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가해, 하느님의 말씀 주일] 루카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설 명절에 많이 하는 인사말입니다. 본격적인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복’을 많이 받아서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빌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서로에게 빌어주는 그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도록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힘’정도로 여길 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빌어주어야 할 참된 ‘복’은 그런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르크’는 ‘좋은 것을 받도록 기원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기를 간절히 바라야 할 그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식별하는 것이 진짜 복을 제대로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겠지요.
오늘 제1독서인 민수기에서 하느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들이 그들에게 참으로 ‘축복’이 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주고자하시는 축복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많은 재물을 얻게 해주는 ‘행운’도 아닙니다. 주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참된 소통을 나누는 것이 축복이고, 그분께서 온갖 악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 축복이며, 그분께서 나에게 은총과 평화를 베풀어주신다는게 축복입니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그런 것들을 진정한 축복으로 여기며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선물받았기에 이미 축복받았고, 그분께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자비로이 용서하셨기에 큰 축복을 받았으며, 언제나 사랑과 은총을 넘치도록 베풀어주고 계시기에 늘 축복받고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이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 복된 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굳게 믿으며 그분의 자비에 깨어있을 수 있다면, 그는 ‘축복 받은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주십니다. 거저 주십니다. 알맞게 주십니다. 그런데 세속적인 이익만을 바라는 나의 편협한 사고로 그분의 뜻을 제멋대로 재단하고는, 남들은 다 축복을 받아서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나만 축복을 못 받았다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분명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꼭 맞는 축복의 선물을 충분히 주셨습니다. 그러니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내가 받은 선물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미 받은 것에,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면, 또 다른 은총의 선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진 이는 주님 은총의 선물들을 더 찾고 누려 넉넉해지는 겁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이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이미 받은 선물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흘려버리기에 가진 것을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설 명절을 지내는 것은 ‘감사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유형무형의 소중한 유산을 물려주신 조상님들께 감사하고, 서로 사랑과 도움을 주고 받는 가족 친지들에게 감사하며, 무엇보다 이 모든 감사의 원천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이들은 세상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생각하며 그분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사랑의 섭리 속을 걸어갑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가 권고하듯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는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할 가장 현명한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것들도 하느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겸손’일 뿐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려있음을 명심하고 그분께 나 자신을 겸손하게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빌어주는 ‘새해의 복’은 지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아니라, 종말의 순간 하느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의연함’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에 늘 깨어있기 위한 노력이 그런 의연함을 길러주는 원천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특히 강조하시는 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해야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기다려서는 그 ‘때’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정지된 상태에서 다른 차선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렵지만 달리는 상태에서는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것처럼, ‘이미’ 하느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살고 있어야 종말의 때가 언제 닥치든 ‘구원의 차선’에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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