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파트에서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석연치 않은 추락사를 했다. 사고 당일 아침 할머니는 친구집에 다녀와야겠다며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부탁을 했다.
"겉절이도 하고 찰밥 좀 지어 다오. 고무신도 말끔히 닦아 놓고 차비 하게 오늘은 용돈도 넉넉히 주렴."
평소에 안 입던 한복을 입고, 잔칫집 갈 때나 신던 고무신을 닦아 내라 해서 며느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준비를 했다.
오전 내내 목욕을 하고 나온 할머니는 며느리가 싸 놓은 음식 보퉁이를 흡족히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했다.
할머니가 외출 준비하는 것을 보고 며느리는 식탁을 치웠고 음식 준비하느라 어질러 놓은 주방을 정리했다. 그런데 주방에서 며느리가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서자 어디선가 차가운 황소바람이 얼굴에 확 끼쳤다. 칼바람이 몰려오는 곳을 향해 바라보니 바라보니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창틀 앞에는 며느리가 조금 전에 닦아 놓은 하얀 고무신과 음식 보퉁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일순 아연해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빨리 내려와 보세요. 댁의 할머니가....."
며느리 말에 의하면 노인에게는 치매 증세가 없었고, 고부간의 갈등도 없었으며, 아들 역시 효자였기에 자살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웃 사람들은 할머니가 무엇에 홀려도 단단히 홀려서 그 나이에 11층에서 뛰어내린 거라 했다.
몇 해 전 창동 아파트 살 때에도 20대 청년의 추락사를 본 적이 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단지 안의 놀이터였다.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놀이터에 나와 아이들 노는 모습을 크로키하던 청년의 창백한 얼굴에 깊은 시름이 묻어 있었다. 동네 수퍼 주인 말로는 그가 두 달 전 아파트에서 떨어져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으며 13평 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아버
지와 단둘이 사는 화가 지망생이라 했다. 그 후로 몇 번인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옆집에서 카레 냄새가 진하게 풍기던 어느 여름날, 밖에서 구급차와 순찰차 경적 소리가 요란해 나가 보니 사람들 사이로 그 청년이 콘크리트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 사이로 피에 엉긴 앞니가 처참했다. 언젠가 성남 모란장에서 보았던, 몸뚱이가 검게 그을린 채 주둥이에서 검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던 개의 참혹한 주검이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깁스를 풀고 몸이 자유로워진 청년이 지난번 떨어졌던 곳에서 다섯 층을 올라가 13층에서 떨어져 즉사한 것이다. 청년의 늘어진 사지를 흔들며 그의 늙은 아버지가 오열했다.
청년이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빨래를 널던 그의 아파트 발코니엔 주인 잃은 이젤과 캔버스가 주인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인간이 갖는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이라 한다. 친구 집 대문을 넘듯 죽음의 문턱을 넘은 할머니와 사는 게 싫어 두 번이나 죽음을 택한 청년은 두려움의 근원인 죽음의 관문을 과연 두려움 없이 통과했을까.
초자연 현상인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을 해 본 이들은 죽음이 그토록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 한다. 4차원의 세계를 3차원에서 사는 이들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또렷이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아름답고 따뜻한, 아늑한 빛의 나라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말 그대로 초자연적 현상이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곳이 새로운 세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여름, 죽음에 관한 저서만 200권이 넘는 세계적인 '죽음 전문가' E. 퀴블러 박사가 78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죽음은 휴가를 떠나는 것과 같다.'며 죽음과 친숙했던 그녀는 '난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는 낙천적이고도 기발한 유언을 남기고 유유히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연구하고 깨달으며 준비했기에 새로운 세계로 놀러 가듯 떠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향해 담담히 걸어갈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비가 오려고 날씨가 꾸물대면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해 나도 모르게 올라가 서 있는 곳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인 15층 창문 앞이다.
엊그제, 하루 종일 해가 구름에 갇혀 몇 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풍선 놓친 아이처럼, 길 잃은 어린애처럼 안절부절 못하다가 뭔가에 끌리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차고 낯선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에 납작 엎드리고 있는 자동차들을 보며 내가 서 있는 곳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3, 40m 쯤 될까.
운동 신경이 남달리 둔했던 나는 고 3 체력장 때 100m 달리기를 23초에 뛰었다. 100m의 반도 안 되는 이 높이를 뛰어내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3초? 4초?
"빨리 뛰어! 더 빨리 뛰란 말이야, 새끼야!"
환청이었을까. 배불뚝이 체육선생의 불호령이 귓전에 울리자 몸이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쏠렸다. 아찔했다. 본능적으로 창틀을 움켜쥔 손에 진땀이 베어 끈적였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모골이 송연해진 나는 혹시 누군가 내 등을 떠밀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방으로 달려가 수세미에 세제를 듬뿍 묻혀 아침부터 쌓아 놓은 그릇에 부거부걱 거품을 내며 맹렬히 설거지도 하고 내친김에 가스 레인지까지 말끔히 닦았다. 그리고 몸서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아주 갈 뻔했네. 그곳이 아무리 아름답고 따뜻한 빛의 나라라 해도 아직은 내 집이 더 아늑해. 아무도 은하수로 춤추러 가자고 손 내미는 사람 없는데 서둘러 갈 갓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