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그렇게도 정체되던 춘천길이 새로 뚫린 경춘간(京春間) 새 도로 탓인가, 한번도 정체 없이 춘천을 향하는데 핸드폰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였더니 춘천의 '닭갈비골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주차가 걱정된다. 지하 주차장에 대고 음식점에서 주차 도장만 찍어 오면 1시간까지는 무료인 것을 몰라서였다. 그걸 모르고 주차장을 찾아 다니다가 보니 '무료 주차장'이 있어 이게 왠 떡이냐 하고 주차하고 보니 그 안내판이 우리를 감동케 한다. '춘천 시민 중 땅 주인이 춘천 번화가 명동에 있는 이 땅을 춘천시에 기증하였으니 주인의 뜻을 기려 깨끗이 쓰라' 는 안내였다. 춘천 명동 지하 공용주차장에서 우측으로 있는 무료 공터 주차장이었다.
낯선 고장을 찾아간 나그네라서 20여곳 닭갈비집 중 어느 곳이 유명한 집인가 찾다가 사람이 많은 곳에는 그만큼런 좋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들었는데 평일에다가 막 점심 시간이 지난 때라서인지 집집마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
식사 후 양수리까지 차를 몰고 운길산 수정사 입구에서 산을 오르는 길은 40˚ 정도의 가파른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이 나이에 걱정하던 차를 무사히 몰고 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나는 지금부터의 다음 이야기를 '옛날 전철 타고 혼자 운길산과 수종사에 왔던 이야기"로 바꾸고 싶다.
전철 타고 '수종사'나 '운길산'을 오실 분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운길산역(雲吉山驛)에 내려 앞산을 바라보니 산 중턱(해발 365m)에 '수종사(水鐘寺)'가 아득하게 우러러 보인다.
운길산 가는 길은 고가 전철 굴다리를 지나서 큰길을 따라 가는 길인데 거기까지의 2차선 도로에는 인도가 따로 없어서 보행자에게는 몹시 위험한 길이었다.
'조안보건소'를 지나 버스정류소 근처가 '조안면 송촌리'로 수종사(水鍾寺) 입구다.
도로 판 표지를 보니 '수정사오층석탑/ 수종사부도'라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이 두 가지가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한가 보다. 드디어 운길산의 들머리다. 거기에는 더 구체적으로 '운길산 2.8km/수정사 1.7km'라는 이정표가 거리를 친절히 안내하고 서 있다. 버스 정류소에서는 0.3km 온 거리였다.
수정사까지는 꾸불꾸불 계속되는 아스팔트 오름길이었다.
지루한 아스팔트길이 짜증날 즈음에 왼쪽 계곡을 끼고 난 등산길에 반가운 리본이 걸려 있다.
산길 등로(登路)를 가다가 보니 운길산 1.6km 지점에 있는 이정표는 '→수종사 0.78km/ →운길산정상 1.30km'를 가리키고 있다. 수정사는 하산할 때 들르기로 하고 정상을 향한다.
운길산은 육산(肉山)이어서 산세가 부드럽고 평탄하여서 서울 근교의 가족 산행지로서 적당한 산이었다.
그러나 산은 오르내림없이 계속 오름길로 힘들었지만 가다가 뒤돌아보면 양수리(兩水里)의 풍경이 팔당호와 어울려 멋진 경치를 꾸미고 있지만 낙엽 진 잡목이 안타깝게도 시야를 가리고 있다. 왼쪽에 바위지대가 계곡 높이 절벽을 이루고 있고 도중 도중 쉬어 가라고 통나무의자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수종사(水鍾寺)가 그 수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정사 뒤에 있는 산이 운길산인지 알았더니 거기서 500m쯤 한참 더 올라 가야 했다.
저 위에 널찍한 평상(平床)이 있어 저곳이 정상인가 하였더니 헬기장이 보이고 그 앞을 막아서는 더 높은 산이 있다. 여기서 0.3km 더 가야할 곳이 운길산 정상이었다.
정상의 바위 지대를 돌아가니 북으로 전망이 시작되고, 드디어 나타나는 운길산 정상 이다. 하얀 긴 타원형의 화강암의 정상석 옆에 운길산의 어원과 그 친절한 설명이 있다.
-이 운길산(雲佶山 610m)이란 이름은 구름(구름 '雲')이 걸려서 멈춘다(막힐 '佶)'하여 '운길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한자로 '雲吉山'이라고 쓰던데, 예 와서 보니 '雲佶山'이라고도 쓰는 모양이다.
운길산은 정상이 61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다른 산들처럼 그 중턱에서 오르는 산이 아니라 한강과 비슷한 고도(高度)에서 오르는 산이라서 그렇게 쉬운 산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처음 온 산이고 게다가 금년에 내가 처음 밟아보는 겨울 산의 정상이라서 감개가 무량하다. 대한(大寒)을 하루 앞둔 날씨는 봄날씨처럼 포근하였다.
