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들어가는 이야기-
“아들아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2003년 추석 무렵 대구에 살던 나는 울산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뜬금없는 이야기로 또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평소에 ‘점(占)’보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집 앞의 개나리 슈퍼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담소를 나누셨다. 그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불쑥 찾아오셔서 “혹시 여기서 점 보고 싶은 사람 없나?”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에 반응을 한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으셨다.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셔서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건강에 관한 것을 주로 물으셨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건강에 관해 그리 걱정하지 말라 하셨고, 어머니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조만간 자네 이사 가겠는데?”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지금 사는 집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질문은 나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아들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데 한번 봐주세요?”
1.
‘도대체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지난주 수요일(10월 25일) 오후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평소 즐겨보던 ‘디즈니 픽사’의 영화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 메시지를 명확히 파악하기 쉬웠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번 영화는 이전 영화보다도 더 해석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 역시도 내 생각과 같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영화에 대해 검색했다. 영화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유튜버를 보고, 예전에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 특집을 방영했던 영화소개 프로그램 ‘방구석 1열’까지도 복습해서 봤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상 야간 출근을 하며 일을 하는 중에도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과 이전 작품에 관한 유튜버 방송을 라디오처럼 들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를 수거했다. 깨끗이 치워지는 쓰레기처럼 어지럽던 마음도 정리되고 있었다.
2.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마히토의 설정은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의 어린 시절과 흡사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 경영자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환경, 그러나 내면은 상당히 어두웠던 점 등은 그의 자전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 마히토를 낯선 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라는 프로듀서를 묘사한 것이고, 신비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이끌어 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묘사했다. 30년간 지브리의 색채 설계를 담당했던 야스다 미치요(2016년 별세)를 포함해 지브리 애니메이터들의 모습도 비친다. 이 영화의 세계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를 빗댔다는 해석도 있다. 영화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난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 타카하타 아사호 감독처럼,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자신의 세계가 이제 끝난다고 고백한다. 또 한편으론 영화 속에서 큰할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는 모의가 진행되는데,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 세계의 모습은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최근 니혼TV 측에 경영권을 넘긴 지브리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마감을 정해 놓고 작업에 임하는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은 작업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전부 하겠다는 각오였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아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거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마히토에게 전한다. 이는 젊은 시절 타카하타 아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호 자신이 받은 가르침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백발 노장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후배 애니메이터들과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가 느낀 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심하게 갈릴지언정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는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이 내놓은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자, 한평생에 관한 자기 고백적 이야기이다(2023년 10월 25일 KBS 강푸른 기자의 기사를 발췌 재편집).
-나오는 이야기-
“자네 아들은 훗날 꽤 괜찮은 작가가 될 것이네, 아무 걱정하지 말게나.”
2003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21년 5월 아프신 두 분의 부모님을 보살피며 기록했던 이야기들이 책으로 발간되었고, 나는 18년 만에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 결국, 내 꿈을 이루어주신 분은 본인들의 몸과 마음을 희생하는 역할을 하신 부모님이다. 어머니를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할머니의 메시지가 결실을 보기까지의 세월은 감히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의 세월과 같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당신이 우주다. YOU ARE THE UNIVERSE』
함 선생님의 추천으로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이다. 이제 여든이 넘으신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의 영화의 이론적 설명서와 같은 책이다. 2003년 당시 25살이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4개씩 하며 끊임없이 꿈에 대해 갈등했다. 갈등만큼 나의 우주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난 깨닫기 시작했다. 이 우주는 내가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우주이기에 관찰자인 내가 없다면 우주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머니의 예언 중 2개는 확실히 정확했다. 아버지는 2005-6년경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하셨지만, 마지막 3년을 제외하고는 10년 넘게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셨다. 또 우리 집은 할머니의 말씀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제 마지막 예언이 남았다. 내가 괜찮은 작가가 되느냐 하는 것 말이다. 갑작스럽게 올해 1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직 생생한 어머니의 기억을 이제 뒤로하고, 또다시 나의 탑을 쌓아가야 할 시기가 왔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영화 제목이 나의 우주에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