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수선하다. 흙을 들이붓는 덤프트럭. 기중기와 바다에 박아둔 쇠말뚝들. 현수막은 무재해 100일 달성을 독려한다. 낌새를
챘는지 그 흔한 갈매기도 고작 한 마리 끼룩끼룩 날아와서는 끼룩끼룩 날아간다. 현수막은 여기가 용호만 공유수면 매립사업 현장임을
밝힌다. 올해가 지나면 땅이 될 바다임을 밝힌다.
땅이 될 바다로 배가 들어온다. 뱃사람은 두 사람. 한 사람은
뱃머리에 있고 한 사람은 조종칸에 있다. 배는 시끌벅적하다. 두 사람이 고함을 질러야 말귀를 알아들을 만큼 엔진소리가
시끌벅적하다. 배가 포구에 닿자 뱃머리 사람이 냉큼 뛰어내려 밧줄을 쇠말뚝에 칭칭 감는다. 배가 다소곳해지면서 엔진도 꺼진다.
"
귀를 딱 막아 안 들린다 아이가." 잠잠해진 틈을 타 물어봐도 해녀는 아무 반응이 없다. 해녀는 포구에서 해산물을 파는 현순열
아주머니. 제주 출신이고 육십대 중반이고 경력은 사십 년이 넘는다. 해산물을 배에서 옮기고 다듬느라 쉴 짬이 없다. 짬이 없어
잠수복에 잠수경에 차림새가 그대로다. 물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둔 귀마개도 그대로다. 철도청 공무원으로 퇴직한 바깥분이 곁에서
거들면서 대신 대답한다.
광주리는 여섯 광주리 일곱 광주리. 광주리에 담긴 것이 싱싱하다. 전복은 미역 같은 해초에
붙어 꼼지락댄다. 해초 이름은 도박풀. 전복이 좋아하는 풀이란다. 멍게 성게 고동도 '한 싱싱' 한다. 해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고
대답은 바깥분 몫이다. 고동은 참고동과 멥쌀고동. 전복도 성게도 고동도 모두모두 오늘 아침에 나가 잡아온 것. 이기대 지나
치마처럼 널따란 치마바위에서 잡아온 것. 이기대 지나 오륙도 바다도 단골 바다다.
'날이 흐려 다섯이면 어떻고/ 날이
맑아 여섯이면 어떤가/ 다섯과 여섯을 넘어 바위로 선/ 영원/ 덧없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섰다가/ 어느 새 섬은 잠들고/ 별을
헤느라 조용하던 파도들/ 섬을 향해 다시 밀려가면/ 우리가 왜 외롭고/ 우리가 왜 그리운지/ 그대 문득 아는가.' (윤상운 시
'오륙도')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이 쉽게 부글대고 쉽게 치솟는 건 섬을 향해 밀려가는 파도 때문. 쉽게 풀고 쉽게
터는 건 파도가 덧없다는 걸 알기 때문. 그러면서 외로움은 섬처럼 축축해지고 그러면서 그리움도 촉촉해진다. 그대 아는가. 바닷물에
젖어서 섬이 되어가는 사람을. 바닷소리에 젖어서 섬이 되어가는 사람을.
포구 너머 저쪽은 광안대교. 그 너머는
삼익비치. 포구 이쪽은 분포고등학교다. 분포는 용호동 이전 이름. 분포 다른 말은 분개로 포구를 이르는 우리말이 개다. 갯가
갯바위 갯마을이 개에서 나온 말이다. 전포 옛 지명이 밭개고 덕포는 언덕 덕을 써 덕개다. 분포를 섶자리라고도 한다. 잘피라는
해초가 풀숲처럼 풀섶처럼 군락을 이룬 자리라 해서 섶자리다.
"분깨소금은 내로라 하는 소금였지요." 용호향우회장을
맡았던 최대복(64) 용호새마을금고 이사장. 어릴 때만 해도 이 일대가 온통 염전이었다며 분포고와 아파트단지를 가리키고 약도를
그려가면서 용호1동 삼성시장, 용호3동 종합복지관을 가리킨다. 분개 분(盆)은 그릇을 뜻하는 말. 바닷물을 담은 널따란 그릇
모양의 염전 또는 소금을 졸이는 큰 질그릇, 대충 그런 뜻이다. 포구 입구 어촌계 활어판매장 자리가 섶자리라며 그쪽을 또
가리킨다.
염전이 사라진 것은 용호동 구획정리가 마무리된 칠십년대 초반. 찰랑대던 바닷물을 밀어내고 부경대가
들어선 마당에 염전이 무사할 리 없다. 포구가 섶자리에서 지금 자리로 옮긴 것도 그 무렵이다. 포구는 용호만 매립사업이 끝나는
내년쯤에 다시 섶자리로 옮길 전망. 매립이 끝나면 섶자리와 동생말, 이기대 일원을 자연친화적 관광지로 개발해 지역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말을 최 이사장은 거듭거듭 되뇐다. 마을금고 책임자답다.
"남구 발전의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남구청 하인상
구보편집실장은 한 발 더 나간다. 이 근방 백운포에 해군작전사령부가 들어섰는데 여기 장병은 물론 여기를 찾는 외지인들이 돈 쓸
데가 없다는 것. 얼마 전에 국제관함식을 하면서 구경꾼이 몰려도 돈은 딴 데서 다 썼다는 것. 동생말 이기대는 물론 경성대,
차량등록사업소까지 관광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생말이 또 나온다 동생말은 분포를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야산.
하 실장은 광산에서 구리가 나왔다 해서, 최 이사장은 해가 뜨는 동쪽 끝자락이라고 해서 동생말이라고 그런다. 개발이란 말을 하고
또 하는 걸 보니 뭔가 프로그램이 있는 듯하다.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처지. 삽을 찍더라도 람사르 기사라도 한 번
읽어보고 찍으시길. 바다에 흙 한 삽 붓더라도 우포늪이라도 한 번 다녀와서 부으시길.
포구 한편은 조선소. 길쭉한
배가 번쩍 들려 있고 배 밑에선 쇠망치질에 용접에 소리는 높고 열기는 뜨겁다. 배를 들었듯이 내년이면 번쩍 들려서 자리를 옮길
포구 분포. 포구에다 대고 누군가는 쇠망치질을 하고 누군가는 용접을 할 것이다. 소리는 높고 열기는 뜨거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들려본 날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 나는 누가 번쩍 들어줄 것인가. 나를 높고 뜨겁게 해 줄 것인가.
어
수선은 해도 포구는 포구다. 끼룩끼룩 날아간 점박이 갈매기가 끼룩끼룩 날아온다. 혼자서는 안 되겠던 모양이다. 옆에도 갈매기고
뒤에도 갈매기다. 해녀는 마수걸이로 성게알 한 봉지를 만원에 판다. 오늘은 보름 다음날. 근처에 살아 어제도 왔다던 수필가
김정화는 보름달 뜨는 포구를 꼭 보란다.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막 들어온 배가 틀어대는 유행가가 포구를
구석구석 들쑤신다. 그래도 해녀는 반응이 없다. dgs1116@hanmail.net