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골로새서 3 : 12-17)
어느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서 불이 났습니다.불은 세탁소 전부를 태웠고, 며칠이 지난 후 아파트 벽보에는 '사과문' 하나가 붙었다.... 사과문에는 불이 나 옷이 모두 타서 죄송하다는 이야기와옷을 맡기신 분들은 옷 수량을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공고가 붙은 후, 한 주민이 공고문 아래에 글을 적고 갔습니다. 당연히 옷 수량을 적어 놓은 글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는 양복 한 벌인데 받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옷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세요' 그 주민 말 한마디에 아파트 주민들이 속속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누군가 금일봉을 전했고, 금일봉이 전달된 사실이 알려지자 또 다른 누군가도 또 다른 누군가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얼마 뒤 아파트 벽보에 또 한 장의 종이가 붙었습니다.다름 아닌 '감사문' 이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월남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어렵게 일궈 온 삶이었는데, 한순간에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이 저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저는 다시 일어 설 수 있었습니다. 꼭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도울수 있고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된 사람이 실천해야 할 덕목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갓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 모두 다 예수그리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새사람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로 새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덕이 무엇이 있습니까?
1.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며 용서합니다.(12절)
본문 12절에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고”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안에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자녀이며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기독교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도 되고 안 베풀어도 되는 선택적이고 상대적인 덕목으로 간주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베풀어야 하는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덕목으로 간주합니다. 오늘본문에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란 단어들이 차례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긍휼”과 “용서”라는 말이 차례로 나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는 몇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무한대로 하여야 하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마 18:22). 예수님께서는 또한 “용서”와 “사랑”의 대상이 이웃에게 국한하지 않고 원수에게까지 미쳐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용서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합니다.
형과 동생이 디지게 싸웠습니다. 그것을 보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성(형)이다.”역시 한 살이라도 더 먹은 형이 먼저 손을 내밉니다.“야! 미안하다.”아마도 동생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면 형의 스타일은 더욱 구겨졌을 것입니다. 동생은 원래 동생이니 동생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상관없겠지만 형은 ‘동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형이다”는 말은 사실은 형이 먼저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있는 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합니다.(15-16절)
본문 15절에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절에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 말 중에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방법은 '너 죽고 나 죽자'는 것입니다.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것입니다. '나 죽고 너 살라'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우리 인간사에 들어왔습니까? 삶에 평안히 깨어 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평강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여기 평화라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팍스(pax)와 살롬(shalom)입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였는데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쟁취하여 얻는 평화입니다. 살롬은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쟁취하여 얻는 평화는 영원히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져 있는데, 그 구멍은 세상의 쾌락이나 물질 욕으로 채울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불만족과 실망으로 끝납니다. 그 구멍 뚫린 빈자리에 하나님을 모실 때에만 채울 수 있고,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든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내가 손해보면 어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셨지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 그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목하며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늘도 바라보세요.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며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찬양으로 표현하듯이, 가족간이나 이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3.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합니다.(17절)
본문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런데 먼저 용납하고 서로 이해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1) 천국 소망으로 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여기가 끝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미래는 현재가 모아진 합산의 결과입니다. 오늘을 불성실하게 살면 미래는 비참해집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그 나라를 사모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려고 애를 씀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천국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불행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손해 볼 줄도 알고, 억울한 일도 참을 줄 알고, 양보할 줄도 아는 것은 지금 여기가 끝이 아니라 천국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죄에 죄를 더하고 살면서도 죄인지 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함께 죄 가운데 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천국 소망, 미래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때리고 구덩이에 밀어 떨어뜨리고, 노예로 팔면서도 죄를 모르고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찢어 염소피를 묻혀서 아버지를 속이면서도 죄책감이나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셉은 천국 소망이 있기에 힘듬과 억울함을 견디며 마침내 그 날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의 소망 가운데에서 그 아픔의 골고다와 십자가를 견디어 내십니다.
오늘 내게도 이 천국 소망이 있음에 감사가 넘침을 고백하게 됩니다.
2) 드림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내 것만을 챙기는 이기심과 욕심의 시대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생각하고 실천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묵묵히 드림의 삶을 이어갑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묵묵히 나눔의 삶을 이어갑니다.
원래 사람은 쌓아 놓고 또 쌓아 놓아도 또 쌓아놓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족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드림과 나눔의 삶을 시도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더 감사하면서 더 뜨겁게 찬양하며 고백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 주머니 채우며 살기 보다는 내 주변에 함께 살아가라고 맺어주신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 되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과 형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소득의 대부분을 드림과 나눔에 사용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부터 왔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 지어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시는 주님을 믿기에 또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를 표현합니다.
드림과 나눔의 삶이 내 웃음을 이어가게 함을 알기게 순종하고 싶습니다.
3)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며 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닥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생각하며 준비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기에 그분의 말씀 따라서 지혜를 구하며 미리 준비하며 살려 합니다.
급한 일 생기지 않고, 황당한 상황 앞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영적인, 재정적인, 체력적인, 관계성에 있어서도 잘 준비를 해야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뒤처지지 않고 끌려가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준비하며 살도록 이끌어주심에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감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새사람이 되어서 가져야할 덕은
그리스도의 옷입고 용서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하게 삽니다.
다 주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천국소망을 갖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드리고 나눌수 있어 감사하니다.
차근 차근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감사는 표현할 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