로부터 극진히 보호하여 의복 음식과 거처 범 백을 모두 자기와 호리가 틀리지 아니 하게 대접하며, 글도 같이 짓고, 술도 같이 먹고, 바둑도 같이 두고, 어디를 가도 같이 가니, 자연 지기가 상합하여 하루 이틀 지내는데, 너희들이 어찌 된지 몰라 애가 타서 한시를 견딜 수 없으나 통신은 자유로 못 하게 하는 고로 이시종에게 편지도 한번 못하고 있다가 어느 때인지 기회를 얻어 우체로 편지를 한번 부쳤더니, 다시는 소식이 없기에 너희들이 모두 죽은 줄 알고 그 후로는 주인도 놓지 않지마는, 나도 돌아갈 생각이 적어 그럭저럭 지내니 그 상하는 마음이야 어떠하겠느냐! 그러나 모진 목습이 억지로 죽지 못하고 두 늙은이가 항상 울고 오늘날까지 부지하더니, 천만 몽상 밖에 정임이가 그곳을 왔더구나. 정 임이 그곳에 온 것이 실로 다행하게 된 일이나, 정임이가 그곳에 잡혀 오단 말이 되는 말이냐!”
이렇게 이야기할 사이에 탄환같이 빠른 차가 어느 겨를에 벌써 압록강을 건너니 총울한 강산이 모두 보이는 대로 새롭더라.
이시종 내외는 정임이 부부 신혼여행을 보내매 그 길이 아무 염려는 없는 길이지마는 두 사람은 천연적 풍파를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라. 하도 여러 번 위험한 경우를 지내본 터인 고로 어린아이 물가에 보낸 것같이 근십하다가 회정해 온다는 날이 되어 잠시가 궁금하여 평양까지 내려가서 기다리더니, 그때 정임이 내외가 화기가 만면하여 오다가 이시종 내외를 보고 차에 내려 인사하는지라. 이시종은 그 두 사람이 잘 다녀오는 것을 대단히 기뻐할 때에 옆에서 어떤 사람이 별안간 손목을 잡으며,
“허……, 자네 오래간만에 만나겠네그려.”
하는데 돌아다보니 생각도 아니 하였던 김승지가 왔는지라. 마음에 깜짝 놀라서,
(이) “아! 자네, 이게 웬일인가…… 응?…… 대관절 어찌 된 일인가!”
(김) “우리가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더니 서로 죽지 않고 오늘 만난 것이 다행한 일이오. 이 못생긴 목숨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이게 내 복이 아니라 우리 며느리 덕일세.”
하며 반가운 이야기를 하고, 한편에는 이시종 부인과 김승지 부인이 서로 붙들고 울더니, 이시종과 김승지는 가족들 데리고 그 길로 곧 부벽루에 올라가서 그사이 지내던 역사와 서로 생각하던 정회를 말하며 술잔을 들고 토진간담하는데, 이때에 아아한 청산과 양양한 유수가 모두 그 술잔 가운데 비취었더라.
-끝-
2016년 6월 2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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