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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설 전에는 퇴원하셔야 되는데" "물론이지, 설 전에는 퇴원하실꺼야"...
그러나 병원에서 첫 영성체하셨던 날, 이제 집으로 가시겠다며 짐을 챙겨야 한다는 어머님을 겨우 말리고나서 저녁때 "어머니, 또 올게요"라며 포옹을 해드린 것이 시어머님 생전에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발이 많이 부으신 것 말고는 특별히 불편하신데 없이 계신것 같아서 그 다음주 별 걱정없이 아이와 둘이서 대구에 2박3일 피정을 갔습니다. 피정 3일째 되는날 이른아침 5시가 넘어 남편의 떨리는 슬픈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엄마 돌아가셨어". 대구에서 서울로 운전하는 동안 흐르는 눈물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귀담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착하신 어머니 덕분에 그 흔한 시집살이가 뭔지, 명절증후군이 뭔지도 잘 모르고 살아 왔는데...아이를 출산했을 때 산후조리를 해주신다고 한달 동안 안방 어머님 자리를 내어 주시고, 약쑥을 달인후 식기전에 그 김을 쏘이면 빨리 회복된다며 매일 아침 약쑥을 달여놓고 며느리를 깨워주시던 어머니, 막내 손자에 대한 크나큰 사랑 때문에 아이 이름이 할머니 입술에서 꽃이 필정도로 예뻐해 주시던 어머니, 일을 하다가 뭐하나 빠뜨리 거나 잘못하였을 때 "까짓것, 그럴 수도 있는거지 뭐"하시며 너그럽게 봐주시던 어머니, 우리끼리 기념일 지낸 적이 없다며 남편한테 툴툴거린 철없는 막내며느리한테 생일날 봉투를 보내셨던 어머니, 그 흔한 잔소리도 안하시고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도 말 잘 듣는 아기같이 조용히 계셔서 간호사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으셨는데..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감사와 함께 눈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 ... 장례를 치르는 동안 대세를 주신 성당에서 매일 오셔서 연도 바쳐주시고 천주교식 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도와주시고 장지까지 함께 해주셨습니다.
출관하는 날 어머님의 손을 만져보니 차갑기는 하였지만 피부가 보들보들하였 습니다. 편안한 표정에 얼굴빛이 맑으신데다 입스틱을 바르신듯 입술이 연분홍빛을 띠어서 마치 주무시는 듯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얼굴에 볼을 비비며 귓가에 대고 "어머니,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기다리고 계셔요. 어머니, 고마웠어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견진 받던 날 33명 모두 똑같이 받았던, 주교님의 선물이신 나무 묵주는 제가 나중에 관속에 갖고 갈 묵주였는데 어머님 손에 감아 드렸습니다.
어머님이 첫 영성체 하신 날이 시아버님 기일이였는데 9일만에 돌아가셨고, 어머님 돌아가시는 날 새벽 남편이 꿈을 꾸었는데 밝은 이미지 가운데 어머님이 아버님 생전에 부르시던 애칭으로 아버님을 부르면서 가시기에 무슨 뜻인가하다가 부고 전화를 받았다고 하여 우리는 어머님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위안 삼았습니다. 아버님 묘지를 개장하여 화장한 뒤 수목장으로 두분을 함께 소나무 아래에 모셨는데 우연의 일치로 번지수가 어머님댁 주소 번지수와 똑같았습니다.
... ... 우리는 모두 선한 뜻을 가지고 잘 살려고하나 고쳐나가야 할 부족함들로 자주 서툴게 살고 후회하곤 합니다.다 알며 공감하는 바이기에 가족간에 더욱 우애를 다지며 사는 모습으로 어머님의 빈자리를 채워 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여부를 떠나 실속있고 참된 삶이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으로 가족들한테 다시한번 입교권면도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막내 며느리인 저에게 소중한 두가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첫번째는 기꺼이 대세를 받고 가심으로 저의 남편을 비롯하여 남은 자녀 들이 세례받을 수 있도록 권면하는데 있어서 큰 힘을 실어주시고 가셨습니다. 두번째로 저의 어머님은 제가 어머니의 며느리로 살면서 어머님이 가족이거나 이웃에 대해서 험담하시거나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것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을 만큼 마음이 깨끗하신 분이셨습니다. 그야말로 "제탓이요, 제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라는 겸손을 소소한 삶가운데 사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님은 그 마음의 깨끗하심과 선하심을 아들인 저의 남편에게 물려 주심으로 우리의 빛나는 유산이 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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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 어머니를 위해 연도 바쳐 주시고
연미사로 기억해 주신 산북성당에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시어머님도 참 좋은 분이셨는데 안나 자매님도 좋으신 시어머님을 떠나보내 드리셨네요.. 먼저 천국에 가셔서 안나 자매님과 형제님 그리고 가족분들을 위해 전구해 주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