'예봉산(禮峰山, 683m)' 정상이 여기서 6.0km라서 가보고도 싶었지만 해가 서산을 넘으려는 5시 경이어서 운길산 정상에서 800m 거리에 있다는 수종사(水鐘寺)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최근에 만들어 놓은 듯한 쇠말뚝에 유난히 하얀 밧줄이 수종사까지 길게 길게 이어져 있는데다가, 이 내림길은 내가 올라온 길이 아닌 처음 가는 길이어서 얼마나 상쾌하던지-. 산행길에 새로운 산길과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하여 주기 때문이다. 남양주 당국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 수종사(水鐘寺) 이야기
수종사는 그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다시 오른 쪽으로 오르는 층계 위 높은 위치에 있는데 그 높이가 만만치 않아서인지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삭도(索道)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 삭도가 풍경마저 실어올린 듯 수종사의 종각에서 굽어보는 양수리 팔당 일대의 전망은 고려조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1의 전망은 수종사의 전망이다."라고 하였다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 말 그 이상(以上)으로 전망이 출중하였다.
이 절의 초창(初創)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세종 무렵 세워진 세조의 고모인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浮屠)가 있는 것으로 유추해 보면 그 무렵보다 훨씬 이전에 창건된 절로 보인다.
이 절이 수종사(水鐘寺)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절에 올라가서 아래 양수리 쪽을 보면 그 모습이 물속에 종이 잠겨 있는 듯하다 해서 수종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음 이야기가 더 유명하다.
-세조가 만년에 지병인 피부병으로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갔다가 문수보살을 만나 그 도움으로 깨끗이 병을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還宮)하는 길이었다. 도중에 지금의 양수리인 양차강(兩次江)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밤중에 지금의 절 부근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이상히 생각하여 다음날 아침 주민을 불러 종소리의 출처를 물었더니 ‘근처에 종은 없고 종소리가 날 만한 곳이 있다면 운길산 중턱에 오래된 절터 한 곳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신하를 시켜 더 자세히 알아보게 하였더니 천년 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나한상(十八羅漢像)이 앉아 있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水鐘寺)'라 부르게 하고 '은행나무(500년) 2구루'를 하사했다 한다.
그 은행나무는 높이가 35m, 25m요. 둘레가 2m, 1.2m로, 수령이 500년의 은행나무로 자라 있었다.
그래서인가 옛날 대웅전(大雄殿) 앞 좌측 마당에 있던 종각(鐘閣)을 은행나무 바로 위로 옯겨 놓았다.
세조가 여기에 나한(羅漢)을 모시는 절을 짓게 하고 '5층석탑(경기문화재 제22호)'을 세워 그 안에 18나한을 봉안하게 하였으니 이 탑이 '수종사5층석탑'이다. 이 오층석탑은 '수종다보탑'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팔각5층석탑이다.
1939년 이 탑을 보수할 때 탑 속에서 청자항아리 사리장치와 그 항아리 속에서 금동9층탑과 은제도금육각감이 발견되었고, 1957년에도 금동불상 15구(軀)의 보물이 나와서 위에서 말한 전설의 신빙성를 더해 주고 있는데 그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경내 부도(浮屠)를 중수할 때도 고려시대의 다수의 유물(보물 제259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서 나온 3개의 유물은 귀중한 보배라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층계를 올라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약수터다.
절에 가서 약수를 받아가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 물을 받다보니 그 약수터 바로 위가 찻집 '삼정헌'이다.
삼정헌은 경내에 있는 찻집으로 낮 12시부터 소문난 수종사의 석간수로 달인 녹차를 이 절집을 찾는 분들에게 무료로 제공하여 주면서 다도(茶道)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는 곳이다.
나도 금일봉을 내고서라도 그 그윽한 차향에 묻혀 산정헌 다도실의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양수리의 모습을 굽어보며 경치에 취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서 산정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수종사 사적기' 에 의하면 이 운길산 산록에 살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추사 김정희(金正喜) 등 다선묵객(茶仙墨客)들이 당색(黨色)과 신분을 초월하여 함께 모여 담론(談論)을 나누던 곳이 바로 '삼정헌'이라 한다.
다시 오늘의 '아내와의 산행'으로 이야기로 돌린다.
가파르고 좁은 오름길을 기아 1단을 놓고 차를 몰고 오르다 보니 운길산 수종사의 멋진 일주문(一柱門)이 우릴 맞는데 거기에 주차할 공간이 있다. 거기서부터 힘들게 오르니 미륵보살이 빙긋이 웃으며 우릴 맞는다. 미륵보살를 보니 비로소 옛날에 왔던 이 길이 생각난다.
다음 우를 반가이 맞는 것이 사찰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라는 불이문(不二門)이다.
'불이문(不二門)' 이란 '둘이 아닌 하나뿐인 진리를 상징하는 문'이란 뜻의 문으로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열린다는 문으로 불이문(不二門)부터 법당인 금당(金堂)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문이다. 이문을 통과하여 층계를 오르다 보니 숲 사이에 수종사가 보이더니 수종사 전경이 나타난다.
