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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22-30 세례요한의 기쁨>
오늘 본문 22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세례를 베푸셨다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실 것은 요한복음 4장 1절에는 예수님이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한데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있는 곳으로 몰려와서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기존에 세례를 베풀던 세례요한과 미묘한 갈등의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미 세례베풂으로 인해서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세례요한을 따르던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있는 곳을 빠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25절에 보시면 한 유대인과 요한의 제자가 정결예식에 대해 변론, 즉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 논쟁을 계기로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예수라는 자가 행하는 세례예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데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만 봐도 되겠냐고 항의하듯이 질문을 합니다.
26절입니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도 될까요?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요한은 먼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27절에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요한과 예수를 가리킵니다.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온 것도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고 이제 이후부터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가는 것도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하고 믿음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요한의 고백을 보고 있으면 욥이 고난 당했을 때 했던 고백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나의 소유는 없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고 맡겨 주신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욥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세례요한의 기쁨입니다. 요한이 기뻐하는 이유는 사업이 잘되서도 아니고 백성들이 몰려왔기 때문도 아니고 오히려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뻐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하나님의 절대섭리를 믿었기 때문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면서부터 번뇌와 갈등과 문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를 힘써야 합니다. 물질도 그렇고 질병도 그렇고... 죽이시든지 살리시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 뜻 앞에 순종하겠나이다.. 이런 고백으로 역설적인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요한의 기쁨 두 번째 비결은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28절입니다... 요한은 분명하게 자신은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상황에서는 메시야라 해도 백성들이 믿고 따를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메시야라고 했으면 백성들로부터는 인기와 명예를 얻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기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쁨은 진실로부터 시작됩니다. 거짓과 교만은 기쁨을 몰아냅니다.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우리는 메시야가 아니라 고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something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의 생명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요한도 이단교주가 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단교주들의 삶은 결코 기쁨, 평안과는 거리가 멉니다.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는 자신이 마치 성부, 성자, 다음 성령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여성들을 강제추행하다가 교도수 수감생활을 하다가 옥살이 중에 대장암에 걸려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천부교 교주였던 박태선도 수많은 질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문선명도 메시야로 선포했지만 폐렴합병증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시종일관 겸손하고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간에, 끝에 가서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겸손함으로 주님을 드러낼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 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30절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이 행한 의식은 세례예식이었습니다. 세례는 죽음에 동참하는 의식입니다. 죽는 이유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부활합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혈기, 교만, 욕심, 의심, 불순종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오늘도 육적인 기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적인 기쁨이 충만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시고 나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부인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는 가운데 기쁨의 열매를 맺으시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