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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의 말은 진리어 인데 범사라는 것은
중생들이 살며 유지하는 사바세계를 말 합니다.
이 사바세계를 관리하고 총괄하는 경지에 든 자를 대범천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의 행위에 왜 예수께서 감사하라고 하셨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장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내용은 이와 같읍니다.
자선 과 공양의 차이를 아십니까?
자선은 베푸는 착함을 의미하고,
공양은 바치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모우는 것이 공양입니다.
스님네나 부처님께서 공양할 기회를 얻고 공양하는 진정성의 정성을 바치므로서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선을 베푸는 것은 감사한 마음은 없지요 베푸는 심정이니까요.
공양을 바치는 것과 전혀 다르며 천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십일조는 공양입니다. 자선이 아닙니다.
공양을 바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기때문에 감사하고 헌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다는 것은 이 뜻입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주시는 것이 감사하다는 의사표시입니다.
크리스마스날 구세군이 자선냄비를 길거리에 전시하고 종을 칩니다.
자선이 아닙니다, 공양을 하는 것이지요.
공양을 하면 불우한 처지에있는 분들을 위하여 같음 심정을 나누워서
공헌하는 것이므로 자선냄비라는 것에 헌금하면 복을 받는 것이니
자선 하면서도 감사 한 것이므로 공양냄비가 되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복음냄비 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항상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번자는 자신이 잘해서 돈 번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을 받아서
돈을 많이 벌었으니 공양하면 더 많이 복을 받는 것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게 헌금도 하고 보시도 하고 사랑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아멘-
범사에 감사하라 는 뜻은 이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의식주를 위하여 그냥 막 살아가는 것이라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에 따라 계율을 행하며 평상의 생활을 활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한 것입니다, 복을 받는 기회를 항상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믿는 분들도 이렇게 알아지니고 믿어 지녀야 복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항상 부족하고 모순적입니다, 충분하거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말 합니다.
적적부동하고 적멸한 상태의 영의 모습은 부동지 이고
모순과 착의 탐진치가 있을때 바퀴가 굴러가듯 회전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중생의 사바세계의 삶이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음으로 항상 순환하고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성인의 가르침에 의하여 일상을 생활하고 영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식과 경험이 옳다고 거기에 의존하는 것은 이미 나락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인께서 나타나지 않아도 될 세상이라면 나타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이 단락을 확실하게 믿고 성인의 출현과 가르침에 대하여 하루라도 잊지않고 신앙생활을 하며
경전을 독송하거나 암송하거나 기도 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바세계에 살면서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대웅전에서
뵙고 절을 하면서 시주를 함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도리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지녀
야 하는 것입니다. 공양할 수 있는 인연은 도리어 축복입니다.
공양하면 반드시 복이 따라 오기 때문인것입니다.
공양과 자선, 의 차이는 이러한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 청정적멸한 도 를 깨치면 대범천왕 세계에 들어서는 경지가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욕계에서도 색계가 있고 무색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욕계와는 떨어져 있는 저 멀리에 있는 세계를 말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본 자리는 어떠한 까막득한 공간넓이라도 항상 동시적인
공간의 여부에 관련하지 않고 시간에도 상관이 없는 것이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일년내내 농사지으시고 몇가마 아니되는 쌀 이라 식구들이 다 해소해도 모자랄 쌀을
공양미로 하여 사찰에 힘들게 올라 와서 공양하는 마음은 바로 공양을 하기 위한 것이지
자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것임을 되새기고 감사함과 축복을 받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시주는 공양이라는 사실, 십조헌송은 공양이라는 사실로 복을 받을 수 있음이요
복음을 실천하는 당연사 이므로 감사한 마음올 바치는 것입니다.
대 범천왕 세계는 바로 이러한 공덕이 쌓여 선남자 선여인이나 양이 되면
성인류에 들어서는 첮 단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게송
爾時에 尸棄大梵王이 承佛爲力하사 普觀一切梵身
이시 시기대범왕 승불위력 보관일체범신
이때에 주검을 버린 대범왕은 (생노병사를 이미 벗어남) 부처님의 위력을 타시어 일체의 사바세계
몸들을 다 관하여,
天輔天,梵衆天,大梵天衆하고 而設頌言하니라
천보천,범중천,대범천중 이설송언
하늘을 도우는 천보천, 범천의 대중들을 살피는 범중천, 큰 범천의 하늘 대중 을 다 보고 이에 게송을 설하느니라.
