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 비밀'이라는 박근혜 가방
비밀, 아니 기밀이랬어요. 위에서
얼마나 신신당부했는지 몰라요. 더 얘기하면 저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곤란해집니다. 더는 길게 설명 못 드려요. 죄송합니다.”
‘딸각’ 전화가 끊겼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한 가죽공장 사장과의 통화였다.
복
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한 바로는,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 ‘2014 한국의 밤’에서 들었던 보랏빛 뱀피
클러치(clutch·손에 드는 작은 가방)는 우리나라 중소 가방회사 V 출신 디자이너 A씨가 만든 제품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제품이 아닌, 박 대통령만을 위해 따로 몇 개월을 들여 제작한 맞춤 상품이라고 했다. A씨는 박 대통령 측근에게 의뢰를 받자마자
디자인 스케치를 혼자 했고, 솜씨 좋기로 유명한 성수동 가죽 장인을 따로 수소문해 가방을 완성했다고 한다. 제품 가격은 시중에서
팔지 않아 정확하게 매기기는 어렵지만 70만원가량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성수동 영세업체 가죽 장인과 중소기업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가방을 공식 석상에서 들었다? ‘기사’라고 판단했다. 이들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을 돕는 길이 금융지원·정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입 제품에 맞서 ‘K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겐 단비 같은 뉴스가 될 게 분명했다. 작년 3월 박 대통령이 시장에서 꺼낸 누비 지갑이
4000원짜리 ‘소산당’ 제품이라는 것이 네티즌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그 회사 제품이 모두 동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1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할 때 들었던 붉은색 소가죽 가방 역시 네티즌들이 국내 브랜드 ‘몽삭’의 50만원대 서류가방임을
밝혀내면서 판매량이 껑충 뛴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이번 보랏빛 클러치 가방을 만들었다는 당사자들은 “취재를 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오히려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기사 나가면 큰일 납니다.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부탁합니다.”
박 대통령 스타일을 취재하면서 이런 애원을 들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때 들었던 푸른색 타조 가죽 가방을 한 지하상가에 있는 영세업체가
제작했다는 제보를 듣고 찾아갔던 적이 있다. 이 가방은 한 때 국산 명품 브랜드로 오인받아 논란을 빚기도 했던 가방과 비슷한
디자인 제품이다. 논란 당시 조윤선 대변인은 “명품이 아닌 영세업체에서 주문 제작한 제품”이라고 해명했었다. 그 영세업체가
어디인지 확인하러 간 자리였다. 회사 사장은 그러나 “어떤 확인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고, 나중에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 줄도 쓰지 말아 달라, 부탁한다”고 했다. 꼭
이렇게까지 ‘비밀’에 부치고 ‘입단속’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 미국 미셸 오바마 영부인은 그가 날마다 입고 걸치는 옷과 소품의
상표명을 모두 거리낌 없이 공개한다. 그가 입는 미국 중저가 브랜드 ‘제이크루’의 카디건, ‘갭’ 티셔츠는 언론에 노출되는 즉시
품절 사태를 빚는다. 미셸의 소비가 내수 시장 활성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독일 내
소비 진작을 위해 2009년 속옷만 걸치고 한 의류 회사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호주 길라드 총리 역시 한 때 미국 디자이너인
마이클 코어스의 재킷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갔다가 ‘호주 디자이너를 홍보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나서부터는 호주 자국 브랜드인
‘미다스’ 구두를 신고, 자국 디자이너 오렐리오 코스타렐라의 옷을 즐겨 입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숨은 디자이너와 장인을 찾아내는 눈을 지녔지만 정작 대중에게 이를 알리지 않는다.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