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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흉내만 내는 모조품 신앙 막10:17~22 2021.10.29.출처,
설교말씀 중 일부만 옮긴 글을 퍼왔습니다
예배 시작 전에, 여러분께서 뜨겁게 기도 하시는 모습 보고 제가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처럼, 바로 갈망이 있어야 돼요. 갈망!
내 신앙에 갈망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느냐?
신앙의 9할을 차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의 전부입니다.
신앙에 갈망이 없으면, 예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지식, 교육, 교제.. 다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저도, 지금 제가 오늘 여기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느냐?
한번 제가 그 힘들게 탄 비행기 안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갈망이었어요. 갈망!
처음에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고, 제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멘토를 좀 보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주 이곳, 저곳 다녔습니다.
cbs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목사님들 교회로 가서 기도도 해 보고
'저분에게 배우면 될까, 저분에게 배우면 될까?'
그러나 싸인이 쉽게 오질 않았어요.
어느 날 소문 듣고 어느 기도원을 같습니다.
이 여자 목사님은 뭐 조상의 20대 죄까지 다 파악한대요.
하도 능력이 대단하다니까
제가 그 기도원에 가서 앉아 있었는데, 그 날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이제 음악이 깔리면서, 저 옆에서 강단으로 이렇게 걸어나오시는데
세상에 카바레에서 입는 옷, 반짝이는 옷을 입고 걸어 나오는데
제가 충격을 받고
'아무리 당신이 능력이 있어도, 그 반짝이 옷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구나'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접어버리고
'하나님, 도대체 멘토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투덜투덜 하면서 제가 있던 기숙사까지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학교 기숙사에서 방송이 나와요.
오늘 감신대 기숙사에 영성 집회가 열린다는 거예요.
저는 조금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도대체 둘러보니까 신학생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아닌 거 같은..
채플을 드려도 그렇게 장난만 치는 학생들이 많았고..
또 수업시간에는 맨날 자요. 그렇게 잠만 자고..
아니면 문자(텍스트) 하고.. 그런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별 기대를 평소에 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그 날, 기숙사 영성 집회에 어느 강사 목사님이 딱 등장을 했습니다.
'우리 애들이 여기에 있군요!'
제가 속으로 무슨 첫 멘트가 '우리 애들이 여기에 있군요!' 일까?
그 날 밤, 그 박보영 목사님의 집회가
얼마나 회개의 역사가 가득했는지...
신학생 3백명이 영적으로 초토화 됐어요.
입신이 들어가고, 난리가 난 거죠.
저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제가 티슈를 안 가져갔으면 큰일날뻔한 그런 집회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요.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 가게 되었지요.제가 그토록 바라던 영적 멘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을 졸졸 좇아다니면서
그 분께 기도 받으면서, 또한 제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기도 하면서
계속 그분과 함께 하며, 배우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뭐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은사, 능력을 사모했었습니다.
정말 은사 라고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사모했었어요.
'은사를 반드시 받아야 되겠다!'
제 고양이 강원도 춘천입니다.
'내가 은사를 반드시 받아서, 내가 기도하면 이 소양강물도 (홍해처럼) 쫙 가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나는 받을 거야!'
신학교 1학년 때부터 그런 의지를 불태우고 기도했습니다.산 기도도 오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박보영 목사님의 아버님께서
한 때 과거에 한국에 성령운동을 일으켰던,
한번 한국 교회를 뒤집어 엎었던 대단한 부흥사 박장원 목사님이신 겁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너무나도 놀라서
'이게 웬일이냐? 이런 수지 맞는 일이 어디 있느냐?'
'박보영 목사님도 감사한데, 그 아버지 박장원 목사님은 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제 속에서 그 분들께 배워야 되겠다는 갈망이 얼마나 활활 불타오르는지요...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와요. 제가 공부를 못 해서가 아니고요.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때부터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와요.
