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재수 있던 날(?)
김상득
5월이 오면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다. 그날은 우리 가족 모두가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기억하기 싫은 끔찍했던 일을 당한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5월5일 어린이날이다. 아들 녀석이 네살 정도였을 무렵이니까 꼭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아내와 나는 어린이날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야외놀이를 가기로 결정, 김밥을 만들고 삼겹살과 과일을 준비해 야외용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넣었다.
아내는 어린이날이면 항상 다니던 가까운 산성이나 한 바퀴 돌고 바람을 쐬자며 멀리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어린이날인데 좋은 곳을 가야지 얘들이 좋아할 거 아냐.” 하면서 청주 근교 보다는 좀 멀지만 등산을 다니며 봐 왔던 괴산 선유동이 괜찮을 듯 싶어 그곳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내도 흔쾌히 괜찮다는 대답이다.
괴산 선유동은 경치가 빼어나고 물이 깨끗하기로 손꼽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오랜만에 큰 딸, 둘째 딸, 막내아들 녀석과 우리 부부까지 다섯 식구가 승용차를 타고 먼 야외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녀석들은 가족 소풍을 간다며 들떠 온통 난리 법석을 떨었다. 막내는 누나들이 좋아하니까 덩달아 온 집안을 쿵쾅거리고 뛰어 다녔다.
큰 딸은 “아빠, 선유동은 어떤 곳이야. 물에도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아직 추워서 물에 못 들어가. 물에 들어가면 감기 들어.”라며 대답했다. 둘째 딸은 “그전에 갔던 데는 수영도 할 수 있어 좋았는데.”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장만해 차 트렁크에 실은 우리 가족은 비록 하루지만 오붓한 나들이의 꿈을 안고 신나게 출발했다. 앞좌석은 나와 아내가, 뒷좌석에는 3남매가 나란히 앉았다.
청주를 벗어나 가덕 삼거리에 이르자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차창 밖으로 봄의 푸른 녹색이 무르익고 있었다.
농번기 철이라 농촌 들녘은 한창 농사 준비하는 농민들의 바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아내도 모처럼 바깥 바람에 기분이 상쾌한지 차창 밖의 농촌 산야를 만끽하며, “요즘 농촌 집들은 도시 있는 집처럼 깔끔하게 잘 짓네. 예전 농촌 같지 않아.”라며 변하는 농촌 풍경에 감탄을 내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려 화양동 입구에 이르자, “야~아. 화양동이다”라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정표에는 자연학습원, 선유동 표시가 선명히 보였다. 얼마 안 있으면 선유동에 도착한다고 일러줬다.
선유동 구곡은 퇴계 이황(李滉)이 이곳 경치에 반해 아홉 달 동안 송면리 송정마을(당시 칠송정)에 머물며 굽이굽이마다 9곡을 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유동에 도착해 적당한 곳에 주차시킨 뒤 물과 가깝고 그늘이 있는 괜찮은 자리를 택해 돗자리를 깔고 가져온 음식들을 풀어 놓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이런 맛 때문에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나들이 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버너에 불을 붙어 고기 구울 준비를 했다. 바위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보니 꽤나 깊은지 물이 시퍼렇게 보였다. 얘들한테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일러줬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다른 가족들도 음식을 펼쳐놓고 먹고 있는가 하면,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겼다.
둘째 딸은 아이들의 물놀이를 보고 저도 하고 싶었는지 물 건너편 바위로 올라가면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아내는 얼굴이 사색이 돼 울상을 지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둘째가 앞 계곡물 건너 바위에 올랐다가 미끄러져 깊은 물에 빠져 큰일 날 뻔했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저 분이 물에 뛰어들어 구해줬어.”라고 말하며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 한 분을 가리켰다.
그분께 정중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며 아내를 위로했다. 딸아이는 물에 빠지면서 놀랐는지 춥다며 집에 가자고 졸랐다.
아내와 나는 놀던 자리를 정리한 뒤 일찌감치 집을 향해 출발했다. 일찍 출발한 탓에 도로는 차량이 별로 없어 복잡하지 않았다. 청천을 지나 미원을 거쳐 추정고개에 이르렀을 때 앞에 작은 트럭이 천천히 가며 알짱거렸다.