참고) 계송의 頌 은 쉴 송字 입니다, 마음이 쉬어져야 게송이 나오는 것이믈 오도송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무슨 천왕 등이 상주하시는 것을 모습이나유형으로 알아지녀 저 하늘 어디엔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으로
여기시는지는 모르나 우주선 1만대를 가지고 돌아다녀도 결코 창을 수 는 없읍니다.
오히려 내 마음중에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유형적 의미가 아닌 이미 새계의 빛의 모습으로 상주하기
때문에 찾을 수 가 없는 것이니 영축산의 모임에서나 미팅할 수 있음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佛身淸淨常寂滅하사 光明照耀徧世間하사대
불신청정상적멸 광명조요변세간
부처의 놈은 청정하고 항상하며 적멸 하시어 광명의 빛이나게 비추시며 두루 두루 세간에 행 하시니
無相無行無影相이여 譬如空雲如是觀이로다
무상무행무영상 비여공운여시관
상이 없고 행이 없으며 그림자가 없는 모습이여 비유컨데 공간에 구름을 보시든 관 하도다.
참고) 초선정의 수다원과 의 의미는 우리들 같은 중생들로서 제일 중요한 단계 이며
성인경지에 들 수 있는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곳이므로 아주 중요합니다.
이론적이라도 조금 이해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다원과의 초선정 수행의 경지로서는 화를 한번내거나 번뇌의 생각이 깃들면 이를 7 번 동안
화를 내서는 아니된다는 굳센마음의 갈등의 폭을 겪은뒤 생각을 그치는 선정삼매 경지를 말합니다.
그 위에 이선정의 사다남은 화를 내는 것이 딱 한번 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딱 그칩니다,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 경지에 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선정삼매에 최고의 경지에 들면 화라는 것 자체가 없는 상태를 말 합니다.
이를 아라한 경지라 하는데 아라한 경지에 들면 복음전이라 하여 중생들에게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상태가 되는 경지를 말 합니다.
부처님은 성불하시고 항상 아라한 경지에서 법을 설하시고 늘 이를 강조하셨읍니다.
예수님께서 설하시는 광경을 기록하신 성경을 참구하여 보면 항상 아라한 행을 행 하시면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 하셨읍니다, 이 4 단계의 선정의 공통적인 것은 무아 입니다, 내가 없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는 경지를 말하며 단지 수행과 공덕에 의하여 단계의 경지가 다를뿐이며, 결국은 같은 아라한 경지는
언젠가는 성취하는 성인류에 입학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경지인것입니다.
佛身淸淨常寂滅(불신청정상적멸) 에 대하여 소개해본다면
해의: 불신: 부처님 몸을 말 함인데 부처님의 몸이라 함은 비로자나 법신을 말하는데 온 우주의 무량한
공간일체가 전부 부처님 몸입니다.
청정상적멸: 맑고 깨끗하며 항상 하고 고요하면 마치 죽은듯이 주어진 것이 부처님의 몸이라 하는데
우리의 몸에서 한번 찾아보기로 합시다, 기초적 수행법이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각을 늘 내는 그 복판을 자세하게 비추어 보게 되거나, 생각없이 어디에 집중할때 멍 한 어떤 훤한 느낌으로
항상 있는 환한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기때도 있었고 어릴때도 있었으며 늘 지금도 항상 나와 함께 있는 듯한
훤한 것입니다, 이를 깨끗하고 맑고 항상하며 고요하며 마치 죽은듯이 형영할 수 없는 상태를 말 합니다.
왜 이것이 항상 훤 한 느낌으로 투영되는가 하며는 우리 의 생각을 내는 이 마음자리는 모두 빛을 머금고
꽉 차 있기 때문에 바깥의 공간처럼 늘 환한상태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이 자리는 항상 환 합니다, 이를 항상 깨어있다라고 선각자들은 말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불신청정상적멸" 한 상태라 하는 것입니다. 이 항상 이러한 상태를 유지함을 인식하는
그자리는 호흡이 들낙날락 하며서 유지되는 듯이 느껴지며 나의 존재처인 아상을 만드는 본부가 되는 자리이징됴.
광명조요변세간: 이러한 부처님의 몸은 빛이 밝으며 빛을 내며 모든 것을 두루 두루 비추며
행합니다.
쉽게 말해서 호흡이 들락 날락 하는 그것이 결국은 빛 입니다.
