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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을 위해 복원된 세계 최초의 조선 온실. 한지에 들기름을 먹여 채광창으로 썼다. ⓒ2005 시설원예시험장 |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 세계 정상의 한국 문화유산 (19) -
인류가 자연환경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2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양에서는 BC 221년 진시황제 시대에 종이를 이용한 온실이 있었다고 하며,
서양에서는 BC 42년 로마의 네로황제가 운모를 이용하여 온실을 만들어
작물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 온실은 단순히 자연광 에너지를 이용한 것으로
오늘날 온실의 분류로는 수동형 온실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인위적으로 온실 내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능동형 온실은 훨씬 이후에 나타나게 되는데,
네덜란드 원예학자 무이젠버그가 쓴 『온실의 역사(A history of greenhouses)』를 보면
1619년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난로를 설치한 초보적인 온실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 뒤 1691년 영국에서 온실 내에 온풍난방을 설치한 것이
과학적 난방 온실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1년 온실의 역사를 수정시킬 중요한 자료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한국의 시민단체 중의 하나인 우리문화가꾸기회의 한 회원이
서울의 고서점에서『산가요록』이라는 옛날 책 한 권을 구입하였다.
고서 수집이 취미인 그는 이 책이 워낙 오래 된 책 같아서 무조건 샀다고 한다.
그런데 궁중음식연구가 한복려씨와 원예학자 김용원 교수에 의해
이 책이 세종 때인 1450년경 의관 전순의가 편찬한 것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서로 밝혀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의 내용 중에서
1619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온실보다 170년 앞서는
과학적 온실 설계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산가요록』 중 “겨울철 채소 기르기(冬節養菜)”라는
별도의 장에 소개된 온실 설계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임의의 크기로 온실을 짓되, 삼면을 막고 기름종이를 바른다.
남쪽 면은 전면에 살창을 하고 기름종이를 바른다.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잘 처리하고
구들 위에 한 자 반 정도의 높이로 흙을 쌓고 봄채소를 심는다.
저녁에는 바람이 들지 않게 하며 날씨가 아주 추우면
반드시 두꺼운 비개(오늘날의 멍석과 같은 농사용 도구)를 덮어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철거한다.
날마다 물을 뿌려 주어 흙이 마르지 않게 한다.
담 밖에 솥을 걸고 둥글고 긴 통으로 방과 연결해
저녁마다 불을 때서 솥의 수증기로 방을 훈훈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온실은 매우 과학적인 방식으로
작물 생장에 접합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먼저 한국의 특징적 난방 방법인 구들을 사용해 열을 공급하고,
한지에 기름을 발라 채광을 통해 실내온도를 높이면서
통풍과 습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구들과 창호지만으로 온실 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마솥을 걸고 물을 끓여 그 수증기를 실내로 유입시켜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올려주는 복합적인 효과를 거두도록 한 것이다.
원예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이 온실에 대해 특히 감탄한 부분은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통해 온실 내의 공기를 덥히는 동시에
구들을 통해 작물이 자라는 흙 자체의 온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온실 내의 공기를 따뜻하게 한다 하더라도
땅의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으면 식물의 발아와 생장이 늦어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미 15세기에
식물의 뿌리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는
현대적 원예 방법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산가요록』에서 최초의 능동형 온실 기록을 발견한 전문가들은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2002년 2월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에서 15세기의 온실을 복원했다.
복원한 온실은 실내 넓이가 약 8평이며
남쪽으로 경사진 지붕을 만들어 햇볕이 최대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온실을 완성한 후 김용원 교수가
2002년 3월 3일 무·상추·배추·달래·시금치·근대 등 6종의 채소를 파종하고
20일간 온실의 온도 및 습도를 조사했다.
파종 당시 외부 흙 온도는 8.6도로 작물의 생육에 적합하지 않는 낮은 온도였으나,
온실 내부의 흙 온도는 26도로 작물 생육에 적합한 온도였다.
