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갈듯 나를 어딘가에 쓱쓱 갈고 싶다.
하는 일이 시들해지거나 개운하지 않은 입맛 같은 날이 계속될 때 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
부엌칼은 주인의 모습이나 성격을 닮은 걸까. 늘 사용하는 칼들이 하나같이 투박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썰 것 같지 않은 뭉툭함은 예리함이란 본분을 깡그리 잊은 듯 하다.
가끔 우리집의 부엌칼을 사용해 본 이들은 무딘 칼을 불편 없이 사용하는 날더러 성질머리가 좋은 건지 미련스러운 건지 모르겠단다. 하다 못해 장독 아가리에라도 쓱쓱 문질러 사용하면 될 텐데 하는 소릴 듣기도 한다.
얼마 전 작은 숫돌 하나를 선물 받았다. 신문지에 꽁꽁 싼 것이 궁금하여 부리나케 풀었더니 길쭉한 돌덩어리 하나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장에 갔다 온 어머니의 장바구니에 똘똘 뭉쳐 있던 엿 뭉치 같은 걸 떠올렸던 나는 그만 픽 웃음이 나왔다.
숫돌을 본 남편은 당장 소매를 걷어붙였다.
대체 얼마 만에 갈아 보는 거냐며 있는대로 칼을 꺼내놓고는 예전의 솜씨 뽑아내느라 팔이 아픈 줄도 모르는 듯 했다.
날 선 칼을 사용하니 요리사 솜씨가 따로 없다. 생선의 지느러미를 떼어낼 때마다 몇 번씩 칼질을 해야 했던 성가심이 단칼에 싹둑 잘려 나갔다. 무나 당근이 살풋 잘려 나갈 때의 쌈빡함에 썰다 보니 채나물이 턱없이 많아졌다.
숫돌은 남편에게만 옛 생각을 불러일으킨 게 아니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린 날의 기억들도 오르르 도마 위로 기어 나오게 해 채나물처럼 썰게 한다. 어릴 적 나는 머슴들의 칼 가는 모습을 자실아지게 바라보곤 했다. 덕이 아재는 칼 가는 데는 이골이 난 머슴이었다. 마을에서 제일 나뭇단이 높다는 소릴 들었던 그는 그것을 큰 긍지로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두 자루의 낫을 시퍼렇게 갈았다. 그만하면 되었겠다 싶은데도 실눈을 뜨고서 칼날을 햇살에 비춰보곤 했다. 칼을 가는 동안은 옆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는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때론 그런 그의 모습에서 어떤 의식을 치르는 자의 경건함 같은 게 느껴지곤 했다. 손끝에 칼날을 대어보기를 몇 번, 사그락 하는 쇳소리가 들려여만 만족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의 지게에 단단히 꽂혀 가는 시퍼런 낫을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한 충동 속에 곧잘 빠져들곤 했다. 그 새파란 칼날에 내 몸의 어딘가가 스윽 닿는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은 내 안에 악마라도 숨어 있어 나를 시험하는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낫을 대보는 거였다. 마당을 뛰어다니는 닭이나 누렁이의 펄떡거리는 목덜미, 담을 타고 오르는 수세미 덩굴이나 박 넝쿨의 연한 순 마디, 수액이 뚝뚝 듣는 생나무의 잔가지들을 척척 베어내는 상상을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의 실핏줄을 타고 찌르르 번져가던 두렵기조차 했던 그 떨림은 어린 나이의 나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래의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담 밑의 해 그늘만 따라다니던 작은 가슴속에 쌓여 있던 욕구불만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을까.
숫돌이 생기고부터 스텐칼을 치우고 조선칼만 사용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 손잡이의 편안함이 무엇보다도 따뜻한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유독 조선칼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혹 이런 느낌 때문이지 않을까.
가끔 혼자 있을 때 칼을 갈아 본다. 칼이 무디어 있을 때쯤, 잇몸이 텁텁한 듯한 일상과 부딪치곤 한다. 칼을 갈 때마다 덕이 아재의 흉내를 내 본다. 정성들여 칼을 간 날은 칼날에서인지 손끝에서인지 사그락하는 쇳소리가 들린다. 그 미세한 떨림은 흐트러져 있던 내 의식의 뜰 안에 섬광 같은 빛을 던져 나를 곧추서게 한다.
무쇠칼은 한 번씩 벼려 가면서 써야 한다는 말을 누군가에서 들은 것 같다. 시뻘건 불 속에 칼날을 달구어 두드려 주어야 더욱 단단해진다는 무쇠, 사람의 마음도 그런 담금질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흐릿해져 간다고 여겨질 때, 감성이 비대한 몸뚱일 닮아 뭉툭해졌다고 느낄 때, 무언가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는 이물질 같은 게 내 안에 생겼구나 싶을 때, 무쇠처럼 담금질을 하여 나를 흠씬 두들겨 대고 싶다.
칼을 가는 마음은 나를 벼르는 작업이다. 쓸데없는 곳으로 치닫는 관심의 촉수를 여지없이 쳐내는 일이기도 하다. 쳐낼 것은 쳐내고 자를 것은 자르고 애초에 뽑아버릴 것은 뽑아버린다. 그때마다 낫자국 지나간 논두렁처럼 매초롬한 길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숫돌은 예사 돌덩이가 아니다. 숫돌은 말이 없지만 말 이상의 무엇을 내게 알한다. 더러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때 숫돌을 내게 가져다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부지런히 자신을 갈아가며 살아가라는 뜻일 거라고,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질책일 거라고 나름대로 추측한다.
노곤한 봄볕에 앉아 누군가 쓱쓱 칼을 갈고 있다. 숫돌에 찔금찔금 물을 뿌려가며 끈적거리도록 세상살이 번뇌를 문지르고 있다. 내 안에 무성하게 돋아나는 불순한 욕망들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