빛이 꽉차 있는 마음은 늘 안과 박이 같음으로 팽창 수축하면서 계속 순환 하는 것을
광명조요변세간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몸안에 있는 마음의 광명불신자리는 외부의 모든 공간과 다르지 않읍니다.
이를 안밖이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며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는 반야경을 참구하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무상무행무영상:
내 마음의 본자리은 불신인 부처님몸은 청정상적멸하고 광명조요변세간 을 행하시는데
모습이 없고 행함도 없으며 그리자도 없이 그냥 환 하기만 하다 라는 것을 무상무행무영상 이라 합니다.
비여공운여시견:
비유하면 청정한 공간에 구름을 보듯이 사바세계의 물질계들을 다 보도다 하는 것입니다.
청정상적멸하므로 움직이지 않읍니다, 이를 마음거울이라 하고 반야경이라 하는 것인데
거울은 항상 청정하고 환하면서 무엇인가 음영이 와서 비추면 있는 그대로 마음 거울이
비추는 것인데, 움직이지 않고 적멸하며 청정해야 피사체나 물질의 유형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니 , 마치 구름처럼 구름이다가 비가 내리는 인연의 운행상태를 죄다 보는
것을 비여공운여시견이라 마치 구름을 보듯이 한다 라고 하는 것을 실제로 보아 이를 증 했다는
것을 게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러한 불신의 자리는 모두가 각기 다 가지고 있읍니다.
이 넘하고 게임을 걸어서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본래면목) 수행이며 불교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끄집어내거나 그 정체를 알고 항복을 시켜야 만 합니다, 이것이 본분사입니다.
이 자리가 우주공간 전체와 다 통하고 동시적인 관계로서 다 통하는 자리라 부처님게서는
말씀하셨읍니다.
단지 무명에 의하여 착 하고 12 인연에 걸리는 몸을 지녀 한계점을 지니고 염착되어 무수한
무리로 이루어 발생한 중생을 욕도에 갇힌 욕계세계라 이름합니다.
佛身如是定境界 여 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불신여시정경계 일체중생막능측
부처의 몸은 이와같이 머물러서 같음의 경계를 드러내심이여, 일체의 중생은 이를 측량할 능력이 없거늘
참고) 빛의 운동은 쉽게 말하자면 일체의 중생이 서로 빛운동을 하고 비추고 비춤을 당하며 간섭하고
밀고 당기는 직화 운동을 지그 재그로 하는 양태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의지가 압축하고 섞이면서 하나의 어떤 의지가 주어지는데 이를 빛의 운동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의러한 운동을 담은 모틀은 빛의 운동범위 범주에 따라 공간이 팽창되고 수축되는
것과 같은 공간의 규모도 변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탈이 주어지는데 둥근 법성으로 머물러 빛의 전체의
운동의지나 개별적 미미한 존재이거나 행하는 데로 비추어 줍니다. 이러한 류의 운동을 하므로
생명성품들의 의지로 빛의 직화운동을 하는 그 자체를 반연하여 무시무종의 원각의 법성의 체로서비추어주므로서 불신여시정경계 여!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이 우리마음자리에 죄다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죄다 이 빛의 의지인 마음에 주가 같이 함께 하므로 마음으로 품은 생각이나 행을
동시에 주께서 다 보고 다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쿼바디스" 라 하지요
그러므로 불가사의한 생명성품들의 무한한 불성들이 서로섞이며 일승의 의지를 내거나 대승의
의지를 타고 빛의 의지가 발하므로 중생들이 이를 능력으로 측량하기란 불가능 한 것입니다.
이를 일체중생막능축 이라고 합니다.
示彼難思方便門하시니 此慧光王之所悟로다
시피난사방편문 차혜광왕지소오
중생상으로서는 생각으로는 어려운 방편문을 보이시니 이를 헤광법왕이 깨달은 바로다
참고) 중생상이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발하는 우리들을 말 합니다.
생각에 묶여서 생각대로 집착을 내어 생각대로 윤회하는코스에 들어서서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는 사바세계를 보고
혜광왕이 깨쳐서 해탈한 경지를 게송하는 것입니다.
색계의 초선천 세게 는 중요하므로 소견머리를 너무 심하게 부대하여 사설이 길었읍니다.
이해하시고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계속 대범천왕대중들의 게송을 소개 하겠읍니다 - 합장-
행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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