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다공증 /성은경
몇 번을 우려내 구멍 숭숭 뚫린 뼈다귀
쓰레기통에 던지면 풀썩 부서지는 뼈의 마지막 절규
그냥 흘려들었다
근육질은 빠져나가고 낡은 뼛속에는 바람만 남아
추운 날마다 맞바람 일어 시려 오는 것도
이미 지나쳤다
무지한 방치가 실팍하게 살아온 세월에 반항하는 날
형광 칠판에 얹은 앙상한 뼈 사진
한나절 읽어 내리다가 자꾸 고개 젓는 것은
삶의 관절 억지수레 꺾어 내릴 때
통곡하지 못하는 아우성이 켜켜이 쌓여
조금씩 부식되는 평범한 순리를
여자들은 끝내 인정하기 싫었던 거야
2) 너도 여자니? /성은경 [사설시조]
첫 손자 돌이라 상다리 휘게 차려 놓고
손자 재롱 보느라 고기 한 점 집어들지 못하는 밀레니엄 아파트 25층, 모인 할망구 서넛 제각각 손자 자랑에 마른침 삼키다가 사르르 아랫배 자락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선다. 눈앞의 환기창 가득 태평양 바다가 너울거리고 파도 가져온 둥근 방향제는 머리맡에서 옛적 귀대면 들리던 고동소리를 내며 유혹하는데 잠시, 느긋해지며 변기의 물을 내리다가 앗! 놀라는 그녀,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건장한 청년이 그곳까지 숨어들어와 은밀한 곳 훔쳐보곤 바닷물 속으로 얼른 숨더란다
할망구
너도 여자니
움찔하는 가랑이
3) 말 태우기/성은경
세모의 밤 마주앉은 중년 부부
이미 2인분 홍조 짙은 사람들
추가 3인분의 말들로 왁자한 골목 집 한편
소주병 두어 개 가벼워지도록
세상을 향한다 해도 독백이 되고 말
불판에 태우고 있다
저 홀로 익어 미처 바꿀 겨를 없이
아니, 상하 뒤집어도 똑같은 말은
거침없이 타들어간다
어렵사리 올려놓은 안줏거리 한마디가
나무젓가락을 붙잡고 간신히 버텨보지만
타고 만다, 태우고 만다
자정이 지나 태워버리고 나선 문밖
차마 버릴 수 없는 말까지도
수북이 쌓인 가슴에 남은 채
타고 말아 훅~! 시커먼 연기로 빠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