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작고 못나고 불쌍한 사람 -
권다품(영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본받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 좋은 점을 먼저 찾아내려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먼저 좋은 점을 찾는 사람은 참 속이 찬 사람일 것 같다.
그런 사람은 본받고, 또 친구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 다른 사람의 안 좋은 점을 먼저 살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만나기가 참 조심스러울 것 같다.또, 사람중에는, 자기랑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가기 마련이겠다.
원래부터 만나고 있는 사람은 서로 잘 알다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도 있을 것이고,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눠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뭐 내가 보니까, 별로 특별히 잘난 것도 없더마는....." 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보다 새로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시샘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술이 그렇게 취하지도 않으면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취한 척 하며 "변절자 배신자" 운운하며, 할끔할끔 눈치를 살피며 반응을 살피는 영악함도 보인다.
젊었을 때, 학원가에 근무할 때다.
같이 근무하는 강사중 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술자리에만 앉으면, 다른 사람에게 평소에 생각해오던 자신의 의심이나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욕을 하며, 기분좋은 술자리를 망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그만 모임을 끝내고 헤어진다.
그래놓고는 이튿날 출근해서 교무실로 들어오면서 "어제 내가 혹시 실수한 거 없어요? 나는 기억이 하나도 없네."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할끔 할끔 살피곤 했다.
같이 마신 사람들은 "그렇게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한 척 한다." 면서, "술을 같이 못 마시겠다."고 했다.
나도 학원 동료라 어쩔 수 없이 몇 번을 참았다.
하루는 신입 선생님 회식 날이었다.
느닷없이 옆자리에 앉은 내게 "씨발 넘아, 니도 조심해. 니가 잘났으마 얼마나 잘 났노? 애들이 니도 수업 좆같이 한다고 말 나온다고. 그라고, 내가 지금 니하고 같이 강의하고 술마시니까, 니하고 같은 레벨로 보이나, 개새끼야?"하며 욕을 했다.
여태까지 봐 오긴 했지만, 자기보다 한 살이 많은 내게 이런 말을 해야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또, 입시 학원에서는 강사들이 자기 관리는 자기가 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건 치욕이었다.
특히 수업이 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말은 학원강사들에겐 가장 민감한 문제고, 듣는 사람에겐 치욕이었다.
속으로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어허~이 0선생, 오늘 또 와 이카는교? 담배나 한 대 피우러 나갑시다." 하면서 다른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뺨을 몇 대 갈겨 버렸다.
"야 이 새끼야, 술을 쳐먹어도 말은 조심하고 살아.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그 따위 소리를 하는데? 그리고, 너 다른 사람한테 술취한 척 하며 눈치 살살 살피는 거 나는 다 알아, 이 새끼야. 나한테는 잔머리 굴릴 생각하지마. 나는 이미 18살 때 이미 다 마스트했던 거야, 이 새끼야. 그리고, 가만히 듣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다 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니만 똑똑한 거 아냐. 새끼가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드나? 앞으로 주둥이 조심하고 살아, 이 새끼야."하며, 한 대를 더 갈겨버렸다.
그랬더니, "권선생님, 미안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하길래 나는 술 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이튿날 출근을 하면서 내 눈치를 흘끔 흘끔 보더니, 다른 사람을 다 두고 나를 보면서 "권선생님, 혹시 어제 내 실수한 거 없습니까?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했다.
나도 "나도 어제 술이 많이 돼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해 버리고 말았다.
자기가 기억이 안 난다는데, 애써 나한테 뺨맞은 기억 안 나느냐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앉은 술자리에서는 더 이상의 주사는 부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법대 출신이란다.
그 사람 말을 빌리면, 고시원에서 같이 고시공부를 했던, 자기보다 학과 성적이 적게 나오던 다른 친구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는데, 이상하게 자기는 자꾸 떨어지더란다.
친구들에 대한 패배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이후 결혼을 했는데, 그 주사와 그 피해의식 때문에 매일 술에 젖어서 가정폭력을 휘두르다결국은 이혼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잘 했는데, 가정 형편상 상급 학교로 진학을 못한 사람들에게도 더러 이런 증상이 나타난단다.
'졸업장이 없어서 그렇지 내 머리는 너희들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한자성어를 많이 쓰는가 하면,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영어도 많이 섞어 쓰는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단다.
그런 사람은 그 모임에서 자기보다 학벌이 좋거나 리드격인 사람들을 싫어한단다.
다른 사람의 관심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게 싫고, 또, 그 리드격인 사람을 이기면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를 할 수 있다는 얄팍함도 깔렸단다.
그래서 자기가 리드가 되고 싶어서 자꾸 앞에 나서는 경향도 있단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내 똘마니들이지 뭐." 하는 갖잖은 사람도 있단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졸업장 때문에 아는 척 하고 똑똑한 척 하고 싶고, 리드가 되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다 안 다고 한다.
내 생각이기는 한데, 머리가 조금만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내 적의 적은 나와 친구'고, '내 적을 좋아하거나 친한 사람은 나의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다.
자기와 친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그 칭찬받는 사람을 헐뜯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도 있단다.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좋은 직장을 다니거나, 돈이 좀 더 많은 사람도 배 아파하고 싫어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먼저 챙기고, 모임도 자기 위주로 돌아가야,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말 그대로 단순무식한 사람이겠다.
그런 사람은 술집도 자기가 가자는 집으로 가야 하고, 또, 자기 친구나 아는 사람이 누구랑 술마시며, 무슨 말을 했는지도 궁금해 한단다.
"혹시 내 말 안 하더나?" 하며 자꾸 캐 묻는 증세도 있다고 한다.
참 피곤한 정신병자겠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 싶다.
사람들은 남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갈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에서 그 사람의 따뜻한 사람 됨됨이를 느끼기 때문이겠다.
나도 남 헐뜯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런 사람은 꼭 술을 마셔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성격이라면, 평소에도 말을 않을 뿐,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속을 썩히고 있다가 술이 들어가면 터져서 자기 수준이 드러날 것이다.
나는 내게 대놓고 직접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냥 거리만 둘 뿐, 그런 말 한 적이 있느냐 어떠냐 불러서 확인하지는 않는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정도를 참아보다가, 나를 계속 무시하는 게 확실하다 싶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 사람은 참고 이해해 준다고 바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 다른 사람에게 인기가 없어도 괜찮다.
혹시,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 욕먹을 만 한 게 없는지 또 좀 돌아봐야 겠다.
2024년 1월 6일 낮 12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