어떻게 하면 그 목사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동료 신학생이 (박장원?) 목사님이 쓰신 저서를 저에게 줬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는데, 정말 꿀송이처럼 달아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책에 딱 200쪽에 보면, 그 분이 은사 받은 이야기가 나와요.
제가 그 페이지를 10번도 더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두 목사님을 섬겼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제가 지금 무슨 말씀 드리려고 하냐면
이 '갈망' 이라는 것이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갈망이 진짜 생기니까,
제가 그동안 살아오며 제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한 번에 다 뒤집혀져요.
가치관이 그냥 바뀐다고 하는 말이
그게 이론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전에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갈아엎어지는 경험들을 했는데
'내가 옛날에 이랬었나?' 싶어지면서
과거의 갈망이 끊어지고, 새로운 갈망이 생기면서 제가 달라지기 시작햇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래서, 그렇게 진짜 갈망이 생기면서
20대 후반과 30대를 마가의 다락방(기도원)에서 *당시 박보영 목사 담임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제 젊음을 다 바치게 되었어요.
하여간 저도 놀랄 정도로, 갈망의 힘을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내 안에 정말 갈망이 생기면 뭐가 달라지느냐?
한마디로 얘기해서, 주님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내 안에 '갈망'이 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그 갈망이라는 것을 성분검사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진짜 '갈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오늘 이 얘기를, 본문의 부자 청년의 예를 들어서, 설교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이었습니다.
박보영 목사님께서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평소에는 제게 전화를 거의 안 하십니다.
전화로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대大마귀 들린 사람이 있어, 네가 가서 기도해 주고 와!'
목사님은, 귀신들린 사람이 있으면, 가끔 저보고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혼자 조용히 가서 네가 기도해 주고 와라!'
그래서 제가 주소를 받아서 찾아갔는데, 서울 평창동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집에 딱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이거는 드라마 세트장 같이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어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잔듸가 예쁘고 잔잔하게 심겨져 있고..
겉보기엔 집이 너무 예쁜데, 분위기는 너무 음산한 거예요.
현관 문을 열었는데 어마어마한 부자인 겁니다.
가구 식탁 하나가 1억 5천 만원이에요. 얼마나 부자인지요.
그런데 그게 다 소용이 없었어요...
거기에 바로 그 분이 계시는 거예요.
여자 분이었는데, 우울증이 심각하게 오고, 귀신이 들려서 괴로우니
수도 없이 자기 손목을 그은 거예요.
그래서 팔목에 붕대를 감고 계셨고
눈이 부리부리한 분이었고
목소리가 아주 걸걸한 분이었습니다.
제가 딱 그분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어요.
제가 그때 산기도를 한참 열심히 할 때였는데
저는 내심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자 내가 가면 이제 저 대大 마귀도 어쩔 수 없을거야!
드리어 이제 한번 나의 진가를 보여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아주 저도 속된 말로 쫄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이 종이니 담대하게 그분 앞으로 딱딱 걸어갔습니다.
그분은 맥주를 마시고 계셨어요.
근데 저를 딱 보시더니 '아휴 귀엽게 생겼네? 너 맥주 한 번 따라 봐!'
제가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 아닙니까.
'저는 맥주 따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기도 해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곤 제 손을 그 분 머리 위에 얹어서 꽉 누르고는
열심히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축사 사역을 할 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귀신들은 굉장히 저항합니다.
그래서 좀 살짝 눈 떠서 살펴봐 가면서, 기도해야 되거든요.
잘못하면 (맞아서) 아구창이 돌아가거든요.
기도하면서 제가 눈을 살짝 떴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어요.
그 분은 눈을 뜨고 맥주를 따르고 있더라구요.
제가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지극히 제 마음이 겸손해졌고요.