대웅전(大雄殿)의 불상을 보니 세 부처가 수인을 각각 달리하고 있다. 수인(手印)이란 모든 불보살들이 수행 목적을 위해서 다짐하는 서원(誓願)을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 선정인(禪定印): 양손을 내려 손으로 둥근 원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생의 근심과 두려움을 없에 준다는 것으로 부처가 수행할 때 선정(禪定)에 들었음을 상징하는 수인이다./ 중앙 지권인(智拳印): 왼손집게 손가락을 뻗쳐 위로 세우고 그 첫째 마디를 오른손으로 쥐는 모습의 수인으로, 부처과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이때 오른손은 불계(佛界)를, 왼손은 중생계(衆生界)를 뜻하는 것이다.
우측 불상 우
여원인(與願印): 오른손 다섯가락을 펴서 밖을 향하여 펴서 일체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줌을 보이는 수인이고, 우측 불상
좌 시무외인(施無畏印):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는 수인으로 부처가 중생에게 무의(無依)를 베풀어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음을 뜻하는 수인이다.
대웅전 마당에 서쪽으로 언덕 위에 '
삼신각(三神閣)'과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응진(應眞)'이란 부처님의 제자 아라한(阿羅漢) 즉 '나한(羅漢)'을 뜻하는 말이니 응진전은 나한을 모신 당우란 말이다.
옛날에 있던 종각은 그 우측 은행나무 쪽으로 옮겼는데 그 은행나무와 세조에 얽힌 이야기를 오석에 새겨
놓았다. 그 은행나무 앞에 이덕형의 시가 있다. '광주 이씨 종친회'가 선조의 얼을 기리기 위한 글이었다.
수종사에서 굽어보는 북한강의 저 팔당(八堂)의 저 모습은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내려온 약 371km의 북한강 물과,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를 지나 흘러온 남한강물이 서로 만나는 일명 '두물머리'라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에 하나인 양수리 일대 모습이다. 다음은 팔당 이름에 대한 유래 중에 하나다.
-'팔당(八堂)'이란 강(江)과 함께 양쪽의 험준한 산세(山勢)가 수려하여서 옛날 하늘에서 팔선녀(八仙女)들이 내려와서 놀던 자리가 8 군데가 있었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곳에 여덟 개의 당(堂)을 지어 놓았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내 생각에는 그보다 팔당의 '八'이란 말을 '두물머리'에서 찾아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인 양수리의 모양이 '八' 자 모습이기에 하는 말이다.
수종사에서 제일 큰 감격은 운길산 정상에서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팔당호와 양수리 일대의 풍광을 수종사(水鐘寺)에서 볼수 있는 일이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옛날에는 수종사 마당을 두른 나지막한 기와지붕 너머로 굽어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나무가 가리고 있어서 ilman이 발견한 카레라 포인트는 '삼성각이나 '종각(鐘閣)' 근처였다.
옛날에는 없던 팔당호와 그 호수를 건너지르는 다리를 더한 모습은 당시보다 멋을 더하였으려니 거기에 놓인 세 다리는 자연과 인공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노 시인의 시흥(詩興)을 어찌 열지 않을 수 있을까?
운길산 산행 중 이정표마다 시 한 편씩 걸려 있었는데 정작 '운길산'이나 '수정사'를 노래한 시가 한 수도 없었으니 어찌 시 한 수를 남기고 가지 않으랴.
마음이 시킨 대로 다리가 움직이고
다리가 가는 대로 마음이 따르니
종(鍾)소리
머문 수종사(水鍾寺)
흰 구름 걸린 운길산(雲佶山)
-운길산 다시 '옛날에 왔던 수정사 이야기'로 이야기를 되돌린다. 지친 다리를 끌며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보니 불목한 거사가 있어 길을 물어 보니 답하는 소리가 어느 절보다도 친절하다.
"운길산역까지는 30 여분 걸리구요 . 일주문을 지나서면 바로 지름길이 나오지요."
산속의 겨울밤은 빨리 오는 것이어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헤드 랜턴을 켜야 했다.
우측에 커다란 미륵보살입상을 지나 더 내려가니 일주문이 어둠 속에 서 있다.
거기서 얼마 안가서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자연 숲길로 들어서는데 저 아래 운길산 전철역의 불빛이 찬란하다.
다시 들머리 표지판 앞에 섰다. 어느 산의 것보다 멋진 운길산의 이정표다. 거기에는 시(詩)가 있고, 위도(緯度) 경도(經度)도가 있다.
'우리들 산꾼에게 산은 낮에는 낙원 같은 세상이지만요, 그 낮이 지나고 밤이 오기 시작하면 세상은 우리들의 천국이랍니다.'
개 짖는 소리가 멀리 들리는 설이 가까워 오는 세모의 운길산의 밤이었다.
-2017. 5. 21 ilman의 마누라 희수(喜壽)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