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 10,17-30
재물의 소유권과 사용권
오늘 복음에서 어떤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계명을 준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부자가 그러한 계명들을 어린 시절부터 모두 잘 지켜왔다고 답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마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등 당신의 사도들을 부르시듯
그 부자를 당신의 제자가 되도록 특별히 초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그 부자는 결국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하느님 아닌 재물이 자기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자비로운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으니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무엇도 남김없이 온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부자가 자신의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슬퍼하며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고 하십니다. 곧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행할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소유하는 것은 존중되어야 할 개인의 권리입니다.
교회 가르침도 개인의 재산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재산의 사용권은 하느님 뜻,
곧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현세적인 축복으로 내려주신 물질적인 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기꺼이 나누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재물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많이 소유할수록
너무나 쉽게 하느님 뜻에서 벗어나 자기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고, 결국에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마치 재물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이는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신앙의 여정에서 교회 공동체가
길을 잃지 않고 자유롭고 활기차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세를 늘 지녀야 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삶에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재물이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에 묻혀 지내다 보면 우리 위에 맑고 시원스런 하늘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습니다. 잠시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이 가을의 넓고 드높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지녀봅시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의 삶은 무엇을 향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예수님과 함께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 하나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면서 말입니다.
서울대교구 유승록 라우렌시오 신부
평화신문 202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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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진 스테파노 신부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 10,17-30
가진 것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겨우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한 아이가 아장아장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곁에 있던 엄마가 아이에게 “손에 들고 있는 사탕을
신부님께 선물로 드려.”라고 하였습니다. 순간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저 아이에게 사탕은 가진 것 전부일 텐데.’ 그 아이는 선뜻 사탕을 내밀었습니다.
지금도 사제관의 책장 위에는 그 아이가 준 사탕이 있습니다. 그 사탕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합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주저 없이 누군가에게 내어놓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의 우리처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을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성실히 살아온 사람이었으며 무엇이 부족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는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만큼은 내어놓을 수 없다고 여겼던 바로
그것을 그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막상 그것은 바로 그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전부였습니다. 가진 것을 내어놓는다면,
지금껏 쌓아온 나의 노력들이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만 맡기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예수님을,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고 싶었던 한 아이는 신학교에 갔고 마침내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된 이후에도 사제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압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사제가 될 수 없었고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주님을 따른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본기도)
그가 가진 것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입니다.
부산교구 서강진 스테파노 신부
202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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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래 대건 안드레아 신부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지혜서 7,7-11 히브리서 4,12-13 마르코 10,17-30
나를 따라라
예수님과 만난 어떤 사람을 그려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그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스럽게 바라보기까지
하셨습니다. 참 행복하고 복된 사람입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복되고 행복한 그 사람은 불행해졌습니다. 울상이 되었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 이유를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기회를 얻었던 그 사람은 많은 재물 때문에 그 기회를 날립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복음서는 그저 ‘어떤 사람’이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상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인 그가 재물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 있게 따랐다면 그의 면면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어떤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해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재물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의 몫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는다면, 예수님 역시도 나를 택하지 않으십니다. 울상이 되어서 슬퍼하며 떠나갔던
그 어떤 사람. 그 많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그리스도를 택하지 못했던 그 어떤 사람.
예수님은 그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왜 어려운가. 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는가. 그것은 바로 나 스스로
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보다, 하느님보다 중요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선택하지 못합니다. 나약함 때문에 하느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백배나 더 돌려받을 것이라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까지도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전부 떠나가고 없어질 것을
선택하기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그분을 향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나를 따라라.” 지나가는 것을 택할지 영원한 것을 택할지 나의 선택과 의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께 나의 선택을 내 온 삶 으로 보여드리고 알려드릴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 되길
함께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 구원을 받다(소테나이 σωθῆναι)
오늘 복음은 구원을 받는 것과 현실적 재물을 내려놓는 것을 같은 맥락에서 서술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저 세상을 향한 사변적 상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 안에서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삶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하며 이웃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받는 이들의 참모습입니다(시편 89 참조).
대구대교구 김항래 대건 안드레아 신부
2024년 10월 13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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