제가 뭘 알았냐면, 이 분은 늘 박목사님께 전화 해서
기도해 달라고 조르고 부탁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절대 그 영혼을 놔 주지 않더라고요.이유가 뭔지 아세요?갈망은 있는데, 순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은 갈망은 있었어요.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기도받고 싶다고 얘기도 했어요.그런데 그걸로 전부였어요.더 이상 삶에서 순종의 발걸음이 뒤따르지 않은 거에요. 이것이 오늘 이 설교의 주제입니다.오늘 날 많은 성도들이, 자기도 잘 믿어 보겠다는 갈망이 있어요.그런데 그게 그냥 소원으로, 기원으로, 갈망 그 자체로 끝나고 말아요.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왜냐면 그 뒤로, 아무런 순종의 발걸음이 뒤따르지 않으니까요..그냥 갈망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말아요. 근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자기가 매우 선한 줄로 압니다.왜냐면 자기가 예수님을 갈망하고 있다는 거예요.교회와서, 예배드리면서, 기도하면서.. 갈망하는 거예요.근데 그게 갈망으로 끝나버리고,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오늘 본문의 부자 청년도 그렇고요!
잘 들어 보세요.
이 분이 기도는 받고 싶어 하는데,
귀신이 나갈 수 있는 순종은 하지 못했습니다.본인이 술을 끊겠다는 의지적 결단도 있어야 해요.
기도를 받는 중에도 계속 술을 마시고, 끊지를 못 해요.
결국 이 분은, 그 술로 인해 간경화말기 까지 갔어요.
그때 제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밀크씨슬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액기스는 간 수치를 떨어뜨려요. 아주 특효약인데
이 분이 그 엑기스를 구해서 먹다보니, 간 수치가 내려 간 겁니다.
간 수치가 내려가니까, 또 술을 계속 마시는 겁니다.
여러분 결국 그분은 간경화 말기로 소천하셨어요.
결국 그렇게 귀신에 붙들려, 결국은 그렇게 끝장난 인생을 살다 간
그분을 생각하면 제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이 일을 경험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사탄은 우리가 갈망하게 까지는 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못 하게 해요. 순종은 자기가 의지적으로 결단해서 액션으로 옮겨야 합니다. 물론 성령님이 도와주시죠. 그러나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자기 순종의 액션은 자기 책임입니다.성령님이, 목회자가, 주위에서 기도해주는 분들은 '코치' 역할은 합니다.그러나 필드에서 뛰는 선수는 자기 자신이에요. 다른 분들은 '돕는' 역할이지요.
오늘날에도 수많은 신자들이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까지는 하는데
주님을 따라서 실제로 순종의 삶을 사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결단하고, 갈망해야 하지만..그거 너무 믿지 마세요.'내가 주님을 갈망하고, 선한 일을 하려는 소원이 있으니, 나는 착한 성도야!'그건 착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갈망, 우리가 말하는 신앙이 뭔지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시간이 돼야 돼요.
내가 정말 따르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막10:17~22절에 '부자 한 사람'이 나옵니다.
마태복음에는 보면 '부자 청년'으로 나오는데
편의상 저는 그냥 '부자 청년'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선한 선생님이여, 제가 뭘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은 계명을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결국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라갑니까/ 못 따라갑니까?
못 따라가요.
여러분, 이 부자 청년을 보면 예수님을 갈망 하는 것이 있었어요.
예수님께 찾아 나오는 열심도 있지요. 그 앞에 무릎도 꿇었어요.
영생에 관해 진지한 질문도 했어요.그런데 결국은 예수님을 못 따라갑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자기 영생을 포기하고 말았어요.
여러분, 몸이 못 따라가면 그건 갈망만 갖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간절함과 저돌성을 가지고 주님께 왔지만, 순종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도 그의 입술에서는 뭘 말하고 있죠?
'나는 영생을 얻기 원합니다' :17
'나는 계명을 지켰다' 라고 말해요. :20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자청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순종인데,
하나도 순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저 주님을 찾아 나오고, 영생과 구원을 운운하고.. 나는 계명을 지킨다(나는 잘 믿는다, 죄인들과는 다르다)고 그러고.. 그렇지만 정작 자기 아킬레스 건은,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왜 왔습니까?