그때는 도로가 지금처럼 4차로가 아닌 2차로였을 때이니까 차량을 추월할 수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트럭을 추월하려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로를 달리는 순간 맞은 편에서 택시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당황했다. 충돌을 피하려 다시 빠르게 정상차로로 들어가면서 급제동을 했으나 승용차가 미끄러지면서 반대차로를 넘어 6~7미터 언덕아래 마늘 밭으로 ‘꽝’하고 굴러 떨어졌다.
차는 언덕 밑 마늘밭 가운데 떨어져 옆으로 자빠졌다.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나는 자빠진 차문을 열고 나와보니, 막내와 둘째 딸은 차에서 튀어나간 상태였지만, 다치지 않은 듯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도 아내도 다행이 크게 다친 데가 없어 보였다. 큰 딸은 차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비명소리만 들렸다. 황급히 엎어진 차안을 들여다보니 좁은 차안에 거꾸로 끼여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간신히 딸을 차에서 끌어내고 보니까 얼굴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고 상처가 심했다. 급한대로 큰 딸을 들쳐업고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아 타고 충대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사고 정황을 설명하자 응급조치를 취해줬다.
딸의 상처는 이마의 머릿속과 귀밑에서 턱있는 쪽으로 상처가 커 보였다. 의사는 진찰을 한 뒤 상처가 크게 깊지 않아 상처부위를 꿰매면 빨리 치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늦은 저녁 시간,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병원으로 들이닥쳐 모두들 놀라면서 사고에 대한 설명을 듣곤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라며 천운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의사가 상처를 치료하고 꿰매는 동안 딸은 아프다고 울면서 아내를 찾았다. 옆에서 자식의 고통을 같이 감내하고 있던 아내는 “엄마 여기 있어. 착하지 좀 아파도 참아. 그래야 상처가 빨리 났지.”라며 달랬다. 자신도 얼굴이 눈물 범벅이면서 딸을 달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우리 가정에 큰 불행을 가져올 뻔했으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한 지 두 시간 가깝게 30여 바늘을 꿰매며 치료를 끝낸 의사도 진땀을 흘렸다.
부모는 다 그렇겠지만, 아내는 자식이라면 누구보다 끔찍이 생각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한 번도 아내 등에서 아이를 내려놓지 않고 키웠다.
그렇게 키워온 자식이 교통사고로 아픔을 겪고 있으니, 옆에서 보는 엄마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식들이지만,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모든 시중을 다 들어준다.
우리 가족에게는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5월5일, 왕재수 없는 날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다섯 식구가 탈 없이 행복할 수 있어 왕재수 있던 날로 생각하고 싶다. 나는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운전은 천 번을 잘해도 한 번 실수로 평생을 후회한다고….
첫댓글 " 도로가 지금처럼 4차로가 아닌 2차로였을 때이니까 차량을 추월할 수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트럭을 추월하려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로를 달리는 순간 맞은 편에서 택시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당황했다. 충돌을 피하려 다시 빠르게 정상차로로 들어가면서 급제동을 했으나 승용차가 미끄러지면서 반대차로를 넘어 6~7미터 언덕아래 마늘 밭으로 ‘꽝’하고 굴러 떨어졌다.
차는 언덕 밑 마늘밭 가운데 떨어져 옆으로 자빠졌다.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나는 자빠진 차문을 열고 나와보니, 막내와 둘째 딸은 차에서 튀어나간 상태였지만, 다치지 않은 듯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
" 우리 가족에게는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5월5일, 왕재수 없는 날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다섯 식구가 탈 없이 행복할 수 있어 왕재수 있던 날로 생각하고 싶다. 나는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운전은 천 번을 잘해도 한 번 실수로 평생을 후회한다고…. "
와~ 진짜 천운이었네요. 사고를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운전은 천 번을 잘해도 한 번 실수로 평생을 후회한다고…. "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안전운전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지키는 일 입니다. 생활화 합시다. 다시한번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인데도 관심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 정진하겠습니다. 일요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병원으로 들이닥쳐 모두들 놀라면서 사고에 대한 설명을 듣곤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라며 천운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천운이십니다. 강화의 계기로 조심시면 좋은 교훈이 아니었었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업시간에 낭독하실 때 놀랐습니다선생님.
정말 큰일 날뻔 하셨습니다. 그때 다친 따님이 건강하시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