파종 후 3일 만에 무와 상추의 싹이 나고,
나머지 채소들도 성공적으로 싹이 나서 2주 후에는 무성하게 자라났다.
채소뿐만 아니라 수국과 배나무도 화분에 담아 온실에 넣어 놓았는데,
바깥보다 2개월 정도 꽃이 빨리 피었다.
20일 동안 온실내의 부위 별 온도 변화를
6시, 13시 ,18시 ,22시 등 매일 4회에 걸쳐 측정한 결과
구들 위의 지중온도는 지속적으로 섭씨 20도 이상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실내 공기 온도도 섭씨 10도 이상으로 유지되었다.
이는 밖의 기온보다 평균 10도 이상 높은 수치였다.
특히 야간에는 온실 밖의 온도와 온실 내 지중온도의 편차가 25도 이상이나 되어
온실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식물 재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습도의 경우
한낮에 해당하는 13시에는 40% 정도였지만
나머지 시간대의 습도는 작물 생장에 적합한 70%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온실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피복자재의 선택이다.
온실의 피복자재는 태양광선의 투과율이 높고,
온실 내부로 들어온 광에너지가 온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장파장(열선)의 투과율이 낮아야 보온성이 좋다.
또한 투과된 광선이 산란되는 비율이 높아야 하며,
인장강도와 인열강도가 높아야 한다.
온실 안팎의 온도 차이로 생기는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피복을 타고 흘러내려야 한다.
차가운 물방울이 그대로 식물에 떨어지면
상처가 생기고 병원균이 침투하는 등
식물생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름먹인 한지는 이러한 기능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
즉 기름 먹인 한지는
섬유의 조직 사이에 기름 분자가 채워져
빛을 굴절시키지 않고 바로 투과시킴으로써 투광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기름을 먹이지 않은 일반 한지나 비닐보다
인장강도와 인열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기름먹인 한지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흘러내렸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의 전희 박사는
2002년 8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 26차 국제원예학회에서
『산가요록』의 발견과 복원된 온실에 대해 발표하여
세계 학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마침 원예학 분야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온실 관리와 경영(Greenhouse Operation & Management)』의 저자인
미국 노쓰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폴 넬슨(Paul Nelson)교수가
이 학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이 학회에서 15세기 한국의 온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온실 관리와 경영』개정판(6판)에 이 내용을 소개하여
세계의 온실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고 말했다.
고서점 한구석에 파 묻혀 수 백 년 동안 잊혀져 있던 책 한 권의 발견으로
세계의 온실 역사는 그 잃어 버렸던 소중한 한 페이지를 되찾게 되었다.
동궐도의 창순루 모습 ⓒ구글이미지
겨울철 대전이나 왕대비전에 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 운영되었던 정조 때 온실
복원된 창순루의 모습 ⓒ 이인옥
kbs 한국의 유산-조선온실 영상 캡처하신 것- 출처
http://cafe.daum.net/nicedayjhs/HOgD/39?docid=1OYuZ|HOgD|39|20120210193445&q=%C1%B6%BC%B1%BF%C2%BD%C7
출처 금강경독송회 2012년 2월회보
http://cafe.daum.net/diamondyouth/1fQ/638
첫댓글 오오오오오오오우와오아와와와!!!!!!!!!!!!!!!! 역시.ㅋㅋ 온돌은 여기서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우리조상님들천재인거같음진짜...하...나란냔은 왜 그런 지혜를 받지못한걸까..........
정말 멋있다. 지금 우리는 500년 뒤에 후손들로부터 멋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업적을 만들고 있는가... 란 생각도 드네
나나나 스크랩해감
ㅠㅠ 진짜 우리나라 쩔어
옛날이 지금보다 더 놀랍고 과학적임ㅎㄷㄷ
진짜 우리나라 대단하당 이걸 왜 우리만 아는가!!!!!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