자기가 지금까지 했던 일을 인정받고 싶어서 온 거예요.
자기 외적인 신앙을 자랑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한 마디로 흠결 없이 살았다는 거죠.
그러나 그가 했던 고백은, 진정한 고백이 아니죠, 그건 진짜 신앙이 아니었어요.
그저 흉내낸 것뿐이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제자냐/ 무리(군중)냐?
이거은 굉장히 한 끗 차이입니다.
내가 예수를 따라가느냐/ 못 따라가느냐?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느냐 / 못 하느냐? ... 이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러 분, 정말 안타까운 얘기지만
우리 중에도 제자가 있을 수 있고/ 무리(군중)가 있을 수 있어요.
제자가 있을 수 있고/ 팬 fan 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을 돌아 보셔야 돼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지도 못하면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하는 도덕적인 우월성(교만),
-내가 교회에서 받은 어떤 직분,
-과거에 한 때 있었던 영적인 체험
이것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십니까?
이것 가지고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교회에서 어필 하려 하십니까?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만 자꾸 어필하려고 그래요...
▲제가 한국에서 사역하다가, 지금 캐나다에 오기 전에먼저 미국을 들러서 왔는데요.
제가 9년만에 미국에 다시 왔는데
예전에 9년 전에 미국 도로를 보면 되게 신기했어요.
도로도 근사하고, 길도 잘 닦아서 멋있지만, 달리는 차량들이 참 신기하더라고요.
벤츠, BMW 등 이름만 듣던 그런 차들을 실제로 보니까
멋진 지프차 등.. 아주 멋지고 다양한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금년에 9년만에 다시 미국 땅에 도착해서
도로를 쳐다보고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제는 한국에도 벤츠, BMW, 볼보, 포르쉐, 람보르니기 등 다 있어요. 미국과 똑같습니다.
지금 한국엔 심각한 병이 들었어요.
외형만 추구하는 허세병이 지독하게 들었어요.
여러분, 집은 빌라 반지하에 살아도,
차는 벤츠, BMW 를 끌고 다닙니다.
지금 한국에 얼마나 외제차가 많은지 몰라요.
청년들은 돈 조금만 벌면, 어차피 일자리도 없고, 나는 결혼도 포기한 바에야
내가 버는 족족 명품을 사겠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루이비통, 구찌 등
지금 청년만 아니에요.그보다 어린 청소년들이 심각한 거 아십니까?
예전에는 메이커 라는 게,
우리 때만 해도 '필라' 이런 거 입으면 아주 폼 좀 잡았어요.
지금은 여러분, 루이비통, 구찌, 샤넬...
거기 매장에서 줄서서, 청소년 애들이 그거를 구입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번에 미국에 와서, 한국 도로의 차들과, 미국 도로의 차들이
별 차이 없이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 사실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도 이런 허세가 있지 않나요?
영적 허세!
우리 입으로는 얼마나 천국과 지옥, 신앙, 십자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런데 과연 실제 속은 그러냐?
만약 안 그러면, 우리도 '영적인 허세'의 질병에 걸려 있는 것이죠.
자기의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지를 빨리 파악하는 사람이
주님을 분명히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겉이 그러면, 속도 그렇게 보이는 줄 알고
겉만 꾸미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오늘 본문의 부자 청년이 그런 사람이었지요!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가 어떠한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한 번 들어보죠.
길이나 공원에 수많은 커플들이 걸어다니는데
중년인데 아주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고 꼭 붙어서 걸어다닌다면
불륜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정상적인 부부는 그냥 덤덤하게 다닙니다.
실제 부부가 있어요. 겉으로 보면 부부가 함께 외출해서 다닙니다.
공식적인 자리도 같이 나갑니다. 교회도 같이 다니고요.
다들 이 부부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속마음을 들여다 보면, 이 남자는 어떤 여자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 모르게, 아내 모르게 그녀와 휴가를 떠날까? 그것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의 마음은 아내를 원하지 않고 아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생각과 상상은 항상 그 내연의 그녀와 함께 있습니다.
이제 갈 때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미 여러분 외도는 시작된 거죠.
행동으로 저지른 게 아니라도, 마음으로 벌써 외도가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 보는 데서 그 남자가, 자기 아내와 함께 다닌다고 해서
정상적인 부부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올 때는 예수님과 친한 척을 하는데
여러분의 집에서 안방이나, 여러분의 개인적 삶 속에서는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하고 가깝게 지내십니까? 신랑 예수님이 아닌 경우가 참 많습니다.
때가 되면 예배는 지금 드리고 있는데, 평소에 여러분은 머릿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주일 내내 누구를, 무엇을 생각하거나 예배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그 대상이 예수님이 아닌 경우가 참 많습니다. 위에서 든 예의 남자처럼요.
사람들은 평소에 월~토요일 사이에도각자의 신을 뭔가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대상이 예수님이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참 많다는 거죠.본문의 부자 청년은, 그 대상이 물질이었어요! 예수님은 그걸 꿰뚫어 보신 거죠.
교회 속에 있어도, 여러분 안에 지금 예수님이 친밀하게 안 들어와 계시면
지금 여러분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랑 친하십니까? 즉 평소에 누구를/무엇을 제일 많이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의 정체는 뭔가요?
사람의 근본이 바뀌지 않고, 종교적인 말과 종교적인 제스처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겉을 바꿨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상이 바뀐 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를 믿고 있지만,
부자 청년처럼 어떤 신앙적 갈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모조품 신앙으로 살아갈 수도 있어요.
▲제가 가장 연약했던 부분이 뭐냐면요,
저는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시간은 내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중요한 설교를 앞두고 있으면, 설교 준비를 해야지요.
그런데 갑자기 심방 갈 일이 생깁니다. 그럼 설교 준비를 못 하게 되지요.저는 이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급히 누가 자기를 좀 만나달라고 하면
저는 다음 날로, 제 편한 날로 미뤄버리는 사람이었어요.
무한정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제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섬기는 구나!
종으로서 전적으로 충성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은 내게 없구나!'
그러면서 제 겉과 속의 간극을 좁혀가는 훈련을 그때부터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무리 중요한 설교가 있고, 집회를 앞두고 있어도
죽어가는 암환자들을 만나야 되는 일이 있으면, 심방 가는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설교 준비 할 시간이 없어서, 그 날 밤을 꼬박 세웁니다.
그런 훈련들을 제 스스로 했어요.
제가 그러던 중이었습니다.
어느날 주님의 큰 뜻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탈북민 성도님이 저희 교회에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한 거예요.
'탈북민들도 우리 교회에 오시는 구나!'
근데 어느 날 보니까 그 분이 안 보여요. 알아봤더니 병원에 입원하셨대요.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 있는 그 병원을 향해, 제가 차를 몰고 갔습니다.
제가 그 분 앞에 딱 섰는데, 그분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여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제가 그 날, 그 분의 북한 사투리를 듣는데요,
그때부터 제 가슴에 북한을 품게 됐어요.
아 이분들이 이방나라가 아니라, 한민족 이더라고요.
피를 나눈 형제들이더라고요.
그 분이 병원 심방을 다 마치고, 기도를 해드리고 난 후에, 본인 얘기를 하세요.
자기는 북한에서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인데
자기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셨던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요.
한충렬 목사 라는 분인데
이 분은 북한과 중국 국경 사이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수도 없는 많은 탈북민들을 건져내시고, 신앙을 가르쳐 주시고
북한주민들 섬겼던 분이었대요.
자기가 그 분을 통해서 자기들은 신앙을 알게 되고, 성경을 배우고, 주님을 만났답니다. 근데 어느 날, 한목사님이 밖에 나가셨는데 행방불명 됐대요.
나중에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북한 보위부에서 이 분을 붙잡아서
그만 도끼로 머리를 찍어서 소천하게 하셨대요.
그분 돌아가시는 장례식을 봤는데, 상처 자국이 너무 깊게 남아
머리에 베레모를 씌워 놓으셨다고 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그 분이 그래요. '우리 한목사님이 우리는 살려 놓고, 당신은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제가 그날 너무 부끄러웠고요. 어떤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심방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제 제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나오게 되었죠.
제가 주차장에서 제 차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보통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뭔가 기운이 달라지면서 자꾸 울컥 하는 거예요. '왜 이렇지?'
너무 울컥 울컥하고.. 이제 보니 그게 하나님의 임재였어요.
하나님의 임재가 그 자리에 임한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울지? 눈물이 왜 나지?'
누가 보면 창피하니까, 얼른 제 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제 차에 타자마자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제 머리 위에 부어지는 거예요.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거예요.
'주님, 왜 저한테 이렇게 하십니까?'
그때 주님의 음성이 제 마음속에 들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음성을 듣고, 제 모든 사역과 목회가 달라졌어요.
주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큰덩어리 보지 마라. 한 영혼이야! 한 영혼이야!'
근데 여러분, 제가 그 음성을 듣는 데
이 음성이 뭔지를 알겠는 거예요.
핸들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내가 더 큰 거 쳐다보지 않고,
이제 한 영혼을 위해서 달려가는 그런 종이 되겠습니다.'
그 날 주님은 제게 뭘 알려 주신 거냐면
'야, 너 설교 준비 잘 해서 설교하는 것보다,
네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것보다,
네 주변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그 탈북민 성도 한 사람을 위해
네 차를 몰고 서울 변두리에 2시간이 넘도록 달려가서
그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고 오는 것.. 그게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귀한 일이야!
큰 거 쳐다보지 마! 큰 목사 되려고 하지 마!
명성 있는 목사 되려고 하지 마!
네게 맡겨진 그 한 영혼을 위해, 네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종이 되라!'
주님의 그 음성이었어요.
그때 주님 앞에, 제가 평생 잊지 못할 결단을 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님이 그때 주셨던 음성은
굉장히 무게감을 더 해 갑니다.
지금도 잊지 못해요.
항상 제가 뭘 하든 간에,
'내 이 설교가 한 영혼을 위해 집중된 것인가?
이 심방이 정말 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인가?'
지금 제가 미국과 캐나다에 왔는데
그렇게 저희 교회에 죽어가는 암환자들이 생각이 났어요.
주님이 주셨던 그 음성이 없었다면
제가 그분들에게 전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저는 그 분들께 전화를 걸고
시간을 맞춰 여기서 새벽 세 시에 전화를 했습니다.
'성도님 얼마나 힘드시냐고?'
그 한 영혼을 위해서 제가 전화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저는요. 제 자신을 보면서
제가 하는 설교랑, 제 삶이 너무 다른 것을 알았어요.
얼마나 나는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양을 사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종인지...
교만해서 변질될 수 밖에 없는 저를 주님이 사랑하셔서 어루만져 주셨어요.
이 부자 청년에게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너 수고한 거 내가 아는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네게 있다.
네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이 그 청년에게 이렇게 얘기하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그랬어요. :21
그 부자청년 사랑하셔서!
그 사람 망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너 그거 내려 놔! 그거 버려야 돼!'
'너 그러다가 지옥 갈 수 있으니까'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거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들 예배 열심히 드리고 있는데, 내가 보니 너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너는 나를 전념해서 나를 따라 와라'
주님이 제게 주신 말씀도 그거였어요. 저를 사랑하셔서!
저는 이제 처음부터 큰 것을 쳐다보고 살아가려고 애를 썼어요.
주님은 제게 그걸 내려 놓게 하셨어요...
첫댓글 아멘~
주님께서 저에게도 깨달음을 주셔서 순종하는 가운데 깨어나게 하심을 믿습니다.
아멘아멘...임진혁목사님의 이 간증은 처음듣네요. 너무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